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리그 A 23/24 시즌 (1), 재판

31 리그 A 23/24 시즌 (1), 재판
리올의 패션 주간이 끝나고 잠깐 숙소에서 쉬고 있는 중 급하게 통화를 하자는 김 변호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여보세요. 변호사님 저예요."
[그래 진아. 먼저 컵 대회 우승 축하한다.]
"감사해요. 김 변호사님. 건강하시죠?"
[나야 항상 건강하지. 건강은 운동하는 네가 더 챙겨야지. 그런데 진아.]
"네."
유진은 통화 중에 심각해지는 김 변호사의 음성을 듣고 긴장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갑자기 은행에서 합의를 하자는 연락이 왔어.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니까.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회사의 지분 일부를 넘기겠다는구나.]
"하!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금까지 11년 동안을 무엇 때문에 싸워왔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에요.]
유진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은행의 터무니없는 제안에 너무 화가 났다.
[그렇지. 나는 은행 놈들의 이렇게 제안하는 저의가 의심스러워.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
"???"
[요즘 우리가 약간 유리한 상황으로 가고 있지만, 현재까지 제출한 증거 자료나 심리를 고려하면 잘해야 원고 일부 승소까지 갈 수 있어. 은행 입장에서 소송에서 패해도 잘해야 지분 일부를 줄 뿐인데. 그런데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합의하자'' 이상하지 않니?]
"음. 많이 이상하네요. 무슨 의도일까요?"
[여기서 좀 더 알아보고, 합의를 빌미로 시간을 좀 더 끌수는 있겠구나. 조 이사의 재판이 끝나 3차 심리 기일이 곧 있을 예정인데 합의 관련 사안은 기일을 연기하기데 좋은 명분이거든.]
조 이사는 얼마 전 재판에서 유진 산업의 횡령과 배임, 상습 도박으로 결국 유죄가 확정되었다.
"제가 최근에 입수한 자료가 있어요. 지금 메일로 보내 드릴 테니 봐주시겠어요."
유진이 노트북으로 자료를 보내고 잠시 후.
[이건 은행 내부 자료구나.]
"네. 조 이사가 10여 년 전부터 Z 은행 자금을 횡령한 내부 자료에요. 아빠가 돌아가시고 은행이 유진 산업이 강제로 뺏기 전까지."
[이거 어쩌면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겠구나. 하지만 완전한 승소 요건이 되기에는 조금 부족한데. 진아. 그럼. 은행 내부에 우리 사람이.]
"변호사님 안 돼요. 그런 말씀 하시면."
유진은 급하게 김 변호사의 말을 막았다.
[음. 알겠다. 다시는 입 밖으로 내지 않으마. 이건 3차 기일 아침에 증거로 신청해야겠다. 그놈들이 대응하지 못하게.]
"우리가 은행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최대한 늦게 알아야 해요. 아니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유진의 소리가 작게 들리자 김 변호사는 의외로 이 일에 내포된 위험성을 깨달았다.
류정범은 강화된 서버 보안으로 더 이상의 자료 확보가 어려워지자 위험하지만, 투자 자료들 속에 의심나는 자료들을 섞어서 down 받았다.
최근까지 down 받은 자료의 정리를 마치고 정확한 횡령 증거와 자료를 확보해 유진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유진은 은행 내부의 류정범 씨가 혹시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얼마 전 고진욱 소장에게 류정범 씨의 신변을 보호할 방법을 강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류정범 씨의 협조를 받아 폰에 추적 앱을 설치하였고 고유 서비스 직원 1명이 계속 따라다니고 있었다.
"다시 뛰는 동작을 해 보세요. 좋습니다."
발의 모형을 뜨고 내부에 센서를 장착한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스파이크를 하거나, 블로킹하거나, 수비를 위해 슬라이딩하는 동작을 반복하는 유진.
동작 측정을 마치고 신발의 형태에 대한 미팅을 끝으로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어진 나이키 슈즈 제작팀의 만남이 끝났다.
"소피. 이제 끝난 거죠?"
"아니. 스포츠 의류 관련 미팅이 남았어. 유진 조금만 참아. 이번 건은 세계 광고야. 한국에서 너의 인지도를 올리기에는 좋은 기회야."
한국의 배구 리그 역시 시작을 코 앞에 두었지만, 스포츠 협회들에 대한 군입대 비리 수사가 계속되고 있어 분위기는 흉흉했다.
지원과의 연락 중 반가운 소식에 이신우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축하드려요. 드디어 감독 자리를 다시 찾았어요. 이번 시즌 기대할게요."
"유진. 너까지 그러니 어깨가 내려앉는 것 같다. 너야말로 이번 시즌 기대해도 되지?"
"저도 어깨가 내려앉아 스파이크가 제대로 안 될 것 같아요."
이신우는 드디어 고려 은행팀의 감독으로,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전화를 마치고 유진은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 테라스로 나가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세 조각이 웃고 있는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 같아 손을 흔들었다.
