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문(1)

감숙에 단우진을 필두로 은가장, 진가장, 취월객이 합류하면서 비천이란 세력이 만들어졌다. 진중학은 이날도 어김없이 비천의 창설에 필요한 일들을 묵묵히 처리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진총관님 이향입니다.”
밖에서 들리는 이향의 목소리에 하던 일을 제쳐두고 그녀를 맞았다.
“바쁘신데 이리 방문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하하 취월객주님의 방문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진중학은 어째선지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 함박웃음을 지은 채, 그녀를 반겼다.
“그보다, 어쩐 일로 이리 직접 방문해 주셨습니까? 말씀 주셨으면 제가 직접 찾았을 텐데요.”
“아닙니다. 바쁘신데 제가 직접 와야죠.”
이향의 은은한 미소에 진중학은 입을 벌린 채 그녀를 쳐다봤다.
“흠흠···그것보다 진총관님”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진중학은 머쓱한지 턱을 쓰다듬었다.
“흠···네, 말씀하시죠.”
이향은 서류 몇장을 탁자에 올렸다. 진중학은 이향이 건넨 서류를 받아서 들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모든 내용을 끝까지 읽어 내려간 진중학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다.
“흠···하오문···꼭 그들과 마찰을 빚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오문
흑도 계열의 문파. 가장 낮은 다섯 신분의 이들이 모였다 하여 하오문이다. 그들은 여타 다른 문파와는 달리 무공으로 이름난 곳이 아니라, 오직 정보력으로 그 이름을 떨친 곳이다.
“현재로서는 필수 불가결입니다. 하오문은 지금 저희와 많은 부분이 겹칩니다. 취급하는 정보의 내용도 비슷할뿐더러,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 역시 비슷한 상황입니다. 차후 저희가 감숙의 정보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하오문과 마찰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음···알겠습니다. 우선 공자님께 따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버···벌써요?”
볼일이 끝난 이향이 자리를 뜨려 하자, 진중학은 못내 아쉬운 듯 했다.
“총관께서 바쁘신데 제가 시간을 더 빼앗아서 되겠습니까”
“하···하하···그렇죠.”
이향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진중학을 향해 매력적인 미소를 보이고는 집무실을 나갔다. 진중학은 이향이 나가자 못내 아쉬운지 한숨을 쉬고는 이향이 건네준 서류를 다시 한번 더 읽어 내려갔다.
‘하오문 지부장 추인태라···의심이 많고 조심성이 많다. 부하들조차 쉬이 믿지 않는다. 흠···생각보다 세부적인 내용들까지 작성이 되어있는 거 보니 취월객주님이 오래 준비하신 건가?’
모든 서류를 다 읽은 진중학은 서류를 챙겨들고 단우진의 장원 이제는 비천장이라 불리는 곳으로 향했다.
***
-뚜벅뚜벅
한 남자가 서류를 챙겨 들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계단의 끝에 다다르자 조그만 지하실이 드러난다. 조그만 책상과 많은 책이 꽂혀있는 책장. 그리고, 누렇게 타오르는 등불 하나가 빛 한점 들지 않는 지하실을 외로이 밝히고 있었다.
“지부장님 오셨습니까?”
미리 도착해있던 이가,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계단을 내려온 남자는 하오문 감숙지부 지부장 추인태 였다.
“그래, 맡겼던 일은 잘 처리했나?”
계단을 내려온 추인태는 손에 쥔 책을 비치되어있던 책장에 꽂아 넣으며 고개만 슬쩍 돌려 고개를 숙인 남자를 바라봤다.
“그게···”
추인태는 말을 망설이는 남자를 향해 서늘한 눈빛을 쏘아냈다.
“똑바로 말해라. 맡겼던 일은 잘 처리했나 물었다.”
“···이향이 배신했습니다···”
-쾅!!
남자의 보고에 추인태가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지하실 가득 울렸다.
“뭐라고? 이향이 배신을?”
“네···송구합니다.”
-뿌드득
추인태는 이를 갈며 솟구치는 화를 참기 위해 애썻다.
“그년이 뭐라 하더냐?”
“그···그게···이제 더 이상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 감히!!”
