48. 희망을 품길 원했다.

택시에서 내려 분식집으로 걸어가는 길.
“어린애들 잘 보는 또 노을 씨. 다정이한테 어떻게 접근할지 아이디어 좀 내봐.”
“응? 접근 방법? 넌 어떻게 했었는데?”
“나는 그때 불꽃 연기 투혼을 발휘했지!”
그때를 회상하며 뿌듯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태양.
“그 애가 불쌍한 사람을 그냥 못 지나치나 보다.”
“그런가 봐. 똑 부러지면서도 착하더라고. 아니, 근데! 불쌍한 사람이라니, 내가 불쌍해서 같이 밥 먹어줬다는 거야?”
“하하. 그런 것 같은데. 다 큰 어른이 돈도 있으면서 혼자 밥 못 먹어서 배고프다고. 앞에서 그러면.. 불쌍해 보이지.”
노을의 말을 들으며 정말 그랬나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럼 너는 어떻게 접근할 건데?”
“네 방법 나빠 보이지 않는데? 불쌍한 사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우리를 도와달라고 해보자.”
“어떻게?”
“후후. 따라와. 내가 하는 말에 장단이나 잘 맞춰줘.”
태양의 질문을 어물쩍 넘기고는 앞장서서 걸어가는 노을.
“야! 대답은 해주고 가!”
태양의 부름도 무시하고 아이 근처로 다가간 노을은 아이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았다. 이어서 도착한 태양은 조용히 곁에 섰다.
모르는 아저씨가 둘이나 가까이에 오자 자리를 피해야 하나. 다정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옆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가 다정의 흥미를 끌었다.
“현수한테 뭘 사다 줘야 먹으려나?”
노을이 운을 떼는 것을 태양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반응했다.
“글쎄. 애들 입맛엔 뭐가 맛있나 모르겠다.”
“누구 물어볼 애도 없고..”
말하며 고개를 돌려 다정을 바라보는 노을.
“안녕? 몇 학년이야? 혹시 3학년 애들은 뭘 좋아하는지 아니?”
이미 태양에게 들어서 다정이 3학년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3학년을 언급했다.
“나도.. 3학년인데.”
“어? 정말? 잘 됐다! 그럼 3학년들은 어떤 음식 좋아하는지 알겠다. 그치?”
태양은 시간을 돌리기 전 만났던 다정이가 3학년이라는 사실을 자랑하듯이 말했던 걸 기억하고는 말을 이었다.
“야. 당연히 알겠지. 무려 3학년인데!”
잘 모른다고 대답하려던 다정이 태양의 ‘무려 3학년’공격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것 같기도 해요. 맛있는 거! 맛있는 거면 다 좋아하는데!”
“그래? 그럼 맛있는 거는 어떤 걸까? 예를 들면.. 저기 가게에서 파는 돈가스는 어때?”
‘돈가스’ 역시도 태양에게 미리 들어두었던 다정이 좋아하는 음식.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게 안으로 향한 다정은 침을 꼴깍- 삼키며 대답했다.
“좋아해요! 돈가스는 애들 다 좋아하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저기 가게에서 파는 게 맛있을까? 저기가 돈가스를 맛없게 하면 어떡하지?”
“그러게. 그럼 현수는 다시 아무것도 못 먹고 배고프다고 울겠지?”
노을과 태양이 번갈아 가며 말하자 다정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나도 저건 안 먹어봐서 맛있는지 아닌지 모르는데..”
걸렸다! 싶은 표정을 지으며 태양이 얼른 말했다.
“그럼 시식을 좀 부탁해도 될까? 맛있는지 아닌지 3학년인 네가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시식.. 이요?”
“어. 네가 맛있다고 하면 3학년인 현수의 입맛에도 맞을 것 같은데.. 어때? 좀 도와줄래?”
“네! 도와줄게요! 같은 3학년이니까요!”
도대체 3학년에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밥을 먹일 수 있게 됐다.
“들어가자.”
딸랑-.
무사히 분식집 입성에 성공하고, 주문을 하는데 다정이 놀라서 물었다.
“돈가스.. 시식해달라고 했었는데..”
“응. 그런데 왜?”
다정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은 주문지를 향했다.
“만두랑. 김밥이랑. 떡볶이도.. 시켰잖아요.”
다정에게 고개를 기울여 속삭이는 태양.
“혹시 돈가스가 맛없으면 어떡해. 그때는 다른 걸 먹어보고 맛있는 걸 찾아야지.”
그런 깊은 뜻이 있었냐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는 다정.
