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미소년과 소드마스터.

불혹의 재수강. 24화. 미소년과 소드마스터.
멕케인은 너무 당연하게도, 내게 군 입대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장 배우고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니, 오히려 록고 직원들에게는 군을 면제해주는 것이 혜택이란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르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아들로 태어나···.”
“그럼 그럽시다.”
어라? 이렇게 쉽게?
저기요? 멕케인씨. 제가 조금 흥분해서 너무 강하게 말한 것 같은데···.
이게 당신이 끝까지 반대를 해서, 저 서류더미에서도 벗어나고, 내가 군대를 안가는 것으로 결론이 나야 과제가 성공하는 거거든요?
“이토록 원하신다면 가셔야지요. 군대.”
당신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야? 한 나라의 헌터들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으면, 뚝심 있게 자신의 고집도 좀 부릴 줄 알아야지.
이러다 내가 죽으라면 죽겠어, 엉? 보증 서 달라면 바로 인감부터 찾으시겠어? 참 나.
“원래 현곽씨의 다음 겨울 방학에 맞춰 생각하고 있던 것인데···. 예정보다 빨리 진행 해야겠네요.”
뭐야. 당신 처음부터 나 군대 보낼 생각이었어? 그렇게 안봤는데···.
“단, 현역병은 안됩니다. 절대로 안 돼요. 록고 직원인 것을 떠나서 헌터가 일반 군부대의 지휘를 받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대신, 각성자위탁교육기관으로 하죠.”
***
그렇게 나는 아직은 게이트 경험이 없는 각성자들을 모아, 위탁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부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오늘 아침구보는 4km 산악 구보로 한다. 각 소대장들과 조교들의 인솔하에 1소대부터 뛰어···. 갓!”
“아씨··· 아침부터 산악구보야···.”
“박준장이 당직이면 무조건 산악구보지···. 뻔한 거 아냐?”
“대체 원스타가 삼일마다 당직을 서는 부대가 어딨어? 내가 아빠한테 말해서···.”
“닥쳐, 말포이.”
다들 불만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이 아직 어려서 그럴까?
입으로는 불평불만을 내뱉어도 또 보면, 시키는 것은 다 하고 있다.
아니, 나도 군소리 없이 하고 있는 걸로 보아, 어려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들은 벌써 한달이 넘게 훈련소 생활을 함께하고 있는 동기들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이론교육, 무기교육, 전술훈련과 특기적성교육.
이렇게 게이트에서 보다 안전하게 싸우고 생환할 수 있도록 하는 지식 외에도 앞으로 일반인들과 섞여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화교육이나 제도교육도 함께 가르치는 것이다.
비록 나는 중간에 합류하여 다른 부대원들과 서먹한 관계에 있었지만, 생각보다는 잘 적응하고 있었다.
어쩌면 군대 체질이 아니었을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점만 빼면, 별로 불편한 점이 없었다. 특히 이 아침 구보.
하악하악. 허억허억. 아흣.
예비 헌터들 답게, 일반인보다 빠른 속도로 100미터쯤 달려가면, 슬슬 숨이 거칠어지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그때부터 속도를 높였다.
나는 빨랐다. 아니, 조오오오온나 빨랐다.
현과기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4km? 유령개를 피해 도망쳤던 거리에 비하면 순수 산만 놓고 봤을 때, 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거기에 지금의 나는 운동증진효과(LV99. 예상)로 인해,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달리기 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대의 산악 구보 코스라는 거, 군인들 체력단련용으로 완만하게 다져 놓은 길이니, 그때와 비교하기도 민망할 수준이다.
“먼저 가겠습니다. 먼저 갈게요. 죄송합니다,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통과해 앞서 나가다 보면, 젊음의 혈기 때문인지, 호기롭게 나의 뒤를 따라 속도를 높이는 부대원들이 하나 둘 나온다.
첫날에는 나도 눈치를 보느라 얌전히 열을 맞춰 달렸지만, 제자리 뛰기 하는 것도 아니고···.
내무실로 일찍 돌아가면 그만큼 더 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다음날부터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속도를 올려, 내가 먼저 튀어 나갔다.
그러자 조교들이나 소대장들부터 자존심이 상했는지 속도를 덩달아 높였다.
500여미터를 악착같이 따라오던, 조교와 소대장들은 뒤늦게 자신들이 오버 페이스였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속도를 줄여 뒤쳐진 훈련생들을 챙겼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소대에 관계없이 헌터 훈련생들 중 체력에 자신이 있는 친구들만 내 주변에 남는다.
대부분 순수 육체계열이다.
아침 구보때에는 회복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교육하기 때문에, 초능력 계열의 훈련생들은 나서지 않았다.
하아 하아..
산을 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육체계열 중에서도 점점 자신의 페이스를 잃고 뒤로 처지기 시작하는 사람이 나온다.
산악구보라고 해도 등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완만한 산길을 달리는 것이기에 내리막의 개념이 없다. 따라서 속도를 줄일 이유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코스의 중간을 넘기면서 다시 한번 속도를 높였다.
