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完)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꾼다. 어떤이는 돈을 벌고 싶다거나, 어떤 이는 입신양명을 꿈꾸기도한다. 하지만, 누구나 꿈을 꾼다고 해서 모두가 꿈을 이룰수 있는건 아니아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꿈을 품고 살아간다. 나 역시 꿈을 품고 살아왔다.
가문의 검으로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는 꿈. 모두가 허무맹랑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꿈을 이룰 수 있을거라 여기며 노력했다. 수없이 넘어지고 깨져도 꿋꿋하게 일어섰다. 그러나, 노력만으로 모든것을 얻을 수 있기에는 나의 앞에 세워진 두꺼운 벽은 녹록치 않았다. 그렇게, 좌절에 빠져 있을때 한줄기 빛이 나의 세상에 드리웠다.
빛은 나를 이끌었다. 어떤 노력에도 넘을 수 없다 여긴 벽을 지나치고, 새로운 시작점으로 나를 안내했다. 마침내, 그곳에 선 나는 깨달았다. 내가 꾸던 꿈은 그저···나의 집착이고, 오기였음을···
참진, 나아 참된 나를 찾으라며 오직 나만을 위해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 진아. 앞으로의 나의 꿈은 나를 인도한 빛을 따라 걸으며 참된 나를 찾겠다고···그렇게 새로운 시작점에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그렇게, 창밖으로 어둠을 밀어내는 동이 터온다.
은진아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잔월루를 빠져나왔다.
***
은진아는 잔월루를 나서 가장 먼저 들른곳은 진중학과 취월객주 이향이 기거하는 이전 백검문의 장원이었다. 단우진은 백검문의 장원을 수리해 진중학에게 선물로 주고 진가장이라 이름을 붙였다. 진중학은 선물로 받은 진가장의 장원을 떠나지 않은 백검문의 무인, 그리고 기존 잔월루의 무인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진가장에 들어선 은진아는 하인의 안내를 받아 진중학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진중학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서류더미에 묻혀 은진아가 들어온지도 모른채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진총관님?”
“으히익!!”
-우당탕
은진아는 일에 몰두해 자기가 들어온것도 알지 못하는진중학을 부르자, 진중학은 오밤중에 귀신이라도 만난듯 깜짝 놀래며 뒤로 넘어갔다.
“괜찮으세요? 이렇게 제가 들어온걸 모르시는것 같으시길래···”
은진아는 넘어진 진중학을 부축해서 그를 일으켰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제가 몰두하면 주변을 잘 인지를 못하는지라.”
두 사람은 약간의 소란을 수습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른 아침 부터 여기까진 어인 일이십니까?”
“아···그게···진중학총관님께 여쭤보고 싶은게 있어서 왔습니다.”
“저한테요? 어떤것이 궁금하신가요?”
은진아는 심호흡을 몇번하고 진중학의 눈을 바라보며 질문을 이어갔다.
“진중학 총관님은 어제 우진이의 이야기에도 어찌 그를 따르기로 결정하셨나요?”
은진아의 질문에 진중학은 자기의 턱을 쓰다듬었다.
“흠···뭐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만, 이야기를 하려면 길텐데 들어보시겠습니까?”
.
.
.
진중학은 길다면 긴 자기의 이야기와 철혈방에 잡혀 와신상담 하는 와중에 단우진과의 인연을 은진아에게 차근히 설명했다.
“저는 어제 말씀드린대로 그분의 출신이 어디시건 관계없답니다. 그저 그분이 저와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평생 그분을 위해 일하기로 이미 맹세했으니까요.”
진중학의 긴 이야기에 은진아는 아무말 않은채 생각에 빠졌고, 그런 그녀를 진중학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생각을 마친 은진아는 이향의 거처를 묻고 조용히 진중학의 집무실에서 빠져나왔다. 이향의 거처로 이동하는 중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엉켜서 머릿속을 복잡게 만들었다. 잠시 후, 이향의 거처에 도착한 그녀는, 이향에게도 진중학에게 했던 질문을 반복했다. 이향은 은진아의 질문에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저는 그분의 출신은 신경쓰지 않는답니다. 저 역시 출신이 좋진 않으니까요. 다만, 저는 제가 보는 그 분을 믿는답니다. 은소저는 어떤가요? 출신이라는 것에 눈이 가려져 있지는 않나요?”
