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니스로, 기다리다.

22 니스로, 기다리다.
한국 C 프로배구 새 감독 선임을 위한 토의가 한참 진행 중인 회의실.
"그럼 이진희 감독 후보자에 대한 토의는 이렇게 마치고 다음 후보는 이신우 전 강원여고 감독입니다."
"주요 이력은 강릉여중, 강원여고, 국대 유스팀 수석코치. 자세한 내용은 자료를 참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서남기 단장은 다음 장을 넘겼다.
"협회와 다른 프로팀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을 것입니다."
먼저 운영 팀장이 반대하고 나섰다.
마케팅팀 역시 그가 물의를 일으키고 배구계를 떠나 언론이나 배구 팬들을 생각해서 반대를 표시하였다.
"우리가 협회를 바라보다 만년 하위 팀인 상태입니다. 추천 해 준 감독이건 선수건 제대로 성공한 것이 있었습니까?"
협회라는 얘기에 화를 내는 전력 분석 팀장과 함께,
순수하게 이신우 감독의 역량만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선수 트레이너 부서의 의견이 찬반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모두 능력은 있다 하지만 물의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의견 같은 데 다른 의견이 있습니까?"
서남기 단장은 여러 팀장의 의견을 취합하고는 그 동안 이신우 감독을 조사한 스카우터 김은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님의 요청으로 이신우 감독을 상세히 다시 조사하였습니다. 오래 전부터 거슬러 갑니다."
지방중학교가 협회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된 사정.
유진 선수의 재활 지원을 막은 정황.
투서 사건 당시 협회가 조사를 앞장선 사실 등.
그러나 이신우의 평소 행실이 올바르고 훈련 과정이 아주 정상적이라는 것.
"모두 대외 협력부 지석민 이사가 관계한 것으로 파악되고 지 이사는 협회장의 수족입니다. 이신우를 감독으로 선임하면 100% 협회나 여론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황영주 감독을 기억하실 겁니다. 배구계의 인망 있는 원로이십니다. 그분을 감독으로 모시고 나이가 많으시니 이신우를 수석코치로 앉혀 실질적으로 팀을 이끌게 하는 방안이 어떻습니까? 예전 U18 우승을 할 때와 같이."
....
여보세요. 신우 스포츠 헬스입니다."
[이신우 씨 계신가요? 여기는 C 프로배구 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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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유진은 고진욱 사장에게 강릉여고 사건에 대해서 구체적인 진전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진정 대행 서비스'사무실를 다시 찾았다.
지난해 8월에 고진욱은 강릉여고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아봐 달라는 유진의 메일을 받았지만 혼자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있어 그 조사가 여의찮았다.
‘강원여고 배구부 졸업생 중 프로팀에 입단을 못 한 학부모 박씨가 불만을 품고 교육청과 배구협회에 이신우 감독에 대한 뇌물과 구타 투서를 여러 차례 넣었다.
배구협회 지석민 이사가 교육청과 함께 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배구부와 학부모, 졸업자 등을 조사하였으나 무고로 밝혀졌다.
그러나 배구부 이신우 감독은 사건 이후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한 책임으로 감독직을 사퇴하였다.
협박과 관련된 좀 더 구체적인 조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라고, 단순하게 정리된 답신을 보냈었다.
시간이 지나 일 잘하는 후배들이 합류하게 되자 다시 투서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시작되었고 몇 가지 확실한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협회의 직원 중 이 모 대리와 계속 접촉하여 알아낸 사실은,
자신이 이신우에 대한 비난을 한 SNS 게시글을 지 이사에게 보고한 사실이 있고,
단순 무고로 넘어갈 투서를 배구협회 지석민 이사의 강력한 주장으로 조사가 시작되었다.
과거 유진의 재활 지원의 삭감 사실과 배구 선수 신분 삭제 역시 지석민 이사의 지시였다.
협박에 대한 단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유명한 SNS 중독자였던 박미경의 SNS에 그 실마리가 있었다.
팔로우가 많았던 박미경의 과거 SNS를 추적 중 아직 지워지지 않은 몇 개의 게시글에서 지원, 수진들에 대한 음해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친한 팔로우 몇 명과 함께 그들에 대한 협박 암시가 있었다.
또 다른 게시글 중 자신의 아버지가 배구협회의 지 이사와 친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협회 지석민 이사가 왜 이러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이신우 감독과 동년배에 대학 배구계에서 활동하던 시기가 같다는 것 외에는 겹치는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배구 선수로서 활동은 어떠했나요?"
"갑자기 대학 배구팀을 탈퇴하고 그 이후로 선수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배구팀을 탈퇴한 일을 한번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유진은 과거 병원에서 들었던 박미경의 말들에서 그녀가 유진, 이신우에 대한 불만이 쌓여있었고 유진이 사라져 버려 이신우 감독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측했다.
'지원이나, 수진은 나와 이 감독님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이구나.'
"사실 이신우 감독과 박미경과 저 그리고 제 친구들은 과거에 ...."
