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재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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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잔나
작품등록일 :
2024.05.28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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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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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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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닥터 주학문과 애스널, 퍽홀.

DUMMY

불혹의 재수강. 18화. 닥터 주학문과 애스널, 퍽홀.





“마석은 양날의 검이야. 차라리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유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게이트 밖의 세상에서도 그 끔찍한 보랏빛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고백했던 유진이었다. 그것이 자신이 마법사로 사는 대가라고.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내가 직접 그 세계를 경험하고 왔기 때문에 이렇게 가끔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면, 덜컥 겁부터 났다.


특히 엄청난 양의 음식을 앞에 두고도 포크를 내려 놓는다면 더더욱 그랬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닌데···. 혹시 만진 건 아니지?”


만졌어···. 그리고 심지어 내 왼팔의 흑염룡(Saver Watch)이 그걸 먹어 버리기까지 했어.



“아니, 먼지 몰라서 그냥 멀리서 보기만 하고 말았는데. 챙겼어야 했나 싶어서 물어봤어. 근데 혹시 비쌀까?”

“잘했어. 앞으로도 잘 모르겠는 건 다 피해. 게이트 안쪽에 있는 건 괴물 빼고는 다 위험한 거야.”


그건 네가 천재라 그런 거고···.



“마석은 귀환석이라고도 불러.”

“귀환석?”

“응. 마석을 부수면, 게이트를 공략하지 않아도 안에 들어왔던 헌터들을 모두 게이트 밖으로 내보내.”


그럼 좋은 거 아냐? 게임으로 치면, 체크 포인트 같은 건데. 세이브 포인튼가?



“한 사람만 빼고···.”

“그럼···, 마석을 만진 사람은 못 돌아오는 거야? 영영?”

“아니, 경험해봐서 알지? 게이트는 괴물도 괴물이지만, 그 자체로도 사람들의 감정을 증폭시켜서 정신을 망가트려.”


확실히 그랬다. 처음에는 과도한 호기심. 그 이후 공포, 흥분, 우울함에 무기력감도 있었고, 슬픔, 연민, 분노, 짜증···.

말 그대로 현실에서라면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감정을 드러낼 내가 아니었다.



“마석은 안에 있는 헌터들의 다수가 가장 부정적으로 보는 인물.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장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희생시기는 대신 나머지 사람들을 게이트 밖으로 내보내고 닫혀.

근데 이건 의식적으로 모두가 ‘이 사람이 제일 쓸모 없어.’라고 생각해도 소용이 없어.

파괴되는 순간에 게이트 안에 있는 헌터들의 내면 가장 깊은 곳까지, 마석은 들여다보는 거야.”


“무섭네.”

“맞아 무섭지. 그래서 마석 때문에 게이트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추측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 하지만 알 수 없지. 마석은 가지고 나올 수 없어서 연구를 할 수가 없거든.”



잠깐···. 생각해보니 마석 때문에 나 죽을 뻔한 거잖아?


만일 그 때. 그러니까 마석을 놓쳤을 때, 왼손으로 받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서 혹시라도 깨졌으면···. 그 안에 있던 두 사람 중에 더 쓸모 없는 놈이, 제4의 기사인 천인국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건 사실상 확정 사망···.

또다시 김교수가 나를 살렸던 거였나? 꿀꺽해서?


역시 머머리는 심했던 거다. 당장 사과를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으니, 다음 과제보고서에는 진심을 담은 사과와 함께 연락처를 물어봐야겠다.



“그보다 형.”


응? 대게 다리를 까면서 왜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지어? 무섭잖아.



“한 주 남았다.”

“뭐가?”

“다다음 주에도 학교 안 나오면, 4회 결석이야. 확정 F. 제적. 학사경고. 알지?”



장현곽 41세(-20세). 나는 대한민국 헌터(아직도 등록 전)이기 이전에, 등록금에 인생을 저당 잡힌 (한국제일대)학생이었다.





***



나는 그로부터 일주일을 더 병원에서 보냈다.

사실 이미 일주일 전에 모든 검사와 심리치료 일정이 끝나 있었지만, 헌터 병원에서는 딱히 퇴원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병원비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이용하는 모든 시설이 무료였는데, 나의 심리상담을 직접 담당했던 주학문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 제 이름이 주항문인데, 왜 항문외과 진료를 보지 않고 심리상담이나 하는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헌터들 중에 치질환자는 거의 없어요. 다들 지나치게 건강하잖아요? 운동도 많이 하고···. 물론 일반외과나 정형외과 쪽은 종종 있지만. 그쪽은 돈이 안돼요.”


