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재수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샘이잔나
작품등록일 :
2024.05.28 02:21
최근연재일 :
2024.08.29 16:27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927
추천수 :
88
글자수 :
281,828

작성
24.06.19 11:15
조회
19
추천
0
글자
12쪽

35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10)

DUMMY

불혹의 재수강. 35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10)





짝짝짝짝짝.



1조의 게이트를 공략하고 나왔을 때, 상황실과 주변은 몹시 흥분해 있었다.


빠른 공략으로 사망 0명에 부상 1명. 그 부상도 경미한 정도.

물론 양손 모두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가 경미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저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작전 상황실의 의료진에 의해 즉시 치유 가능한 외상이었기에 보고서에는 경미하다고 기록되었다.



“힐러! 빨리, 빨리!”


하지만 나는 감격에 겨워 흥분한 분위기를 무시하고 즉시 부러진 팔부터 힐러에게 내밀었다.



“안쪽에서 보스는 어떤 거였습니까? 총 시간은 얼마나 걸렸죠?”


치료를 받는 내 옆으로 달려온 ROKGO의 기록직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바깥 경과시간부터 말해. 얼마나 지났어?”


나를 의료대에 눕히려는 또 다른 의료진을 밀치고 3조의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직원에게 물었다.


“정확한 시간은 녹화영상을 기준으로 분석해야 하지만, 일단 1분 30초대입니다.”



좋다. 다행히 재수강 전과 공략 시간이 동일했다.


그 말은 1조와 3조 사이의 게이트 폐쇄 시간 차이는 2분 30초 라는 뜻. 쌩큐글라스 증강현실에 화면을 띄우자 남은 시간 1분이 떠올랐다.



“됐습니다. 여기까지만 할게요.”


나는 실력 좋은 힐러의 치유로 다시 오른손에 주먹이 쥐어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들을 물렸다.



“다른 사람보고 들어가라고 하고 좀 쉬어.”


잔뜩 굳은 표정의 멕케인과 얘기를 나누다 말고 내게 다가온 유진이 나를 붙잡았다.


“괜찮아. 안에서 인국이형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1분 안에 나올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나는 내 주변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뒤로 하고, 아직 열려 있는 3조 게이트에 손을 내밀었다. 설명은 다녀와서 하면 된다.





***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에서는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가던 명품 매장에 보급상자를 깔고 앉은 천인국이 혼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매장 입구 로비 앞에는 여덟 명의 훈련생들이 조를 나누어 한두마리씩 다가오는 쌕쌕이들을 협력해 사냥하는 중이었다.



“형, 얼마나 기다렸어요?”

“한시간 좀 안된다. 백화점 내부의 괴물은 전부 정리했고, 밖에서 들어오는 것들은 일단··· 두고 있다.”


천인국이 매장 앞에서 싸우고 있는 훈련생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번 4개 게이트 동시 공략의 맹점은 헌터들이 앞으로 실전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나로 인해 3조의 공략은 게임처럼 간단한 놀이로 전락해 버린 것 같아 찝찝했다.


그렇다면 난이도를 높여 주어야겠지?



“자, 3조는 지금 즉시 백화점 밖으로 이동해 새로운 전략 거점을 찾는다. 소형 괴물의 경우 자유롭게 교전하되, 중대형 괴물을 발견할 경우 즉시 퇴각한다.”


“네가 뭔데, 명령이야?”


보랏빛 세상, 역시나 자잘한 전투 승리에 도취된 녀석이 있었다. 윤두광의 롱소드보다 더 큰 대검을 들고 있는 육체계 헌터였다.


“나?”


생각해보니, 난 이들에게 뭘까?



고개를 돌려 천인국을 보았으나, 그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에는 임무가 있었으니, 훈련생들을 참교육도 시키고, 물어보는 것에 답도 해주고 했지만, 애초에 일반 헌터는 마법사나 기사들에게 관심 밖의 존재들이었다.


경험 많은 헌터들 중에 A급이나 S급까지 성장한 이들은 종종 기사나 마법사들에 버금가는 전투능력을 가지기도 한다고 들었지만, 99%의 헌터들은 마법사의 입장에서 볼 때 게이트 안의 ‘걸어다니는 것들’과 별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WGO가 수 세기동안 질서를 잡아 주지 않았다면, 힘에 취한 헌터들 따위 기사와 마법사들의 사냥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알아서 하라는 눈빛.



“나는 대한민국 게이트 기구, 헌터 관리팀장 정현곽이다.”


내 직책에 팀장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2차장실 헌터 관리팀에 소속된 사람이 나 하나뿐이다. 따라서 내가 곧 팀장이자 막내다.



“즉, 내가 니들 대장이란 뜻이다.”


물론 내게 헌터들 대장이 되라고 한 사람은 없다. 근데 지금 상황에 ‘내 말을 들으세요.‘ 하고 딱히 내세울 것이 없다. 이럴 때는 그냥 경험 많고, 힘 센 놈이 대장을 하면 되는 거다.



“하, 어이가 없네. 공무원이냐? 시발. 맨발의 아베베가 어디서···.”


