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신났네. 신났어.

“수고하십니다. 여기 진마동 진마 아파트 옆 주택가인데요. 아저씨 한 분이 길거리에서 잠드셔서요.”
“네. 네. 여기 바로 앞에 있는 집 번지가.. 59번지네요.
네. 기다리겠습니다.”
태양은 신고를 마치고 시간을 확인했다.
“음.. 15분 안에 갈 수 있을까. 혹시 모르니까 연락해달라고 하자.”
연락 없이 배달이 늦는 것은 손님의 화를 부를 수 있으므로 태양은 사장에게 전화를 부탁했다.
“네, 사장님. 경찰에 신고했는데, 이대로 가버릴 수가 없어서요. 경찰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시간 안에 배달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통화 중 경찰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어? 경찰 도착했나 봐요. 배달 제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끊을게요!”
골목 입구로 달려가 경찰차를 세웠다.
“여기요!”
“신고하신 분이세요?”
“네. 정말 빨리 오셨네요.”
“마침 근처 순찰 중이었거든요.”
“아! 다행이네요. 술에 취하신 아저씨 한 분이 저기 안쪽에서 잠드셨어요. 제가 깨워보려고 했는데, 일어나질 않으시네요.”
“신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날씨에 잠드시면 정말 위험하거든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봐도 될까요? 배달 시간에 늦으면 곤란해져서요.”
경찰은 그제야 입구에 새워진 오토바이를 바라봤다.
“아. 네! 연락처만 좀 남겨주시겠어요?”
태양은 경찰에게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고 서둘러 돌아섰다.
**
[퀘스트 완료!]
이런 데가 자면 입 돌아가요!
성공! 포인트 +2 획득!
**
퀘스트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며 기분 좋게 배달을 떠났다.
10분 후.
딸랑-.
“수고했어. 배달은 잘했고?”
“네. 시간 안에 완료했습니다.”
“술에 취해서 잠들었다는 사람은 무사히 경찰에 넘겼어?”
“네, 늦지 않게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길거리에서 박스 하나 덮고 자고 있더라고요.”
“그 사람 네가 살린 거다. 잘했다.”
“하하. 그럼 다음 배달 출발할게요.”
아르바이트가 끝날 때까지 다시 퀘스트가 뜨는 일은 없었고. 덕분에 태양은 배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사장님, 이만 들어가 볼게요!”
“그래. 수고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일하는 중에 걸려 왔던 노을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게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 이제 끝났냐?
“어. 집에 걸어가는 길. 아까 전화했을 때까지 운전 연습한 거야?”
- 아니, 집에 도착한 후에 전화한 거야. 이제 운전은 완벽해! 내일 수업 끝나고 근처 한 바퀴 돌자.
“크큭. 왜 이렇게 날 못 태워서 안달이야?”
- 그야 차 뽑았으니까, 자랑도 하고 싶고. 그런 거지.
“어련히 때가 오지 않겠냐. 아, 맞아! 주말에 우리 집 내려갈 때는 편하게 버스 타고 가자.”
- 반대. 난 반대야. 그냥 내 차 타고 가자. 너희 부모님 드릴 선물도 사서.
“야. 초보 운전자가 운전할 거리가 아닌데?”
- 하! 참!
태양의 말에 오기가 발동한 노을이 빠르게 자신을 변호했다.
- 야, 내 자랑이 아니고. 나 진짜 운전 잘해. 사실 오늘 다녀온 거리도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 그런데 막힘없이 잘 다녀왔다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 차로 가자.
잠시 고민하던 태양은 노을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러자. 나도 선물 사 가려고 했었는데. 덕분에 편하게 가겠네.”
- 그래! 차 가지고 가면 또 모르잖냐. 너희 부모님이 읍내라도 가고 싶어 하실지. 부모님 계시는 동내에서 읍내까지 버스 타고 다니신다며.
“어. 그래서 읍내 나가실 때마다 고생하시지. 다른 집은 트럭이라도 있는데. 우리 집은 이동 수단이 없거든.”
- 부모님 드라이브도 시켜드릴 수 있으면 좋잖아.
“하하. 그래 알았다고. 그렇게 자꾸 PR 안 해도 돼.”
- 네가 버스 타고 가자고 하니까 그렇지. 자동차의 필요성을 어필해야 너도 완전히 납득할 거 아냐.