아니다. 아니다. 내가 회상하려던 것은 이 기억이 아니라, 다른 기억이다. 첫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 헌터 병원이란 게, WGO WorldGateOrganization에서 투자비용과 운영비를 100% 지급하거든요. 전액 달러로.

그러니 손님 아니, 환자가 많아야 그만큼 돈을 버는데···. 이게 또 헌터 트라우마 치료만큼 괜찮은 게 없어요.

제가 미국의 닥터 애스널Assnal과 공동으로 발표한 ‘비데 사용과 헌터 트라우마’라는 논문에 따르면···.”


그리고 어제 마지막 상담을 할 때는,



“하하, 오랜만에 치료비 무제한의 거물급 손님 아니, 환자분이 오셔서 반가웠는데. 더 놀다 가시지···.

그래도 덕분에 이번 여름부터는 서쪽에 있는 군부대를 밀어내고 산을 깎아서 18홀 골프장을 지을 계획이니까, 다음에 오셔서 저랑 필드치료 나가는 걸로 합시다.

이게 또 공교롭게도 제가 스웨덴의 퍽홀Perkhole 교수하고 함께 연구한 ‘골프와 헌터 트라우마’라는 논문에도 나와 있는 건데···.”



아무튼 주학문 원장과 상담을 하면 할수록 비데···. 아니, 그러니까, 황금으로 만들어진 초고급 비데가 있는 7성급 호텔 스위트룸 같은 개인 병실과 그에 준하는 수준의 시설들, 그리고 과도하게 많은 서비스 직원들의 존재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초라한, 나의 학교 근처 낡은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을 자처해서 함께 하겠다고 찾아온 천인국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난 예정된 게이트 공략이 없으면 거의 항상 이곳에서 쉬고 있다. 병원이기도 하고, 부지가 넓어서 우연히 마주쳐도 귀찮게 하는 헌터들이 거의 없다.”


함께 저녁을 함께 먹었던 그가 서울에 자신의 집이 따로 두고 있지 않다고 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물론 내가 그 이유를 이해하는 동안에도 그의 LA 헌터 병원과 이곳의 시설 차이에 대한 그의 분석을 주구장창 들어주고 있어야 했지만···.



똑똑.


어차피 내일 퇴원인데, 이 밤에 뭐가 또 할 게 남았나?



똑똑.


“들어오세요.”



똑똑똑.


아씨, 아무리 내일이면 퇴원한다고 해도, 오늘까지는 나 환자 아냐? 볼일이 있으면 자기들이 들어와야지···.


나는 킹 사이즈의 두배는 될 법한 주문제작 마호가니 원목 침대에서 한참을 기어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방을 지나, 거실을 지나, 응접실에 있는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복도 한쪽에 이제는 눈에 익은 택배박스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드디어 무려 3주만에 김교수의 답이 온 것이다.


그런데 상자에서 꺼낸 이번 선물은 한눈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쇠막대?


모양은 그랬다. 팔뚝 길이의 쇠막대처럼 생겼으나, 원통형은 아니고 약간 타원에 가까운 단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손에는 착 감기는 것이 딱 내 손에 맞춤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게이트에서 무기를 찾는답시고 철근을 들었다가 그 무게 때문에 내려 놓은 모습을 김교수가 지켜보고, 가벼운 알루미늄 막대기를 선물한 게 아닐까?



그래도 이왕에 무기라면 나도 천인국처럼 칼을 주지···.

라는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순식간에 쇠막대의 2/3가 접혀 들어가며 얇은 칼날을 만들어 내었다.



‘어휴, 깜짝이야. 위험하게···. 만약에 날이 생겨난 쪽을 손에 쥐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런데 미끄러지진 않겠지?’


그러자 손잡이 부분에 미세한 돌기 같은 것이 생겨나며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바닥과 손잡이 사이에 저항감이 생겼다.


나는 ‘혹시’ 하고 또 다른 상상을 하려 하다가, 급히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지웠다.

이게 내가 상상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무기가 맞다면, 괜히 잘못 조작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서재의 책상위에 처음의 형태로 돌아간 쇠막대기를 올려두고 휴대폰을 꺼냈다.


업데이트 되었을 것이 분명한 사용안내서를 읽어 볼 생각인데, 이번에도 업데이트 후 처음 실행시킬 때 따끔할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따끔하다거나 공간이동 따위의 이상현상은 벌어지지 않고, 바로 안내서가 실행되었다.



‘머머리에 아직도 삐져 있으신건가?’