두 사람은 그 모습을 보며 귀여워 죽겠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노을은 음식을 기다리며 다정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집에 안 가고 밖에 있었어?”
“그냥요. 걸어가다가 다리가 아파서 잠깐 앉아서 쉬고 있었어요.”
이미 아이의 사정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꼬치꼬치 캐묻기보다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다.
“맞아. 다리 아프면 잠깐 쉬었다가 가야지. 근처에 마침 의자가 있어서 다행이었겠다.”
“네.. 다행이었어요. 쉬고 싶었거든요..”
저 쉬고 싶었다는 말이 어쩐지.. 힘든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는 말처럼 들려 태양은 마음이 안 좋아졌다.
노을도 아이의 말에서 그림자를 느꼈지만 애써 모르는 척 분위기를 띄우려 음식이 나오는 것을 보며 과장되게 기뻐하며 말했다.
“와. 돈가스다.”
그 소리에 퍼뜩 고개를 돌려보는 다정.
커다랗고 동그란 접시에 돈가스가 담겨서 테이블 위로 도착했다. 아이의 애타는 시선을 눈치챈 노을이 포크를 건네주며 말했다.
“자 어서 먹어봐. 맛이 어떤지 솔직히 말해줘야 한다?”
그러면서 접시 위의 돈가스를 자연스럽게 썰어주는 노을.
다정은 잘린 돈가스를 포크로 콕- 집어 와앙- 입에 넣었다.
입안에 퍼지는 고기의 부드러움과 소스의 풍미.
오물거림이 점점 빨라지며 꿀꺽- 돈가스를 삼키고 만난 이후 가장 큰 목소리로 말했다.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이거 3학년은 다 좋아할걸요?”
“그래? 다행이다. 덕분에 한 번에 맛있는 음식을 찾았네.”
연이어 도착하는 음식들.
“이것들도 맛 좀 봐줄래?”
시식이라는 말에 마음 편하게 골고루 음식을 맛보는 다정.
“우와. 이것도 맛있어요. 그런데 걔는 매운 거 잘 먹어요? 떡볶이는 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 동생도 메운 거는 잘 못 먹거든요.”
말하며 동생이 생각난 것일까. 부지런히 움직이던 포크가 멈췄다.
태양이 뭐라 말을 꺼내려던 순간 노을이 가로막으며 직원을 불렀다.
“여기요. 지금 나온 음식 메뉴 똑같이 포장해 주시고요. 거기에 어묵이랑 튀김, 순대도 추가해 주세요. 아직 먹는 중이니까 천천히 준비해 주세요.”
테이블 위에 있는 음식도 가짓수가 많은데 거기에 몇 개를 더 추가하는 노을을 보며 다정은 놀란 눈을 했다.
“그 애는 그렇게 많이 먹어요?”
“그럼. 많이 먹어야 튼튼해지지. 그리고 가족들이랑.. 아! 맞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소리치고는 태양을 툭툭 건드리며 말을 잇는 노을.
“현수 오늘 집에 없다고 했지?”
“어.. 어! 맞아. 오늘 하루 종일 없을 거라고 했어.”
“어쩌지? 음식을 이미 주문해 버렸는데..”
“힉? 어떡해요?”
“그러게. 곤란하게 됐다.. 사장님 이거 취소 안 되죠?”
카운터에 앉아 있던 사장이 놀라서 노을을 바라보는데 노을이 열심히 윙크를 하고 있었다.
천천히 해달라고 했기에 아직 조리가 들어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노을의 신호를 받고는 말을 맞춰주었다.
“네. 취소는 안 됩니다.”
“어쩌지.. 큰일 났네.”
태양은 노을의 작전을 눈치채고 다정에게 물었다.
“꼬맹아. 집에 가족들 있어?”
“저 꼬맹이 아닌데요.. 집에 할머니랑 동생 있어요.”
“그럼 저거 네가 가져가야겠다.”
“제가요? 왜요?”
“우리가 가져다주려던 현수는 오늘 집에 없어서 우리가 갖다 줄 수가 없잖아. 그리고 네가 3학년 입맛에 맞춰서 시식을 해줬잖아. 우리는 못 먹어. 우리 입맛에는 안 맞거든.”
“응. 아쉽네. 입맛에만 맞았어도 우리가 다 먹었을 텐데.”
들으면서도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다정은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그럼, 우리도 못 먹는 저 음식은 어떻게 해? 버릴 순 없잖아.”
“안 돼요! 음식 버리면 벌을 받는다고 할머니가 그랬어요.”
“맞아. 우리는 벌을 받기 싫으니까. 집에 가족이 있는 네가 가져가야겠다. 그렇게 해줄 거지?”
