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니스로 항해 (5)

28 니스로 항해 (5)
어떻게 알았는지 항을 떠난 후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유진은 아덴만 통과에 대한 위험성과 항해 중단을 요청하는 한국 대사관의 위성 전화를 받게 되었다.
"이미 항을 떠나 아덴만을 향해 가고 있어요. 그리고 항해는 멈출 수가 없어요."
"유진 씨. 그럼 청해 함대의 연락을 받으세요."
대한민국은 2009년부터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위해 구축함을 아덴만으로 파견하고 있었고 그 함대 이름이 청해 함대.
살랄라항의 마리마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제다항을 출발해 아덴만을 통과하고 기항한 유럽 요트들이 몇 척 있었다.
"정말 한국에서 항해를 시작한 유진이라고, 우와 여기 와 봐요. 얼마 전 우리가 얘기하던 유진 씨에요."
그들의 유진과 관련된 항해 소식과 WHOI 소속 헤르미나호가 올린 영상을 보고 감탄한 세일러들로 유진과 그동안 항해에 관해 많은 대화를 하며 저녁을 보냈다.
어제 그들에게서 예멘의 내부 사정이 최근 안정되어 있다는 아덴만 사정과 함께 가능한 예멘 쪽 공해로 항해하는 안전한 아덴만 통과 항로를 추천받았다.
곧 청해 함대와의 통신이 이루어졌다.
"CQ, CQ 여기는 대한민국 청해 함대 광개토대왕함이다. 유제니호, 유제니호 응답하라. 오버."
"CQ, CQ 여기는 유제니, 현재 예멘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북위 15.208, 동경 53.076입니다."
"아덴만을 통과하는 선단이 6일 뒤에 있으니, 합류하세요."
벌써 6월 24일.
일정보다 늦어져 니스팀의 소집일인 7월 5일에 합류하지 못해 구단 프론트에 일주일 입소를 연기한다는 통화를 한 상태였다.
소집일보다 늦으면 하루 당 일일 연봉의 차감과 벌금이 있지만, 유진은 그보다 팀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늦는다는 것에 민폐 수준을 넘어 거의 팀원으로 자격 미달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시작부터 빠듯한 일정의 항해란 것을 알고 양해를 구해 놓지 않았으면 살랄라항에서 항해를 중단했어야 했다.
"일정이 있어서 도저히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요. 하루 이틀 내의 다른 선단은 없나요?"
"이틀 내의 선단 일정은 없습니다. 항해를 계속한다면 제다 인근까지 한 시간 단위의 전용 채널 통신을 유지해 주기 바랍니다."
한국을 사랑하지만, 한국의 기관들을 신뢰하지 않는 유진.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자신까지 필요로 할 때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
하지만 수천 킬로 떨어진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한국 함대의 관심을 받아 가슴이 따뜻해지며 기분이 좋았다.
서쪽으로 항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덴만에 들어섰다.
멀리서 선단을 이룬 상선 수십척이 군함으로 보이는 선박과 함께 살랄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유진은 세일들을 펴고 엔진을 가동해 가끔 보이는 작은 어선조차 조심스럽게 피했고 광개토함과의 통신을 유지하며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했다.
그리고 너무 더웠고, 긴장한 나머지 이틀간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비행기가 유진의 머리를 지나 멀리 가는 듯하더니 돌아와 유제니호 위를 두어 번 돌고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CQ, CQ 여기는 미합중국 소말리아 파견 함대 USCGC 존 슈어만. 유제니는 응답하라. 오버."
"CQ, CQ 여기는 유제니, 무슨 일인가요? 오버."
미 5함대 소속 순찰 경비함이 나타나 항로를 안내해 주었고 유진은 그에 따라 보트를 조종하여 아덴만의 물살을 헤치고 나아갔다.
유진은 비로소 마음을 놓고 자동항해를 이용해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
미국의 경비함의 호의 덕분에 무사히 아덴만을 통과해 홍해로 진출한 유제니호.
제다항을 지나자 존 슈어만호로부터 아덴만 인근에서 미국 상선의 납치시도가 있어 수에즈 운하까지 같이 가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연락이 왔다.
"CQ, CQ 여기는 유제니, 존 슈어만호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귀함의 안전한 항해를 기원합니다."
"CQ, CQ 존 슈어만호입니다. 유제니호의 무사한 항해를.. 그리고 헤르미나호의 데이브 선장과 로버트가 안부를 전합니다."
안전한 항해를 하라는 통신을 남기고 다시 동남쪽으로 선수를 돌려 멀어졌다.
