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의 설산 아래에는(3)

끝없이 펼쳐진 설산은 순백의 비단을 두른 듯 부드럽게 굽이쳤고, 험준한 산봉우리들이 구름과 맞닿아 하늘과의 경계를 그었다.
그 사이로 겨울의 속삭임 같은 작은 숨결이, 새하얀 세상에 뿌려졌다.
“하아-”
찬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가녀린 팔다리가 떨린다.
아직 피어나지 못한 봄꽃 같은 영혼이, 끝없는 겨울의 포로가 된 베아룩스 산맥을 응시한다.
새하얀 눈밭 위로 이는 거센 바람에 일어나는 눈보라.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내려앉는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시린 세상.
누군가에게는 그저 아름다울 뿐인 세상은, 아이가 태어나 줄곧 바라본 살 어린 풍경이었다.
작고 여린 아이가 몸을 움츠린다.
먹을 것과 장작을 구하러 간 아비를 기다리는 작고 여린 눈동자엔, 아직 녹지 않은 서리 같은 불안이 깃들어 있다.
“훌쩍-.”
베아룩스 산맥은, 아이에게만큼은 평생에 걸쳐 잔인했다.
코를 흘려서도 안 되고, 눈물을 흘려서는 더더욱 안 된다.
피골이 상접한 어미에게서는 젖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고, 갓 태어난 제 여동생은 계속되는 굶주림에 울지도 않았다.
혹독한 추위는 아이의 소중한 이들에게 한 방울의 무언가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사치요, 낭비였다.
아비는 저가 돌아올 때까지 아이에게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 신신당부하였다.
아이가 열병이라도 앓는다면, 함께 집안에 남겨진 어미와 여동생은 필시 저보다도 먼저 죽으리라.
하지만 아이는 매서운 바람을 막아주기만 하는 온기 한 점 없는 집 안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비를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오늘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이는 이 설산을 헤쳐 나가리라.
아버지가 없다면, 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남자는 저밖에 없었다.
다 같이 추위와 굶주림에 죽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힘이 남은 저가 마지막 사력을 다하는 것이 옳았다.
“휘이-잉.”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무정한 눈보라가 작은 체구를 거침없이 때렸다.
아이의 주변으로 눈이 쌓여 갔다.
졸음으로 아이의 눈이 감겨온다.
아이는 화들짝 놀라 발을 움직였다.
“뽀드득, 뽀드득-.”
제자리에서 얼어 죽는 것만큼 무가치한 건 없었다.
차라리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자.
아이는 고개를 숙이며 눈발을 헤쳐 나갔다.
“필!!”
멀리서 아이를 부르는 소리에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여태껏 기다렸던, 그리운 목소리였다.
“아부지-!!”
아이는 성난 목소리를 향해 내달렸다.
분명 혼날 테였지만, 그건 나중에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달리는 곳에 아버지는 없었다.
그 대신 거대한 무언가가 절뚝이며 저에게 다가왔다.
아이가 뒷걸음치려던 순간이었다.
“필! 이 새끼. 내가 집안에서 얌전히 엄마를 도우라고 했냐, 안 했냐?!”
베아룩스 산맥에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를 내는 괴물이 있었던가?
필은 아버지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총명한 아이는, 아버지가 저에게 들려주는 그 무서운 이야기들이 설산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임을 잘 알았다.
필은 눈에 집중을 하며 저에게 다가오는 거대한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한 사람이 거대한 몬스터들을 짊어지고 절뚝이며 설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흉측한 몬스터들의 모습에 아이가 뒷걸음질 치려고 하였다.
멀찍이서 보이는 백금발의 사내가 짊어지고 있던 몬스터들을 바닥에 내렸다.
“필, 이 녀석. 거기 가만히 있거라!!”
분명 제 아비의 목소리였다.
“히이익!!”
아이는 힘이 풀려 눈 위로 주저앉았다.
거대한 몬스터의 뱃속에서 제 아버지가 나왔다.
그리고 점액투성이의 아버지가 저벅저벅 저에게 걸어왔다.
아이는 자빠지듯 일어나 달렸다.
그러자 제 뒤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 아이의 목덜미가 잡혔다.
“요 녀석!”
아이는 목덜미로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서 고개를 돌렸다.
“아, 아버지?”
점액투성이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살아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안도감도 잠시, 곧 두려움에 떨었다.
집에 있으라는 말을 듣지 않고 설산에서 마주쳤으니, 아버지께 혼날 거라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와락 제 아들을 끌어안았다.
“큰일 날뻔하지 않았느냐.”
그제야 아이는 아버지를 안았다.
“죄송해요···.”