화를 내던 추인태는 속이 타는지 책상에 놓은 컵을 들고 물을 꿀꺽꿀꺽 단숨에 들이켰다.
“그래서, 이제 어찌할 셈이냐?”
“그게···이향의 주변에 은무대와 전 백검문 무인들이 돌아가며 순찰을 하는지라···”
쉬이 답을 내지 못하는 남자를 향해 추인태는 손에 쥔 컵을 집어던졌다. 컵에 맞아 비틀거리는 남자는 추인태의 노기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 병신들이!!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느냐!! 당장 나가서 그년 잡아 와!!”
그 자리에 더 머물다가는 추인태의 노기에 큰 사달이 날 것 같았던 남자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피를 뚝뚝 흘리며 지하를 벗어났다.
책상에 앉은 추인태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큭큭 감히··· 김오 게 있느냐!”
-드드드
추인태의 말에 책장이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린 책장의 틈으로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나 추인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김오라 불른이를 바라본 추인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놈은 이향이랑 인연이 있었지?”
“옛날의 인연일 뿐입니다.”
“됐다. 네놈도 나가서 이향 그년을 만나서 마지막으로 회유해봐라.”
“알겠습니다.”
“건방진 년이라 해도 그년이 가진 능력은 진짜니까 말이다. 혹여나 회유의 가능성이 없으면, 그 자리서 죽여도 좋다.”
“알겠습니다.”
추인태의 명령에 연신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하던 김오는 추인태의 축객령에 다시 책장 뒤로 사라졌다.
‘건방진 년···제 년을 거기까지 올린 게 누구인데···감히 나를 배신해?’
여전히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추인태의 눈은 분노와 살기로 번들거렸다.
***
다음날 진중학은 몇장의 보고서를 가지고 단우진의 장원 이제는 비천장이라 불리는 곳으로 들어섰다. 이제는 모두 아는 얼굴들이 가득한 이곳의 사람들이 들어서는 진중학을 향히 인사했다. 그들의 인사를 기분 좋은 웃음으로 받아준 진중학은 비천의 천주 단우진이 있을 후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공자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자에 누워 은진아의 무공을 봐주던 단우진은 귀에 익은 목소리의 출처를 찾아 몸을 일으켰다.
“오! 진총관님~ 오랜만입니다.”
“일이 바빠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니에요. 그간 별고 없으시죠?”
“어머 진총관님 오랜만이네요.”
진총관의 방문에 무공을 수련하던 은진아도 검을 거두어들이고 땀을 훔치며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세 사람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정자에 모여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공자님, 그보다 우선 보고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진총관께서 직접 오신 걸 보니, 평범한 일은 아닌가 보네요. 어디 한번 줘보세요”
단우진은 진중학이 가져온 보고서를 받아 읽어갔다.
“다 읽었는데 말이죠. 그···하오문이란게 뭡니까?”
단우진의 말에 진중학과 은진아는 어이가 없는지 놀란 눈으로 단우진을 응시했다. 두 사람의 눈빛에 단우진은 얼굴이 쑥스러운지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내가 신교에서만 살아서 잘 몰라서 그래!! 밖을 나온 게 이곳 감숙이 처음인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응?”
단우진의 적극적인 자기변호에 은진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하오문에 대해 설명했다.
“흠 그러니까, 앞으로 감숙의 정보를 통제하는 데에 있어서 취월객의 가장 걸림돌이란 소리잖아 그렇지?”
모든 상황을 이해한 듯한 단우진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취월객주가 고민이 많겠어···”
“네 그렇습니다. 지금 취월객주님의 얼굴에 수심이 얼마나 가득한지···!!!”
-뿌드득
이를 갈며 분개하는 진중학의 반응에 단우진과 은진아의 눈빛이 빛났다.
“그···렇죠? 취월객주님이 많이 힘드시겠어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아가씨! 아주 얼굴이 말이 아닙니다. 말이 아니에요. 공자님 어서 계획을 세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분개하는 진중학의 모습에 두 사람은 피식 웃음이 났지만, 가까스로 참아 넘겼다. 그렇지만, 그것과 별개로 하오문과 취월객의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계획이 필요할듯싶었다.