“알았어. 알았어. 다시 생각해 보니까, 나도 면허증 있으니까 교대로 운전하면서 가면 너도 그렇게 피곤하지 않을 것 같고. 차 가지고 가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
- 크큭. 진작에 그럴 것이지.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
전화를 끊자 다시 한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와서 내려서 다행이다.”
집 앞까지 거의 도착한 상태였던 태양은 집을 향해 가볍게 뛰어 들어갔다.
***
학교 그리고 아르바이트.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한 주가 빠르게도 지나갔다.
집으로 내려가기로 한 토요일 아침.
태양은 집 앞 큰길에서 노을을 기다렸다.
부르릉-.
그때 태양의 앞에서 부드럽게 멈추는 차 한 대. 노을의 차였다.
조수석 창문이 열리고.
“오래 기다렸냐? 타.”
태양은 피식 웃으면서 차에 올라탔다.
“너 선물 산다고 했지? 어디로 갈까?”
“백화점으로 가자. 가격 적당한 것도 있겠지.”
근처 백화점으로 향하는 차 안.
“선물 뭐 사려고?”
“아빠 생신이라서. 비싼 거는 못 살 것 같고. 적당한 걸로 발 마사지기 사다 드릴까 해서. ”
“오, 마사지기 좋지.”
“귀농한 후로 밭일을 하시니까 마사지기가 필요하실 것 같아서. 마음 같아서는 안마의자 사다 드리고 싶은데. 알아보니까 지금 내 형편에는 부담스럽더라고. 그건 나중에 돈 좀 벌면 그때 사드리려고.”
“그래. 그럼 나는 영양제를 선물해 드려야겠다.”
“응? 그냥 빈손으로 가도 돼. 아니면 너 좋아하는 케이크나 사 가자.”
“야, 친구 부모님 처음 뵙는데 빈손으로 갈 수 있나. 그리고 잊었냐? 나 돈 많다.”
부모님을 챙겨주는 고마움과. 선물에 부담을 느낄까 뻔뻔하게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노을의 모습에 태양은 그냥 웃어 버렸다.
“그래. 그럼 부자 친구 찬스 좀 쓰자. 영양제는 좋은 걸로 부탁한다.”
“하하. 나 부모님 선물 사는 거 처음이라 좀 떨린다.”
노을은 태양의 부모님을 자신의 부모님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첫 선물이라는, 노을에게는 더욱 뜻깊은 일을 앞두고 긴장감과 설렘을 느꼈다.
“나도 그동안 내 생활비 벌어 쓰느라 부모님께 뭘 사드린 기억이 거의 없어. 그리고 아빠랑은 사이가 안 좋아서 선물이 뭐야, 이야기도 제대로 나눈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나고. 나도 첫 선물인 셈 치고 신중하게 골라 봐야겠다.”
시간을 돌리기 전에는 엄마한테 현금을 드린 적이 있으나 이번에는 드리지 못했다. 퀘스트 후 보상이 주어지지 않기도 했고. 부모님을 뵈러 가는 퀘스트는 시스템이 사용자를 위해 발생시킨 일종의 이벤트성 퀘스트였기에 이번에는 발생하지 않았었다.
선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백화점. 지하에 차를 성공적으로 주차 시키고 차에서 내리며 노을이 뿌듯하게 말했다.
“주차 완벽하지 않냐?”
“크큭. 너 점점 자화자찬이 좀 심각해진다?”
“평생을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준 적이 없더라고. 그래서 나 자신을 좀 더 아껴주는 중이야.”
“그 방법이 자아도취야?”
“하하. 어.”
“그래. 그렇다면 또 친구로서 눈감아 줘야지.”
두 사람은 백화점을 올 일이 거의 없었기에 구경도 할 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며 태양이 말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사람이 많지 않네.”
“아무래도 그렇지. 점심시간만 지나도 사람 많더라.”
“영양제부터 사러 가자. 마사지기보다 가벼우니까 들고 다니기 편하잖아.”
“그럼 지하 1층으로 가야 돼.”
“지하 1층에 있어? 차로 돌아갈 때 지나가는 길이니까 그냥 마사지기부터 사자.”
그렇게 도착한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6층.
다양한 매장 앞에는 그냥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제품들이 그 위용을 과시하듯 전시되어 있었다.
“야, 괜히 백화점으로 왔나? 좀 기가 눌린다.”
“아무래도 가전제품은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니까.”
“빨리 사서 내려가자.”