잭은 제 품속에서 감격에 겨워 버둥거리는 아들을 꼭 부여잡았다.
감동적인 부자의 상봉이었지만, 사실 아이의 발버둥은 몬스터의 내장 속에 오랫동안 담궈져 있던 아버지의 악취에, 아들놈이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
이안은 거친 눈보라를 뚫고 잭의 아들 필에 안내를 받으며, 베아룩스 산맥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 알펜루에 다다랐다.
이안의 등 뒤로 잭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안님, 이제 내려주십시오. 이곳에서부터는 제가 제 발로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잭의 말에 이안은 등에 짊어지고 있던 몬스터 둘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루는 이때다 싶어 망토를 눌러쓰고서 부리나케 몬스터 내장에서 벗어났다.
반면 몬스터 내장 속에서 나온 잭은 입맛을 다셨다.
아들인 필에게, 몬스터 내장에 함께 들어갈 것을 제안할 정도로 그 속에서 안락함을 몸소 체험한 잭이었다.
비록 잭의 제안에 아들 필은 몸서리치며 거부했지만 말이다.
잭이 기지개를 켜며 말을 이었다.
“비록 알펜루가 작은 마을이긴 하나, 대대로 베아룩스 산맥에 살았던 이들이기에 몬스터에 대한 마을 경비가 철저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몬스터로 오인해 먼저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잭의 말에서 자신의 마을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 말에 이안이 하루를 쳐다보았다.
하루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서 몬스터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필은 어른들에게 말로만 듣던 몬스터들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해체되는 것을 보았다.
분명 몬스터의 가죽은 질겨 날카로운 칼이나 화살도 뚫기 힘들다고 하였는데, 망토를 입은 사람은 손쉽게 그것도 손으로 잘랐다.
필은 그 모습을 기억 속에 새기려는 듯 진중한 모습으로 지켜보았다. 물론 코를 막고서.
제 옆에서 코를 막고 있는 필을 느끼며, 망토 속 하루의 귀가 축 처졌다.
그런데 지켜보고 있던 필이 이상함을 느꼈다.
단순히 부산물을 위한 해체가 아니었다. 마치 동물을 도축할 때처럼 뼈와 내장을 분리하고, 부위별로 쌓여 갔다.
“저, 저기. 몬스터들을 원래 이런 식으로 해체하나요?”
필의 질문에 하루의 고개가 푹 숙어졌다.
잭이 나서서 필에게 말했다.
“너는 어서 집에 가서, 내가 왔다는 소식을 알려야지. 왜 멀뚱히 있어?! 네가 사라졌다는 걸 알면 엄마가 얼마나 애타게 널 찾을지 생각 안 해보았느냐.”
“앗! 네. 아부지.”
필이 후다닥 사라졌다.
잭은 필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등 뒤에서 이안의 흐뭇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그 부위는 힘줄이 너무 질기기 때문에 그렇게 힘줄을 제거해 줘야 해. 이제는 말 안 해도 자동이네.”
이안의 칭찬에도 어쩐지 기분이 마냥 좋지 않은 하루였다.
하루의 해체쇼를 지켜보고 있던 이안에게 잭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다가갔다.
“저기, 이 고기가 몬스터 고기라는 걸 말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잭에게 물었다.
“왜? 설마 베아룩스 산맥에 살면서 몬스터 고기를 안 먹는다는 거냐? 여기에 널린 게 몬스터인데?”
“하.하.하. 여기서도 가축을 기른답니다. 비록 몇 년째 이어지는 겨울에 가축들이 먼저 죽어버려 지금은 씨가 마르긴 했지만 말이죠.”
잭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오히려 잘됐네. 몬스터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되잖아.”
이안의 말에 잭이 눈에 띄게 당황하였다.
분명 옳은 말이었다. 자신도 몬스터 고기를 먹었지만, 아무런 탈이 없었다.
“하.하.하, 그것이···. 이안님같은 분들과 달리, 저희같은 무지렁이들은 몬스터를 먹을 생각조차 하지를 못합니다. 몬스터가 마을에 쳐들어오거나 마주치는 게 아니라면, 피하는 것이 상책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건 그렇군. 하지만 가만히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잭은 다시 한 번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것이, 몬스터에 대한 인식이 있어서···. 몬스터들이 먹는 것도 그렇고, 그 외형도··· 아무튼 이 고기가 몬스터 고기라는 걸 안다면 가족들이 먹기가··· 힘들어질 겁니다.”
이안의 머릿속으로 아르바토로메우스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우매한 해츨링아. 내가 여태껏 수인 소녀가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차마 말은 하지는 않았지만. 아인종이 몬스터 고기를 먹겠느냐? 몬스터들이 즐겨 먹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사람이다. 가장 소화력이 좋은 오크도 가축을 키우거나 약탈을 했으면 했지, 몬스터는 먹지 않는다.
