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3)

단우진의 목소리와 함께 노도와 같이 퍼지는 기운의 압박에 마적떼는 모두 무릎을 꿇었다. 모닥불을 피운 무리가 적은 인원이기에 통행료라도 벌어볼까 하여 나온 길이었다. 하지만, 자기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고수의 등장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마적떼 사이에 감돌았다.
“큭···”
무리의 대장이 힘겹게 고개를 들자, 빛이 무섭게 번들거리는 한 쌍의 눈동자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부디 살려주시면 이대로 돌아가겠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의 간절한 애원에도 단우진의 기운은 거두어 질 줄 몰랐다.
“내가 하는 질문에 답한다면 그 전낭 네놈에게 주마.”
단우진의 말에 남자는 무릎을 꿇은채, 단우진이 뿜어내는 기운을 받아내며 힘겹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단우진은 그제야, 내뿜던 기운을 천천히 갈무리했다. 자기를 압박하던 기운이 사라지자,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려던 마적떼는 그들의 대장 격인 남자가 여전히 양쪽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들은 주변의 자기의 동료들과 눈짓을 주고받더니, 그 자리에서 다시 무릎을 꿇고는 머리를 숙였다.
“무엇이든 대답하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단우진은 자기가 가진 궁금증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저희는 저 멀리 대평원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대평원이란 중원이 아닌 몽골을 뜻했다.
“대체 그 먼 곳에서 이곳까지는 어떤 일이더냐?”
“대족장을 향한 반란이 일어났고, 그 반란에서 대족장이 패함으로 어른은 모두 처형당하고 노인과 어린이는 모두 대평원에서 쫒겨났습니다. 그렇다 보니 먹고살 길이 궁해 지나가는 이들에게 통행료를 받으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부디, 저희의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의 말을 들은 단우진은 무엇인가 좋은 생각이 난 듯 미소를 지었다.
“네놈들은 여기 있는 이가 전부더냐?”
“···”
남자가 말을 망설이자, 단우진의 기운이 다시 그들을 덮치려 스멀스멀 피어나 왔다. 그 모습에 남자는 머리를 숙이며 소리쳤다.
“아닙니다. 더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희보다 더 어리거나 노인들 뿐입니다. 그러니, 부디 한 번만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단우진은 그의 말에 전낭을 하나 더 꺼내어 던졌다.
“그럼, 한 가지 제안을 하마.”
“뭐든 말씀하십시오.”
“네놈들 이 짓은 그만두고 내 밑으로 들어옴은 어떠냐?”
단우진의 충격적인 제안에 남자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자기를 향해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바라본 남자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딱 삼키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저희가 떠나면, 남은 이들의 삶이 위태로워집니다. 부디 재고하여 주십시오.”
그들의 말을 예상이나 한 듯 단우진은 하나의 전낭을 더 꺼내어 던졌다.
“다른 제안을 하마, 나를 네놈들의 은신처로 안내해라. 그곳에 데려다준다면, 네놈에게 그 전낭 세 개를 모두 줄 것이다.”
단우진의 말에 남자는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우진의 말처럼 저 세 개의 전낭에 모두 은자가 들었다면, 당분간은 위험하게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단우진이 자기들의 은신처에서 어떤 일을 벌이게 될지 그것이 걱정되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잠시···상의를 해도 되겠습니까?”
“한식경주마”
단우진의 말에 남자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자기의 무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들은 단우진과의 약속된 시간 동안 한참을 갑론을박을 이어 나갔다. 그들이 한참을 토론하는 동안 마일이 단우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공자님 어떤 의중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흠···저놈들 나이도 어리고, 아까 보니 독기도 보통이 아닌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놈들 잘 키워서 비천의 칼로 써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단우진의 뜻을 이해한 마일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마일 역시 그들이 이를 악물고 단우진의 기세를 버텨낼 때는 그 역시 흥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 만약 저들이 비천 밑으로 들어오면, 저 녀석들 훈련을 아저씨께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말에 마일은 시원하게 웃었다.
“맡겨만 주십시오. 어디 가도 꼬리말지 않는 미친개로 만들어놓겠습니다.”
마일의 호언장담에 단우진은 미소 지었다. 어떻게든 저들을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은 단우진이었다.
단우진과의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그들도 어느 정도 결정이 난 듯 대여섯의 사람이 단우진을 향해 다가왔다.
