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이 내게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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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노예
작품등록일 :
2024.05.23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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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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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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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던전이 무너진 날

DUMMY

전 대륙이 전무후무한 하나의 사건으로 뒤흔들렸다.


‘던전이 무너졌다.’


그 소식은 서쪽 대륙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테라베인 제국의 수도 테라노스는 물론이고, 서대륙 끝자락에서 동쪽 대륙까지 들불처럼 번졌다.


세상의 이목이 한 인물에 쏠렸었다.


용사 카리온.


그리고 일제히 그들의 발걸음은 사건의 진원지인 크레토스 마을을 향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최초로 던전이 무너졌다는 믿을 수 없거니와 그 까닭을 알고자 했기 때문이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은, 신탁을 받은 레이신교의 열두 교단이었다.


열두 교단은 동시에 신탁받았다. 그렇다면 어느 교단이 용사 카리온을 선점하여 신들의 영광을 독점할 것인가.


언뜻 보면 가장 높은 직급이자 교단의 주요 인물인 발라드로스 추기경을 파견한 벨라토르 교단이 앞서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로엔하임 백작령의 크레토스 마을을 관리하는, 벨라토르 교단 교구의 주교실에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통신기구인 마나 석판 위로 한 실루엣이 비추었다.


뒤룩뒤룩 살이 찐 그의 볼살이 격노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주먹을 굳건히 쥔 그의 아래에는 반으로 쪼개져 내려앉은 탁자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그의 격한 행동으로 삐뚜름해진 교황관을 고쳐 썼다.

고쳐 쓴 교황관에는 벨라토르 교단을 상징하는 검이 빛에 반짝였다.


“그러니까. 그 역사적인 영광의 순간에, 발라드로스 추기경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 아니오.”


분명 그의 육체는 이곳에 있지 않았으나, 그의 분노가 실체화된 듯 공기마저 떨렸다.


“그렇습니다. 교황님”


벨라토르 교단의 예복을 입은 근육질의 대머리 사제가, 그를 향해 쏟아지는 살기 속에서도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발라드로스 추기경!! 자네는 항상, 무엇이 잘났다고 그 목을 뻣뻣이 세우는 거지? 지금 당장 직위가 강등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시오?”


발라드로스는 살이 뒤룩뒤룩 쪄 과거의 용맹스러웠던 전사의 모습을 잃은 자신의 친우 크로오르의 경멸 앞에서도 담담하게 시선을 맞추었다.


“몬스터 웨이브로 죽어 갈 이들을 구한 게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건지 허물이 크고 부족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벨라토르 신의 충실한 종이신 교황님께서 알려주신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일연 공손해 보이는 태도였지만, 그 말에는 뼈가 있었다.


벨라토르 교단의 교황 크로오르의 볼이 또다시 부들부들 흔들렸다.


벨라토르 교단을 받치는 두 기둥이 눈에서 불꽃을 튕기며 싸우는 모습에 그 사이에 있는 주교만 죽을 맛이었다.


‘주교면 먹고살 만하니까, 말년이 편안하다고 여겼건만,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차라리 나를 물리고 저들끼리 싸웠으면 좋겠건만.’


“자네가 그곳에 파견한 이유가 무엇인지 잊었는가. 용사 카리온을 주변에서 그를 도우며, 지켜보라는 게 그 이유였네.”


“그래서, 사람들이 몬스터의 손에 죽기를 방치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미 보고서에도 올렸지만, 그곳에는 흑마법이 묻어난 언데드 몬스터들이···.”


“그딴 게, 신의 뜻을 받드는 자네에게 중요한가! 그대는 신의 종일세!! 거룩한 신의 말씀을 받들어야 한단 말일세. 그따위 평민들의 목숨이, 신의 뜻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발라드로스가 고개를 숙였다.

저에게 굴종하는 발라드로스, 벨라토르 교단의 교황은 그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발라드로스의 마음속은 달랐다.

‘신의 뜻, 신의 말씀. 신의 뜻, 신의 말씀···.’


꽉 쥔 그의 주먹 사이로 핏방울이 맺혔다.


의기양양해진 벨라토르 교단의 교황이 말을 이었다.


“자네가 아무리 반성한다고 하여도, 쉽게 좌시할 수는 없네. 자네의 틀린 판단으로 본교가 얼마나 큰 손해를 입었는지 아는가?”


“무슨 손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용사 카리온과의 우호적인 관계 말일세. 자네가 무어라 했는가. 용사 카리온이 신들의 말씀을 받는데 모자란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모자란 인간이 맞습니다.”


“그 모자란 인간이 최초로 던전을 무너트렸지. 그렇다면 신들의 말씀을 충실히 시행한 게 아닌가. 교단에 내려진 최우선 과업 중 하나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교황은 말하면서 슬쩍 주교를 쳐다보았다.

당연하게도 주교는 교황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레이신교의 수뇌부 중 극소수만이 아는 진실.