이안은 아르바토로메우스에게 몬스터 고기에 대해 적혀있는 수많은 논문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아꼈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무언가에 대한 사실이 아닌 인식이라는 걸 이안 역시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안의 회색 눈은 한층 어두워졌다.
“그게 무슨 배부른 소리지? 그러면 너는 이 고기들을 받지 않을 건가?”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는 제 소변도 먹고, 죽은 동료의 시신도 먹는다.
“저, 그게···.”
잭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후-. 네 말뜻은 잘 알았다. 어차피 고기들은 하루가 알아서 정리할 테니 소분해 놓는다면, 몬스터 고기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얼른 너희 집으로 가자. 나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거든.”
“네. 가, 감사합니다.”
잭은 서둘러 이안과 하루를 제 집으로 안내했다.
눈 덮인 작은 집이 보였다.
두껍고 단단한 거친 석재로 쌓아올린 벽에서는 매서운 바람을 견뎠을 세월이 느껴졌다.
실내는 아늑했으나, 오랫동안 불을 지피지 못했는지 집안에는 한기가 흘렀다.
“쿨럭, 쿨럭-. 오셨어요?”
앙상한 여인이 딱딱한 목제 의자에 기대 일행을 반겼다.
여인의 손에는 애지중지 부드러운 천으로 둘러싼 포대가 보였는데, 그 안에는 잭의 갓난 딸이 있었다.
잭은 다가가려다 제 몸이 몬스터의 체액으로 뒤범벅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그저 기침 한 번 하였다.
“크흠-. 산속에서 귀인들을 만났소. 당분간 우리 집에 있을 예정이오.”
“콜록콜록-, 하지만, 집에 대접할 것이 없는데···.”
“신세를 지는 처지에서, 미약하게나마 함께 나눠 먹을 식량이 있으니, 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안이라 하고, 여기는 하루라고 합니다.”
이안이 여인에게 예를 차려 인사를 하였다.
“하루라고 합니다.”
제 어미 곁에 딱 달라붙어 있던 필이 예상치 못했던 여성의 미성에 흠칫 몸이 굳었다.
여인도 아직 앳된 여자의 목소리에 놀라 말했다.
“어린 여자 몸으로 산을 오르기 힘드셨을 텐데···. 집이 이렇게 누추하여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인의 말에 하루가 공손히 대답했다.
“그럼, 괜찮으시다면 제가 벽난로를 지펴도 되겠습니까?”
“저, 땔감이···.”
여인의 걱정에 이안이 웃었다.
“괜찮습니다. 하루 잠시 이리 와볼래.”
잘생긴 미청년의 웃음에 여인은 주책맞게도 뛰는 제 심장을 느꼈다.
창백한 여인의 얼굴에 홍조가 오르자, 잭이 큰기침 소리를 냈다.
잭 또한 물론 이안의 얼굴이 잘생긴 건 알았기에 크게 질투가 일지는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안이 잭에게 존대를 한 적이 있었던가?
잭이 이안을 째려보았다.
한편 이안의 뜻을 알아차린 하루가 이안의 뒤를 가렸다.
이안은 왼손 약지에서 잘 발린 몬스터의 뼈와 미리 모아놓았던 몬스터의 지방을 꺼내 벽난로로 넣었다.
그러자 하루가 큰소리로 여인에게 물었다.
“출산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아, 그게. 이제 겨우 백일이 넘었어요.”
“아, 그러시군요. 아드님이 참 똑똑해 보이던데···.”
“아뇨. 아직 그저 철부지인걸요. 그렇게 나가지 말라 일렀는데, 이 추위에 나가는 멍청한 아들내미···.”
“엄마아-”
필이 여인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말을 막았다.
“얘가 누나 앞이라고, 부끄럽나봐요.”
“아, 엄마!!”
두 여자가 웃으며 대화하는 틈을 타 이안은 작게 속삭였다.
“하늘의 분노를 담은 붉은 섬광이여, 태초의 순수한 힘을 청하노니 이 세상을 정화하소서. 메테오.”
이안의 왼손에 작은 불꽃이 일렁였고, 이안은 벽난로에 그 불을 붙였다.
-하···. 메테오가 부싯돌이라니···. 오크 목의 진주목걸이로구나.
이안은 아르바토로메우스의 탄식을 들으며 잭을 불렀다.
“잭, 욕조에 이 불 좀 옮겨, 물 좀 데워줘. 쌓여 있는 게 눈이니 물은 충분하겠고.”
