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상점 오픈.

병실 안이라서 두 사람이 조용조용히 만담을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손짓하며 불렀다.
“이리로 와봐. 영길이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는구먼.”
“고맙습니다.. 내가 죽어서도 후회할 일을 이렇게 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는 안 하셔도 됩니다. 두 분에게 친구라는 보약을 지어드렸으니. 두 분이서 재미나게 오래 사시는 모습 보여주시면. 보답은 그걸로 충분합니다.”
태양의 말에 힘겹지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입을 여는 박영길 할아버지.
“허허.. 그러면 좋지요. 그러면 바랄 게 없겠어요.. 그런데.. 보다시피 내가 좀.. 아파요. 노력은 해보겠지만 혹시 보답을 못하더라도.. 이해해 줘요.”
두 분 중에 박영길 할아버지의 상태가 더 안 좋다는 것은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숨쉬기가 힘들어서 말하는 것도 힘에 겨운 것 같았다.
노을이 할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기적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꿈같은 단어가 아니라, 실제로 어쩌다 한 번씩 일어나기도 해서 사람들이 기적이라는 말을 좋아한대요. 두 분에게도 기적이 일어나서 조금 더 긴 시간 함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처음 만난 청년들이지만 자신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위로해 주는 것을 느끼며 두 할아버지는 고마운 마음을 아낌없이 느끼고 있었다.
그때 태양의 눈앞에 나타나는 시스템 창.
그 화면에 쓰인 문구를 읽고 태양의 눈은 크게 뜨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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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1단계 클리어!]
감사하는 마음이 1단계 한계치를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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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보은? 저게 무슨 뜻이지?
시스템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
[보은 1단계 클리어 보상 획득!]
숨겨진 기능 [상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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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
눈에 확- 들어오는 단어. ‘상점’
무언가를 살 수 있다는 건데 도대체 무엇을 파는 것일지 태양은 오픈된 새로운 기능을 어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먼저, 상점에 대해서 노을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잠시 이동할 필요성을 느낀 태양은 옆에 서 있는 노을을 툭- 건드렸다.
“할아버지, 목마르지 않으세요? 마실 것 좀 사 올게요.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오랜만에 말을 많이 했더니.. 목이 좀 마르네요.. 나는 물 한 잔 부탁해도 될까요?”
“그럼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밖으로 나가는 태양의 뒤를 노을도 따랐다.
드르륵-.
문이 닫히자마자 태양에게 질문을 던지는 노을.
“왜?”
“너 시스템에 상점 있는 거 알고 있었어?”
“상점? 아니. 처음 듣는데? 왜? 상점이 생겼어?”
“어. 조금 전에 시스템 창이 떠서 봤더니. 보은 1단계가 클리어 됐다면서 상점 기능이 생겼대.”
“우와. 진짜? 보은은 또 뭐지? 너는 뭐가 그렇게 새로운 게 많이 뜨냐? 그래서 상점에 뭐 있는지 봤어?”
“아니. 이제 봐야지. 그래서 밖으로 나온 거잖아.”
시스템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질문은 나중에. 우선 새로운 기능을 살펴보기로 했다.
“시스템! 테미야, 상점 보여줘.”
태양의 요청에 떠오른 상점 창에는 딱 두 가지만이 올라와 있었다.
옆에서 궁금함을 참지 못한 노을이 대답을 재촉했다.
“뭐야? 뭐 있어?”
“딱 두 개 있는데? 잠깐만 설명 좀 보자.”
**
[상점]
> 최하급 체력 물약 : 극소량의 체력을 회복시켜 준다. (필요 포인트: 20)
> 최하급 정신력 물약 : 극소량의 정신력을 회복시켜 준다. (필요 포인트: 20)
※ 조건을 충족할 시 다음 상품이 열립니다.
현재 보유 포인트: 28
**
창에 뜬 설명을 그대로 노을에게 읽어주었다.
“체력, 정신력. 뭔가 게임에서 나오는 물약 같다.”
“그러게. 밑에 이런 말도 쓰여있어. 조건을 충족할 시 다음 단계 상품이 열립니다.”
“아까 보은인가 그거 2단계 말하는 걸까?”
“글쎄 그건 안 쓰여있네.”
다시 한번 상점 창을 바라보는데 번뜩-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야, 이거 할아버지들이 드시면 어떻게 될까?”
태양의 말에 노을도 좋은 생각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반응했다.
