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니스로 항해 (3) 특별한

28 니스로 항해 (3) 특별한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항로를 타기 위해 수마트라섬 최북단에서 정서로 방향을 잡았다.
바람이 좋지 않아 해류 앱을 켜고 보트의 현 위치를 살피며 서진하자 이틀 만에 보트의 속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흐르는 한 가닥의 해류를 찾아 보트를 실을 수 있었다.
'되었어. 해류를 탔어. 이제야 속도가 나네.'
그동안 크로스홀드 위치에서 엔진의 도움으로 5노트 정도의 속력으로 가고 있었지만, 연료의 소모량이 심해 걱정이 많았다.
비로소 보트는 해류의 영향으로 엔진은 끈 채 6, 7노트의 속도로 꾸준히 서쪽으로 항해했다.
보트가 완전히 노고존으로 위치하자 세일들을 내리고 다시 엔진을 50%로 돌려 속도를 더했다.
"삐, 삐, 삐 ...."
한밤중에 잠깐 눈을 붙이고 쪽잠을 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항법장치에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유진이 눈을 뜨자, 갑자기 발생한 바다 안개가 주위를 온통 감싸고 있었고 레이더상으로 700미터 앞쪽에서 다가오는 물체를 확인했다.
바다 위에서 700미터는 안전한 거리가 아니다. 시계까지 안 좋으면 더욱 위험한 상황이었다 .
"아직 시간이 있어. 침착하자. 천천히." 되뇌며,
해양 규칙에 따라 서서히 스타포트의 스티어링 휠을 오른쪽으로 돌려 보트를 우현으로 틀고 엔진의 속도를 높였다.
곧 거대한 선체의 유조선이 안개 속에서 유제니호를 보지 못한 듯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곧이어 급하게 비상 기적음을 크게 울리며 유조선 역시 우현으로 조금 틀었고 두 배는 20미터 간격으로 지나쳤다.
순간 거대한 유조선이 만든 엄청난 물결이 유제니호의 좌현을 덮쳤고 붐대가 좌측으로 돌며 메인시트가 끊어져 나갔다.
급하게 휠을 좌측으로 돌려 다시 방향을 잡아 배를 안정시켰다.
다행히 세일이 내리고 있어 큰 사고가 나지 않았고 재빨리 왼쪽으로 넘어간 붐대의 시트를 걸어감아 고정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자 있자, 공용채널로 유진의 안전을 묻는 유조선의 통신이 들어왔다.
"CQ, CQ, 여기는 유제니. 여기는 안전합니다. 안개가 계속되니 레이더를 자세히 확인하기를 바랍니다. 오버."
"휴!" 통신을 마치고 길게 한숨이 쉬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트를 다시 전진시키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바람에 안개가 스르륵 사라지고 좌현으로 짙은 남쪽 하늘 속에서 남십자성이 나타났다.
유진은 자신의 삶이 지금과 같다는 생각에 홀린 듯 아침까지 그 별빛을 보며 밤바다를 달렸다.
밤안개와 소나기가 빈번하게 일어 긴장한 채 이틀을 보낸 후에 새벽빛과 함께 멀리서 인도의 눈물이라는 스리랑카가 보였다.
칼레의 등대를 지나서 8시간을 더 가자 오후 늦게 콜롬보항 근처에 도착하였다.
한참 확장 공사 중인지 복잡한 항구를 지나자, 외곽에 몇 척의 보트들이 정박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직원의 도움으로 청수를 채우고 조금밖에 남지 않은 유류를 채우기 위해 유조차를 신청하고는 보트로 돌아와 쉬었다.
역풍과 잦은 안개로 은근히 쉽지 않은 항해였다.
다음 날 오전 연료통과 보트에 있던 보조 연료통들까지 가득 채웠다. 연료의 부족을 많이 느낀 유진.
마리나 밖으로 나가 반나절 동안 콜롬보항 인근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 보급을 마치고는 말라카해협의 통과 영상과 사진, 감사의 인사 등을 자신의 계정에 업로드했다.
많은 응원 댓글과 함께 생방송 요청이 있었으나 유진은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일정이 많이 늦어져 스리랑카를 둘러볼 새도 없이 다음 날 아침 일찍 마리나를 출발해 오만의 살랄라항을 목표로 아라비아해를 가로지르는 항해를 다시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그때그때의 바람과 조류 상황에 따라 바다와 서로 대화하며 서진하여야 한다.
콜롬보항을 떠난 지 6일 동안 아라비아의 바다와 유진이 서로를 잘 알아가듯 큰 어려움 없이 항해해 나갔다.
이번 살랄라 여정의 중간쯤이 지날 무렵.
"이건 뭘까?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2개 아니 3개인 것 같은데."
