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니스로 항해 (1)

28 니스로 항해 (1)
"유진. 어서 와."
"니콜라 씨 오랜만이에요."
지난 3월 말 플레이오프 시작 전 니콜라 씨에게 한국의 보트 출장 수리를 의뢰했고 유진.
마침, 일정이 비어 있던 니콜라는 그 의뢰를 받아들여 한국으로 날아왔다.
니콜라와 뱅상은 강릉 마리나에 도착해 유진의 보트 바바리아 Cruiser 46을 찾았다.
"혹시 니콜라?"
보트에 보고 있자, 나이 지긋한 노인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왔다.
"네. 안녕하세요. 유진의 부탁을 받고 찾아온 니콜라입니다. 미스터 민 맞나요?"
"그렇소. 민태수라고 하오."
오랜 시간 단독 항해가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여러 장비을 어떻게 추가할지 생각하며 보트를 꼼꼼하게 둘러보았다.
"보트는 상태가 좋군요."
"그렇지. 내가 꼼꼼하게 관리했지."
셀프태킹시스템, 작은 태양광 패널과 발전설비, 전자 GPS 등의 장비를 설치하고 제네커와 스피니커를 편하게 펼 수 있게 전동 윈치와 시트 고정용 고리들을 추가했다.
오토파일럿 시스템을 새로 연결하고 마지막으로 튼튼한 스프레이 후드와 비미니를 설치했다.
그리고 메인 세일, 집세일, 제네커와 스피니커를 새로 갖추었다.
자랑하듯 유진에게 개수된 보트 설명을 하는 니콜라 씨.
"멋져요. 고생하셨어요."
"부품 수급이 어려워 시간이 빠듯했어. 니스라면 2주면 끝났을 텐데."
"엔진은 어때요?"
"아직 사용 시간이 700시간도 안 됐던 걸. 관리가 잘되어 거의 신품이야. 엔진이 볼보의 6기통이고, 따로 주문했는지 연료통이 330리터 2개가 있고, 청수통이 하나 250 리터밖에 안돼."
"그래요? 저도 정확한 수치는 잘 몰라요."
"그럼. 이리 와 봐. 여기 설계도를 보면서 얘기해 줄게. 이쪽이 확장 연료통 공간...."
나온 지 14년이 지났지만, 여러 장치를 개수하고 다시 칠을 하고 마치 새것 같아 유진은 이것저것 만져보며 기뻐했다.
메인 세일을 조금 올려보자, 하얀색의 상부에 푸른 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는 모양이 그려진 것이 보였다.
유진이 선수 양측에 그려진 국기를 가리켰다.
"이건 국기네요."
"그렇지. 출발하는 한국 국기, 도착하는 프랑스 국기. 어때?"
"역시 니콜라 씨는 센스가 100점이에요."
유진은 니콜라 씨와 함께 울릉도 도동항으로 이틀간의 시험항해를 하며 여러 테스트를 하였고 역시 수리 장인의 손길이라 수리된 보트는 훌륭히 반응했다.
유진은 보트를 조종해 총거리 20,000km인 프랑스 니스로 갈 계획이었다.
마지막으로 영상 촬영장비를 보트에 장착을 한뒤 출항 준비를 마쳤다.
유진은 지금 필리프 시와 뱅상 씨와 함께 해도를 보며 마지막 일정을 체크하고 있다.
"내일 출발해 제주도를 통과해, 오키나와에 기항합니다, 대만 남단을 거쳐 싱가포르에 다시 기항하고 그 후 콜롬보항까지 6월 10일까지..."
일정은 5월 7일 출항, 7월 5일까지 최소 15,000 km거리의 수예즈 운하를 통과한 뒤 시간이 남으면 항해를 계속하고, 안되면 수예즈 포트 사이드 항구 계류지에 보트를 정박시킨다는 생각이다.
그리고는 비행기로 늦지않게 니스로 가 팀 훈련소집에 맞추어 몸을 만들 예정이었다.
그 이후 보트는 유진이 훈련 중에 가능한 조금씩 항해하여 니스로 가져오거나 여의찮으면 니콜라 씨가 대신 쉬핑해 줄 사람을 구해 주기로 하였다.
니스까지의 항해는 니콜라 씨와 틈틈히 위성통화를 하며 진행하기로 했다.
보트의 준비는 완전히 끝났고 유진도 출발준비를 마쳤다.
유진은 지난 시즌 중 틈이 날 때마다 강릉과 니스 간의 해도와 해류, 바람과 날씨 기록, 다른 항해기록 영상을 보며 항로를 준비하며 위험지역 통과시, 위험상황 대처법, 각종 돌발상황 대처법 등을 계속 시뮬레이션했었다.
이 새로운 항해는 바다를 사랑하는 자신에게 큰 모험이자 세상을 향한 자신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리고 장롱 속에서 발견한 할아버지의 수첩에 있던 '요트 세계 일주'라는 버킷리스트 중의 일부였다.
5월의 푸른 하늘에 바람 또한 적당히 부는 강릉항 마리나.
"항해하기에 날씨도 좋구나. 무사히 항해해서 니스에서 보자고.. 화이팅."
바다 사나이 니콜라와 뱅상의 힘찬 응원과,
"진아. 무리하지 말고 중간에 언제던지 멈춰도 돼. 너는 아직 젊어."
민태수의 조심스러운 당부를 뒤로 하고.
드디어 유진의 유제니호는 강릉항을 출항하여 방파제를 벗어났고 푸른 고래가 헤엄을 치는 메인세일을 올리며 먼바다로 향했다.
이제 바다와 바람과 46ft 보트와 유진 자신뿐이었다.