비아냥대며 다가오던 그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나의 한 손에 목 울대가 잡혔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힘을 주면, 헌터고 민간인이고, 기도가 막히거나, 목뼈가 부러져 죽을 수 있다. 아니, 죽는다.



“이익!”


상대가 팔에 힘을 주며, 대검을 휘두르려 해서 나는 왼손으로 그의 대검을 쥔 손목을 잡아 그대로 분질러 버렸다.


“으악.”


놈의 목을 놓자 대검의 헌터는 바닥에 주저앉아 비명을 지른다.


나는 지금 나의 성장 속도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빠른 지 깨달은 상태다. 비록 상태창은 없지만, 마시멜로 맨과 싸우면서 느낀 것이, 적어도 쌕쌕이 정도는 무기가 없어도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힐러 있나?”


지켜보던 다른 훈련생들이 고개를 젓는다.


“그럼 대충 보급상자에서 의약품 꺼내서 치료해줘. 그냥 둬도 상관없고.”


그 말에 몇 명이 잽싸게 달려가 보급상자를 뒤적거린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제 유진과 천인국이 했던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현곽이형, 말로 하지 마. 원래 처음 각성하면 형하고 달리, 다들 자기들이 최곤 줄 알아. 그럴 때는 좀 맞아야 해. 그래야 정신차려···.’



윤두광처럼 자기 힘에 취해 날뛰다가는 어차피 죽고 만다. 특히 혈기왕성한 어린 친구들일수록 갑자기 강해진 힘 때문에 세상의 질서가 자기 발 아래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이거 필요 없지? 내가 좀 쓴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놈의 대검을 집어 들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큰 칼 하나만 있었어도, 마시멜로 맨과의 싸움에서 양 팔이 너덜해지도록 치열하게 싸울 필요가 없었다.



“다 됐나? 나 이제 가도 돼?”


천인국이 다가와 내게 물었다.


“그 전에 혹시, 베리타스라고 적혀 있는 그래피티 본 적 있어요?”

“그래피티? 모르겠는데.”


정말 모르는 눈치다. 길게 설명하기도 어려우니 그냥 넘긴다.



“형, 나가서 북쪽으로 가면 돼요. 대충 3km 정도 떨어진 곳에 바실리스크 라이더가 있을 건데, 더 멀 수도 있고···.”


내 말에 천인국은 대답도 없이 백화점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재수강 전에는 그래도 보스를 찾으러 나가기 전에, 바깥 괴물을 유인해 주겠다느니, 조심하라느니 따위의 나름 다정한 말을 해줬었는데···.


이제는 그런 배려가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별 말이 없이 떠난다. 괜히 인정받은 것 같아 한편으로 이게 더 기쁘기도 하고.



“너희는 무기만 챙겨서 백화점 밖으로 나가. 30분 정도면 끝날 거라서, 성장 기회가 많지 않다. 열심히 싸우고, 마시··· 아니, 애기처럼 우는 덩치 큰 비계덩어리를 만나면 무조건 다시 백화점 쪽으로 도망쳐라.”


나는 말을 남기고 백화점 안을 달리기 시작했다.




마석은 7층 식당가에서 발견했다. 세이버워치로 회수하는데 밖이 소란스러워 살짝 무너진 벽으로 내다봤더니 마시멜로맨에게 쫓겨 도망다니는 훈련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맨 뒤에서 부러진 팔을 붙잡고 애처롭게 달리는 녀석을 보니, 맨발의 아베베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7층에서 단숨에 뛰어내려 마시멜로맨의 등 위로 대검을 박아 넣고 싶었지만, 아직 내 능력이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 그냥 계단을 이용해 내려갔다.


결국 경미한 중상자 세명이 발생했지만, 두번째였던 3조의 게이트도 사망자 없이 공략을 성공했고, ROKGO의 지휘부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아직까지 멕케인에게 약속했던 생환율 100%를 달성 중이었다.



다음 2조 4조 게이트 공략까지 한 시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기에, 나는 백화점 옆 호텔에서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 입었다.


자신의 차에서 혼자 쉬고 있을 천인국을 두고, 유진이 기다리는 백화점 커피숍으로 이동하며 매니저의 매니저 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씀하세요.]


자꾸 듣다보니 차가운 그녀의 말투도 정이 가기 시작한다.



“현장에서 무기를 구할 수 있나?”


[커스텀 되지 않은 기본 제식 무기는 예비용으로 지휘부가 현장에서 보관중에 있습니다. 어떤 것을 원하시나요?]


“큰 거. 장검이나, 대검 같은 것이 좋겠는데. 이순신장검? 뭐 그런 것도 괜찮고.”


[현재 듀플렉스계 스테인리스로 제작된 장검이 재고 목록에 있습니다. 이것으로 하시겠습니까?]


듀플 머시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계속 쓸 일은 없을 거라 마시멜로 맨만 죽일 수 있다면 아무거나 좋았다.


“그걸로 할게.”


[게이트 입장하실 때 가져가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더 시키실 일이 있을까요?]


