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문(完)

단우진은 자기와 괴한의 사이에 나타난 인영들을 주시했다. 모두 네명이었다. 전원 죽립을 쓰고 면사로 얼굴을 가린 채, 두 사람은 분노로 이성을 잃은 괴한의 혈도를 짚어 그녀를 쓰러트리고는 어깨에 둘러멘 채, 이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단우진은 나타난 네명의 행동에 급하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달려드는 단우진은 신경도 안 쓰는 듯, 두사람은 괴한을 둘러메고 몸을 날린다.
“도망치게 둘 것 같으냐!!”
단우진이 지근거리에 다다르자, 남은 두사람이 단우진을 향해 달려든다.
-챙!! 챙!!
두 사람이 협공을 가하자, 단우진의 기세가 한풀 꺾인 듯 자리에 멈추어 섰다.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내며, 멀어지는 괴한을 바라보며 마일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아저씨!!]
[네 공자님!!]
두사람은 별다른 대화가 없었지만, 단우진의 의도를 알아들은 마일은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마일이 괴한에게 따라붙으려 하자. 괴한을 데리고 도망치던 두 사람 중 한명이 다가오는 마일을 막기 위해 몸을 되돌려 왔다.
-챙!!
단우진은 마일의 발이 묶이는 것을 확인하고, 괴한을 찾아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저 멀리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단우진은 짧게 혀를 찼다.
“쯧, 늦었네”
이내, 포기한 단우진은 자기의 눈앞에 두사람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두사람은 꽤 오랫동안 맞춰온 듯 서로의 허점을 절묘하게 보완하며 단우진을 공격해왔다. 그들의 공격을 검집과 검으로 번갈아 가며 정신없이 막아냈다.
-꽈앙!!!
두 사람의 정신없는 공격에 단우진은 발을 굴러 땅을 찼다. 세 사람이 발을 딛고 서 있던 땅이 쪼개지며, 들쑥날쑥하게 변했다. 단우진은 두 사람의 움직임이 잠시 둔해지자, 검을 검집에 넣고 자세를 낮췄다.
단우진을 절묘한 합으로 압박하던 두 사람은 땅이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아지자 공중으로 날아올라, 단우진을 향해 쉬지 않고 공격을 이어갔다. 그 순간 땅에 붙어있던 단우진에게서 한 줄기의 바람이 두 사람을 향해 불었다.
-쉬이이잉
바람은 곧 소용돌이치듯이 공중에 뜬 두 사람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아아
“으아악!!!”
소용돌이 속에 갇힌 두 명은 비명을 내질렀다. 이윽고, 바람이 멈추었을 때 두사람은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칼날 같은 바람에 난자되어있다.
두사람을 처리한 단우진은 괴한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만큼 사라진 뒤였다. 잠시 후 마일 역시 자신을 막던 자를 처리했는지, 몸에 피가 흥건히 묻은 채로 단우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저항이 거세 제때 추적하지 못했습니다.”
“괜찮아요. 마음먹고 도망치려는 이를 어찌 쫒겠습니까.”
마일의 사과에 단우진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다독였다.
단우진은 모두 모여든 비천의 무인들에게 주변을 정리하고, 쓰러진 이들을 옮기도록 명령했다. 아직 칠흑 같은 어두운 밤하늘이지만, 주변의 소란에 집집이 등불이 밝게 들어와 거리의 어둠을 물리고 있었다.
***
큰 소란이 일었던, 어둠은 물러가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하동과, 이향 두 사람은 단우진의 별채에서 눈을 떴다. 의식이 있던 은진아와는 달리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있던 두 사람을 단우진이 직접 이리로 옮긴 것이다.
그 중 하동은 전날의 부상이 꽤 심각한지 팔 한쪽에 부목을 댄 채 연신 신음성을 흘리고 있었다.
“으윽···”
하동과 이향이 의식을 차렸단 의원의 이야기에 부리나케 단우진이 달려왔다.
-벌컥
“다들 괜찮으십니까?”
단우진은 어찌나 급하게 왔는지 숨이 찬 듯한 모습이지만, 그는 침착하려 애썼다.
“네···괜찮습니다. 공자님, 일을 이리 만들어 죄송합니다.”
비교적 멀쩡한 듯한 이향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단우진을 맞았다.
“아닙니다. 객주님, 몸이 아직 불편하실 터인데 어딜 가시려고요.”
이향은 단우진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직 모든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녀가 말하는 어제의 일은 아마 하오문의 일일 것이다. 비록, 괴한의 난입으로 일이 커졌지만, 하오문과 이향의 싸움은 이향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녀는 이제 그 싸움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몸을 일으킨듯했다.