사흘째 되는 날부터는 이렇게 달려도 숨조차 가빠오지 않았다. 다른 육체파 훈련생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며 달리고 있었다면, 나는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풍경을 구경하는 아침산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윤태진. 순수 육체파 예비 전사계열로 매일 마지막까지 내 뒤를 따라오는 훈련생이다. 시스템 보정 덕분인지 처음에는 나와 거의 동일한 페이스로 마지막까지 달렸던 훈련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스템과 나의 시스템은 초능력을 제외하면 성능 차이가 심했다. 그녀가 완만하게 성장하는, 참 정직한 시스템의 선택을 받았다면, 나는 그냥 사기 그 자체였다.
운동증진효과를 처음 적용 받았던 유령개와의 달리기 40분만에 이미 일반인의 두배 이상의 달리기 능력을 가지게 된 나였다. 그런 내가 매일 아침 꾸준한 달리기 운동을 하고 있다니···.
이제는 당장 마라톤에 나가도 한시간 안에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도착 후 숨도 고를 필요 없이.
“나 먼저 간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뭐 알아서 잘 하겠지만.”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전력질주에 가깝게 달리기를 하고 있는 윤태진의 어깨를 두드려준 후, 속도를 다시 높인다. 남은 구간동안 지치지 않을 최고 속도로 뛰는 것이다.
뒤에서 악에 받혀 인상을 쓰는 윤태진이었지만,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어색했던 첫 입소 날에 먼저 와서 사물함 정리도 가르쳐주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하나 둘 알려준 것이 그녀였다. 단지 승부욕이 조금 있을 뿐이다.
내무실로 돌아온 나는 아무도 없는 시간을 이용해 편하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러면 온 몸이 땀으로 젖은 윤태진이 내무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다.
“너무 무리하지 마. 우리가 괴물들하고 올림픽 할 것도 아니고. 달리기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인 윤태진은 질끈 묶었던 머리를 풀어 헤친 채 계속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고, 나는 누워있는 그녀에게 주전자로 떠온 물을 컵에 담아 내밀었다.
두번째로 내무실에 들어오는 사람은 박광수. 직업은 총기술사다. 30 후반으로 보이는데 탈모가 심하다.
사용하는 무기의 총탄이 운동능력을 전부 소모하면, 다시 탄창으로 소환되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총알이 아니라 머리카락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엄밀히 말하면 초능력자인건데, 시스템을 잘 만났는지 육체능력도 발군이다. 쉽게 말해 완벽한 5각형형 능력자다. 6각이 아닌 이유는··· 이미 말 했으니, 다시 말하지 않겠다.
그냥 빨리 작전에 나가 돈을 벌어서, 반드시 헌터표 발모약을 구입하자.
“형, 물 드세요.”
“어, 그래. 맨날 고맙다.”
내무실 최고 어른 답게 예의도 바르고, 타의 모범이 되는 분이다. 하지만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아 분대장은 윤태진에게 양보했다고. 나이를 떠나 내무실에서 내가 유일하게 존대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세번째로 들어오는 사람은 고유환.
가끔 점호시간에 당직사관이 성을 붙여 이름을 빠르게 말하면 웃음 지뢰가 깔린다.
특기는 변신이다. 동물로는 전부 변신이 가능했는데, 단점은 자신이 죽인 동물로만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본인이 죽이기만 했다면, 종에 제한은 없는 것 같았다.
각성하고 처음으로 변신한 것이 모기였다는데···.
자신의 어머니 손에 맞아 죽을 뻔했다는 슬픈 첫경험을 가지고 있다.
“너도 물부터 마셔.”
“으.응.”
조금 내성적인게 흠이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더 마음이 간다.
나보다 먼저, 한달이나 더 헌터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아직 반말 사용을 어려워한다.
변신하지 않았을 때에는,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원래대로면 다음 사람과 비슷하게 들어와야 했지만, 구보코스가 끝나면 즉시 새 bird로 변신해서 내무실 앞까지 날아온다.
변신을 할 때마다 체력이 완전 회복되기 때문에 산악구보 후에도 지친 표정은 없다.
그리고 슬슬 마지막 내무실 동기가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
쿠당탕 쿵탕.
복도에서 물건이 쓰러지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좀 하지 말라고!”
이어서 날카로운 외침도 들려왔다.
나와 같이 물을 나눠 마시며 내무실에서 쉬고 있던 일행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가보았다.
이미 막사 안 복도에는 큰 소리를 들은 다른 내무실 사람들이 하나 둘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쉽사리 내무실 밖으로 나오지는 않고 있다.
정수기 앞에 서 있는 두 남녀···. 아니, 두 남자.
한 명은 나보다 살짝 작은 키를 가진 병약해 보이는 단발머리 미소녀··· 가 아니라, 미소년. 대충 유진이 또래로 보인다.
다른 한 명은 나보다 살짝 큰 키에 야비해 보이는 아저씨다. 아니, 실제 나이는 20대 중반인데, 짧은 스포츠머리와 험악한 인상 탓에 아저씨처럼 보이는 거다.
“내가 뭘? 그냥 물 마시려는데 네가 앞에 서 있던 거잖아. 키키.”