울진을 지날 무렵 심한 파도와 바람으로 롤링이 심했지만, 거친 물살을 헤치며 2시간 만에 그곳을 벗어나자, 바다는 거짓말같이 잔잔해졌다.
포항 앞을 지날 무렵 다시 바람이 18노트, 파고가 2m 이상으로 거칠어져 스티어링흴을 놓지 않고 1시간 이상 긴장하며 배를 몰았다.
[바람 소리가 굉장한데. 보트는 이상 없지.]
"이제 풍속이 25노트에요. 파고는 2.5m. 정말 롤링이 심해요. 보트는 잘 나가고 있어요."
[유진 언니. 조심해요. 무사히 와야 해.]
"그래 벨. 걱정하지 마. 이 정도 바다는 문제없어."
니콜라 씨와 가끔 통화하며 현재 상황과 위치를 전달하였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한국의 동해를 벗어나자 잔잔한 파도에 순풍을 만났다.
간간히 10노트 이상의 바람에 방향이 풍하로 잡히자 집을 내리고 스피니커를 폈다.
유진은 순해진 바다와 오토파일럿으로 여유가 생기자, 기본적인 필라테스와 체력 훈련을 하며 항해하였다.
"이제 동해를 빠져나왔어. 초반 고비는 넘긴 것 같아."
부산을 통과하자 긴장하던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한국 동해안의 거친 물살로 인해 고생했으나, 미리 충분히 상황을 숙지하며 준비했고 기상 상태가 나쁘지 않아 생각보다 쉽게 잘 헤쳐 나왔다.
오토파일럿과 자동항법장치들은 야간 항해 시에 많은 도움이 되어 수면을 충분히 취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오랜만에 밤새 마음껏 자고 일어나 바다를 확인하니,
저기 오른쪽 멀리서 파도 속에서 나타나 사라졌다 하며 보트를 따라오는 점들이 보였다.
"이야! 남방 흰돌고래 떼야."
제주도 남단을 통과할 때 보트 옆으로 남방 흰돌고래 떼들이 나타나 보트와 경주하듯이 같이 헤엄쳤다.
문뜩 TV 다큐에서 죽은 새끼를 등에 업고 헤엄치려고 하는 어미 남방 흰돌고래를 기억하며 유심히 살펴보았다.
20여 마리가 힘차게 헤엄치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어 신나게 같이 달려 한국을 벗어났다.
강릉을 떠난 지 일주일 만에 한국을 벗어나 오키나와 근처까지 항해해 왔다.
오키나와에 나하항 옆의 기노완 마리나 기항하여 청수와 연료, 보급 물품을 조달하며 그동안 촬영한 항해 사진과 영상을 SNS 와 유튜브에 업로드하며 12시간를 자면서 쉬었다.
"소피 걱정하지 말아요. 여기까지 무사히 왔잖아요. 먼바다 세일링을 하며 올려진 유튜브 영상에서 처럼 다 그래요."
유진이 업로드한 영상을 보고 소피가 걱정되어 연락이 왔다.
"그럼요. 정말이에요. 니콜라 씨에게 확인해 보세요."
그래도 소피는 걱정이 많은 듯 유진에게 괜찮은지 연신 물어와 유진은 아주 건강하다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니콜라 씨와 통화하며 보트 상태가 좋고, 항해가 무난하다고 얘기하였다.
니콜라 씨 옆에서 벨이 유진에게 무사히 항해할 것을 기원해 주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밤새 푹 쉬고 아침에 보트를 살피고 있는 유진의 귀에 한국말이 들렸다.
부부인 듯 남녀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애 둘을 데리고 계류장을 지나다 자신의 보트에 그려진 태극기를 보며 말을 걸었다.
"네. 어제 입항했어요. 한국분이세요?"
"네 한국인이에요. 반가워요. 우리는 여기 2일째에요. 일행분은 어디 계세요?"
여자가 제법 붙임성이 있었다.
"혼자에요. 일주일 전에 강릉에서 출발했어요. 어디서 오셨어요?"
"우와! 혼자서 요트를... 대단하시네. 우리는 통영에서 4일 전에 출발했어요."
"엄마. 나 저 언니 알아."
말하는 여자의 귀에 딸이 속삭이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 보여주었다.
"혹시 리올의 모델 유진 씨인가요?"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얘들과 함께 이곳으로 여행을 온 이 가족은 유진을 만나 기뻐하며 그녀를 아침 식사에 초대했다.
"유진 씨는 원래 배구 선수인 거죠?"
"네. 모델은 비시즌 기간에 잠시 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알아본 여자아이 김민주는 초등학교 6학년으로 유진의 사진과 사인을 받은 뒤, 홀린 듯 계속 보고 있었다.
"다시 강릉으로 언제 돌아가요?"
"저는 내일 싱가포르로 출항합니다. 민주. 언니 얼굴에 뭐 묻었니?"
"아니. 그냥이요."
그날 유진은 그 가족의 오키나와 여행을 함께 했다.
나하시의 있는 류큐 왕국의 왕성인 슈리성을 보고 난 뒤 오키나와 평화의 공원에 위치한 한국인 위령탑으로 향했다.
이곳은 태평양 전쟁 당시 강제로 끌려와 희생당한 만 명이 넘는 조선인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애들과 꽃 한 송이를 놓는다.
이곳은 정말 5월이지만 벌써 덥고 습해지기 시작했다.
전망대 위에서 멀리 보이는 남태평양을 뒤로하고 유진은 다시 보트가 기다리는 기노완으로 향했다.
"언니. 나 SNS에 추가해도 되죠?"
제법 친해진 민주는 헤어짐이 아쉬운 듯 유진의 보트까지 따라왔다.
"그럼. 연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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