던전 내부는 신들의 손길이 닿지 못한다.

이는 신들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말에 위배되는 거대한 오류로서, 신들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믿음의 근본마저 흔들 수 있는 역린.


레이신교의 주요 과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던전들의 소멸이었다.


날카로웠던 발라드로스의 기세가 줄어들었다.

교황은 그런 발라드로스를 비웃으며 한 마디를 얹었다.


“매번 자랑하던 자네의 감이 이렇게 또 한 번 틀리는구만. 알아들었다면 자신의 처분을 기다리면서 용사 카리온의 환심을 사도록 노력하게나.”


교황 크로오르의 비열한 미소를 끝으로, 석판 위로 비추어지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 발라드로스 추기경님께서는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시옵소서. 교황님께서 모진 말을 하셨지만 추기경님께서 강등될 일을 없을 것입니다.”


주교가 조심스레 발라드로스 추기경을 살피며 말했다.


반짝반짝 빛나던 발라드로스의 대머리가 올라왔다.


“무슨 당연한 말을 하는가? 나 발라드로스네. 하하-!”


발라드로스가 호쾌하게 웃어 재끼며 사람 머리통만한 팔로 주교의 어깨를 덮쳤다.


강한 힘이 주교의 어깨를 짓눌렀다.


“아, 악! 아픕니다. 아파요.”



“하하하, 주교 요즘 운동을 너무 안 한 거 아닌가? 뼈밖에 없구만. 내 손수 단련시켜주겠네.”


웃음과 함께 꿀렁꿀렁거리는 발라드로스의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며 주교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생각했다.


‘이런 미친 대머리같으니라고!! 이래서 윗놈들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니까.’



***


던전의 소멸로 시끌벅적한 크레토스 마을에서 벗어난 깊은 숲속, 밝은 달 아래 한 소녀의 거친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아, 하아, 이안님 더는, 몸이 못 견딜 것 같아요···."


땀에 흠뻑 젖은 하루의 몸이 달빛 아래 빛났다.

그녀의 가쁜 호흡에 따라 작은 가슴이 격하게 부풀어 올랐다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무슨 말이야, 이것 봐봐."

이안이 그녀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입과는 달리 몸은 정직한데?"


이안의 입가는 만족스러운 듯 위로 올라갔다.


그런 이안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의 삼각 귀가 바르르 떨려왔다.


“흐읏, 하,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고통과 기대로 뒤섞인 떨림이 있었다.


“내 관심을 바랐잖아. 이래 봬도 나는 아직 참고 있다고?”


"모, 몸이 못 버틸 것 같아요. 아앗!"


이안이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


"그래, 숨을 깊이 들이마셔."


이안의 말에 따라 하루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마치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 듯, 그녀는 이안의 손길 하나하나에 반응했다.


“이안님, 제발···.”


어느새 꼬리마저 부풀어 오른 하루가 애원하였다.

아름다운 소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이안은 단호했다.


“더 할 수 있어, 하루. 나 믿지?”


하루의 전신에 있는 근육이 떨려왔다.

움찔거리는 하루의 귓가로 이안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고통이 언젠가는 달콤한 쾌락으로 바뀔 테니까···."


“아악-!!”


하루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하였다. 그녀의 꼬리가 빳빳하게 섰다.


“옳지, 옳지. 마지막 하나 더!!”


이안은 하루의 등에 무게를 실었던 다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마침내 하루는 힘겨운 소리와 함께 팔굽혀펴기 마지막 세트를 끝냈다.


이제껏 하루의 몸을 지탱하던 손가락 끝과 발끝에 힘이 풀리며 하루는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하루가 쓰러진 뒤에야 이안은 자신의 무게를 실었던 발을 하루에게서 떨어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쓰러져 있던 수인 소녀를 상대로, 참 요란하게 운동을 시키는구나.


팔굽혀펴기가 무슨 요란한 운동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하루는 발가락 끝과 손가락 끝만으로 이안의 무게를 견뎌내야 했다.

참고로 이안의 무게는 비밀이다.


“다 큰 뜻이 있어서 그렇지. 지나가다 주운 돌이 예상치도 못한 원석인걸. 역시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고.”


-착한 게 다 얼어 죽었느냐? 그리고 너는 네 무게를 알지 않느냐? 300년 넘게 산 해츨링의 무게다. 저 불쌍하고 안쓰러운 수인 소녀를 고문시키는 건, 아무리 드래곤이라 해도 너무 심하지 않느냐.


“고문이라니!! 엄연히 체계화된 근육 트레이닝이라고! 그 광룡과는 차원이 다른!!”


이안은 시간이 지나도, 몬스터 웨이브가 있었던 그날의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달빛 아래에서 피를 흩뿌리며 춤을 추던 그 차가운 금색 안광.

‘엘드라니아 연대기’ 속, 용사 척살자로 불리던 노란 눈의 학살자에 대한 묘사와 일치한다.