처음 그 물체를 발견하고는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해 큰 부표나 쓰레기 더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속도를 가지고 보트를 쫓아오자 다른 생각이 든다.
"해적인가?"
파고가 높지 않아 망원경으로 뒤를 살펴보았지만 알 수 없는 상황.
니콜라에게서 높이가 낮고 작은 해적 보트일 경우 파도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할 수 있다는 위험을 전해 들은 유진.
급하게 엔진의 RPM을 최대로 올리고 세일을 크로스홀드 최대각으로 조정해 속도를 더했다.
그러나 레이더의 3점은 계속 유제니호를 따라왔고 거리까지 더 가까워졌다.
유진은 긴장하여 계속 쌍안경을 들고 뒤쪽을 살폈다.
한참 만에 고래 가족인 듯 3마리가 보트를 따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
한순간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유진은 자신의 유제니호의 메인세일에 그려진 고래 그림을 보며 신기하게 생각하고는 속도를 낮추어 따라오는 고래를 자세히 관찰하였다.
혹등고래 3마리였다.
그런데 작은 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는 모양이 이상해 보트의 돛을 내리고 서서히 멈추었다.
고래들 역시 보트 주위를 서서히 돌고 있었다.
다시 쌍안경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고 6, 7m 정도의 작은 고래의 머리 위에서 앞쪽으로 뭔가가 복잡하게 감겨 입 아래까지 늘어져 있었다.
'저게 무엇일까? 그물인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일일까?'
유진은 닻을 내려보았지만, 수심이 깊어 바닥에 닿지 않아 허리에 줄을 묶고 나이프를 준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서서히 헤엄쳐 작은 고래에 가까이 다가가 주위를 돌며 확인하니 굵은 그물이 고래의 양쪽 지느러미부터 머리 전체를 덮고 있었다.
그 상태로 좀 지난 지 머리가 조여지고 있어 입을 벌리기 힘들 정도로 입 아래까지 얽혀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주위를 도는 두 마리의 고래의 울음소리가 낮고 길게 울렸다.
작은 혹등고래는 아직 상태가 아주 나빠 보이지 않아 유진은 안도하며 조심히 고래를 쓰다듬었다.
"언니가 풀어볼게. 가만히 있어."
고래가 말을 알아듣는 듯 가만히 있자, 머리를 몇 번 두드리며 천천히 고래의 머리 위로 올랐다.
머리 위에서 그물을 살펴보니 아주 굵고 질긴 원양 참치 선망의 일부가 복잡하게 얽혀져 있어 벗겨내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물의 밧줄을 조심히 하나씩 끊어 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쯤 작업하자 머리 중앙을 가로지르는 그물위 줄을 모두 끊고 고래를 조이는 그 그물을 제거했다.
유진 지치고 힘들었지만 '이 고래는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라는 생각에 다시 힘을 내어 한쪽 지느러미로 이동했다
배가 조금씩 떠내려갔지만 멀리 가지 않아 고래들이 따라 움직여 주었다.
고래의 큰 눈과 눈을 맞추며 작업을 할 때는 마음속에서 이 고래가 앞으로도 무사하기를 그리고 이 커다란 생명체들이 지구의 바다에서 영원히 살아남았으면 하는 뭉클한 감정이 솟아났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 너도 조금 더 참아야 해." 가끔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자신과 고래를 진정시켰다.
다시 1시간쯤 지나 한쪽 그물을 제거하자 뜨거운 오후의 해가 서쪽의 수평선으로 기울어져 갔다.
그러나 아직 반대쪽 지느러미에 그물이 남아 있었다.
"늦어. 밤까지 작업할 수는 없어."
야간작업은 자신에게나 고래에게나 좋지 않을 것 같아 남아있는 그물을 잡고 손을 바쁘게 움직여 보았지만 떨어지는 해는 어쩔 수 없었다.
인도양의 북쪽을 가로지르는 미국 선박 헤르미나호의 일등 항해사 로버트는 레이더상에 자신들의 항로 앞쪽에 표시되는 고정 물체를 발견하였다.
"선장님. 10킬로 전방에 작은 선박으로 보이는 물체가 떠 있습니다. 20분 후에 접촉합니다."
"로버트. 무슨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
"조금씩 떠내려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조난당했을 수도 있겠군. 10분 후에 감속하고 계속 무전을 해보게."
속도를 늦추며 관측가능한 1,000미터 거리에 도달하자 해로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서 돛을 내린 채 떠 있는 흰색의 보트가 보였다.
"CQ, CQ, 여기는 헤르미나, 여기는 헤르미나, 흰색 보트는 응답하라."
계속 한자리에 떠 있고 조금씩 흘러가고 있어 무전을 계속 날려 보았지만, 응답이 없었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