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5)

불혹의 재수강. 30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5)
응애애애애애···.
아이의 울음소리!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AVS조차 뚫고 트럭에 치인 것 같은 고통을 주었던 그것.
‘마시멜로맨이다.’
잠깐, 윤두광이. 위험해!
윤두광은 우리의 저지선을 지키지 않고 혼자 앞으로 튀어 나가 싸우고 있었다.
“돌아와, 윤두광.”
하지만 무아지경으로 힘에 취한 윤두광은 다급하게 외치는 내 말을 무시하고 모여 있는 또 다른 쌕쌕이를 베어 넘겼다.
콰아앙.
매장과 복도 사이의 벽이 무너지며 거대한 마시멜로맨이 지방질의 살점을 흘리며 나타났다.
놈은 저번 사당에서 처음 봤던 놈보다 더 커서 가뜩이나 높은 백화점 천장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다 피지 못하고 있었다.
마시멜로맨이 나타나자 쌕쌕이들은 주변으로 물러나며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 모습이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 바람에 놀란 윤두광이 혼자 마시멜로맨과 정면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돌아와!”
내가 다시 외쳤지만, 윤두광은 싸울 생각처럼 보였다.
힘에 취해 있는 것이 맞다.
“히얏! 네놈도 죽여주마!”
윤두광은 원래 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보랏빛 광기에 취했기 때문인지, 다짜고짜 연속으로 스킬을 낭비하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가 양손으로 휘두른 롱소드는 마시멜로맨의 살가죽만 겨우 긁어서 화만 돋울 뿐이었다.
콰아앙.
윤두광을 향한 마시멜로맨의 공격은 복도의 벽을 부수며 뒤에 있는 우리까지 위협했다.
다행히 내가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마시멜로맨의 행동은 많이 느렸다. 그것이 실제로 느려진 것은 아니고, 헌터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나의 반응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에잇! 칼이 안박혀.”
당연히 마시멜로맨의 방어력은 쌕쌕이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쌕쌕이를 한번에 베어 넘길 수 있게 된 초보 헌터가 칼 몇 번 휘둘러서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우리에겐 넓지만, 마시멜로맨에게는 매우 좁은 복도라 놈의 공격은 안쪽으로 물러선 우리에게 쉽게 닿지 않는다.
하지만 화가 난 마시멜로맨은 덩치에서 나오는 강한 힘으로 벽을 부수며 공간을 만들려 했다.
“짐은 버려. 그냥 계단으로 올라가!”
어느새 윤태진이 달려 나와 내 앞으로 나서려 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우리가 싸울 수 있는 놈이 아냐. 덩치 때문에 따라오지는 못할 테니까, 위층으로 올라가자.”
나는 윤태진을 뒤로 보내고 자신의 체력이 빠져나가는 것도 잊은 채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는 윤두광을 챙기기 위해 앞으로 달려갔다.
“야이 미친놈아. 정신 차려. 네가 위로 가서 길을 뚫어줘야 할 거 아냐.”
그래도 완전히 미친 것은 아니었는지, 괴성을 지르며 칼질을 하던 윤두광이를 한 손으로 붙잡자, 행동을 멈추고 상황 파악을 했다.
내 뒤편에는 체력회복을 위해 변신을 해제한 고유환과 박광수가 있었다.
“다들 가. 너도.”
마시멜로맨을 저지하려던 우리 넷은 다른 일행 모두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그들이 들어간 비상계단으로 달렸다.
빼꼼.
열려 있는 비상계단 문 틈으로 함정술사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아직 안돼.’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서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은 함정 설치가 끝났다는 뜻이겠지?
벽을 부수며 쫓아오는 마시멜로맨을 피해 네 사람이 비상계단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어린 함정술사를 한 손에 들었다.
아까 1층 에스컬레이터를 폭파시켰을 때 규모로 보면, 아무리 10여미터 이상 떨어진 복도라도 영향이 있을지 몰랐다.
쿠웅. 쿠웅.
단숨에 계단 반 층을 올랐을 때, 바로 문 앞까지 쫓아온 마시멜로맨의 벽을 부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놈이 비상계단 안쪽까지 들어오면, 함정 폭발로도 놈을 제지하지 못할지도 몰랐기에 소녀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젠장, 터트려.”
콰아앙. 콰앙.
계단을 오르던 중에 건물과 벽이 일제히 폭음에 맞춰 크게 흔들렸다.