“몇 살이야?”


딸깍.


음, 내 질문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휴식시간을 보내고 4조의 게이트 앞에 서자, ROKGO 요원 하나가 내게 다가와 장검을 건넸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이번에도 믿겠습니다.”



이, D급 헌터 출신 공무원은 무엇을 알고 믿겠다고 하는 것일까? WGO와 나는 모두 훈련생들의 전원 생환에는 사실 큰 욕심이 없다.


아니, WGO와 달리, 나는 게이트 안에서 사람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은 나 역시 WGO의 생각이 어느정도 이해가 가고 있었다.



아무도 죽지 않으면,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모두가 잊고 만다.

남은 두 개의 게이트 앞에 모인 2조와 4조 훈련생들의 지금 표정이 그랬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들떠 있다.

곧 괴물을 사냥하고 빠른 성장을 할 것이라는 기대로 흥분해 있다.

이들은 게이트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앞선 두 조를 향한 박수세례에 취해 있었다.



이래서는 기껏 게이트에 들어가 배울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2번 게이트 앞에 서 있는 천인국을 조용히 불렀다.


“형, 이번에는 기다리지 말고, 바로 할 일 해요. 아까는 제가 괜히 나선 거 같아요.”


천인국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글라스 아래로 입술 끝이 움직이는 것이, 아마도 내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웃는 것 같았다.



‘혹시, 진짜 보증도 서주려나···.’


멕케인이 나를 ROKGO에 끌어들인 이유로 했던 말이 자꾸 떠오른다.



함께 작전 준비를 하면서 본, 기사와 마법사의 모습은 타인으로부터 통제나 지시를 받거나 부탁을 들어줄 사람들이 아니었다.


애초에 괴물들과 싸우기 위한 인외의 존재들이었다. 우리 같은 헌터나 WGO는 단지 편이 같을 뿐.


압도적인 무력이 남아돌아도 결코 먼저 나서서 다른 헌터를 돕지 않는다.



“유진이 너도. 먼저 들어가서 바로 출발해. 뒤는 내가 알아서 할 게.”


내 말의 어디가 그리 좋은 지, 큰 입으로 씨익 웃는 유진이다.



[2조, 4조 게이트 입장합니다!]


다시 긴장한 통제실에서 작전 시작을 알려왔다.


내가 말한 게 있으니, 아무도 죽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풍이나 게임은 없다. 그리고 퇴로도 없을 것이다.



‘살고 싶으면 각자 최선을 다해서 싸워라. 안에서 건 밖에서 건, 싸움을 멈추면 어차피 죽는다. 싸워라.’


나는 유진을 따라 해맑게 쳐 웃고 있는 나머지 헌터 훈련생들에게 속으로 격려했다.


그리고 먼저 입장한 유진을 따라, 내 몸통만 한 4번 게이트에 손을 뻗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불혹의 재수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7 47화. 살인(5) 24.08.29 13 0 13쪽
46 46화. 살인(4) 24.07.04 15 0 12쪽
45 45화. 살인(3) 24.07.03 16 0 13쪽
44 44화. 살인(2) 24.07.02 17 0 13쪽
43 43화. 살인(1) 24.07.01 17 0 12쪽
42 42화. 히전죽. 24.06.28 17 0 13쪽
41 41화. 깡패와 운동화. 24.06.27 18 0 14쪽
40 40화. 게이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헌터. 24.06.26 20 0 15쪽
39 39화. Sniper in a Room 24.06.25 17 0 14쪽
38 38화. 비밀스럽고 으슬으슬한 비서. 24.06.24 17 0 13쪽
37 37화. 운태연의 목소리. 24.06.21 18 0 14쪽
36 36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11) 24.06.20 18 0 15쪽
» 35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10) 24.06.19 20 0 12쪽
34 34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9) 24.06.18 19 0 14쪽
33 33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8) 24.06.17 22 0 15쪽
32 32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7) 24.06.14 19 0 13쪽
31 31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6) 24.06.13 21 0 13쪽
30 30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5) 24.06.12 24 0 12쪽
29 29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4) 24.06.11 20 0 13쪽
28 28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3) 24.06.10 23 0 14쪽
27 27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2) 24.06.09 21 1 16쪽
26 26화. 나가실 때 꼭 말씀해 주세요. 24.06.08 24 2 17쪽
25 25화. 시간석을 구해주세요. (1) 24.06.07 28 1 16쪽
24 24화. 미소년과 소드마스터. 24.06.06 26 2 15쪽
23 23화. 군대갑시다. 24.06.06 24 2 13쪽
22 22화. 멕케인의 피라미드 제국. 24.06.06 22 2 14쪽
21 21화. 단아한 비서, 김단비와 멕케인의 넥타이. 24.06.06 22 2 12쪽
20 20화. 개와 여우 그리고 사자. 24.06.06 24 1 11쪽
19 19화. 이순신장검과 전투기 그리고 나의 엉덩이. 24.06.06 29 2 12쪽
18 18화. 닥터 주학문과 애스널, 퍽홀. 24.06.05 31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