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니스의 훈련과 숙소 생활, 그리고...

29 니스의 훈련과 숙소 생활, 그리고...
"정말 괜찮지?"
"정말 다 괜찮아요. 보세요." 유진이 소피를 보며 손을 들고 뛰어 보았다.
니스에 도착하니 소피가 걱정을 많이 했는지 손을 꼭 잡고 유진의 몸 여기저기를 살피며 많은 질문을 쏟아 내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소피를 안심시키고 바로 니스의 숙소로 향했다.
선수 숙소에서 유진을 맞이하는 선수들.
"유진. 많이 늦었어."
"미안해."
"그동안 네가 우리를 기다렸으니 한번 봐줄게." 클로에와,
"아시아에서 여기까지 혼자서 배를 몰고 오다니 정말 대단해. 또 고래도 구하고 해적들도 물리쳤다며. 멋져".
크리스가 수선스럽게 얘기하였다.
궁금해하는 모두에게 유진은 간단하게 항해 얘기를 해주며 다음에 보트에 같이 타고서 자세히 이야기를 더 해주겠다고 마무리했다.
"감독님.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날 일찍 유진은 필리프 감독을 찾았다.
감독실로 들어서는 유진을 보며 필리프는.
"그동안 한국에서 보트를 타고 바다를 항해해서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 때문에 소집에 일주일을 늦었고."
"팀 훈련 소집일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늦다니... 단체 경기를 하는 선수로서 좋지 않은 행동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늦는 일이 생기지 않고록 주의하겠습니다." 유진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건강은 어때? 어디 다치거나 어디 안 좋거나 하지는 않지?"
"항해 중에도 운동은 꾸준히 하였습니다. 몸은 별 이상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아니. 잠깐만 수석코치. 오늘 오후에 의무실에서 유진의 메디컬 테스트를 진행할 테니 준비하도록."
유진의 말을 손을 들어 끊은 필리프는 함께 아침 미팅 중이었던 수석코치를 보며 말했다.
메디컬 테스트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보고에 크게 안도한 필리프 감독은 그 후 몇일 동안 선수들과 함께 웃으며 열심히 훈련에 힘쓰는 유진을 자세히 살폈다.
'음. 유진은 확실히 달라진 것 같은데.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고 안정감이 느껴져.'
그동안의 유진에게 정신적인 단단함을 느꼈다면 지금은 그 단단함에 여유까지 보였다.
'체력만 별문제 없다면... 이제 정말 우승할 때인가?'
올가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이탈리아 리그로부터 니스보다 나은 계약 제의를 받았지만,
시즌 우승과 더 나아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에이전트의 반대를 뿌리치고 니스와 다시 2년 계약을 하였다.
'유진과 함께라면 어쩌면 CEV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컵을 들 수 있을 것 같아.'
올가는 새로 팀에 합류한 선수들을 도우면서 함께 훈련하는 유진을 보았다.
유진의 유니폼에는 앞쪽 번호 아래에 주장을 뜻하는 한 줄이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브리짓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자신의 고향인 스페인 리그로 이적하였고, 세터 아멜리아와 아웃사이드 마르셀 역시 다른 팀으로 이적하였다.
나이가 많았던 3순위의 세터는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하였다.
구단은 이적한 선수와 은퇴한 선수들을 제외하고 기존 선수들과 대부분 재계약하였고 새롭게 FA 계약으로 아웃사이드 히터, 세터, 미들 블로커를 팀에 합류시켰다.
브리짓이 떠나고 코치진과 프론트는 팀이 확실히 우승에 도전하는 만큼 차기 주장에 대한 고심이 많았다.
결국 클로에와 유진을 사이에 두고 고심하던 중에 소집일에 늦어 더 열심히 선수들과 소통하며 훈련하는 유진에게 추가 기울었다.
3일 전 필리프가 차기 주장을 유진이라고 발표했을 때 모든 선수는 납득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리사. 리시브가 늦어. 다음 몰리 리시브 준비, 유진 서브를 좌우로 코너 쪽으로 더 펴트려, ...."
니스의 선수들은 무엇보다 목표가 뚜렷했다. 그래서 훈련에 의욕이 있었고 체육관은 선수들과 코치들의 열기로 한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달아올라 있었다.
"하나, 둘, 하나, 둘, ... 다시 반대, 하나, 둘, ...."
필리프 감독과 코치들은 우승을 위해 무엇보다 교체 멤버들의 성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의 훈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필리프는 지난 몇 주간 니스 선수들의 훈련을 감독하며 '이번 시즌 니스는 반드시 우승한다'라는 생각을 가졌다.
****
7월 2일 2차 항소심 기일이 끝나고 열린 Z 은행 최고 경영진 회의,
"행장님. 이번 2차 기일에서 재판부는 그동안 조 이사가 행한 범죄행위를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젠장. 우리가 재판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 미꾸라지 같은 놈 때문에 그동안의 노력이 한 번에 날아가 버리다니..."
