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이 내게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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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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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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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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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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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그렌과 드래곤의 숨결(3)

DUMMY

베아룩스 산맥의 심층부, 노르그렌에도 새벽이 밝았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심층부였지만, 그들은 지하 속에서 인공적인 조명으로 하루를 만들어냈다.


이 시간이면 용암의 열기로 달궈진 쇳물 냄새와 쇠를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 메웠을 터였지만,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빛은 희미해지면서 드워프들의 얼굴에는 근심과 절망의 그림자만이 적막을 채웠다.


그러나 오늘은 너무도 달랐다.


노르그렌의 새벽, 광장에는 드워프들이 모였다.

평상복처럼 입던 작업복과는 달리, 두꺼운 방한복으로 중무장한 그들의 모습은 낯설었다.

그들의 등에는 하나같이 두툼한 모피 코트를 걸쳐져 있었다.


광장 한쪽에서는 몇몇 드워프들이 오래된 지도를 펼쳐놓고 열띤 토론이 한창이다.


베아룩스 산맥의 세부 지형도.


한 드워프가 지도 위에 굵은 손가락을 얹고 말했다.


"용암이 먼저 식기 시작한 구역은 여기 8-f. 그리고 13구역까지 이어졌어.”


다른 드워프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베아룩스 산맥의 지형과 노르그렌의 지하 동굴의 구조는 꿰고 있었다.


“방향으로만 본다면 노르그렌에서 북서쪽이야.”


늙은 드워프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 그 방향이라면, 베아룩스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폭군의 창’밖에 없잖아.”


이번 탐사의 총책임자라는 무거운 직책을 받은 드워프 호그닐이 머리를 짚었다.


“그곳이라면, 몇 년째 이어지는 이 혹한의 겨울도, 이해가 될 정도야.”


늙은 드워프들이 아무런 말이 없자, 이번 탐사에 나선 젊은 드워프들 중 하나인 보프가 물었다.


“폭군의 창이란 곳이 어떤 곳인데 그러십니까?”


호그닐이 깊은 한숨을 쉬며 힘겹게 입을 뗐다.


“후···. 드래곤의 레어.”


“네? 아니 레드 드래곤님의 레어는 동쪽 고원에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이안님의 레어인가요?”


보프의 옆에 있던 드워프가 두꺼운 손바닥으로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젊은 드워프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 멍청한 놈아!! 이안님은 아직 해츨링이신데 무슨 레어냐!”


보프가 뒤통수를 싸맨 채 말했다.


“아니, 레드 드래곤님이 미리 준비하신 걸 수도 있잖습니까. 이번에 맡기신 그 백금색 물건도 이안···. 악악! 그만 때려요.”


“지금 이 마을에 이안님이 계시는데, 입조심해, 이 자식아!! 그리고 이안님이 어덜트 드래곤이 되신다면, 그때 직접 레어를 구하시겠지.”


호그닐이 손을 들어, 보프를 때리는 드워프를 자제시켰다. 그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보프를 불렀다.


"보프, 그리고 다른 젊은 드워프들도 듣거라. 지고한 존재들은 우리 같은 것들과 다르다. 그분들은 태어나실 때부터 홀로 설 수 있는 분들.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하려 들지 말거라. 그분들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키도록.”


젊은 드워프들이 제 오른 가슴을 두 번 쳤다. 이는 가슴에 새기겠다는 드워프들만의 약속이었다.


주변이 정리가 되자, 호그닐이 일어섰다.

드워프 특유의 짤막한 키였지만, 한 무리를 이끄는 수장다운 그의 탄탄한 몸은 거대한 산과 같았다.


“이안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땅, 우리의 이상, 우리의 노스텔지어는 우리 손으로 지킨다. 이 목숨을 버려서라도!!”


드워프들은 화려한 언변을 가지지 못한 투박한 종족이었다.


하지만 호그닐의 짧은 말의 의미를 드워프들은 잘 알았다.


그들은 오른쪽 가슴을 치며 제 각오를 영혼에 새겼다.


오랜 시간 동안 용광로 앞에서만 일하던 그들의 얼굴에 새로운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거친 바람 소리가 그들의 뜨거운 적막을 깨뜨렸다.


평소라면 분주한 작업장 소리로, 들리지 않았을 소리.


용암의 열기로 가득 찼어야 할 노르그렌의 공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드워프들의 숨결이 하얀 입김이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한 드워프가 동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장비를 점검했다.


"도끼와 해머는 단단히 묶었나?"


그의 목소리는 굵고 진지했다.


"물론이지,"


동료 드워프가 대답하며 방한모를 고쳐 썼다.


그들은 무기와 방어구를 착용하며, 서로의 준비 상태를 철저히 확인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식량과 물을 나누어 담는 드워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 드워프가 큰 가죽 가방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야. 이 산맥의 식생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옆에서 돕고 있던 드워프가 가방을 받아 들며 무게를 가늠했다.