“후우···그래도, 조금 더 쉬시지 않고요.”
단우진의 걱정에 이향은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며, 단우진을 향해 괜찮다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단우진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마일에게 일러 진중학에게 동행하라고 일러달라 부탁했다. 그렇게, 별채에는 단우진과 하동 단둘만이 남았다.
“으윽!! 공자님!!”
“그래~ 괜찮냐?”
이향과 달리 부상이 꽤나 심각했던 하동은 자리에 누워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단우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공자님···”
“그래 말해라.”
“물 좀 갖다주세요. 목말라요.”
시종이 자기가 모시는 이를 부려 먹는 모습.
남들이 보면 퍽 이상할 법도 싶지만, 단우진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듯 익숙하게 하동에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꿀꺽꿀꺽
“캬아~역시 물은 공자님이 가져다주신 물이 최고라니까요. 킥킥”
컵을 내려놓으면 너스레를 떠는 하동을 보는 단우진은 웃으며, 어깨를 쳤다.
-탁!
“으아아악!!!”
어깨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하동. 아마 단우진이 때린 어깨가 그가 상처를 입은 곳이리라.
“알고 때린 거죠! 지금!! 내가 물 갖다 달랬다고 복수하신 거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바락바락 대드는 하동. 그런 를 바라보더니 단우진은 피식하고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소리칠 힘은 있나 봐? 어제는 다 죽어가는 것처럼 자빠져있더니 킥킥”
단우진의 웃음에,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 하동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진짜!! 죽다 살아났는데 이러실 겁니까!!”
단우진은 하동의 소리에 어깨를 한 번 더 툭 치고는 웃으며 방을 나갔다. 한동안 하동의 비명이 후원을 가득 메웠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
이향은 단우진의 명령받은 진중학과 함께 하오문의 객잔을 찾았다. 그 두 사람을 따르는 진가장의 무인 몇 명과 함께 부서진 객잔의 문을 옆으로 치우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정리가 안 된 듯, 전날의 참혹한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진한 혈향에 잠시 얼굴을 찌푸린 두 사람은, 객잔이 가운데에 서서 주변을 잠시 둘러봤다.
이향은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무엇을 발견한 듯,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계단에서 난간에 머리를 기댄 채, 박힌 검을 여전히 뽑지 못하고 숨을 거둔 김오의 주검이 있었다.
‘김오···’
이향은 김오의 주검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진 듯, 한참을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 곁으로 다가온 진중학은 그런 그녀가 움직이기 전까지 한참을 곁을 지켜주었다.
“진총관님···”
깊은 생각에서 빠져나온 듯 이향은 곁에 있는 진중학 을 불렀다.
“네 객주님.”
이향은 진중학의 대답에도 김오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사실 하오문 출신입니다.”
“···”
진중학은 마치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는 하오문에서 살아가는 게 너무 지긋지긋했답니다. 그곳은 빛 한점 들지 않는 어떤 희망도 없는 곳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곳에서 이 사람은 저에게 유일한 빛이었어요. 그곳에서 유일하게 자기 스스로 빛을 내며 자기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었거든요.”
진중학은 담담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향의 말에 집중했다.
“그렇게, 이 사람이 밝히는 빛을 보며 그 힘든 곳에서 하루하루 버텼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추인태는 저를 기루에 팔아넘기더군요···15살밖에 되지 않았는데···말이죠···”
이향의 말에 진중학은 분노한 듯 이를 꽉 깨물었다.
“그곳에서, 죽을까 고민도 많이 했죠···그런데 이 사람이 있어서 겨우 버틸 수 있었어요···저에게 자기가 희망을 찾아주겠다며, 자신을 던져가며 저를 기루에서 끄집어내 주었죠···”
“그렇군요···”
“그렇게, 저 사람의 노력과 도움으로 겨우겨우 버티며 살아왔답니다. 결국, 추인태의 힘으로 잔월루 루주에 올랐지만, 그곳에도 제가 원하는 희망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렇게, 저 사람과 저는 저희 앞에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답니다.”
이향은 무릎을 꿇고 김오에게 박혀있는 검을 하나씩 뽑아내기 시작했다.
“객주님 제가 하겠습니다. 피가 튑니다.”