“어?!”
“체력 물약이 떨어진 체력을 올려주는 거니까. 극소량이라는 말이 걸리긴 하지만.. 극소량이라도 할아버지들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래. 밑져야 본전이지. 그런데 그거 구매하려면 포인트 필요하잖아. 너 포인트 있어?”
“어. 다행히 포인트가 조금 남았어. 그런데 하나밖에 못 사겠는데.. 하나를 나눠 먹어도 효과가 있을까?”
두 개를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포인트를 보며 아쉬워하는 태양.
“아까 내가 뭐라고 했냐?”
“뭐?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일단 반씩이라도 할아버지들 마시게 해보자.”
노을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우선 음료수부터 사자. 박영길 할아버지는 물 달라고 하셨으니까 물도 떠서 가고.”
두 사람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고 데스크에 부탁해 종이컵을 얻어 정수기에서 물을 받았다.
병실로 돌아가기 전, 인적이 없는 구석으로 향해 상점 창을 다시 띄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테미야, 최하급 체력 물약 하나 줘.”
창의 하단에 표시되던 보유 포인트가 28에서 8로 바뀌며 내밀고 있던 태양의 손바닥 위에 작은 병이 생겨났다. 5센티가 안 되는 작은 크기의 유리병이었다.
그 신비로운 광경에 태양과 노을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우와. 이게 뭐야. 대박!”
“몇 년 동안 시스템으로 별 경험 다 해본 네가 그렇게 놀라워하는데 나는 어떻겠냐? 야, 지금 이거 허공에서 생긴 거 맞지?”
“너랑 내가 동시에 환각을 보는 게 아니면, 맞아.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갑자기 생겼어.”
“하.. 하.. 진짜 이런 경험까지 하게 되다니.. 역시 시스템이야! 테미가 최고다!”
시스템 찬양론자의 피가 들끓는 태양을 향해 노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야. 우선 정신 차리고. 어서 할아버지들 가져다드리자.”
“맞다. 지금은 할 일이 있었지. 야, 오늘 보육원 가면 얘기하면서 날밤 까자. 시스템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
“뭐? 하하. 알았다, 알았어. 얼른 반씩 따르기나 해.”
“알았어. 음료수도 까봐.”
물약의 위에 씌워져 있는 마개를 열어 정확히 반씩 음료수와 물에 따랐다. 물약이 붉은색이라 혹시 붉게 변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물과 음료에 닿으며 투명하게 섞여 들어갔다.
“들어가자.”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실로 향했다.
드르륵-.
다가가며 자연스럽게 운을 떼고 음료수와 물을 건넬 수 있었다.
“할아버지 오래 기다리셨죠? 이거 드시고 목 좀 축이세요.”
“10년 묵은 이야기를 하려니 입안이 다 말랐는데, 고맙네.”
두 할아버지는 음료수와 물을 입에 대었고, 태양과 노을은 긴장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꿀꺽- 꿀꺽-
“휴.. 이제 좀 살겠네. 시원하게 잘 마셨어. 고맙네.”
“네.. 시원한 거 말고.. 혹시 더 느껴지는 건 없으세요?”
어떻게 된 건지 결과가 궁금했던 태양이 슬쩍 질문을 던졌다.
“느껴지는 거? 어떤 거?”
“아니 뭐.. 갑자기 힘이 난다거나..”
“내가 마신 음료수가 자양강장제도 아닌데 힘은 무슨. 그냥 시원하게 잘 마셨으면 된 거지. 허허.”
김문복 할아버지의 대답에 태양과 노을은 역시 반씩 마시면 효과가 없는 건가.. 시무룩해질 때쯤.
“내가 마신 거는 약수인가요? 숨이.. 좀 편하게 쉬어지는 것 같아요..”
말을 한번 하려면 한마디 한마디를 힘겹게 내뱉던 박영길 할아버지가 조금은 덜 힘겹게 말을 건네왔다.
“정말요? 약수는 아니고 여기 정수기 물인데, 저희가 떠오면서 할아버지가 건강해지셨으면 좋겠다. 하고 염원을 담았습니다.”
미약하긴 하지만 약의 효과를 확인한 노을이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큼큼.. 그러고 보니.. 나도 기운이 조금 나는 것 같구먼.”
“할아버지는 시원한 거 말고는 별 차이를 모르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냥 분위기 맞추려고 거짓말하시는 거 아니에요?”
