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전용 배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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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삼
작품등록일 :
2024.05.22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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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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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 물건: 헌터의 시체 (3)

DUMMY

여기저기 퍼져서 각자 정비하던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열을 맞춰 각자의 자리로 찾아가는 게, 미리 대형을 맞춰본 모양이었다. 몬스터 한 마리를 잡는데 무슨 대형씩이나.


던전 공략을 처음 구경하는 무진은 작게 하품했다.


원래 공략이라는 게 이만큼 쓸데없는 짓거리가 많은 작업이었나?


남아있는 몬스터를 전부 소탕하면 되는 일 아닌가. 무슨 구색을 저렇게 맞추는지.


따분하게 그들을 구경하던 무진은 이내 왜 대형이 필요한지 납득하게 됐다.


탱킹을 맡은 헌터가 몬스터를 유도하며 수면을 갈랐다. 물속에서도 수준급의 속도였다.


쿵,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잔잔하던 물에 파동이 일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붙은 조류의 발이 수면 위를 내리찍었다. 물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었다.


모습을 드러낸 모켈레 음벰베를 본 무진이 입을 떡 벌렸다.


"공룡······?"


공룡. 그것은 공룡이었다.


유선형의 몸통에 긴 목과 꼬리. 등을 따라 날카로운 가시가 빼곡하게 돋아 있었다. 파충류의 매끈한 피부에 맺힌 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그 크기가 어찌나 큰지, 놈의 머리를 바라보는 무진의 고개가 뻐근할 지경이었다.


거대한 몸집에 무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저런 크기라면 흩어져 잡을 수밖에 없겠지. 호정 길드의 헌터를 모두 아는 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상성에 맞춰 팀을 꾸린 게 보였다.


헌터들은 긴장한 낯으로 무기를 고쳐 잡았다.

무진 역시 품에서 회칼을 꺼내 단단히 쥐었다. 주방일을 하던 순철에게 얻어낸 칼이었다. 이제 다신 식재료를 썰기 어렵겠지.


헌터들과 달리 무진의 얼굴에는 따분한 기색만이 남아있었다. 그들과는 사냥감이 다른 탓이었다.


이대로 임성기가 무리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헌터들이 몬스터를 처리하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야 했다. 그래야 임성기의 죽음을 몬스터 탓으로 돌릴 수 있을 테니까.


무진은 상황을 주시하며 제가 나설 완벽한 타이밍을 노렸다.



임성기 헌터는 대열 중에서도 가장 몬스터와 가까운 무리에 섰다.


가끔 화력 조절에 애를 먹긴 했지만, 임성기는 화염계 헌터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다.

예열하듯 단발적인 불꽃을 손 위로 몇 번이고 피워댄 임성기가 씨익 웃었다.


호정 길드의 첫 단독 던전 클리어. 아마 그 주역은 임성기 자신이 될 터였다.


임성기는 헌터가 어떻게 이름값을 높이는지 잘 알았다.


가령 '묵시록' 길드의 대가리인 염제헌 헌터는 홀로 던전에 진입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던전을 독식하는 만큼 놈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높아진 몸값은 곧 실력의 척도였다. 그건 일거리가 다시 염제헌 놈에게 돌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가진 놈들만 파이를 넓혀가는 기형적인 구조. 임성기는 현 헌터계를 그리 평했다.


적당한 계기만 있다면 임성기 역시 염제헌만큼 몸값을 올려 받을 수 있었다. 여태 그 계기가 없었을 뿐.


그리고 그 '계기'가 이제야 자신 앞에 잘 차려졌다.


임성기는 홀로 이 던전을 클리어할 자신까지 있었다.


염제헌은 S급, 임성기는 B급이라는 차이가 있긴 했지만, 고작 한 등급이었다.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난다고.

자신 역시 종종 컨트롤이 안 되어 등급을 낮게 받았을 뿐, S급의 실력이라며 임성기는 자부했다.


"······엿 같은 최호정. 어디 A급 헌터 하나 잃어보라고."


임성기는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이어 그의 발아래에서 불꽃이 확 치솟았다.


그는 불꽃을 페이스메이커 삼아 흉포한 모켈레 음벰베를 향해 뛰쳐나갔다. 동료들과 미리 말을 맞췄던 것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어어, 임성기 헌터님!"