“···”
이향의 대답을 들은 은진아는 자기에게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내가 바라보는 우진이···나는 왜 그와 함꼐 하려 했을까···고마움일까···그가 가고자 하는 길에 고마움이라는 감정으로 그와 함꼐 하려했던걸까···그렇다면, 그 이유가 그가 천마신교라는 것에 퇴색되는 것일까.“
머리속에 몇가지의 대답을 떠올리지만, 그 어떤 대답도 이 문제의 해답이 되지 못했다. 여전히 해답이 나오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며 고심하고 있던때에, 어릴적 은위경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인생을 살아가다 큰 암초를 만나게 되는 때가 다가온단다. 그런 문제의 해답은 내가 스스로 찾지 못하는 떄도 분명히 있지, 그럴때는 말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서 해답을 구하려무나. 때론, 내가 찾지 못한 해답을 가진 사람이 있을테니 말이다.
은진아는 결심을 한듯, 이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진가장을 나와 단우진의 장원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단우진의 장원에 들어서자 낯익은 하인들이 인사를 건내어 오지만, 인사를 받는 둥 마는둥 단우진이 있을 후원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후원에 들어서자 역시나 정자에 앉아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단우진과 하동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진아, 하동아”
두 사람은 구름을 바라보다,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진아?”
“아가씨?”
두 사람은 자기들을 찾아온 은진아의 모습에 놀란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여긴 어떻게···”
“그냥···그냥 왔어. 내가 못올곳을 온건 아니잖아?”
은진아는 말장난을 치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은진아는 여전히 놀란 두 사람의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세사람이 정자에 자리를 잡자, 평소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아닌 어색한 분위기에 모두 흘러가는 구름에 시선을 고정했다.
“저기 있잖아···”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깨트린 사람은 은진아였다. 여전히 시야는 하늘에 고정한채 입을 열었다.
“우진아, 너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단우진은 은진아의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는 이미 천마신교의 사람이라 밝혔다. 원래라면 정파인 은진아가 자기에게 가져야할 감정은 이러한 것이 아니라 분노, 혹은 자기를 속인 배신감일 것이다. 그런데, 은진아는 지금 자기를 향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응? 무슨 말이야 그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니···”
“말 그대로, 내가 아니 우리 은가장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말이야.”
“···”
은진아는 여전히 대답을 못하는 단우진을 잠시 쳐다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앞으로 네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알고싶어”
“내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
걸어가고자 하는길···특별할건 없었다. 천마신교 삼공자로 태어나 부족함없이 자랐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하는 일들을 하며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이유 모를 해갈되지 않는 갈증을 늘 품에 안고 살았다.
단우진은 언제나 시간이 날떄면 천산의 봉우리에 서서 중원의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천산밖의 삶은 어떠할까···궁금했다. 그래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가출까지 감행하며 천산밖으로 나왔다.
천산밖의 삶은 생각처럼 평화롭다거나, 여유롭다거나 그렇진 않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적지 않은 사건사고를 겪으며 괜히 나왔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단우진은 살아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렇게, 하루하루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자, 해갈되지 않던 갈증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갔다.
‘내가···가고싶은길···’
생각을 마친 단우진은 은진아를 향해 담담하게 자기의 생각을 풀어냈다.
“거창한건 아니야···의협심으로 똘똘 뭉쳐, 세상의 악을 단죄한다거나 그도 아니면 패도의 길을 걷겠다거나, 큰 야망을 가지고 사는게 아니야, 타인의 고통을 양분삼지 않고 그저 저 자유롭게 살고싶어”
“자유롭게?”
“응. 자유롭게 그때의 마음이 시키는대로 살고싶다. 뭐 거창한건 아니지?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좀 쑥쓰럽네”
은진아는 대답을 하고는 쑥스러워 하는 단우진의 눈을 바라봤다.
단우진의 눈은 그날 보았던 것처럼 여전히 따뜻하고 강렬하게 빛을 낸다.