태양이 딴죽을 걸자, 할아버지는 버럭- 소리치며 말씀하셨다.
“아니라니까 그러네! 자봐봐. 아까는 힘이 없어서 주먹을 쥐어도 매가리가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힘이 좀 들어가잖아.”
이거 보라며 주먹을 쥐어 내민다.
태양은 할아버지의 주먹을 만져보고는 말했다.
“와. 정말이네요, 할아버지. 주먹에 힘이 들어가서 딴딴해요.”
물약은 최하급이고, 그나마 반씩 나눠 마셨으니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오늘 마신 물약으로 인해 두 할아버지의 건강이 아주 조금은 나아졌을 거라는 생각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허허. 그렇지? 두 사람의 그.. 염원? 그게 잘 통했나 보구먼. 고맙네.”
“그래요. 이렇게 걱정 받아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고마워요.”
두 할아버지의 인사를 받으며 노을이 말했다.
“저도 태양이도 매일 오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자주 뵈러 올게요.”
자주 온다는 말에 김문복 할아버지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뭘 자주 와. 요 근처에 볼일이 있을 때만 잠깐씩 얼굴 비추고 가.”
“에이. 우리가 보통 인연인가요? 무려 10년 만에 친구를 찾아드렸는데! 안 돼요. 자주 들러서 두 분이 안 싸우고 잘 지내시는지 확인하러 올 거예요.”
노을의 엄포 아닌 엄포가 있고. 태양도 말을 이었다.
“맞아요. 이미 안 보고 산 세월이 몇 년인데 또 싸울지 어떻게 알아요? 재회시켜 드린 책임이 있으니 자주 와서 감시할 겁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는 할아버지는 웃음을 참아가며 침착을 가장해 답했다.
“큼.. 뭐. 그러던가.”
“허허.. 자주 오면 우리야 좋지요..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그 쓸쓸함, 말로 다 못 하거든요.”
“영길이, 이제 내가 찾아올 텐데 쓸쓸하긴 뭐가 쓸쓸해.”
“환자 둘만 있는 거보다, 청년들이 와주면 좋지 뭘 그러나.. 자네는 예전엔 안 그랬는데 좀 꼬장꼬장해졌구먼.”
“뭐? 꼬장꼬장? 이봐, 영길이. 나 그런 사람 아닐세.”
물약을 드셔서일까, 기운 좋게 투덕거리는 두 할아버지를 말리려 노을이 끼어들었다.
“이거 보세요. 금세 싸우시네. 역시 저희가 자주 와야겠어요.”
“이건 싸우는 게 아니지. 큼.. 그래도 자주 오면 나도 영길이도 안 심심하겠구먼.”
이후의 일정이 있었기에 슬슬 병원을 떠나야 했다.
이별을 예감한 할아버지의 기분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이 보였다. 기운을 북돋아 드리고자 노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저희가 다시 올 때까지 사이좋게 지내고 계세요. 아셨죠?”
“예끼! 어른을 놀리고! 우리가 앤가? 그렇게 당부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지내고 있을 걸세.”
태양이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당부를 이었다.
“저희가 다시 올 때까지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것도 아셨죠?”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겠나.. 하지만 어렵게 이놈도 다시 만났고.”
누워있는 친구를 바라보고, 시선을 돌려 태양과 노을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 할아버지.
“내 평생 없었던 손주 같은 놈도 두 놈이나 생겼으니.. 더 살고 싶어지는구먼.
이미 망가져 버린 건강이지만, 더 망가지지 않도록 내 열심히 막아보지.”
“네. 그거면 됩니다. 할아버지도. 아셨죠? 다음에 왔을 때도 지금처럼 숨도 편히 쉬시고 말도 편하게 하시고. 그런 모습 보여주셔야 해요.”
“허허.. 그래요. 나도.. 같이 노력하고 있을게요..”
“이러다가 장수하셔서 기네스북에 올라가는 거 아니에요?”
“뭐? 기네스북? 까짓것. 올라가 주지. 그렇지 않나, 영길이.”
“그래. 해보자고..”
실현되기 어려운 목표지만, 말로나마 생에 대한 집착과 삶에 대한 목표를 세우는 모습에 태양과 노을은 흐뭇했다.
그리고 물약을 꾸준히 먹인다면.
혹은 하급이나 중급의 물약을 구할 수 있다면.
두 할아버지의 장수 프로젝트도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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