충격에 살짝 다리도 풀렸다. 그래도 소리를 지르는 소녀를 놓칠 수는 없었다. 본인도 자신의 최대화력이 이정도인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풀렸던 다리에 다시 힘을 주고 계단을 마저 뛰어 오르려는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벽과 계단에 금이 가는 것이 느리게 눈에 들어왔다.
허··· 허공답보 虛空踏步!
···같은 게 될 리 있나.
계단이 무너져내리는 와중에 소녀를 위층으로 밀듯이 던진다.
‘아무나 받아라’
다행히 팔 하나가 위층 계단 틈으로 나와 내가 던져 올린 소녀를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대로 무너지는 계단과 함께 아래로 추락했다.
***
“으윽.”
계단 추락은 폭력의 연장으로 안 쳐주나? 아니면, 폭발 자체의 위력이 너무 컸나? 콘크리트 잔해를 밀치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온 몸이 고통으로 비명을 질렀다.
“다들 괜찮아?”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유환은 어느새 다시 늑대로 변신하여 충격으로부터 몸을 지킨 것 같이 보이고. 소드마스터 윤두광은 벽을 집고 비틀거리며 머리를 흔드는 것이, 가벼운 뇌진탕으로 보였다.
박광수는?
“광수형!”
첫 부상자가 발생했다.
여기저기 출혈이 있고, 한쪽 팔이 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갈비뼈가 부러졌거나 장기가 손상된 듯, 멀쩡한 팔로 몸통을 부여잡고 인상을 쓰고 있다.
힐러는 제일 먼저 위층으로 올라갔기에 1층으로 떨어진 우리와는 너무 멀리 있었다.
“위에 괜찮아?”
나는 4층으로 이동한 일행을 향해 외쳤다.
저쪽도 폭발의 충격에 많이 놀란 듯, 대답이 늦었다.
“어, 여기는 괜찮아. 아래는 어때?”
“광수형이 다쳤어. 나머지는 괜찮아. 우린 다른 길로 올라 갈게. 기다리고 있어.”
“여긴 4층 복도도 무너졌으니까, 5층으로 갈 거야. 5층으로 올라와.”
윤태진과 대화를 마치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드득.
3층 함정 폭발을 직접 맞았던 마시멜로맨은 제법 큰 충격은 받았지만 죽지는 않은 듯, 복도방향에 잔뜩 쌓여 있는 콘크리트 더미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가자.”
1층 계단 옆 벽이 무너져 다른 매장으로 이어진 작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형, 걸을 수 있겠어요?”
“으윽···”
대답보다 신음이 심상치 않았다.
‘나가면 분명히 쌕쌕이들이 또 있을지 모르는데···.’
그렇다고 옆에 죽지도 않은 마시멜로맨을 두고 계단에 숨어 있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다.
“둘이 앞장서. 내가 광수형을 부축할 테니. 싸울 수 있지?”
내 말에 대답도 없이 윤두광이 매장으로 나갔고, 늑대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틈으로 빠져나갔다.
“형, 아파도 참아요. 힐러가 5층에 있으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거기까지는 가야해요.”
돌아오는 대답은 꽉 깨문 어금니 때문에 들을 수 없었지만, 눈빛에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살겠다는 의지.
좋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좁은 틈을 비집고 가까스로 박광수를 꺼낸 후 화장품 매장으로 보이는 공간에 숨어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저 쪽.’
윤두식이 소리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말하며 손 끝으로 넓은 로비 반대편을 가리켰다.
오래된 백화점의 2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보였다.
문제는 1층 로비 여기 저기에 새로 건물로 들어온 쌕쌕이들의 숫자가 제법 되는 거였다.
“내··· 내가 유인해볼게.”
어느새 사람으로 돌아온 고유환이 말했다.
곰으로 변신한 상태에서 사람처럼 말을 하는 변신술사의 영상을 본 적은 있는데··· 경험치를 충분히 모으면, 박광수도 동물 상태에서 말을 할 수 있는 거겠지?
“할 수 있겠어?”
복도에서의 전투에서 봤을 때, 싸워 보겠다고 몸 사리지 않고 달려드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쌕쌕이 한 마리도 제대로 상대하기 힘든 고유환이었다.
“전부는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왼쪽편에 있는 것들만 유인해서 입구 있는 곳까지 갔다가 바로 계단으로 갈게.”
