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방(完)

‘이게 무슨 일이지? 정말... 이게 현실이라고?’
휑한 어깨를 부여잡고는 고통도 잊은 채 자기의 눈앞에 벌어진 일을 이해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이 현실을 받아드리기가 어려웠다.
‘대체 이게....’
단우진의 한번의 출수가 그려낸 지옥도. 주인 모를 팔다리가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찢긴 주검들이 가득하다.
무릎을 꿇은 채 단우진을 바라보는 이와 검을 출수한 채 멈춰있는 단우진을 가로막던 모든 것은 피로 만들어낸 붉은 융단을 깔아두고는 사라졌다.
-슈욱 슈욱
‘흐음 역시, 아직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나?’
자기가 그려낸 지옥도가 마치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검을 출수했다 회수했다를 반복하는 단우진이었다.
단우진이 펼쳐낸 한 수에 전의를 상실한 철혈방 무사 몇명이 단우진을 뒤로 한 채, 장원 밖으로 도망간다.
‘살... 살려줘!! 여기 있으면 죽을 게 분명해!!’
단우진은 도망가는 철혈방 무인들을 만류했다.
“이봐요 거기로 도망가면...”
-촤아악!!!
말이 끝나기 전 문을 나서던 철혈방 무인들의 신형이 스러진다.
천위대가 문밖을 지키고 서서 나오는 철혈방 무인들을 베었다. 그들은 단우진의 명령으로 장원에서 쥐새끼 하나 빠져나가지 못하게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안 되는데... 이미 늦었네요”
-털썩
-털썩
살아남은 철혈방 무인들은 모두 주저앉았다.
한 번의 출수로 지옥도를 그려낸 이를 피할 길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실금을 지린 채 떨고 있고, 누군가는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달라 외치고 있다.
“자 그럼 누가 저를 종사각에게 데려다주실 건가요?”
다시 묻는 단우진의 말에 반응은 아까와는 사뭇 달랐다.
철혈장 무인들은 저 말을 따르는 것만이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철혈방 무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하겠다고 외쳤다.
“제... 제가 모시겠...”
-퍽!!!!
살아날 실낱같은 희망을 찾은 남자는 자기가 하겠다며 나섰지만, 옆에서 날아온 일격에 머리가 터져나가며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런!! 병신같은 것들!!!”
주먹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선 이는 철혈방 방주 종사각이었다. 핏발 선 눈을 부릅뜨고 철혈방 무인들을 둘러보다 단우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네놈이 어디서 온 놈인지 모르겠지만, 간사한 혓바닥만큼은 인정해줄 만 하구나”
종사각은 주먹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커다란 도를 등에 메고 나타난 남자는 종사기와 닮은 얼굴, 비슷하게 커다란 체격을 자랑하는 이였다.
“보아하니 그대가 종사각인 모양이군요”
“그래 이 몸이 벽력도 종사기 님이시다. 그러는 본방을 습격한 네놈의 이름은 무엇이냐?”
“단우진. 당신의 동생이 대문을 깨부순 장원의 주인이지요. 어째 내가 보낸 선물은 마음에 들었나 모르겠군요”
종사각은 아우인 종사기를 죽인 당사자가 본인임을 밝히는 이가 보고받은 대로 약관도 채 안 된 어린 녀석이라는 사실을 자기의 두 눈으로 확인하자 어이가 없었다.
“네놈이 진정 내 아우를 죽였더냐?”
“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조롱하는 단우진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섣부르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그는 단우진을 물어뜯을 최적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찾아가려 했는데 네놈이 그 수고를 덜어주는구나”
“아까워라 찾아올 줄 알았다면 기다릴 걸 그랬네요”
여전히 종사각을 도발하는 단우진이지만, 종사각의 참을성은 종사기와는 달랐다.
“입심으로는 천하제일이구나, 네놈 실력도 입심만큼은 되어야 될 텐데 말이다”
“키야~ 그렇죠? 뭘 좀 아시네, 제가 요 혀가 약한 건 아닌데 말이에요. 하동이한텐 왜 이렇게 매번 지는지 모르겠단 말이죠, 아 하동이 누구냐면 제 시종인데 이놈이랑 말싸움해서 한번을 이긴 적이 없어서요. 천하제일은 아마 그 녀석일 거예요, 아마 종사기도 죽기 전에 하동이한테 말로 두들겨 맞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하하하”
단우진은 조잘조잘 조롱을 섞어가며 종사각을 끊임없이 도발했다.