"그래, 비상식량으로 준비한 이 보존식이라면, 열흘은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는 다른 가방에 추가로 담긴 식량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들은 산에서 구할 수 있는 자원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현재 베아룩스 산맥이 얼마나 혹독한지도 잘 알았다.


출발 준비가 모두 완료되자, 호그닐이 앞장섰다.


이윽고, 탐사대는 출발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단단했으며, 그들의 눈빛은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오늘,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의 손으로 개척하기 위해 혹한의 산맥으로 향하고 있었다.



***


백금발 사내가 절뚝이며 노르그렌의 중앙광장에 들어섰다.


“알바, 오늘따라 드워프들이 없는 것 같다?”


-드래곤이라는 족속과 엮이고 싶은 정신 나간 놈들이 있을 것 같냐? 저놈들이 아무리 레드 드래곤의 광신도들이더라도, 어제의 해츨링을 보며 충분히 알았겠지. 드래곤이란 족속들은 제 잇속만 챙기는···.


아르바토로메우스가 드래곤에 대한 욕을 늘어놓았다.

이안도 공감하는 바였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용광로 앞으로 갔다.


“오, 열심히 하네.”


-조금이라도 빨리 너를 보내버리고 싶은 게 아니겠느냐.


이안이 멀찍이서 바라본 용광로 주변은 절박한 긴장감으로 진동했다.


드워프들은 마지막 불꽃마저 사그라들까 두려워하며, 식어가는 용광로의 맥박을 되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수석 대장장이 그로닐이 육안으로 용광로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며 중얼거렸다.


"불꽃이 약해지고 있어. 이대로 두면 금속이 제대로 녹지 않을 거야."


주위의 다른 드워프들은 곧바로 다양한 도구를 꺼내어 용광로의 상태를 점검했다.


"열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군요. 바람의 흐름을 조정해야 합니다."


발른이 용광로 내부를 들여다보며 분석했다.

그는 재빨리 몇 개의 밸브를 돌리고 공기 흐름을 조정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백발의 그로인이 마법 룬이 새겨진 돌들을 꺼내 들었다.


하나만 해도, 엄청난 값어치를 가진 룬석을 두 손으로 수십 개를 든 그로인이 룬석을 보며 주문을 외웠다.


"룬이여, 깨어나라. 불길의 분노로 타오르고, 용암의 열기로 끓어올라라!"


그로인이 주문을 마치기가 무섭게 돌에 새겨진 룬문자가 붉은빛으로 번쩍였다.


룬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걸 확인한 그로인이 서둘러 돌을 용광로 속으로 던졌다.


용광로 속 불꽃이 잠시 흔들리더니 한층 더 강한 불꽃이 되어 치솟았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 더 강한 불이 필요해!!"


그로닐이 크게 외치며, 용광로 옆에 설치된 거대한 보조 연료로 뛰어갔다. 그는 연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발른, 연료는 이게 다인가?”


“네···. 그렇습니다.”


노르그렌 마을의 최연장자인 그로인이 백발의 수염을 만지며 혀를 찼다.


“쯧, 드워프란 놈들은 하나같이 제 불길만 신경 쓰니, 연료가 남아날 리 있나.”


그로인의 뱉은 말에, 드워프들의 속에는 욱하고 무언가가 올라왔다.

이 마을에서 가장 제 불길만 신경 쓴 게 그였으니까.


그롬닐이 보조 연료와 연결된 지렛대를 잡아당겼다.


“아, 안 됩니다!!”


발른의 절규 속에서, 연료 장치에서는 휘황찬란한 파란 불꽃이 뿜어져 나와 용광로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이제야 조금 타오르는군,"


그롬닐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발른이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웃고 있는 그롬닐에게 다가갔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아무리 수석 대장장이라고는 하나, 마을의 공동재산을 이렇게 함부로···.”


열변을 토하는 발른의 말허리를 그롬닐이 잘랐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까 얼마 남지 않은 걸, 이렇게 독단적으로···.”



“연료가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연료를 구할 생각을 해야지.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데, 무엇이 바뀌겠느냐.”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혹한에 연료가 얼어붙어···.”


“발른!! 너는 어제 아무것도 느낀 게 없느냐?!”


그롬닐의 외침에 분주하게 몸을 놀리던 드워프들이 그롬닐을 쳐다보았다.


“언제까지 지하에 숨어서 기다리기만 할 거냐!! 그렇게 기다리기만을 몇 년째.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지?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용암이 식어가고 있어.”


그롬닐의 말은 노르그렌 드워프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드래곤의 숨결이 꺼져버릴 때까지 기다릴 텐가? 아니면 우리 손으로 드래곤의 숨결을 다시 타오르게 할 텐가!!”


그롬닐의 말에 드워프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제 오른쪽 가슴을 두 번 두드렸다.


그들의 대답이었다.


그롬닐도 제 오른 가슴을 두 번 쳤다.

동료들의 의지에 대한 화답이었다.


그롬닐은 멍한 시선으로 저를 쳐다보는 발른의 어깨를 두드리며 툭툭 친 뒤에 다시 용광로로 돌아갔다.