남아있던 동료가 그를 외쳐 불렀다. 몬스터가 충분히 가까워질 때를 노려 총공격하기로 약속되어 있지 않았나? 당황스러워하던 동료가 이내 욕설을 내뱉었다. 임성기, 저 자식이 또!


습한 공기는 불꽃을 사그라뜨리려 했지만, 그보다 임성기가 불을 내뿜는 화력이 더 셌다.


몬스터에게 재빠르게 접근한 임성기가 단도를 세워 들었다. 높게 뛰어오른 그는 모켈레 음벰베의 거대한 몸통에 단도를 콱 꽂아 넣었다.


허공에 뜬 다리가 몬스터의 몸통을 밟았다가, 쭉 미끄러졌다.


"윽······! 뭐 이리 미끄러워!"


임성기는 짜증을 내며 꽂아 넣은 단도 하나에 몸을 의지했다.


원래 계획은 몬스터의 등에 완전히 올라타는 것이었지만, 이 정도로 미끄럽다면 더 올라가기는 힘들 것이다.


모켈레 음벰베는 몸에 단도가 꽂힌 줄도 모르고 탱커만을 쫓아 돌진했다. 이 정도 깊이는 간지럽지도 않다는 건가. 임성기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흐흐······. 물에 사는 것들이 가장 불에 취약하단 말이야."


임성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불기둥을 소환했다. 퍼억! 아래에서 물을 찢으며 불꽃이 솟구쳤다. 물이 증발하며 주변의 습도를 빠르게 높였다.


솟구친 불기둥은 모켈레 음벰베의 머리를 향해 쏘아졌다.


"목이 얇아서 쉽게 익겠어."


임성기는 너무 일찍 승리를 자만하며 웃었다. 가급적이면 저 멍청한 머리까지 홀라당 태워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놈의 머리가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이내 타오르는 불이 놈의 목을 덮쳤다.


―음머어어!


끔찍한 고통에 모켈레 음벰베가 몸부림쳤다.


잘 유인되다가 멈춰선 모켈레 음벰베 덕에 헌터 진영은 패닉에 빠졌다. 그들이 지정한 자리는 엄폐물이 많고 물이 유독 깊은 위치였다.


공격과 방어를 계산해 잡은 자리를 이런 식으로 벗어나선 안 됐다. 허둥지둥 멈춘 몬스터에게 달려간다면 헌터들의 위치까지 모두 발각되는바.


안타까움에 탄식하던 헌터들은 이내 모켈레 음벰베가 멈춰 선 이유를 깨달았다.


놈의 긴 목에 뱀처럼 불꽃이 감겨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곳에 화염계 헌터는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임성기!"


탐욕스러운 놈이 결국 일을 쳤다. 헌터들은 혐오스럽게 그의 이름을 읊으며 눈을 시퍼렇게 떴다.


서로 시선을 주고받던 헌터들이 같은 자리에 못을 박고 섰다. 무슨 생각으로 돌발 행동을 한 건지는 몰라도, 그가 싸지른 똥을 동료들이 치워줘야 할 의무는 없었다.


차라리 저기서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헌터 중 누군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음머어어어-!


모켈레 음벰베는 발을 쿵쿵 구르며 고통스러워했다.


고통스러운 것은 단도 하나에 의지해 몸을 지탱하는 임성기도 마찬가지였다.


"크윽······!"


이를 악문 임성기가 손아귀에 힘을 꽉 주었다. 가죽을 찢고 박힌 단도가 점차 상처를 벌리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제야 모켈레 음벰베는 제 몸에 붙은 벌레 하나를 알아차렸다.


알아차리면 어쩔 것인가. 사족보행을 하는 놈의 특성상 자신을 떨쳐내지도 못할 것이다. 임성기는 확신을 품고 놈에게 매달려 있는 데에 온 체력을 쏟았다.


임성기가 한 가지 고려하지 못했던 지점이 있다면, 모켈레 음벰베의 독특한 신체 구조였다.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던 임성기는 별안간 옆구리에 둔탁한 통증을 느꼈다.


"크악!"


기다란 꼬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임성기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붕 날아가 물속에 처박혔다. 온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으나, 얻어맞은 옆구리가 유독 아팠다.


몸을 일으키려 몇 번 허우적거린 임성기가 이내 몸에 힘을 풀었다. 갈비뼈가 나간 게 분명했다.


허망하게 엎어진 임성기의 눈에 환한 빛이 들어왔다. 빛을 사용해 몬스터의 주의를 끄는 탱커였다.


