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재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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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잔나
작품등록일 :
2024.05.28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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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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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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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군대갑시다.

DUMMY

불혹의 재수강. 23화. 군대갑시다.





“동 해 물과 배액 두 산이 마아르고 다아알 토록···. 하앗.. 느님이 보..우우...하사···.”



새벽 세시 삼십삼분 삼십삼초로부터 세시간 후.


평소라면 자라나는 새싹, 대학생 어른이들은 밤새 자신의 입으로 쑤셔 넣은 알코올 농도를 확인하다 지쳐 슬슬 잠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째서 학생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여기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가?



“···우리 나라 마안세에.”


겨우 끝났다. 이십년만에 불러보는, 21세 장현곽의 애국가다.

다 불렀으니, 아침 먹기 전까지 다시 방으로 돌아가서 부족한 잠을···.



“도수체조 시이작!”


단상위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군복 입은 남자의 이마에 뜬 별이, 오늘따라 유독 밝게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흙먼지 풍기는 내 주위에는 백여명에 가까운 파닥몬들이 똑같이 촌스러운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팔다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귀찮다. 귀찮다. 귀찮다.’


“하낫, 둘, 세엣, 넷! 다스엇, 여스엇···.”


그러니까 내가 왜 이 나이(41-20세)에 군대에서 봉산탈춤을 추고 있냐면···.


설명을 위해 대략 3주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




“나, 안해요.”


나는 ROKGO 입사를 한 다음 날부터 바로 본부에 출근해야 했다.

위장신분이라는 개념 때문에 곧 종강을 하게 될 학교는 계속 나갔지만, 매일 수업이 끝나면, 당분간은 ‘진짜’ 내근직처럼 출근해서 업무를 익히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사실을 첫 출근때까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전해 듣자마자 대표실로 찾아갔다.


단아한 비서, 김단비씨 안녕? 오늘도 단아하시네요.



“매일 출근하라고요? 주 5일? 못해요. 안 해요. 요즘 워라밸이 얼마나 중요한데. 학교도 다녀야 하고··· 주 40시간 근무라니···.”


이 시대 공무원들과 직장인들은 아직까지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가 상식인 건 알고 있다.

물론 어느 시대나 이 일 중독, 가난한 선비의 후예들에게 야근이나 추가 근무는 많았지만, 그래도 주 3일 하루 4시간 근무가 기본이었던 미래를 경험하고 온 나에게, 주 40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으라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

참고로 이건, 혹시나 이게 웹소설일 경우를 대비해서 말해주는 건데, 주 12시간 근무를 개꿀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미래에 어떤 병신 같은 대통령이 워라벨을 강조하면서 표를 받고는, 취임식 후 한다는 소리가 ‘몰아서 일할 권리’를 주겠다고, 추가근무나 야근에 대한 규제를 전부 없애 버린다.


그래서 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최저시급의 80%에 추가근무를 무제한으로 할 수 있었다.


즉, 주 3일을 출근하는 것은 맞지만,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4시간 일하고, 20% 낮은 급여로 36시간을 더 한 다음에 8시간을 집에서 쉬고, 다시 출근해서 4시간 일하고···.


물론, 이게 싫으면 나처럼 주 12시간짜리 일을 대여섯 가지 정도 하면 된다. 인구감소로 인해 더럽고 힘든 일자리는 남아돌았으니까.




···.

“안 할 거니까 계약서 돌려줘요. 거기 마지막에 분명 추가 했었죠? 을이 원할 경우 언제든 즉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아니, 현곽펑,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오해는 무슨 오해? 김단비씨. 뭐하고 있어요? 계약서 가져오시라니까.”


결국 나는 수습기간을 한 달 늘리는 대신, 주 3회 출근, 일 8시간으로 일정을 조정할 수 있었다.



멕케인의 설명에 따르면, 앞으로 3개월간, 각종 보안사항과 행정절차, 게이트와 헌터들의 특성들을 익히기 위해 출근을 하고, 그 다음부터 본격적인 현장일을 시작하면, 본사로의 출근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급여 차이도 없는데 한달을 더 수습이랍시고 놀고먹을 수 있다면···, 개꿀인걸?




나의 착각이었다.

개인이 쓰기에는 너무 넓다고 생각했던 나의 사무실.


첫날에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잠이나 자면서 적당히 시간을 때우겠다는 생각으로, 업무추진비용 카드를 사용해, 나사의 기술력이 담긴, 킹 사이즈의 침대를 들여 놓았다.


그곳에 누워서 생각하고 있자니, 그래도 사무실인데 누군가 찾아올 때를 대비해 고급 책상을 샀고, 그 다음에는 나의 기본 스킬인 [운동증진효과]를 써먹기 위해, 이름도 모르는 각종 운동기구를 들여 놓았다. 구멍에 꽂고 밀거나 당기거나 매달리거나 뛰거나 오르면 되는 것들이다.


비록 창문은 없지만, 내집보다 넓고 쾌적한 나만의 공간. 만족스러웠다.


둘째 날 까지만.