그롬닐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거대한 망치로 용광로의 외벽을 몇 번 두드려보고는, 저를 쳐다보고 있는 드워프에게 외쳤다.


"금속의 결함이 생기지 않도록, 열을 균등하게 퍼뜨려야 해,"


“네, 넵!! 알겠슴돠!!”


“자, 다들 뭐해. 이안님이 오시기 전에 만발에 준비해야 할 거 아니야?”


그롬닐의 말에 드워프들은 다시 분주하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이안은 멈춰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드워프들의 모든 움직임에는 열정과 절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거대한 풀무를 한 번 밟을 때마다 그들의 짤막한 다리가 근육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이 가진 전부를 용광로에 연료로 투입하는 데,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땀에 젖은 이마를 훔치는 사이에도 그들의 눈은 용광로의 불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숨 가쁘게 주고받는 대화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드래곤의 숨결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가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서로를 독려했다.


투박하게 지친 동료의 등을 한 번 쳐주는 손길에는 연대감이 묻어났다.


용광로 속 불꽃이 땀으로 젖은 드워프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들의 작은 눈에서는 하나의 목표를 향한 강한 열망이, 용광로 속 식어가는 불꽃보다 더 뜨겁게 타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안이 어렵게 입을 뗐다.


“···. 알바 쟤네 뭐 하는 거냐?”


아르바토로메우스도 드워프들의 분위기가 견디기 어려웠는지, 잠시간의 침묵 후 말을 하였다.


-···. 어제저녁, 이기적인 해츨링의 헛소리를 듣고 저러는 거겠지.


이안이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공짜로 부리는데, 제대로 일해줘서 좋기는 한데···. 왠지 부담스럽달까?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들이 저렇게 땀 흘리면서 웃는 걸 보니···. 마치 한밤중에, 술집에서 흥에 겨워 단체로 노래 부르고 어깨동무하는 취객들 사이에서, 나만 유일하게 술에 깨어있는 기분?"

-···.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구나. 네가 벌린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하거라.


불꽃 앞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드워프들의 모습은, 이안이 상상하던 드워프의 모습이었다.


굵은 팔뚝에 흐르는 땀방울, 불꽃에 비치는 굳은 표정, 그리고 쉼 없이 움직이는 손놀림까지.


이안은 저들의 열기가 사그라들 때까지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안의 바람과는 달리 시간이 흘러도 드워프들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고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


연료를 쏟아붓는 소리, 풀무질 소리, 그리고 그들의 거친 숨소리.


드워프들이 만들어내는 소음들이 한데 어우러져, 노르그렌의 심장박동이 되어 울려 퍼졌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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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폭군의 창 아래(3) 24.07.12 13 0 14쪽
50 폭군의 창 아래(2) 24.07.10 16 0 13쪽
49 폭군의 창 아래(1) 24.07.09 18 0 14쪽
48 해츨링은 참지않긔(4) 24.07.08 17 0 16쪽
47 해츨링은 참지앉긔(3) 24.07.07 16 0 17쪽
46 해츨링은 참지않긔(2) 24.07.06 19 0 14쪽
45 해츨링은 참지않긔(1) 24.07.05 18 0 17쪽
44 해츨링과 밥상머리 교육(2) (수정) 24.07.04 18 0 17쪽
43 해츨링과 밥상머리 교육(1) 24.07.03 20 0 16쪽
42 폭군의 창(3) 24.07.02 24 0 15쪽
41 폭군의 창(2) 24.07.01 21 0 15쪽
40 폭군의 창(1) 24.06.30 27 0 16쪽
39 검과 거래 24.06.28 25 0 16쪽
» 노르그렌과 드래곤의 숨결(3) 24.06.26 29 0 12쪽
37 노르그렌과 드래곤의 숨결(2) 24.06.25 23 0 13쪽
36 노르그렌과 드래곤의 숨결(1) 24.06.24 26 0 13쪽
35 혹한의 설산 아래에는(4) 24.06.23 23 0 13쪽
34 혹한의 설산 아래에는(3) 24.06.22 25 0 17쪽
33 혹한의 설산 아래에는(2) 24.06.21 27 1 19쪽
32 혹한의 설산 아래에는(1) 24.06.20 28 1 14쪽
31 이세계의 종교쟁이(3) 24.06.19 25 1 14쪽
30 이세계의 종교쟁이(2) +1 24.06.18 26 1 16쪽
29 이세계의 종교쟁이(1) 24.06.17 33 1 13쪽
28 최초로 던전이 무너진 날 24.06.16 30 1 12쪽
27 크레토스 미궁의 생존자들 24.06.15 32 1 13쪽
26 저주받은 소, 축복받은 자 24.06.14 29 1 16쪽
25 미노타우르스의 미궁(4) +1 24.06.13 33 1 14쪽
24 미노타우르스의 미궁(3) 24.06.12 28 1 14쪽
23 미노타우르스의 미궁(2) (수정) 24.06.11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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