아직 확인하지 않은 과제 성적을 걱정하며, 나는 새로 업데이트 된 사용안내서를 읽어 보았다.




------------------------------

사용안내서 > 장비 > 무기



이름 : 미정未定


종류 : 도검刀劍


특성 :

1. 형태변환 : 소유자가 원하는 형태의 도검류로 변형됩니다. 무기로 사용되지 않을 때에는 기본 형태로 돌아갑니다.

2. 초전도진동 : 초전도체 기술이 적용되어, 날 전체가 초당 4,000만회 진동합니다. 베거나 찌르는 행위에 운동방향으로의 힘이 거의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사물을 벨 수 있습니다.

3. 안전장치 : 지정된 소유자를 제외한 다른 이가 해당 무기를 이용해 소유자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을 할 경우 스스로 공격합니다.

4. 한계 : 기본형태를 넘어선 크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길이, 너비, 두께, 무게)


추가안내 : 반드시 소유자가 떠올리기 쉬운 형태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이하 생략


------------------------------



대부분의 내용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무기의 이름을 정하라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이었다.


그냥 ‘이름을 붙여주세요’가 아니라 형태를 떠올리기 쉬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칼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내가 아는 칼이라고는 집에서 사용하는 과도나 주방칼, 공사장에서 사용하던 커터칼, 학창시절 조각칼 정도가 전부였다.

굳이 무기라면···. 어릴 때 만화로 보았던 엑스칼리버?


잘 모르면 찾아보면 된다. 나는 인터넷으로 한시간 정도 도검류에 대한 자료를 뒤지다가 막대와 비슷한 크기의 적당한 무기를 발견하고 이름을 정했다.



장도粧刀.

길 장자를 쓰는 장도長刀가 아니라 단장할 장을 쓰는 전통 칼, 장도粧刀였다.



자료로 보았을 때 크기와 길이는 다양했지만, 대나무로 손잡이와 칼집을 만든 사진을 보니, 꼭 짧은 막대기처럼 보여서 기본형태라고 하는 쇠막대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주로 장식이나 간단한 도구로써 사용되었다는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장도··· 장도···.’


장도라 이름 붙일 무기를 집기위해 책상으로 다가가며 반복해서 읊조리다보니, 문득 개드립이 떠올랐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연? 장도연?’


아, 시바, 혹시 나 지금 칼을 만졌나? 에이, 설마···. 닿기 전이었을거야···.


슬픈 예감에 잠시 떨고 있는 사이, 쇠막대의 손잡이 부분에 일부 입자가 안쪽으로 들어가며 무기의 이름을 음각했다.



粧刀연.


어째서, 마지막 글자만 한글이냐?

한자로 할 거라면 전부 한자로 해주던가, 한글로 할 거라면 전부 한글로 해줘야지···.



사람이 너무 화가 나면,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감정이 차게 식는다. 아마도 자기파괴적 행동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안전장치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20년 후에 내 방에서 낡은 의자가 아닌, 차가운 교도소 바닥에서 김교수의 제안을 받았을 것이다.



근데, 현존하는 거의 모든 사물을 벨 수 있다고?


활짝 열려 있는 화장실 문 너머로, 황금색 변기가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작가의말

볼만했다 하셨으면,

❤️(재밌어요) 또는 ⭐(선작) 부탁드립니다.


또는 글이 별로라서,

❌그만보겠다, 하실 때에는 ✔️댓글 부탁드립니다.


물론 그냥 나가셔도 괜찮습니다.


장현곽 41세(-20세)는 무시 받는 것에 익숙한 남자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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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0화. 게이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헌터. 24.06.26 19 0 15쪽
39 39화. Sniper in a Room 24.06.25 16 0 14쪽
38 38화. 비밀스럽고 으슬으슬한 비서. 24.06.24 16 0 13쪽
37 37화. 운태연의 목소리. 24.06.21 17 0 14쪽
36 36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11) 24.06.20 17 0 15쪽
35 35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10) 24.06.19 18 0 12쪽
34 34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9) 24.06.18 18 0 14쪽
33 33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8) 24.06.17 21 0 15쪽
32 32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7) 24.06.14 18 0 13쪽
31 31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6) 24.06.13 19 0 13쪽
30 30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5) 24.06.12 23 0 12쪽
29 29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4) 24.06.11 19 0 13쪽
28 28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3) 24.06.10 22 0 14쪽
27 27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2) 24.06.09 20 1 16쪽
26 26화. 나가실 때 꼭 말씀해 주세요. 24.06.08 23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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