셋째 날 출근을 하자, 단아한 비서를 필두로 록고 직원들이 내 사무실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내 방 아니, 사무실에 사무용 전자기기를 잔뜩 설치하더니 두꺼운 책자 하나를 주고 나가버렸다.


어리둥절 했지만,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어서 잠도 청할 겸 책자를 넘겼다.



[헌터 관리자 교육일정 및 방법을 위한 계획보고]


라는 심란한 제목을 가진 책의 목차쯤을 넘겼을 때였다.

다시 벌컥 문이 열리고 아까 나갔던 직원들이 돌아왔다.

저마다 수레를 하나씩 밀고···.


그들이 가져온 수레에는 책과 서류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딱히 설명이 없었기에 그냥 맨 위에 올려져 있는 서류를 들쳐보았다.



[게이트 발견 시 보안과 관련한 990가지 프로토콜]

[헌터 노출에 따른 단계별 예상 피해와 그에 필요한 추가 예산 확보의 서브 방안 : 현장 예산 재정비 규정의 부록 제13번]

···.



제목만 보아도 심상치 않았다.


혹시하는 생각으로 설치된 PC를 켜자 2080개의 동영상 파일이 들어 있는 바탕화면의 폴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동영상 수업인 거냐? 저것들은 교재들이고?’


어쩌라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자, 때마침 다시 문이 벌컥 열리고 엄청 큰 텀블러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담아온 김비서가 재등장했다.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인 듯, 그녀는 들고온 텀블러를 책상에 올려 두더니, 아무런 말도 없이 수레의 맨 위에 있던 두꺼운 서류를 구겨서 방금 연, 문 틈에 꽂아 고정시켰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끝없는 수레의 행렬이 모퉁이를 돌아, 내 방으로 밀려들었다.



서류, 책, 서류, 책책, 서류, 책책, 마이크, 첵···.


공간이 부족해지자, 그들은 새로 들어오는 서류와 책더미를 내 운동기구와···.

‘아저씨 거기는 안돼!’ 내 킹사이즈 침대 위까지 올려 쌓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들입니다.”


김비서가 말했다.



“우선 동영상을 이용해서, 가장 기본적인 국제 협약과 민간 협약 사안을 중심으로 1차 교육자료를 준비했습니다. 두 달 동안 전부 외우고 파악하시면 됩니다. 마무리되시면, 게이트와 헌터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 드릴 거고, 그 다음에는 실무와 관련된···.”


고저 없는 기계적인 톤으로 이어가는 김비서의 말을 끊고 물었다.



“이 많은 걸 두 달 안에 읽으··· 아니, 외우라고요? 그게 가능해요?”


나의 질문에 김비서가 나를 올려다보더니 두 눈을 크게 한 번 깜빡거렸다. 마치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듯한 표정이다.



“저기 있는 ‘평시 헌터관리자의 비관리적 활동에 관한 아시아권 민주국가들의 협약 제4부’에 보시면 12쪽 8번째 줄부터 시작하는 3조 6항 2목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 관리자는···.

아니요. 그 뒤편에 있습니다. 초록색 테이핑 된 거. 그거 맞습니다···.

계속 이어서 설명 드리면, 3조 6항 2목에···.”


김단비 비서가 그녀의 거짓말을 확인해 보려는 나에게 친절하게도 원문 자료의 위치까지 알려주었다.


김단비씨. 당신도 천재인 것입니까? 혹시 멕케인이라는 거대 피라미드 제국의 희생자인 것입니까?



나는 그 이후에도 몇 가지 법 조항을 더 들먹이며 나에게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돌아가려는 그녀를 붙잡고 물었다.



“진짜 두 달 안에 외워야 하는 게 맞는 거죠? 놀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가져다 드린 건, 정현곽 관리자님 외에도 모든 록고 직원들이 필수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만 추린 것입니다. 여기 있는 서류와 책을 전부 외우시는 것은 아니지만, 수업을 들으시다보면, 필요할 자료들도 있어서 많아 보이시는 겁니다.”


그··· 그렇지?



“대충 여기의 절반 정도만 외우시고, 나머지는 종류별로 정리해 두었다가 필요하실 때만 찾아보실 것을 추천 드립니다. 그럼.”


쌀쌀맞고 단아한 김비서가 스토퍼 대용으로 끼워 놓았던 서류뭉치를, 가는 발목이 돋보이는 구둣발로 차 버리더니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그녀가 닫은 하얀 문 위로 유진의 톡톡이 떠오른다.


[형, 관리자 그거 힘들어, 그냥 게이트나 가자. 괴물 잡는 게 제일 쉬워]



범재인 나는 며칠동안 고민한 끝에, 의기소침해진 얼굴로 다시 멕케인을 찾았다.


“오우, 현곽펑. 얼굴이 왜 그래요? 혹시 김비서가 커피랑 영양제 안 가져다줍니까? 그거 영양제, 김네균씨라고, 나름 제약회사를 운영하시는 헌터가 제조한 거라 효과가 좋을 텐데···.”