“정말 끊임없이 내 성질을 건드는구나, 어린 녀석이라 적당히 팔만 잘라서 살려 보내려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구나!!!!”
말을 끝낸 종사각이 내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장 등에 멘 큰 도를 꺼내 들고는 단우진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달려드는 종사각을 보고 단우진도 내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했지만, 이내 내공이 흩어진다.
‘내공이 흩어져?’
달려드는 종사각의 얼굴을 바라봤다. 종사각은 입에 조그만 구슬을 물고 있다.
피독주였다.
종사각은 대화하며 은밀하게 산공독을 하독했다.
단우진 주변의 철혈방 무사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확인한 종사각은 단우진 역시 중독됐을 거라고 확신이 들자 그제야, 달려들었던 것이다.
“하하하!!! 왜 내공이 안 모이느냐!!! 인제 그만 죽어라!!!!”
종사각의 커다란 도가 단우진을 쪼개버릴 기세로 내려쳐진다.
단우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커다란 도를 쳐다보고 있다.
“공자님!!!!”
산공독을 하독했다는 말에 마일과 천위대가 움직이지만, 이미 늦었다. 저 커다란 도가 단우진에게 닿는 것을 막을 수 없으리라.
-쾅!!!!!!!!!
우레같은 소리와 함께 장원에 먼지가 퍼진다.
지켜보던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먼지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고 두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종사각의 거대한 기세를 담은 커다란 도는 단우진의 얇은 검집에 가로막힌 채 떨리고 있었다.
‘이... 이게!!! 분명히 중독됐을 텐데’
종사각은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히 단우진은 산공독에 중독되었다. 그런데, 내공을 사용 못 할 단우진이 자기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낸 것이다.
“어... 어떻게?”
“음? 뭘 말이야? 아 해독한 거? 하하하 아버지가 유별나셔서 말이야, 어릴 때부터 좋은 걸 많이 먹었더니 이런 조잡한 독은 금세 해독되거든”
어떤 상황이라도 자기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자랑하는 단우진이었다.
단우진이 머쓱한 듯 자랑하는 틈을 타서 종사각은 단우진과 거리를 벌렸다.
“뭣... 뭣들 하는 거야!! 저놈을 당장 죽여라!!”
몇 남지 않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수하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산공독에 중독된 데다 누가 강자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이!! 병신같은 놈들 네놈들이 그리한들 저놈이 네놈들을 살려줄 성 싶으냐!!!”
종사각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치지만, 그의 수하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소리를 듣던 단우진은 종사각의 말에 반박하듯 말했다.
“누굴 피에 미친 악귀인 줄 아나 진짜 너무하네! 오늘은 네놈이 마지막이야 ”
단우진의 말에 종사각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느꼈다.
단우진은 시간을 주지 않고 종사각에게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콰아앙!!!!
단우진의 얇은 팔로 휘두른 검이 냈다고는 믿기 어려운 소리가 퍼졌다.
단우진의 검을 가까스로 막아낸 종사각이지만 그의 신형은 원래 서 있던 곳에서 일장이나 밀려나야 했다.
“호오~ 아예 쭉정이는 아닌가 봐”
“다... 닥쳐라!!!”
연신 종사각을 조롱하며 달려드는 단우진을 밀어내기 위해 커다란 도를 휘두르지만, 종사각이 휘두른 커다란 도는 단우진의 검집에 여지없이 막혀버렸다.
-카앙!!
‘대체 이놈의 검집은 뭐로 만든 것이란 말인가’
검집을 운철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종사각은 연신 자기의 도를 아무렇지 않게 막아내는 검집을 보고 놀랐다. 하지만, 그에게는 잠깐의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계속해서, 단우진의 검이 뱀처럼 자기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촥 촤악
-캉!! 캉!!! 쾅!!!!!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던 종사각은 점점 날카로워지는 검이 종사각의 가슴을 스쳤다. 이어서 날아드는 검을 피하기 위해서 종사각은 급하게 몸을 뒤로 구르며 단우진의 거리에서 벗어났다.