다다다- 말하는 태양의 수법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다정.
“와. 잘 됐다. 그럼 이제 이거마저 먹자.”
아이가 먹는 걸 바라만 보고 있으면 부담스러워 잘 먹지 못할 것 같아 태양과 노을도 한 젓가락씩 음식을 덜어 먹었다.
어느덧 아이는 배가 찼는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더는 못 먹겠어요. 배불러..”
“배부르면 그만 먹어. 남은 거는 포장해달라고 하자.”
“그런데 그 애는 오늘 못 먹어서 어떡해요?”
자신은 시식이라는 이유로 배부르게 밥도 먹고 그 애의 것이 될 예정이었던 음식도 포장해 가는데.. 그 애는 굶고 있을까 걱정이 된 것이다.
그 마음을 알아채고는 안심할 수 있도록 말을 지어냈다.
“아! 오늘 집에 없는 이유가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떠나는 거랬어.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다행이다..”
양쪽 보조개가 쏙- 들어가도록 안도의 미소를 짓는 다정의 모습에 참 착한 아이구나 싶으면서, 후원하기로 이미 결정은 했지만 직접 보기를 잘했다고 노을은 생각했다.
포장 주문한 음식들이 모두 나와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왔다.
음식 가짓수가 많아서 아이가 혼자 들고 가기엔 무리.
태양은 아이의 동네를 떠올리며 말했다.
“우리 약속 장소가 마후동 근처였지?”
“어?”
자신의 동네 이름이 나오자 자동으로 반응하는 다정.
“어. 마후동으로 가면 돼. 그런데 왜? 너도 마후동 알아?”
“우리 동네..”
“정말? 잘 됐다. 같이 가면 심심하진 않겠네.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들어다 줄게.”
“괜찮은데..”
“꼬맹이. 우리도 가는 길까지밖에 못 들어줘. 길이 갈라지면 네가 다 들고 가야 한다?”
“네!”
그냥 들어다 준다고 하기보다 이후에는 네가 해야 한다는 사실에 힘을 실어 말하자 아이는 쉽게 수긍하며 넘어갔다.
그렇게 나란히 걷게 된 세 사람.
태양은 다정을 향해 물었다.
“계속 꼬맹이라고 할 수도 없고. 밥 같이 먹은 인연으로 서로 이름이나 말해줄까? 나는 강태양이야.”
“나는 한노을.”
“.. 정다정..”
“다정이는 꿈이 뭐야?”
“.. 없어요..”
“응? 꿈이 없어? 간절히 바라는 거나 그런 거 없어?”
노을의 물음에 가만히 생각하더니 입을 여는 다정.
“할머니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말하기가 어려운지 입을 꾹 다물었지만, 노을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끌어냈다.
“응. 그리고?”
“.. 친구들이 거지라고 안 놀렸으면 좋겠고.. 라면은 그만 먹고 싶어요..”
대답을 하는 다정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렇구나. 다정아 12월엔 크리스마스가 있는 거 알지?”
노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산타 할아버지가 가끔은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먼저 다녀가는 일도 있대.”
“산타 할아버지 없는 거 다 아는데..”
“누가 그래? 산타 할아버지는 있어. 그치?”
“그럼. 있지.”
“치.. 나 3학년이라 다 아는데.. 엄마 아빠가 산타 할아버지 해주는 거..
근데 난 할머니밖에 없어서 산타 할아버지 없어요..”
아이의 생각은 확고한 듯했지만, 노을도 만만치 않았다. 과연 보육원에서 수많은 동생을 어르고 달랜 경험치가 다르달까.
“나도 어렸을 때 산타 할아버지 없는 줄 알았는데, 있더라. 근데 안 믿는 애들 앞에는 못 나타난대. 믿기만 하면 되는데, 안 믿어서 받을 선물 못 받으면 너무 아깝지 않겠어?”
노을의 말이 그럴듯했던 걸까. 다정은 혹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믿고 기다리면, 이번에 산타 할아버지가 다정이 네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꿈이라는 건, 희망이라는 건 쉽게 포기하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믿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믿어볼게요. 그래서.. 제 소원을 들어주기만 하면. 평생 산타 할아버지 있다고 믿을게요.”
아직 초등학교 3학년. 꿈을 포기하기엔 이른 나이이기에 노을은 아이가 꿈을 포기하지 않길 바랐다. 팍팍한 삶일지라도 희망을 품길 원했다.
그래서 동심에 산타 할아버지를 살게 하고 자신과 태양이 산타 할아버지가 되어주리라 마음먹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댓글,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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