하지만 처음 배짱을 부렸던 것과 달리, 못하겠다는 말을 하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퇴사를 할 경우, 지금까지 사용한 업무추진비를 뱉어내라고 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연기하며, 김비서를 지나쳐 대표실로 들어선 것이다.



“현곽씨, 혹시 고작 서류 조금 읽으랬다고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 건 아니죠? 아닐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 제대로 된 관리자를 만나지 못해, 죽거나 미쳐가는 헌터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 브루스 메케인은 매일 올라오는 그러한 보고서를 볼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십년 넘게 몸 쓰는 일만 해서 공부 머리는 굳을 대로 굳은 내가, 20년 전의 대학생인 나도 감당 못할 정도의 서류더미다.


이게 맞다···. 쪽팔리지만, 이게 맞다.

적당한 핑계 거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인다?


내 표정을 미리 읽고 나를 설득하려는 멕케인의 등 뒤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그것은, 김교수님의 메시지창이 분명했다.



------------------------------

시스템 모델 : 김교수


김교수의 과제 : 군대 갑시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특권, 낭만캠프!


그곳에 가면 다양한 추억과 신선한 경험,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잔뜩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즉시, ROKGO의 대표인 Bruce McCain에게 군입대를 요청해보세요.


당신의 청춘은 서류더미에 파묻히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제한시간 00:03:14



···이하생략.

------------------------------



이게 말이야 똥이야? 엉클 쌤, 아이원츄 외치고 자빠졌네···.



김교수님의 메시지창을 읽자마자 나는 너무 당황해 멕케인이 있건 말건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군대라늬···. 내가 군대라늬···.



김교수님. 이게 오해나 착오가 있으신 거 같은데, 제가 앞으로 2년만 버티면, 아버지가 지방 시의원이 됩니다. 그럼 군대를 안가도 돼요.


아니, 그 전에 군대는 당장이라도 이 양반한테 말하면, 얼마든지 빼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군이 사단병력급입니다. 거의 투스타라고요.

이등병이 투스타 쪼인트 까는 거, 꼭 보셔야겠습니까?


보여드려? 엉? 보여드려? 나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이어지는 김교수님의 과제 메시지를 마저 읽어본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멕케인에게 말했다.


“멕케인 대표님. 저 군대 갑니다. 아니, 군대 갑시다. 꼭 가고 싶습니다. 안 보내주시면 퇴사합니다!”



------------------------------

···이상생략.


평가기준 :

1. 현역병으로 군입대를 할 경우 실패.

2. 성공 시 후속 과제 제공.


미제출시 :

1.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재수강을 해야 합니다.

2. 재수강시 매우 높은 확률로 입대가 미루어져, 5개월동안 서류에 시달리거나, 해병대로 입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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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입대를 하면, 과제 실패란다. 김교수님의 안배 클래스··· 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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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7화. 살인(5) 24.08.29 10 0 13쪽
46 46화. 살인(4) 24.07.04 14 0 12쪽
45 45화. 살인(3) 24.07.03 15 0 13쪽
44 44화. 살인(2) 24.07.02 16 0 13쪽
43 43화. 살인(1) 24.07.01 16 0 12쪽
42 42화. 히전죽. 24.06.28 16 0 13쪽
41 41화. 깡패와 운동화. 24.06.27 16 0 14쪽
40 40화. 게이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헌터. 24.06.26 18 0 15쪽
39 39화. Sniper in a Room 24.06.25 16 0 14쪽
38 38화. 비밀스럽고 으슬으슬한 비서. 24.06.24 16 0 13쪽
37 37화. 운태연의 목소리. 24.06.21 17 0 14쪽
36 36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11) 24.06.20 17 0 15쪽
35 35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10) 24.06.19 18 0 12쪽
34 34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9) 24.06.18 18 0 14쪽
33 33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8) 24.06.17 20 0 15쪽
32 32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7) 24.06.14 18 0 13쪽
31 31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6) 24.06.13 19 0 13쪽
30 30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5) 24.06.12 23 0 12쪽
29 29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4) 24.06.11 19 0 13쪽
28 28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3) 24.06.10 22 0 14쪽
27 27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2) 24.06.09 20 1 16쪽
26 26화. 나가실 때 꼭 말씀해 주세요. 24.06.08 23 2 17쪽
25 25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1) 24.06.07 26 1 16쪽
24 24화. 미소년과 소드마스터. 24.06.06 25 2 15쪽
» 23화. 군대갑시다. 24.06.06 23 2 13쪽
22 22화. 멕케인의 피라미드 제국. 24.06.06 20 2 14쪽
21 21화. 단아한 비서, 김단비와 멕케인의 넥타이. 24.06.06 21 2 12쪽
20 20화. 개와 여우 그리고 사자. 24.06.06 22 1 11쪽
19 19화. 이순신장검과 전투기 그리고 나의 엉덩이. 24.06.06 28 2 12쪽
18 18화. 닥터 주학문과 애스널, 퍽홀. 24.06.05 2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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