유진은 '얼마전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존 슈어만호를 배웅했다.
"니콜라 씨. 포트 사이드에 정박해야 해요.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유진.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대단한 항해였어. "
"니스까지 쉬핑 해 줄 사람을 구해야 할 것 같아요. 팀 소집에 많이 늦었어요. 훈련 도중에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아요."
"걱정하지 마. 유제니호를 가져다 달라고 하면 손들 사람들이 많을 테니."
수에즈 운하 앞에서 통과 신청을 한 후 대기하며 니콜라 씨와 통화를 하였다.
이틀 만에 운하 통과 허락과 예정 시간을 받고는 시간에 맞춰 엔진 운항하며 서서히 운하를 통과했다.
그리고 포트 사이트항의 마리나를 찾아 정박했다.
살랄라항을 출발해 아덴만과 홍해, 수에즈를 통과한 2주간의 위험한 항해였다.
5월 7일 강릉 출항 후 63일이 지나 7월 9일이였다.
늦었지만 니스팀 훈련에 합류해야 할 시간이었다.
마침, 니콜라 씨가 니스까지 쉬핑 해 줄 사람을 구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포트 사이드로 출발했다고 한다.
포트 사이트에서 영상들을 편집하고 업로드하며 하루를 기다리니 제법 나이 든 남자가 유진이 머무는 마리나 옆 호텔로 찾아왔다.
"유진. 반가워. 니콜라 소개로 온 '브론슨'라고 하네. 내가 그 배를 몰고 안전하게 니스로 가져다주겠네."
자신을 제법 많이 아는 듯 해 물어보니 유진이 SNS와 유튜버에서 아주 핫한 스타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내가 이 배를 몰고 가는 것이 영광이지. 하하하."
유진과 함께 마리나에서 유제니호를 본 브론슨 씨가 기분이 좋은지 다시 웃었다.
유진은 브론슨 씨에게 배를 잘 부탁하고는 말을 남기고 급히 카이로 국제공항으로 가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한편, 유진이 강릉항을 출발한 후 싱가포르항에 기항할 때쯤.
Z 은행 투자 팀장실의 류정범은 갑작스러운 보안 인가 강화 규정에 당혹스러웠다.
『 보안 인가 강화 규정
시행 : 2023년 7월 1일
3급 보안인가 : 3년 이내의 서버 데이터 열람.
2급 보안인가 : 10년 이내의 서버 데이터 열람.
1...
공고 : 2023년 6월 3일
Z 은행 서버 보안 팀장 정우성
』
조 이사의 본격적인 횡령은 15년 전부터 이루어졌고 서버의 자료를 찾아 하나씩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다.
보안 부서로부터 방금 받은 은행 서버 접근 강화 규정에 `이제야 한 고비를 넘었는 데.. 이제 정말 시간이 문제인데.`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1달 전 류정범은 유진과 다시 자리를 마주 했었다.
"류정범 이사님. 몹시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정말 다시 감사드려요".
1년 전 유진과의 만남 이후 10여 년간 다니던 외국계 투자 은행을 그만두고 Z 은행 투자 담당 이사급 팀장으로 이직한 류정범.
그동안 유진과 메일을 주고받다 1년 만에 다시 만남을 가졌다.
류정범은 지난 1년 동안 충분한 투자 실적을 올려 나름 Z 은행 경영진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유진 씨. 얼마 전에 조 이사의 은행 내 횡령 정황을 찾은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횡령 관련 조사는 어렵지 않았나요? 많이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횡령 정황이 보이는 실물 자산들과 전산 자료들을 하나씩 대조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말 잘되었어요."
유진이 일이 비교적 쉽게 풀리는 것 같아 기뻐하며 미소를 지었다.
류정범은 기뻐하는 유진에게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앞으로 자신이 할 일은 은행들의 기피 대상 블랙리스트 맨 앞줄에 류정범이란 자신의 이름이 올라갈 일이었다.
그리고 조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그리고 은행 경영진이 얼마나 관여되었는지 함께 조사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유진은 기대하며 류정범에게 다시 한번 조심할 것을 당부하며 감사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그렇게 헤어졌는데.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 류정범은 다시 메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조 이사의 횡령 자료만을 서둘러 조사한다면 자신에게 한 달이란 시간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문제는 당시에 은행의 경영진이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경영진이 묵인을 했는지 자료를 찾는 일이었다.
그런 자료는 보통 남겨두지 않으며 또 10년이 넘는 시간은 긴 시간이었고 자신에게 한 달이란 시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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