“이제 결정 났나?”
“네···다만 한 가지만 약속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엇이지?”
“만약···마음이 바뀌시어 목숨을 취하실 거라면···저희 여섯명의 목숨만으로 모두의 생존을 약속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언뜻 비장한 각오를 비추며 말을 하는 이를 보고 단우진은 크게 웃었다.
“나는 네녀석들이 우리를 향해 검을 들지 않는다면 누구의 목숨도 거둘 생각이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단우진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숙이며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단우진의 일행을 인솔해 그들의 은신처로 향했다.
그들의 은신처는 단우진이 노숙하던 곳에서 약 일각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곳에는 조그만 토굴이 있었고, 그 안에는 노인과 어린아이, 그리고, 어디서 상처를 입었는지 모를 부상입은 이들이 모여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단우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일아저씨”
“네 공자님”
“지금 즉시 진총관에게 이들을 옮길 마차와 의원을 이곳으로 보내 달라하세요.”
마일은 단우진의 말에 천위대 무인 한명을 불러 지시했다. 명령받은 천위대 무인은 단우진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뒤 감숙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쉬지 않고 달린다면 내일 오전 중으로 진중학이 이곳에 당도할 것이다.
천위대가 떠나는 모습을 확인하고 단우진은 마일에게 한 가지 더 당부했다. 그리고, 마일은 마차를 뒤져 챙겨온 모든 식재료를 꺼내어 수하들에게 요리하도록 명했다.
“이봐”
단우진의 목소리에 단우진 일행을 이곳으로 불러온 남자가 은신처에 남아있던 사람들에게 하던 설명을 멈추고 단우진을 향해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우리 쪽에서 음식을 준비해줄 터이니 오늘은 그것으로 모두 나누어 먹도록 해.”
단우진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너는 나랑 이야기를 좀 마저 하지”
“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단우진은 남자를 따라 천천히 동굴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봄이 찾아왔건만, 신강에서 맞는 밤바람은 아직 쌀쌀하기만 했다. 두 사람은 잠시 걸어 조그만 바위들이 모인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두 사람. 단우진이 먼저 용건을 꺼냈다.
“네놈들이 내 밑으로 들어오면, 저남은 이들의 생사가 걱정되어 망설인다 했지?”
“네··· 그렇습니다. 보셨다시피, 아직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의 수가 제법 많습니다. 저희가 모두 떠난다면···”
남자의 말을 듣던 단우진은 대뜸 말을 끊었다.
“그럼 그거만 해결해주면, 네놈들 다 나에게로 올 수 있어?”
“네”
남자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이 척박한 곳에서 통행료 조금을 받으며 살아가는 작금의 현실이 지칠 뿐이었다.
“좋아, 내일 오전 중으로 내 수하 한명이 올 거야. 너는 사람들을 이끌고 그를 따라가 그럼,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야.”
“그게 무슨···”
남자는 어리둥절할 표정으로 단우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일 오전이 되면 다 알 수 있으니까,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그것보다 네녀석 이름은 무엇이냐?”
“보르후 입니다.”
“그래, 보르후 네녀석이 내일 오전까지 할 일은 하나다. 혹시라도 망설이는 이들을 설득해. 그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이 펼쳐질 거다.”
단우진의 말에 보르후는 왠지 모를 신뢰를 느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켜 토굴로 향했다. 다음날 진중학이 도착하기 전까지 그들의 토론은 계속되었지만, 단우진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단우진은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를 잡는 건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토굴에서의 밤이 지나고, 밝은 아침 해가 떠올랐다. 단우진 일행은 남은 식재료로 간단히 조식을 해결하고, 마차에서 진중학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쯤, 진중학이 진가장의 무인들과 함께 마차 여러 대와 수레를 가지고 도착했다. 마차에는 몇 명의 의원이 타고 있었다.
“공자님!”
“진총관님 일찍 오셨네요.”
“아닙니다. 늦은 시간이라 의원을 모시는 데 시간이 걸려 조금 늦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송구한 듯 사과하는 진중학의 어깨를 두드려준 단우진은 진중학을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한참을 설명하는 와중에 보르후는 몇 명의 사람을 대동하고 단우진에게로 다가왔다. 단우진은 설명을 잠시 멈추고 보르후를 바라봤다.
“그래 밤새 이어진 일은 어떻게 됐지?”