“그럼 내가 오른쪽으로 돌면서 나머지를 잡으면서 갈 테니까, 너는 꼰대랑 같이 직선으로 가.”
응애애.
터더덕.
콘크리트에 깔린 마시멜로맨의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는 듯하다.
“그럼 유환이가 제일 가까이에 있는 놈을 유인하면 그때 다 같이 출발하자.”
내 말에 고유환이 다시 순식간에 늑대로 변신하더니 화장품 매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크엉”
늑대가 달려 나가며 앞발로 쌕쌕이 한 마리의 등을 긁고는 그대로 멈추지 않고 지그재그로 달리기 시작했다.
“가자.”
윤두광이 역소환 되었던 롱소드를 다시 꺼내들고 달려 나갔고, 나는 박광수를 업었다.
부상을 입은 부위가 갈비뼈나 장기가 맞다면 고통이 상당할 것이었지만, 죽지만 않으면 된다.
게이트 안에서 건, 밖에서 건 힐러만 만나면 외상은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었다.
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한 손에는 봉 상태의 장도를 손에 쥐고 박광수를 업은 채 로비를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반대편 계단에 도착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고유환이 전력질주로 계단에 도착해 뛰어 올랐고, 다행히 이번에는 윤두광이도 싸움에 정신 팔리지 않고 남은 쌕쌕이들을 그대로 두고 계단으로 따라왔다.
반 층을 올라 몸을 꺾자 폭발 잔해를 해치고 일어서는 마시멜로맨이 눈에 들어 왔다.
2층으로 올라서자 많은 수의 쌕쌕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올라온 계단이 2층까지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윤두광과 고유환이 바로 싸움을 시작했다. 계속 싸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른쪽 끝 매장 뒤로 또 다른 비상계단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저쪽으로. 비상계단.”
‘나도 싸워야 하나?’
둘이 감당하기에는 넓은 2층 로비에 쌕쌕이들이 너무 많았다.
“먼저 가라. 바로 뒤따라 간다.”
윤두광이 세 놈의 쌕쌕이에게 계속 칼을 휘두르며 외쳤다.
‘그래, 일단 비상계단까지만 가서 박광수를 내려 놓고 합류한다.’
둘의 싸우는 소리를 뒤로 하고 비상 계단을 향해 달렸다. 길게 뻗은 로비 끝까지 달려 모퉁이를 도니 비상계단 철문이 보였다.
나는 박광수를 바닥에 내려 놓고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요. 애들만 데리고 올게요.”
오늘 이 게이트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내 자신에게 했던 약속이다.
첫 게이트 생환율 80%? 개나 주라고 해. 오늘은 아무도 죽지 않는다.
모퉁이를 돌아 다시 로비로 나오자 그 짧은 시간에 쌕쌕이들의 숫자가 늘어나 있었다.
나는 내 앞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쌕쌕이 한 놈의 뒷목을 붙잡고 장도로 긁으며 외쳤다.
“이제 그냥 와.”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베고 또 베어도 쌕쌕이들은 잘 죽지 않았고, 셋 아니, 사실상 나와 윤두광 둘의 화력으로는 이 많은 괴물들을 모두 죽이면서 길을 만들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콰앙!
1층 로비에서 화가 난 마시멜로맨의 주먹이 2층 로비를 올려치자 땅이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길이···’
무너진 로비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는 윤두광과 고유환이, 이편에는 나와 한 마리의 쌕쌕이가 남았다.
“먼저 가. 다른 길을 찾아본다.”
마구 휘두르는 마시멜로맨의 주먹질을 피해 쌕쌕이들을 밀치고 베며 반대쪽으로 이동하는 윤두광이 외쳤다.
“젠장.”
저들을 돕기 위해 로비 반대방향으로 돌아 가자니, 비상계단 앞에 두고 온 박광수가 걸렸다.
“반대편으로 가면 에스컬레이터가 하나 더 있어! 그쪽으로 올라와!”
내 목소리가 윤두광에게 도달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마시멜로맨에게는 들린 것 같았다.
놈의 주먹이 이번에는 그들이 아닌, 내 쪽의 1층 천장을 뚫고 올라왔다.
안타깝지만, 나는 일단 부상당한 박광수를 책임져야 한다. 반대편에는 이 곳보다 쌕쌕이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소드마스터를 믿는 수밖에.
나는 다시 쳐 올라오는 마시멜로맨의 주먹을 피해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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