유진은 고진욱에게 과거의 박미경과의 악연을 털어 놓으며 고진욱에게 지석민 이사와 투서자인 박미경의 아버지와의 관계, 그와 주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조사를 다시 부탁했다.
지난 한 달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일들을 마무리한 유진은 그 후 친구들과 만나 오랜만에 한국에서의 진짜 휴가를 즐겼다.
5월의 초 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는 유진은 멀어지는 한국 땅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염원을 꼭 이루어 드릴께요. 약속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꼭이요.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지켜보세요.’
유진은 다시 프랑스 니스로 돌아왔다.
니콜라에게 보트를 빌려 소피, 마리아와 함께 며칠간 프랑스 남부 해안을 타고 칸, 생뜨호페, 둘롱을 거쳐 마르세유에 보트를 정박시켰다.
시내 호텔에 숙박하며 다음 날 낮부터 도시를 내려다 보는 노트르담 성당과 롱샴 궁전의 정원 등을 구경했고 밤에는 항구의 어시장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식사와 여유를 즐겼다.
이렇게 이틀을 지내고 난 뒤 국립공원인 칼랑키 해안을 타고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샤토 디프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니스로 방향을 바꾸었다.
니스로 돌아오는 보트 위에서 소피가 며칠간의 여정에 피곤한지 잠시 선실에서 자는 동안 마리아와 제법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보트는 순풍을 타고 바다를 달렸고 샤토 디프의 성채는 금방 멀어졌다.
"유진. 고마워. 네가 있어 소피가 다시 행복해진 것 같아."
*****
소피는 프랑스 유스 축구선수로 아주 유망해 유스팀의 기대주였다.
소피와 마리아의 친엄마 엠마는 유스팀 입단 동기로 어릴 적부터 단짝 친구로 언제나 같이 붙어 다녔었다.
아이들이 성장해 감에 따라 팀 훈련도 조금씩 강해졌고 엠마는 힘들어했지만, 소피의 도움으로 함께 버텨나갔다.
그러던 중 엠마는 체력이 떨어진 상태로 팀의 연습경기에 참가했다.
중앙 수비수로서 상대의 돌파를 저지하기 위해 슬라이딩 태클을 하던 중 다리가 꺽이는 부상를 당했다.
유스팀에 입단한 지 6년이 지난 18살에 일어난 사고였다.
엠마는 다리 수술 후 일어났으나 다시 달리지 못했다.
그렇게 엠마는 팀을 떠났고 다시 소피와 만났을 때는 10년이 지나 20대 후반이었다.
"엠마. 반가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소피. 미안해. 여기 14구 꼬샹 병원이야. 와 줄 수 있어?"
소피는 대학을 거쳐 프로팀의 축구선수로 활동하던 중에 엠마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팀을 떠난 엠마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채 거리의 여자로 살았다.
험한 생활의 여파로 돌이킬 수 없게 되자 병원에 입원한 후 소피의 연락처를 구해 연락하였다.
"소피. 내 생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어릴 때 너와 축구하던 시절이었어. 마지막으로 너를 다시 보고 싶었어."
엠마는 친구의 손을 잡는 것으로 자신의 마지막 생을 마쳤다.
허망하게 엠마를 바라보는 소피의 눈에 병실 한쪽에 앉은 8살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간호사에게 물었다.
"죽은 분의 딸입니다."
"이제 저 아이는 어떻게 되죠?"
"정부 지원 보육원에 맡겨질 예정입니다."
그 후 소피는 엠마의 딸 마리아를 입양해 길렀고 선수 생활을 얼마간 더 하다 은퇴하였다.
그리고 연수를 마치고 자신이 뛰던 축구팀의 코치로 있었다.
코치 생활 중에 팀이나 감독의 선수에 대한 강한 압박이나 심한 훈련을 참지 못해 자주 부딪혔고, 결국 다른 스포츠로 이직하였다.
신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선수와의 연결성이 좋아 여자 배구 코치로 오래 있었다.
그리고 6년 전 U18 여자배구 국가대표 코치로 합류했으나 끝은 코치 생활을 접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아마 그때 프롬나드 제 장글레 해변의 유진의 모습에서 엠마가 겹쳐 보였을 것 같아."
그래도 요즘은 너무 보기 좋다며 에이전트가 적성이 맞는 지 벌써 예전에 잘 알던 선수 몇몇과 계약도 잘 끝났다고 하며 유진을 안으며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유진은 계속 한국의 연락을 기다렸다.
유진의 22/23 시즌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촘촘하게 스케쥴을 짰지만 언제나 부상 방지가 첫 번째였다.
항상 유연성, 탄력성, 각 관절을 위한 근육들 강화가 기본이었다.
5월 중순부터 시작된 개인 훈련은 6월 한 달이 다 지나갈 때쯤 끝이 났고 그리고 한국의 류정범 씨로부터 기다리던 메일이 도착했다.
Z 은행 투자팀장으로 이직을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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