비열한 웃음소리가 이미 악당이 누군지 말해주고 있지만, 아직 확신할 수 없으니 둘의 대화를 좀 더 들어본다.
“네가 방금 물 마시는 척하면서 또 내 엉··· 덩이 만졌잖아. 자꾸 그러지 말라고. 이 변태새끼야.”
“무슨 말이야? 그냥 스친 거지. 와··· 참 나. 졸지에 사람 이상하게 만드네?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뻔한 대사를 날리며 야비한 악당은 손가락 끝으로 미소년의 몸 여기저기를 계속 찌른다.
“이씨이···.”
미소년 쪽은 억울한지 주먹을 부르르 떨지만, 더는 어쩌지 못하고 떨기만 한다.
쯔쯔, 그래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 갈래···.
아마 복도에 나온 모두가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아니, 나설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정수기 앞에서 주먹을 떠는 미소녀와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본 훈련소는 훈련생들의 인성 문제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훈련생 사이에 폭력으로 인한 사고 발생 시, 관련자는 즉시 퇴소 조치 후, 형사처벌합니다. 형을 마친 후, 다시 입소합니다.’
헌터와 일반인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면, ROKGO가 나선다.
역사적으로 록고 소속이 아닌 경우도 있기는 했다지만, 대체로 기사와 마법사들은 항상 록고 소속이었다. 나와 같은 D급이라는 하층민 등급을 받은 헌터에게 주어진 권력만해도 준 대통령급인데, 기사와 마법사들은 어떻겠는가? 안 들어갈 이유가 없겠지.
그 말은 WGO나 ROKGO에게는 일반 헌터를 제압하고 처벌할 충분한 힘과 명분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반면, 군은 그렇지 못했다.
아침 점호 때, 별을 불태우던 박준장이야, 원래부터 군인인 상태에서 각성을 했고. 또 본인이 원해서 끝까지 군에 남는 조건으로 ROKGO 소속이 되었다지만, 여기 모인 다른 조교들은 아니었다.
수업때만 방문하는 강사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햇병아리더라도, 실제로 헌터들을 구속하거나 제압할 힘이 없는 것이다.
헌터 앞에 법이라···.
형사처벌. ROKGO가 개입하는 형사처벌이 무서워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들이 되는 건, 이런 훈련소 햇병아리들 또는, 그곳이 얼마나 지독한지 이미 알고 있는 유경험자와 나 같은 록고 관계자들뿐이다.
그럼 무서워하지 않는 부류는?
바로 저런 녀석들이다. 록고의 형무소가 사회의 일반 형무소처럼 물러터진 줄만 아는 일반 범죄자들.
나도 회귀 전, 소위 생활을 한다고 표현하는 조폭집단 밑에서 불법적인 일들을 안 가리고 해봤다. 그러다보니 저런 건달 또는 유사건달들과 많이 마주쳐보았는데, 우리네 생각보다 경험적으로 폭력범죄에 익숙한 그들은 범죄단체로 엮이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애초에 피해자가 유명인이나 권력자가 아니면 형량도 얼마 안 나오고···.
‘현곽씨는 안에서 사고치지 마시고, 그냥 캠핑 갔다 생각하고 마음에 드는 헌터들과 최대한 친해지세요.
어차피 훈련과정 마치고 본격적인 헌터 활동 시작하면 밝혀지겠지만, 가급적 그때까지는 관리자인 건 비밀로 하고 유대감을 쌓는 겁니다.
그게 그 친구들을 위해 현곽씨가 할 일입니다.”
입소하는 날까지, 멕케인이 신신당부한 내 유일한 업무였다. 헌터들과 유대감을 쌓아라.
근데, 저 꼬라지들을 보니, 도저히 못 참겠다.
내가 불의를 잘 참지 못하냐고? 아니다.
그럼 야비한 악당에게 당하고 있는 꼬맹이가 불쌍하냐고? 그것도 아니다.
근데 왜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혼자 복도로 걸어 나가는가?
얘들 하고 달리 나는 돈을 받았거든. 한달 1,770,800원.
사회에 나가면 말이야, 얘들아. 같은 일을 해도 프로랑 사기꾼이 어떻게 갈리는지 알아?
금액이 얼마가 되었든. 내가 그 돈에 만족을 하든 말든.
돈을 대가로 어떤 일을 해주기로 했으면, 죽어도 그 일은 해주고 나서 따지는 게 프로야.
복도로 걸어 나온 나는 실랑이하는 둘의 앞에 멈추어 섰다.
“뭐야? 왕자님 하고 싶어?”
놈의 비아냥대는 목소리는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내가 거슬리는 건···.
“야이, 어린놈의 새끼들아!”
그들을 지나쳐 복도 가운데에 선 나는 막사가 떠나가라 소리질렀다.
···.
그래서, 마지막 네번째 내무실 동기는 누구냐고? 여태 이렇게 긴 지문을 낭비한 걸 보면 모르겠나?
윤두광. 27세.
육체계열 전사이자 전직 영등포 조폭(본인 피셜).
직업. 소드마스터.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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