제지하는 진중학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이향은 계속해서 김오에게 박혀있는 검을 뽑아냈다. 마지막으로 박힌 검을 뽑았을 때, 이향은 그 검을 자기의 옷으로 깨끗하게 닦았다.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아갈 때 공자님이 나타나셨답니다···살면서 그분처럼 빛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어요···그분을 따라가면 나 역시 저런 빛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답니다···”
이향은 말을 하며 계단을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추인태가 그런 저를 다시 시궁창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저 사람을 저에게 보냈죠···저 사람 역시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자기를 원망했을 거예요···나에게 희망을 찾아주겠다 한사람이니까요···”
계단을 모두 오른 이향의 시야에 누워서 차갑게 식은 추인태의 주검이 들어왔다.
“하지만, 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제가 선택한 길에서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선택한 이 길은 너무 밝은 빛이 드리웠거든요···그래서, 그의 제안을 거절했죠···그리고, 그도 저와 함께 공자님의 길을 따라가길 원했어요···그 사람의 빛도 분명히 반짝거리던 사람이었거든요···”
천천히 추인태의 시신으로 걷던 이향은 이내 걸음을 멈추고, 자기의 앞에 눈도 채 감지 못한 채 누워있는 추인태의 주검을 바라봤다.
-푸욱
-푹
이향은 이미 식어버린 추인태의 주검에 칼을 찔러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제가 아닌 추인태를 선택했어요···이유는 모르겠지만···그 선택은 자기가 아닌 저를 위한 선택이었겠죠?”
“그럴 겁니다···자기 한 몸 희생해 객주님을 위하던 사람이니까요···”
진중학은 연민과 안타까움이 교차하여 복잡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김오의 주검을 시야에 담았다.
“저는 그를 살릴 수 있었답니다···총관님께 부탁해 그를 미리 납치해서 이 사태에서 구할 수도 있었고, 차라리 저희가 하오문을 공격해서 그를 제압한 채로 추인태를 죽이고 하오문을 가질 수도 있었겠죠···”
자기에 대한 원망일까···그것도 아니라면, 이 모든 일의 원인인 추인태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일까··· 이향의 목소리는 점점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하면 왠지 저의 과거를 다 끊어낼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이 밝은 빛이 드리우는 이 길에서 다시 나를 저 심연과도 같은 지옥으로 나를 끌어내릴까 두려웠답니다···그래서,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을 알았지만, 그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어요.”
추인태를 찔러가던 그녀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차갑게 식어 반응조차 없는 추인태의 주검에서 이향의 검이 찔리고 빠지는 것을 반복할 때마다 피가 튀면서 이향의 옷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쩔그렁
검을 바닥에 떨어뜨린 이향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추인태의 주검에서 튄 피와 그녀의 눈물로 범벅이 되어 엉망이 되어있었다.
“진총관님···”
떨리는 목소리.
“네 말씀하세요. 객주님.”
“제가···공자님의 곁에서 서서 이 길을 걸어갈 자격이 있을까요?”
“물론이죠.”
진중학은 그녀의 말에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런 모습에 이향은 고개를 숙여, 자기의 얼굴에 묻은 피와 눈물을 닦아냈다.
“그 말···믿어도 되겠죠?”
“네 믿어도 됩니다. 공자님은 빛은 저와 객주님의 어두운 과거까지 모두 밝혀주실 찬란한 빛을 뿜어내시니까요.”
진중학의 말에 이향은 이전과는 다른 환한 얼굴로 이제껏 보여주던 은은한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일을 마무리 지으러 가시죠.”
이향은 하오문의 객잔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김오의 주검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를 향한 마지막 애도의 목례로 그와의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그렇게, 시궁창 같은 삶에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던 두 사람은 운명이란 이름이 내린 선택의 갈림길에서 각자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한 사람은 순응하기를, 한 사람은 자기에게 드리우는 찬란한 새로운 빛을 쫒아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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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학과 이향은 객잔을 빠져나와, 반쯤 무너진 하오문의 지부장 격인 노인을 만났다. 이향은 그들을 완전히 무너트리기보다, 그들을 이용해서 하오문 감숙지부를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하오문 감숙지부는 앞으로 취월객의 통제하에 선별된 정보만을 총단으로 보낼 것이다. 그리하면, 오랜 시간 하오문의 눈을 속여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이로써, 하오문마저 취월객의 손아귀에 들어오면서 감숙은 완전하게 비천의 손위에 놓였다. 그렇게, 비천은 자기의 원망과 아픔, 그리고 과거를 차가운 겨울바람에 실어 보냈다. 그리고, 시간은 천천히 흘러 겨울의 막바지에 닿아 따뜻한 훈풍이 조금씩 불어오는 계절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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