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유진과 제미니 이야기

외전 2 유진과 제미니 이야기
"지금도 그곳에서 이동하지 않고 있지?"
"네. 위치는 계속 대서양 중앙의 아소르스 제도 인근입니다."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지?"
"최고 속도 35노트를 유지한다면 48시간 후에 도착합니다."
제미니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보고를 받은 지 24시간 만에 급하게 파나마 운하를 통과한 헤르미나호의 선장 로버트는 배의 전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부유식 독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수석 연구원은 연구소에 지급으로 요청해."
유진과 인연이 닿았던 작은 고래 제미니는 몇 년 후 몸길이 20m까지 자라 혹등고래 중 가장 큰 개체가 되어 세계의 바다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크루즈 유람선 옆으로 그 커다란 동체를 들어내어 브리칭을 하거나 춤을 추며 노래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사진에 찍혀 온라인에 올라왔다.
때로는 좌초하는 배를 옆에서 지지해 사람을 구하거나 뱀상어로부터 잠수부를 보호하며 인간에게 호의적인 모습도 보였다.
몇몇 그런 사진 속에서 머리 앞쪽에 있는 그물 격자무늬 모양의 흉터가 확연한 제미니.
호주의 알비노 혹등고래 미갈루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래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최근 로버트는 그동안 제미니의 특정한 행동 패턴과 해저 지진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년간 모은 제미니의 위치 추적 Data를 새롭게 구축한 빅 데이터 시스템으로 분석하던 중 지진 Data와 겹치는 사례가 발견되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 아주 깊은 곳으로 잠수하거나 특정 지역을 계속해서 8자로 도는 이상한 행동 패턴을 확인한 해양 생물 탐사팀장이자 헤르미나호의 선장으로 발령받은 로버트.
로버트는 이런 제미니의 이상 행동이 해저 지진과 연관이 있음을 확신하고 해저 지질 탐사팀과 함께 혹등고래와 해저 지진에 대한 연관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그리고 지난 몇 년 간의 연구는 큰 진전이 있었다.
연구팀은 제미니의 등에 달린 추적시스템의 연료전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진동 센서와 지자기 센서 등을 추가한 장치를 제작하고 교체를 위한 향후 일정을 짜고 있었다.
제미니의 위치를 살피던 연구원의 보고로 로버트는 한동안 수직 움직임 이외에는 이동이 전혀 없는 제미니의 이상함을 알게 되었고 즉시 팀원들을 소집해 헤르미나호를 출항시켰다.
48시간 후 헤르미나호는 바다에 떠 있기 위해 애쓰는 거대한 혹등고래를 발견하였다.
가라앉았다 다시 힘겹게 수면위로 올라오기를 반복하고 있는.
보트를 내려 접근을 시도하였지만 강하게 거부하는 고래의 몸짓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이런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벌써 이상 상태에 빠진 지 96시간이 넘었습니다. 오래 견딜 수는 없을 겁니다."
수석연구원은 제미니의 그런 모습에 안타까워 발을 구르며 대답했다.
"부유식 독은 왔나?"
"2시간 후면 도착할 겁니다. 하지만 접근을 할 수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고래의 안위가 걱정된 연구원들은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그러던 중 로버트는 유진을 생각해 냈다.
유진을 따라가던 고래들...
고래의 기억력은 아주 뛰어나다.
몇 년 전 유진과의 만남 이후 그녀의 팬이 되어버린 로버트는 가끔 휴가를 내고 유진의 중요 경기 관람을 위해 니스를 방문하곤 하였다.
마침, 경기를 끝내고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며 로버트에게 온 메세지를 확인한 유진.
"유진입니다. 로버트 씨 오랜만이에요. 요즘 니스로 오지 않으시고 많이 바쁘신가 봐요."
"네. 그런 일이... 어쩌면 좋아?"
유진은 자신이 그 혹등고래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로버트의 말에 바로 구단에 양해를 구하고 버스에서 내려 급히 니스 공항으로 갔다.
니스 공항에는 유진을 위해 아소르스 제도로 가는 미군 공군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유진은 일련의 사정으로 사태의 심각함을 느꼈다.
아소르스 섬의 비행장에 도착한 유진은 아무른 말 없이 대기중인 헬기을 타고 탐사선 헤르마나호로 이동했다.
"유진 씨 어서 와요."
"로버트 씨. 제미니는 어디있어요?"
"이리 와요."
유진은 로버트의 안내로 헤르미나의 좌측 선수에서 쌍안경을 받아 들고 고래를 보았다.
"지금 다가갈 수가 없어요. 저기 보이죠. 부유식 독입니다. 물속에서 물 위로 떠 오르는 저 독에 태워야 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떠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유진은 곧 수영 수트를 입고 보트로 옮겨 타 제미니의 근처로 가려 했으나 보트가 근처로 오는 것을 막는 제미니의 몸부림에 어려움을 느꼈다.