“모두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보르후의 말에 단우진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네녀석들의 인생에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느끼게 해주마.”
“감사합니다.”
보르후와 그를 따라온 남자들은 모두 단우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럼, 이제 할 일을 알려주지. 보르후 네녀석은 여기 진총관님을 따라 감숙으로 가라. 그곳에 도착하면, 네녀석의 무리를 훈련시켜줄 이가 기다릴 것이다. 그 훈련을 받으면서 나를 기다려라.”
단우진의 말에 보르후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보르후의 일행이 노인들과 어린아이들을 데리러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진총관님은 알아서 저들의 인력을 분배해주세요. 새로운 장원을 구매해서 노인들과 어린이들을 기거하게 하셔도 됩니다. 다만, 노인이 아닌 15세 이상의 남여는 모두 비천장에 머물도록 해주세요. 저들은 천위대가 따로 훈련할 것입니다.”
“네 공자님 그리 처리하겠습니다.”
진중학의 믿음직한 대답에 단우진은 싱긋 미소 지으며, 자기의 마차로 돌아갔다.
진중학이 부산스럽게 준비를 하는 동안, 단우진은 마차에서 마일과 함께 보르후의 관한 일을 상의했다.
“아저씨 저들의 훈련을 맡아줄 사람들이 있을까요?”
“흠···제가 하면 가장 좋겠지만, 우선은 저도 신교로 복귀해야 하는 상황이니 우선 저의 수하들에게 맡겨놓겠습니다. 다시 감숙으로 복귀하게 된다면, 제가 저들의 훈련을 맡겠습니다.”
아쉽지만 지금으로써는 최선의 상황이니 단우진은 마일의 말에 수긍했다.
보르후의 일행이 떠날 채비를 마치자, 진중학이 단우진에게 고하러 마차로 다가왔다.
“공자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진중학의 정중한 인사를 받은 단우진은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그들의 모습이 천천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단우진의 일행은 원래의 목적지인 천마신교로 향했다.
마차가 신교를 향해 달리는 중에 마차에서 은진아는 단우진을 빤히 바라봤다.
“왜?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그냥···”
“왜? 무슨 문제라도?”
“천마신교에 정파에 학자에, 루주에 이제는 대평원의 사람들까지···사실···예전의 나였다면 저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편했을 거 같은데, 이제는 그러려니 넘어가는 내 모습을 보니 나도 많이 변했구나 싶어서.”
은진아의 고백에 단우진과 하동은 흐뭇하게 웃으며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단우진을 만난 사람들 중에서 단연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인 사람은 은진아임을 모를 리 없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마차는 이틀간 쉬지 않고 달렸다. 노숙하느니, 차라리 빠르게 도착했으면 하는 단우진의 모습에 천위대와 마일이 돌아가며 고삐를 잡고 달렸기 때문이다.
어느덧, 감숙을 출발한 지 삼일째의 해가 떠오르는 아침 저 멀리 푸른 숲이 보였다. 천마신교로 가는 천산이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소리다. 마차는 숲을 지나 천천히 이동했다.
은진아는 오랜만에 만나는 녹음의 푸르름에 창을 열고 그 향을 만끽했다. 숲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을 바라보던 은진아의 시선에 거대한 성벽이 나타났다. 드디어, 삼일간의 강행군을 끝내고 천마신교의 외성에 도착한 것이다.
거대한 성벽이 내뿜는 위엄에 은진아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그렇게, 은진아가 감탄하고 있을 때, 마차는 성문 앞에 당도했다.
성문을 지키던 무인들이 조심히 다가왔다.
“마차 안을 살피겠습니다.”
“그리하라”
밖에서 고하는 이야기에 단우진은 짤막한 답변으로 응했다. 마차 문이 열리고, 성문을 지키던 무인들은 마차에 탑승한 인물을 보고 입을 크게 벌리고는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단우진은 큰 죄라도 지은 듯 연신 사과하는 무인들을 일으키고는 격려한 뒤, 그들의 안내를 받아 마차를 타고 성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무인들이 연신 사과하는 모습에 은진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또 왜?”
“너 높은 신분일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말이야, 대체 어느 정도인 거야?”
은진아는 어떤 대답이 나오더라도 놀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단우진에게 물었지만, 단우진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녀를 경악케 했다.
“나? 천마신교 교주의 막내아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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