"개새끼들······ 이제야 움직인다고?"


전투 불능이 된 임성기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공을 독식하려고 혼자 달려갈 때와 전혀 달라진 마음가짐이었다.


"내가 얼마나 주의를 잘 끌었는데. 씹."


임성기는 한탄하며 공격을 시작한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던전 공략에 성공한다면 제 공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기나 할까.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적어도 치명상을 입혔을 거라 자부했는데,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날뛰는 모켈레 음벰베의 모습은 팔팔하기 그지없었다.


"젠장!"


임성기는 주먹을 수면 위로 내리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러다간 본전도 못 얻겠다. 임성기는 어떻게든 몸을 추스르며 앞으로 엉금엉금 기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 뭐라도······.


강박적으로 중얼거리며 나아가던 임성기의 뒤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커헉!"


푹.


몸을 관통하는 끔찍한 고통에 임성기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등을 뚫고 꽂힌 회칼이 빠드득 돌아갔다. 생살을 찢은 상처가 파헤쳐지며 울컥울컥 피가 솟구쳤다. 선혈 물에 섞여 들며 순식간에 주변이 붉게 물들었다.


"으, 어어······."


임성기는 작살에 꽂힌 물고기처럼 퍼덕대며 뒤를 돌아보았다.


모자챙을 아래로 푹 눌러 쓰고, 그 아래로는 새카만 멀티 스카프를 쓴 얼굴. 검은 재킷에 검은 라이더 바지까지 까마귀마냥 온통 검게 입은 옷차림.


그는 임성기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크······ 무, 으, 끄으윽!"


실핏줄이 터져 시뻘건 눈을 치켜뜨며, 임성기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무진의 이름을 발음하려 뱉어진 음성은 끝까지 완성되지 못하고 신음으로 스러졌다.


한 번 더 회칼을 비틀어 준 무진이 검지를 입술 가까이 가져다 댔다. 누가 들을지도 모르는데, 멋대로 이름을 밝혀선 되나.


살점을 곤죽으로 만든 회칼이 몸에서 빠져나갔다. 더러워진 회칼은 아래로, 아래로, 몇 번이나 내리쳐졌다.


푹, 푹. 날카로운 소리가 이어질수록 임성기의 반항이 잦아들었다. 더 이상 신음조차 흘러나오지 않게 되자 무진이 몸을 뒤로 물렸다.


임성기의 손가락이 움찔움찔 떨렸다. 아직 죽지 않았다.


"흠."


무진은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사인이 과다출혈인 것은 깔끔하지 않은데.


결정을 내린 무진이 임성기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이제 임성기의 얼굴엔 공포만이 드리워져 있었다.


"으······."


임성기가 눈을 빠르게 끔뻑거렸다. 뭔가를 말하고 싶어 보였으나 입 밖으로 나오는 음성은 없었다.


이내 임성기의 머리가 늪 속으로 퍽 처박혔다. 물렁물렁한 진흙 깊이 머리를 눌러 박은 후 무진이 손을 뗐다.


그렇게 피를 흘려놓고 아직도 기운이 남았나. 늪 속에 머리를 파묻은 임성기가 몸을 뒤틀었다. 반항이라기보다는 근육이 멈추기 직전 경련에 가까웠다.


무진은 피 묻은 손을 옷에 대충 닦았다. 손에 간단히 물기만 제거한 후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제 무진은 괴황지 한 장과 경면주사를 묻힌 붓을 들고 서 있었다.


"······부검을 하진 않겠지?"


무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침없이 부적을 써 내려갔다.


헛보일 환. 幻 자를 유려한 붓놀림으로 새겼다. 시신이 칼에 찔려 죽은 것으로 보이는 건 사양이었다.


몬스터의 꼬리에 맞아 날아가는 걸 보았으니, 타박상 정도가 좋겠지.


무진이 부적을 완성했을 때, 임성기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무진은 임성기의 머리를 다시 들어 올렸다. 시신의 뺨을 꽉 붙잡아 입을 벌리게 한 무진이 목구멍 깊이 부적을 쑤셔 박았다.


시신이 물에 흘러가도록 정자세로 눕힌 무진이 손을 털며 일어났다.


'물건'의 준비는 끝났고. 배송은 제가 아닌 헌터들이 대신 해줄 것이다. 무진은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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