“흠···어찌한다···그냥 힘으로 들어가서 다 패서 이 감숙에서 쫒아낼까?”
단우진은 장난스레 말했지만, 은진아는 이제 그에게 그 정도 일은 어렵지 않음을 알기에, 그를 만류했다.
“그보다, 이번 일은 진총관님께서 직접 처리하심은 어떠하실까요? 이번에 거두어들이신 백검문의 무인들도 마냥 주루나 기루의 순찰에 쓰기에는 아까운 사람들 아닙니까?”
은진아는 진중학을 향해 말하면서도 단우진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이번 일은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에 단우진은 알겠다는 웃으며 몸을 뒤로 뉘며 하늘을 바라보며, 딴청을 부렸다.
“제···가요?”
“네. 저도 같이 도울 테니 우리 같이 해봐요. 저도 언제까지 여기서 무공 수련만 할 수 없는 노릇이고요.”
“그···렇게 해도 될까요?”
“어려울 게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감숙 전체가 저희의 안방이나 다름없는데요.”
진중학은 용기를 북돋는 은진아의 말에 결정한 듯, 단우진을 향해 불타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공자님!!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당차게 내뱉는 진중학을 단우진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렇게, 진중학이 후원을 떠나자 단우진은 허공을 향해 한가지 당부의 말을 남겼다.
“마일 아저씨 혹시 모르니까, 취월객주와 진총관에게 호위를 한 분씩 붙여주세요.”
“네 공자님”
“뭐야? 뭐야? 마일무사님이 어디 계신 거야?”
허공에서 들려오는 대답 소리에, 은진아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것보다, 너 진짜 이 일 해볼 거야?”
고개를 연신 두리번거리며 마일을 찾던 은진아는, 단우진의 질문에 당차고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 대답을 대신헀다.
“그래, 네 수준이면 여기서 큰일이 생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르니까. 조심해 알았어?”
“그래”
자기를 향한 걱정을 기분 좋게 받아들인 은진아는 준비할 것이 있다며, 은가장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왠지 신이 난 것 같은 느낌은 단우진의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은진아는 발전한 자기의 모습을 그리며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달려갔다.
***
같은 시각, 이향이 있는 잔월루 최상층에는 추인태의 부하 김오가 이향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취월객주로 임명되면서, 그 어떤 외부인과의 만남을 피하던 이향이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요청은 받아들였다.
“이곳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추인태의 명입니까?”
“그렇습니다.”
김오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뭐라 하던가요. 저를 죽이라 하던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를 죽일 셈인가요?”
이향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보는 이들은 누구라도 빠져버릴 듯 매력적이었지만, 김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듯했다.
“그대가 추인태의 명을 받는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향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김오의 뒤로 자리를 옮겨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김오···난 말이야···드디어 내게 다른 삶을 살게 해주실 빛과 희망을 찾았거든···그러니, 나는 더 이상 희망도 빛도 없는 그런 시궁창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그 빛이라는 자의 정보만···넘기면 됩니다. 그럼 추인태도 잠시···”
이향은 그의 목에 감았던 팔을 풀며 김오의 말을 끊었다.
“아니···추인태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 알잖아? 그는 그런 사람이야.”
“···그렇지만, 그대가 있는 그 자리···”
이향은 여전히 김오의 말을 끊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의 이 자리? 내가 원한게 아니야···이 자리는 추인태의 필요에 의해서 나를 만들어 올린 거지···한 번도 이런 자리 원한 적 없었어···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게 아니었다고···”
김오는 이향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너도 추인태의 손을 놓고 내 손을 잡는 게 어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김오의 거절에 두사람의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와 함께 침묵이 내려앉았다.
“향아···”
여태껏 존댓말을 쓰던 김오의 갑작스러운 하대.
“오랜만이네 날 이름으로 부르는 건···”
“마지막으로 물을게···다시 돌아오진 않을 거지?···”
“앞서 말했지만, 난 더 이상 그런 시궁창으로 돌아가지 않아···”
김오는 이향을 향해 따뜻하게 미소를 지었다. 항상 무미건조하던 그에게서 나오는 미소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향에게서 몸을 돌려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이향은 그런 그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김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