‘나려타곤’ 당나귀가 구르는 모습을 묘사한 모습으로 모든 무인이 가장 수치스럽게 느끼는 일이지만, 그만큼 종사각의 상황은 급박했다.
종사각의 가슴에는 길게 혈선이 그어졌고 그 사이로 핏물이 조금씩 배어 나오고 있었다.
“생긴 거랑 다르게 날쌔시네”
“이... 이놈이!! 정녕!!!”
“더 놀아 드리고 싶은데, 밤이 너무 깊어서 말이죠. 그만 끝내야 할 것 같네요”
“네 이놈!!!!!!!!!!!!”
단우진의 끝없는 도발에 종사각은 눈에 핏발이 서다 못해 시뻘겋게 변했다.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한 종사각은 그 자리에 선 채 소리를 지르며, 일도양단의 기세로 도를 하늘로 높이 쳐든 채 단우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런 종사각을 단우진은 신경 쓰지 않는 듯 검을 검집에 집에 집어넣고 자세를 낮추었다.
-2초식-
-파지직 파지직 파지직
단우진의 다리에서 눈으로 보일만큼의 기운이 몰아친다. 기운은 뇌기와 같은 소리를 내며, 주변의 땅을 조금씩 터트린다.
-쾅!!!!
단우진이 박찬 바닥이 터지며 먼지가 일었다.
단우진이 박차고 튀어 나간 자리에는 벼락이라도 내려친 듯 터져버린 땅과 파지직 거리는 기운만이 그가 그곳에 있었음을 알려준다.
종사각의 눈앞으로 날아는 단우진.
그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커진다.
종사각은 그를 베기 위해 들어 올린 커다란 도를 내리쳤다.
-스윽
‘베었다!!’
종사각은 양손에 깊게 남은 감각에 단우진을 베었다는 확신을 가졌다. 자기 앞에 죽음을 맞아 쓰러져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고개를 들었지만, 종사각의 기대를 채워줄 단우진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 이게?!’
-타악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종사각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우뚱
그 순간, 종사각의 세상이 기울어진다.
차가운 바닥이 점점 가까워진다.
바닥과 멀어지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그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내 차가운 바닥과 마주한 얼굴, 그의 눈에 익숙한 신형이 눈에 들어온다. 양손에는 대도를 쥐고 굳건히 대지를 지탱하고 선 모습. 종사각의 눈이 커진다.
그가 바라보는 익숙한 신형은 바로 자기의 몸이었다. 양손으로 쥔 대도는 깨끗이 잘려있고, 대지를 지탱하고 선 양다리는 위에서 흐르는 피에 젖어있다. 그리고, 있어야 할 머리를 잃은 채 목에서는 분수처럼 연신 피를 뿜어내고 있다.
그제야 인지한 죽음.
그렇게, 철혈방 방주 종사각은 자기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어린 한 무인으로 인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종사기와 종사각은 초라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렇게, 감숙에서 악명을 떨치던 철혈방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단우진은 기운을 갈무리하고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인을 잃은 신체의 일부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고, 비릿한 혈향이 장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기분이 가라앉는다. 비록, 자기가 만든 광경이라 해도,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마일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단우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네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일개 흑도무리가 산공독까지 준비했을 줄은...”
“결과적으로 문제없었으니까 너무 괘념치 마세요”
마일의 걱정하는 마음을 아는 단우진은 괜찮다는 말로 마일을 다독였다.
“아... 오늘은 이만하고 남은 일은 내일 처리했으면 하는데, 마일아저씨가 대충 정리해주세요”
“네 공자님”
대답하는 마일을 뒤로한 채, 자신이 만들어낸 지옥도를 지나 장원을 나섰다.
장원으로 돌아가는 길은 길었던 밤만큼 길게 느껴졌다.
밤하늘에는 어느덧 어두운 밤을 몰아내는 해가 먼 곳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길었던 하루가 이렇게 끝이 난다.
이윽고, 단우진은 길게 느껴지는 길을 지나 장원에 도착했다.
그런 단우진을 반겨주는 이가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단우진은 따뜻한 목소리의 출처를 찾아 고개를 들었다.
팔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채,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하동이었다.
“그래 다녀왔다 이놈아 하하하”
고단하고 길었던 밤을 끝내는 인사였다.
-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