"꽝. 꽝. 꽝."
은행장은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치며 화를 표출했다.
"행장님. 우리 변호사들이 원고 측 일부 승소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이사. 일부라면 얼마나 보고 있다고 합니까?"
"변호사들의 예상으로 현재 최소 10%, 만약 또 다른 리스크가 나온다면 최대 30%까지도 원고 측에 줘야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 유진 산업의 시장 가치가 6조에서 8조 정도입니다. 말도 안됩니다." 민 이사가 소리를 쳤다.
"민 이사 잠깐. 이 이사 그러면 매각에 문제가 될 것 같은데."
"현재 저희가 유진 산업의 주식 85%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맥시멈 30% 주더라도 매각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수익적인 측면에서 2조 이상의 손해를 보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행장님."
"이 이사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2조 이상이라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시나리오에 영향이 있잖습니까?"
그동안 Z 은행은 C 저축은행을 인수해 Z 은행의 부실 채권을 넘기고 C 은행의 알짜 자산만 가져와 껍데기만 남기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행장님. 이러면 매각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장으로 방향을 틀면 됩니다. 더 좋을지 모릅니다."
"그럼 이 이사는 유진 산업을 상장시키는 시나리오를 다시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최 전무. 현재 은행 내부의 기말사항들에 대한 보안은 어떻습니까?"
"다행히 이번 기일에서 우리 은행 내부의 증거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7월부터 강화된 보안 지침을 시행했습니다. 문제는 없습니다."
"보안 팀장은 믿을 만합니까?"
"행장님. 보안팀의 정우성 팀장은 우리 은행에서 20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보안팀에서 성실하게 자리를 지켰습니다."
"음.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민 이사만 남고 모두 나가보세요."
모두가 나가고 은행장과 민 이사 둘만이 남았다.
"민 이사. 그동안 유씨 집안 놈들을 잘 감시하라고 했잖아."
"유진 그년이 국내에 없어 소홀히 했습니다. 행장님 죄송합니다. 그놈들이 조 이사를 수년간 미행해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민 이사. 4년 전 행방불명 사건 때 그대로 없어졌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났잖아. 그때 기회가 있었는데. 이제 기회가 없어."
"그때 갑자기 사라져서... 그리고 행장님.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그년이 와국에 있지만 어디 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습니까?"
"...."
Z 은행장과 은행에서 안 좋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민 이사의 얘기들이 은밀하게 계속되었다.
*****
니스 선수들의 한가로운 숙소 생활.
팀훈련을 마친 후 저녁의 숙소 휴게실은 늘 시끌벅적했다.
2층 휴게실에서 클로에와 크리스가 스마트폰을 보며 또다시 언쟁을 하고 있다.
“이건 유진에게 물어보자.”
막 1층 체력 단련실에서 체력 훈련을 마치고 씻고 올라오는 유진을 크리스가 보며 소리쳤다.
클로에와 크리스, 둘은 동갑으로 친하지만, 가끔 엉뚱한 것으로 심각하게 언쟁을 해 팀원들을 피곤하게 할 때가 있었다.
“그래. 좋아. 유진은 그림도 잘 그리고, 피아노도 잘 치니까 예술은 유진이지.”
돌아가신 부모님과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면 옛 기억을 떠올리며 잠깐씩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곤 했던 유진.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온 클로에가 그것을 보고는 자신도 그려 달라고 하도 사정하여 그려준 적이 있었다.
클로에는 그것을 들고 나가 팀원들에게 자랑을 잔뜩 해, 유진은 한동안 휴식 시간마다 그림을 그려야 했다.
둘이 유진을 끌고 자리로 갔다.
“잠깐. 잠깐 너희끼리 해결해!” 유진이 가려고 했지만.
"유진. 잠깐이면 돼 ." 그리고는 스마트폰의 한 영상을 보여 주었다.
영상에는 컴퓨터에 연결된 로봇팔이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얼마 후 보기에 멋진 그림은 완성되었다.
“유진 봐. 훌륭한 그림이지. 이건 예술이지. 그렇지?” 크리스가 말했다.
“무슨. 로봇이 그린 그림이 무슨 예술이야. 이건 그냥 그림이야.” 클로에가 유진을 보며 말했다.
“음 예술이 과연 뭘까?” 유진은 머리가 아팠지만 둘을 보며 물었다.
두눈 만 깜빡이는 둘에게 유진은,
"'인간의 창작물이나, 창작활동과 그 장치 등을 예술로 본다’라는 것이 는 일반론적인 예술의 정의야. 그런데 그 정의는 언제든 변할 수 있어."
“지금은 아니지만 언제든 예술이 될수 있다고 봐. 그럼 됐지.” 라고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다시 뒤에서는 ‘현재가 중요하다, 아니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평화로운 니스 숙소의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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