역시나 저에게 반말하는, 저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이안을 보며 한숨을 쉰 잭이 말했다.
“네. 필. 이안님 말씀 들었지?”
필이 허둥지둥 화로를 가져와 긴 집게로 벽난로 속 불타고 있는 뼈를 담고서 큰 양동이를 들고 밖에 나가 눈을 퍼 날랐다.
“그러면 필은 창고 좀 안내해 줘. 고기와 연료로 쓸 것들을 놓아둘 테니까.”
고기와 연료라는 말에 앙상한 여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안의 말뜻을 눈치챈 잭은 서둘러 앞장섰다.
“네. 따라오시지요.”
이안은 왼손에 끼워진 반지에서 싸구려 비누와 수건, 망토를 꺼내 하루에게 내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루, 준비되면 너 먼저 씻어. 그렇게 냄새나는 더러운 몸으로 집에 있으면 안 되지.”
이안의 말에 하루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여인은 하루에 눈치를 살피며 생각했다.
‘아이고, 상처받았네. 냄새가 아무리 심하긴 하지만···. 차라리 비록 얼굴은 조금 그렇지만, 믿음직하고 과묵한 내 남편이 훨씬 낫지. 아무리 잘생겼어도 남자가 눈치가 너무 없으면 그건 좀···.’
여인과 같은 생각을 한 아르바토로메우스가 외쳤다.
-너어어어는!! 진짜!!
***
베나룩스 산맥에서 가장 높은 정상은 하늘에 닿을 듯 치솟아 있었다.
새하얀 산머리는 사시사철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매서운 바람과 혹독한 추위가 끊임없이 몰아쳤다.
가파르고 험난한 산봉우리는 외부의 접근을 허락지 않았다.
그러나 이 외딴곳에,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동굴이 존재했다.
눈과 얼음으로 얼어붙은 바위 틈새로 바람이 불어왔다.
단순한 추위를 넘어, 스치기만 해도 생명 자체를 앗아갈 듯한 극한의 한기.
모든 생명력의 온기를 빼앗아 세상을 끝없는 혹한의 지배 아래 두려는 듯한 냉기가 베아룩스 산맥 아래로 흘렀다.
이 극한의 기류가 베아룩스 산맥을 영원한 겨울의 감옥에 가둬놓은 냉혹한 간수였다.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겨울 그 자체의 의지. 그것은 죽음의 숨결이었다.
죽음의 숨결은 동굴 내부 속 깊은 어둠으로 안내했다.
동굴 깊숙이 들어갈수록 바람 소리는 점차 거세져 오히려 적막에 휩싸인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동굴 내부는 마치 또 다른 세계로 연결된 듯, 투명한 얼음벽이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었다.
동굴의 얼음벽에는 고대 드워프들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문양과 기호들이 새겨져 있었다.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는 거대한 드래곤본으로 만들어진 제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단 위에는 고대의 유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신비로운 광석들이 빛났다.
제단 뒤편에 있는 작은 샘.
샘물의 표면에는 고대의 문양이 희미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그곳이 ‘죽음의 숨결’의 발원지였다.
어둠 속에서 깊고 푸르른 샘물 위에 내려앉은 시린 빛.
마치 순백의 눈같이 새하얀 비늘은 은은한 광채를 발하며, 얼음의 결정처럼 반짝였다.
그것은 한 생명체에서 흘러나오는 빛이었다.
비늘에 덮인 작은 몸체는 아직 앳된 모습의 화이트 드래곤이었다.
해츨링의 존재만으로도 주변은 얼어붙었다. 작은 얼음 결정들이 그의 주변에서 반짝이며 빛을 반사했다.
화이트 해츨링이 숨을 쉴 때마다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어린 숨결이 죽음의 숨결이었다.
꼬리는 길고 유려하게 뻗어 있었으며, 끝부분에는 작은 얼음 가시들이 박혀 있었다.
화이트 해츨링의 작은 몸체에 붙어있는 날개는 투명한 얼음막처럼 펼쳐져 있었다.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으며 작은 얼음 결정들이 공중에 흩어졌다.
움직임은 아직 서툴렀지만, 그 속에 잠재된 강력한 힘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지고한 존재가 눈을 뜬다.
차가운 냉기가 서린, 이 어린 은안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지혜가 깃들어 있었다.
다시 신비로운 은안이 감겼다.
어린 지고한 존재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러다가, 굶어 죽겠는데···.]
살아남기 위해서는, 체력을 조금이나마 아껴야 했다.
어덜트 드래곤이 되지 못한 해츨링은, 워낙에 가성비가 안 좋은 몸이었다.
- 작가의말
계속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비축분이 쌓지 못한 채, 연재를 하고 있는 제 잘못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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