보트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말릴 틈도 없이 바다로 뛰어든 유진은 떠 있기 위해 몸부림치며 애쓰는 제미니와 눈을 마주하고는 서서히 헤엄쳐 다가갔다.
다행히 제미니는 유진을 기억하는 듯 거부하지 않았고 움직임이 줄어 들었다.
고래의 몸에 다가간 유진은 자신을 보는 고래의 몸을 쓰다듬었다.
"제미니. 나를 기억하는구나. 지금 많이 힘들지? 조금만 기다려."
"지금 저기 보이는 것이 보이지. 독인데 다가올 거야. 네가 거기에 들어가면 떠오를 거야. "
유진이 제미니에 다가가 쓰다듬는 것을 본 로버트는 급하게 부유식 독을 이동시켰다.
다시 가라앉기 시작한 제미니와 유진.
'아직 떠 있어야 해. 제발!'
지켜보는 헤르미나호의 사람들의 기원 속에 제미니가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기 전 가까스로 부유식 독이 고래의 위치까지 도달했다.
"와. 됐어." 선원들의 환호성과 함께,
독이 천천히 반쯤 떠오르자 거대한 고래의 모습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곧 이동식 X레이기가 배로부터 공수되었다.
“조금만 더 참아. 꼭 다시 마음껏 바다를 헤엄칠 수 있을 테니.”
유진이 눈을 마주하며 괴로운 듯 울음을 토해내는 제미니를 진정시키자 연구원들이 조사를 시작하였다.
“유진 씨 보시면 여기가 고래의 위입니다. 위 입구에 크고 날카로운 플라스틱이 있습니다. 위를 뚫고 폐까지 찌르고 있습니다.”
고래의 몸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다시 반쯤 가라앉았다.
연구팀은 수술로 이를 제거하기로 결정하였고 유진의 손을 빌려 마취를 시켰다.
수술은 제미니의 몸에 작은 구멍을 내고 위까지 로봇팔을 넣어 위에서 플라스틱을 제거하고 폐와 위의 구멍을 막았다.
유진은 수술 중 고래의 몸이 마르지 않도록 계속 물을 부었다.
다행히 수술은 아주 잘 끝났고 다음 날 고래는 깨어나 자신의 눈앞에서 자는 유진을 큰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지 이제 괜찮은 것 같네. 다행이야. 다음에 다시 봐.”
회복이 빨라 제미니는 며칠 지나지 않아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유진은 그 모습을 보며 다시 니스로 돌아갔다.
혹등고래, 제미니와 해저 지진 연구는 그 후로 큰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큰 사건은 일본과 하와이 사이의 먼바다 해저 깊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을 감지한 것이었다.
해양연구소의 해저 지질 탐사팀은 해양 생물 탐사팀에게서 갑자기 북서 태평양 중심 부근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데이터의 검토를 요청받았다.
제미니가 그 부근에서 새벽 3시경부터 1시간째 이상 행동을 한다는 첨언과 함께.
해저 지질 탐사팀은 지진 데이터를 자세히 조사하였고 큰 지진의 전조와 아주 유사하다는 견해가 나왔다.
하와이와 일본, 기타 관련된 나라에 아침 7시에 지진과 쓰나미 경보가 급하게 내려졌다.
얼마 뒤 해저에서 큰 지진이 발생하였고 뒤따라 20m급 쓰나미가 북태평양 곳곳을 덮쳤다.
다행히 몇 시간 전 발령한 경보로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매체에 이런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이어서 유진과 고래와 만남, 제미니의 위험과 수술, 그리고 고래와 지진 연구 다큐가 TV를 통해 방영되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후 일본과 몇몇국가의 고래사냥에 대해 전 세계적인 비난의 여론이 일어났다.
결국 세계적인 반대로 고래사냥을 허용하던 국가들은 차례차례 고래사냥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였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일본 역시 국민들의 대대적인 반대 시위로 금지법을 제정했다.
몇 년 뒤 세계 모든 국가의 합의하에 강력한 해양 생태계 보호법, 가칭 제미니의 법이 제정되어 모든 국가가 이에 서명하게 되었다.
고래 및 멸종 위기종, 보호종들의 사냥이나 포획의 완전 금지, 바다를 오염시키거나, 재난을 방지하기 위한 기금을 국가의 규모에 따라 의무적으로 납부, 그리고 해양 쓰레기 제거를 위해 쿼터제를 시행해 매년 모든 국가가 일정량을 수거 제거하게 되었다.
유진은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제미니에 대한 위치데이타를 공유받아 제미니가 가까이 있으면 보트를 몰고 그 위치로 갔다.
그러면 제미니는 어떻게 아는지 곧 유진을 찾아와 보트 주위를 돌며 유진을 반겼다.
그렇게 둘은 다시 반가운 해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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