은진아는 깨달았다. 자기가 그와 함께 하려한 이유를.
‘그래 저 눈빛이야, 저 눈빛이 나를 그의 곁에 서고 싶게 만든거야···’
단우진의 눈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하던 은진아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급하게 처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은진아는 은진겸과 은무대주 그리고, 은가장의 총관을 불러 모아 자기의 결심을 전했다.
“저는, 단공자와 함께 나아가보려 합니다. 그가 비록 천마신교의 사람이긴 하지만, 저는 그를 믿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건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 가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거에요. 천마신교 역시 감숙에서 우리 가문을 핍박하지 않는다 했으니, 그점은 믿어도 될거같아요.”
은진아의 말에 은진겸은 머리를 긁적였다.
“누나, 은가장을 두고 어떻게 혼자간다는 거야? 갈거면 우리도 같이 가야하는거 아니겠어?”
“그렇습니다. 아가씨. 저희 은무대도 아가씨의 의견을 따를것입니다.”
은진겸의 말에 은무대주가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정파소속의 은가장이 천마신교 사람의 아래로 들어갔다는게 알려진다면, 큰 고난을 치를 것입니다.”
“누나 그러기엔 우린 이미 같은 정파사람들로 인해 가문이 무너질뻔했잖아. 잊은거야? 차라리 은인인 우진이 형이 우리를 이끌어준다면, 난 아무런 불만없어, 다만···마교는 조금 무섭지만 말이야 하하하”
은진겸의 말에 은진아는 피식하고 웃어보였지만, 비로소 그녀를 옭아매던 모든 생각의 사슬이 끊어졌다. 세사람은 그 길로 나서, 진중학과 이향마저 데리고 단우진의 장원으로 향했다.
단우진은 은진아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장원으로 몰려오자,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저···저기 여러분? 이게 대체···”
사람들의 앞으로 한발짝 걸어나온 은진아는 모인 사람들을 대신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진아, 조금 걸렸지만 우리의 입장을 이야기 하러왔어”
“무슨입장?”
은진아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은가장은 너와 함께하기로 결정했어.”
“그렇지만, 나는 천마신교 사람이라고 어제 말했잖아.”
“그래, 우린 정파인이고, 너는 분명 천마신교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란 사람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우린 단우진 너란 사람을 믿고 너와 함께 하고 싶어.”
은가장이 천마신교와 함께 한다는 소문이 나면, 분명히 고역을 치를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신 은위경에 대한 예의도 아닌듯 하여, 단우진은 거절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 하동은 단우진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앞으로 나왔다.
“저기 종이와 붓을 좀 가져다 주세요.”
하동의 행동에 단우진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하동아 뭐해?”
“있어봐요. 공자님 고민 해결해주려 그러니깐.”
하동이 부탁한 종이와 붓이 전달되자. 붓을 놀려 글을 써내려갔다.
‘비(飛)천(天)’
“날비에 하늘천? 비천? 왜 비천이야? 하늘을 날자고?”
“공자님의 고민, 우리의 출신이 문제인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럼 저희는 앞으로 비천의 사람이 되면 되는겁니다.”
“그게 무슨말이야?”
단우진은 하동이 써내려간 글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저희 둘은 천마신교이기도 하지만, 비천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동은 말을 하다말고 장내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저들은 모두 비천의 사람이죠. 신교가 아니라···”
단우진은 하동의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그렇지만, 너무 눈가리고 아웅 아니야?”
“이거 제가 쓰는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
단우진의 말에 하동은 손가락을 하늘로 향했다.
하동이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눈치 챈 단우진은 흐뭇하게 웃었다.
이제야 모든것을 눈치챈 단우진은 비천이라 적힌 글을 적어 모두에게 보이며 공표했다.
‘아버님 좋은 선물 감사히 받겠습니다.’
단우진은 싱긋 웃으며 모인이들을 바라봤다.
“모두의 마음 받아들이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저희가 함께 하게 될 이름은 비천(飛天)입니다.”
단우진의 선포에 모두 한쪽 무릎을 꿇으며, 그 이름을 받아 들였다.
그렇게, 중원에 처음으로 천마신교와 정파인이 함께하는 조직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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