이안은 하루에게 가장 기초적인 근력 운동인 벤치프레스와 스쿼트, 푸시업만을 중점적으로 시켰다.


소설 속에 나오는 그녀의 기술들은 모두 독자적인 기술들이다.

자칫 잘못하면, 미래의 용사 척살자가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세 가지 훈련 모두 이안이 직접 하루의 가슴 위에 올라타거나, 하루의 허벅지에 앉는 등 이안이 제 체중을 싣고서 실시했다.


“내 고, 아니 훈련은 근력 증대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체력을 향상하지. 그리고 지구력 향상시킴으로 오랜 시간 동안 높은 체력을 유지하고. 민첩성과 정확성을 향상하여 전투에서의 효율을 높이는 등!! 마지막으로 이런 극한의 훈련을 통해 정신력 강화는 물론이고,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인내력까지 길러진다고.”


이안의 일장 연설에도 불구하고, 아르바토로메우스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쯧, 해츨링의 혀가 참 길구나. 그 레드 드래곤의 실험도 체계적이었다. 아직 네 목숨이 붙어 있는 게 그 증거···. 끄아아악!!


이안이 왼손 약지에 끼인 반지에 딱밤을 놓고서 말했다.


“그런 모욕적인 언사는 아무리 알바라고 해도 참을 수 없어.”


이윽고 이안은 아르바토로메우스의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 딱밤을 놓았다.


-으캬아악!! 이런 망할 해츨링!!


까뒤집어진 아르바토로메우스의 비명을 무시하며 이안을 엎어져 있는 하루에게 말했다.


“이게 바로 근육 훈련이다. 잘 해냈어, 하루.”


이안의 다정한 목소리에, 숨을 헐떡이며 땅바닥에 얼굴을 묻고 있던 하루가 고개를 들었다.


“네, 이안님. 힘들었지만, 결국 이안님 말씀대로 해냈어요!”


하루의 꼬리가 붕붕 좌우로 세차게 움직였다.


“꼬리가 무슨 헬리콥터 같네.”


이안의 작은 말소리도 알아듣는 하루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안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투박한 손길에도 하루는 해맑게 웃었다.

이안은 그런 하루를 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잘했어, 오늘의 설명을 잘 기억해 둬. 두 번 말하는 건 질색이니까.”


“네? 그게 무슨?”


하루가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이안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이안이 사악하게 웃었다.

본능적으로 느끼는 불길함에, 하루의 꼬리의 털이 부풀어 올랐다.


“앞으로 네가 매일 해야 할 훈련이니까.”


순식간에 하루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쯧쯧. 불쌍한 것.


그렇게 던전이 무너진 이후의 첫날이 저물어 갔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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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폭군의 창 아래(1) 24.07.09 17 0 14쪽
48 해츨링은 참지않긔(4) 24.07.08 16 0 16쪽
47 해츨링은 참지앉긔(3) 24.07.07 15 0 17쪽
46 해츨링은 참지않긔(2) 24.07.06 19 0 14쪽
45 해츨링은 참지않긔(1) 24.07.05 18 0 17쪽
44 해츨링과 밥상머리 교육(2) (수정) 24.07.04 18 0 17쪽
43 해츨링과 밥상머리 교육(1) 24.07.03 20 0 16쪽
42 폭군의 창(3) 24.07.02 23 0 15쪽
41 폭군의 창(2) 24.07.01 21 0 15쪽
40 폭군의 창(1) 24.06.30 27 0 16쪽
39 검과 거래 24.06.28 25 0 16쪽
38 노르그렌과 드래곤의 숨결(3) 24.06.26 28 0 12쪽
37 노르그렌과 드래곤의 숨결(2) 24.06.25 23 0 13쪽
36 노르그렌과 드래곤의 숨결(1) 24.06.24 25 0 13쪽
35 혹한의 설산 아래에는(4) 24.06.23 23 0 13쪽
34 혹한의 설산 아래에는(3) 24.06.22 24 0 17쪽
33 혹한의 설산 아래에는(2) 24.06.21 27 1 19쪽
32 혹한의 설산 아래에는(1) 24.06.20 28 1 14쪽
31 이세계의 종교쟁이(3) 24.06.19 25 1 14쪽
30 이세계의 종교쟁이(2) +1 24.06.18 26 1 16쪽
29 이세계의 종교쟁이(1) 24.06.17 32 1 13쪽
» 최초로 던전이 무너진 날 24.06.16 30 1 12쪽
27 크레토스 미궁의 생존자들 24.06.15 32 1 13쪽
26 저주받은 소, 축복받은 자 24.06.14 28 1 16쪽
25 미노타우르스의 미궁(4) +1 24.06.13 32 1 14쪽
24 미노타우르스의 미궁(3) 24.06.12 27 1 14쪽
23 미노타우르스의 미궁(2) (수정) 24.06.11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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