"클로에 저기 봐. 유진이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 "
클로에와 크리스가 마침 숙소로 돌아오다 자신을 반기는 듯이 손을 흔드는 유진을 보고는 기뻐하며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
유진의 일주일은 그렇게 화살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10월 첫 번째 토요일 오후. 23/24 시즌 정규 리그가 시작되었다.
1라운드 상대는 지난 시즌 9위의 툴룽. 리그 첫 경기를 홈 개막전으로 하는 니스.
아레나 스타디움은 리그 컵 대회 결승만큼이나 관중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니스 선수들이 입장하자 환호성이 천장을 뚫을 기세였다.
선수들이 경기 시작 준비가 끝나자, 심판이 양쪽 주장을 불러 코인을 던졌고 유진은 리시브를 선택했다.
"툴롱이 비록 지난 시즌 9위였지만 마음 놓지 말고, 첫 경기 반드시 이긴다는 각오로 열심히 뛰어."
"네."
선수들이 코트에 자리를 잡자, 심판이 곧 휘슬을 불러 경기 시작 첫 서브를 알렸다.
"로제 리시브합니다. 클로에 백토스 크리스 B 퀵 성공. 선취점을 올리는 니스입니다."
유진과 울가의 확실한 좌우 공격, 한 번씩 나오는 크리스와 아들렌의 중앙 속공이 툴롱의 코트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세트스코어 2 : 0 으로 앞서가는 가운데 3세트 시작.
서브 존으로 나가 서브 준비를 하는 유진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 급하게 뒤로 돌아 관중석을 보았지만, 그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서브 시간에 쫓겨 급하게 서브를 넣었지만 공은 라인을 벗어나며 아웃되었다.
"유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클로에가 다가왔다.
"관중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내가 착각했나 봐."
다행히 3세트 유진이 잠깐 흔들렸지만 경기는 순조롭게 흘러 세트스코어 3 : 1로 니스의 승리로 끝이났다.
3일 후 2라운드 스트라즈부르와의 어웨이 경기.
1세트 스트라즈부르의 강한 서브가 아웃사이드 몰리에게 집중하였고 서브 컨디션까지 좋았는지 상당히 까다로웠다.
"아! 사이드 라인 끝에 떨어집니다. 서브에이스. 스트라즈부르 1세트에서 벌써 4번째 서브에이스입니다."
강한 서브를 막지 못해 1세트를 22 - 25로 내준 니스.
필리프 감독은 리시브의 안정을 위해 2세트 포지션을 변경하여 유진을 후위에서 시작시켰다.
까다롭고 강한 서브를 재빨리 이동하며 받아내는 유진 덕분에 다시 클로에의 토스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크리스 선수 중앙 속공. 16 - 15 니스가 다시 앞서가며 테크니컬 타임아웃입니다."
2세트는 접전을 펼치며 계속 업치락뒤치락하며 진행되었지만, 듀스 끝에 올가의 강력한 오픈 공격과 유진이 중앙 파이프 공격으로 니스의 승리로 끝났다.
3세트가 진행되며 서브 존에서 서브를 넣기 위해 준비하는 유진의 귀에 분명한 소리가 들렸다.
"노란 몽키는 너희 나라로 꺼져라. Get Out Here!"
소리가 나는 곳을 급하게 돌아보았으나 소리친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고 관중석 역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심판은 경기를 중단시키고 유진을 불렀다.
"유진 선수. 무슨 일이죠?"
"관중석에서 인종비하 발언을 들었어요."
"정확히 말해 주세요."
유진은 손가락으로 소리가 들렸던 위치를 가리키며 심판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노란 몽키는 너희 나라로 꺼져라. Get Out Here!"
심판은 곧 장내 경찰을 유진이 가리킨 곳으로 보내 인종 비하 발언을 들었는지 누가 했는지 조사를 하게 했지만, 주위에서 들었다는 사람은 있었지만, 누가 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로 소란은 진정되었고 30분간 중단된 경기는 재개되었지만, 선수들과 관중들의 마음은 식어버린 후였다.
유진은 잠시 쉬자는 필리프 감독의 권유를 마다하고 3세트 멈췄던 서브를 다시 넣기 위해 서브 존으로 갔다.
니스 선수들이 유진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유진 선수. 서브를 넣기 위해 서브 존으로 이동합니다. 피에르 씨. 유진 선수의 마음이 상당히 안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경기력에 영향이 있겠죠?"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정도로 흔들릴 것 같지 않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유진 선수는 선수 생활이 어려운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재활이란 것이 선수들 피를 말리는 것이거든요. 유진 선수는 그것을 2년 6개월간 2번이나 하고 재기에 성공한 선수입니다."
"유진 선수. 강한 스파이크 서브를 넣습니다. 빠릅니다. 라인 안쪽에 떨어집니다. 서브에이스. 서브에이스입니다. 대단합니다."
유진은 3연속 서브에이스를 넣으며 식었던 선수들과 관중들의 마음에 다시금 불을 피워 올렸다.
유진은 경기를 끝까지 뛰며 팀의 3 : 1 승리에 결정적 역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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