발 마사지기를 파는 곳으로 들어가 부담 없는 가격대의 제품을 골라 계산을 마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고급 안마의자에 자꾸 시선이 머무는 걸 직원이 눈치채고는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한참이나 들어야 했다.
다음에는 널 사러 올게.
속으로 다짐하며 매장을 벗어났다.
“이야. 진짜 직원분 말 잘하더라. 나도 모르게 주세요! 할 뻔했다니까.”
직원의 화려한 말재주에 정신이 쏙 빠진 노을이 중얼거렸다.
“크큭. 아무래도 그런 부분을 중점적으로 교육을 받지 않을까? 직원 한 명 한 명이 영업사원인 셈이니까.”
“그렇겠지? 그런데 아무리 교육받았다고 해도 대단하다. 대단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두 사람은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위층보다 지하에 사람이 많았다. 태양은 두리번거리며 사람 구경을 하고 노을이 앞장서며 태양을 이끌었다.
“여기 있다. 영양제.”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제품 있으세요?”
“아뇨. 알아보고 온 건 아니라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어떤 분이 드실 건가요?”
“부모님께 드릴 겁니다.”
노을은 거침없이 부모님께 드릴 선물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에 태양은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노을은 그런 태양이 고마웠다.
“부모님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노을이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은 태양이 슬쩍슬쩍 끼어들어 해결해 주었다.
“50대 초반이세요.”
“그럼 이건 어떠세요?”
직원은 영양제 몇 개를 꺼내서 열심히 설명을 시작했다.
단백질에 비타민, 식이섬유, 오메가3.. 정말 다양한 영양제가 있었다.
영양제에 관해서 무지하다 싶은 두 사람은 직원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결국 직원이 적극 추천한 영양제 세 종류를 계산한 노을.
“감사합니다. 부모님이 정말 기뻐하실 거예요. 다 드시면 또 오세요!”
매장을 벗어나며 노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잘 산 거 맞겠지?”
마찬가지로 멍하게 앞만 보며 걷던 태양이 답했다.
“나도 모르겠어. 정말 좋은 걸 추천해 준 건지. 자신에게 판매 인센티브가 더 떨어지는 걸로 추천해 준 건지..”
그러다가 별안간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고 말을 이었다.
“아무렴. 우리보다야 전문가잖아. 부모님 나이대에 가장 많이 팔리는 걸로 추천해 준거라고 하잖아.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건 그만큼 좋다는 거지.”
태양의 말에 화색을 띠는 노을.
“그렇지? 자, 이제 케이크 사러 가자!”
“케이크?”
“케이크 사 가자며.”
“그건 너 다른 선물 사지 말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지.”
“에이. 내가 지난번에도 말했잖아. 생일엔 케이크 촛불 붙어야지. 그러면서 소원도 빌고. 아버지라고 소원이 없으시겠어?”
“.. 그건 그렇지. 아빠도 소원이.. 있겠지?”
“당연하지 인마. 가자. 저쪽에 베이커리 있다. 백화점 케이크는 맛이 얼마나 다른가 한번 먹어보자. 그런데 아버지는 무슨 케이크 좋아하셔?”
노을이 물음에 태양은 다시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모를 수 있지. 그럼.. 무난한 거로 사자. 생크림.”
“그.. 그래.”
태양은 자신이 부모님에게 많이 무심했구나 싶어 반성하게 되었다. 모녀 못지않게 친하다고 생각하는 모자지간인데도 아빠뿐만 아니라 엄마가 무슨 케이크를 좋아하는지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을과 케이크를 사고 나오는데, 태양이 고민 끝에 말했다.
“저쪽에 양주 팔더라. 양주 좀 보고 가자.”
“양주?”
“어.. 아빠가 술을 많이 마시는 건 아닌데, 애주가셔. 서울에 살 때는 집에 비싼 양주도 몇 병 가지고 계셨는데, 시골로 내려가면서 다 나눠주고 가셨거든.”
태양의 말을 들으며 노을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다시 한 병씩 모으시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너나 나나 자식들 내려가면 한 잔씩, 같이 하는 거지.”
노을은 아버지와 같이 술잔을 기울이는 걸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느리게 걷는 태양을 재촉하며 걸었다.
“빨리빨리 좀 걸어라. 양주만 사서 바로 출발하자! 그런데 아버지는 어떤 양주 좋아하시냐?”
노을의 뒷모습을 보며 태양이 피식 웃음 지었다.
저거, 저거. 신났네. 신났어.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댓글,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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