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살인(4)

불혹의 재수강. 46화. 살인(4)
건물 옥상의 헌터는 내가 아는 놈이었다. 옆에 사냥개 한 마리를 두고 자신을 향해 건물 옥상을 달려오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사냥개가 아니라, 유령 개. 견종은 진돗개.
관악산에서 나를 쫓던 놈이었다. 사당역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나를 납치하려던 헌터가 다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재수나 달동네와 관련 있는 놈일수도 있고, 그날 이후에도 단순히 나를 계속 감시하던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미등록 헌터였으며, 내 입장에서는 교회에 몰려온 깡패들보다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나의 달리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는지 건물 하나를 남겨두고 그의 표정이 변했다. 지금부터 녀석이 도망을 치더라도 나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던 그 순간.
[함정입니다!]
발 밑이 번쩍이더니 빛으로 된 촉수 같은 것이 빠르게 튀어나왔다. 그리고 촉수는 이내 내 다리를 휘감더니 나를 거꾸로 들어 올렸다.
‘장도연! 장검으로.’
세이버워치가 업그레이드되었기 때문에 장도연은 처음부터 장검 형태로 변해 내 오른손에 소환되었다.
나는 그대로 내 다리를 감은 촉수를 향해 휘둘렀고 그것은 별로 힘들이지 않아도 쉽게 끊어져 버렸다.
붙잡혔던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진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칼을 든 오른손을 휘둘러야만 했다. 또 다른 촉수가 계속해서 나타나며 나를 붙잡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장도연 하나 더. 장도형태로.’
합계 길이 4m 이내에서 분리 사용이 가능해진 장도연이다. 나의 부름에 왼손에도 상대적으로 짧은 단검 하나가 쥐어졌다.
촉수는 이미 대여섯개를 베었는데도 몇 개씩 자꾸만 새로 나타났다. 바닥이 빛나는 것으로 봐서 이 아래에서 무언가 작동하는 것일 텐데, 옥상 시멘트 바닥일 뿐이라 딱히 속절없이 옥상을 구르며 새로 나오는 촉수를 벨 뿐이었다.
[위험!]
추추가 내 시각정보를 자극해 옥상 위 헌터 방향으로 경고 표시를 했다.
촉수를 베며 곁눈질로 보았을 때, 무언가 빠르게 날아오는 듯했다.
‘화살?’
내 순간 동체시력이 거의 총알의 경로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발달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속도로 날아오는 화살이다.
그래도 다행히 총알이 아니라 화살이었기에 칼을 휘두르던 원심력을 이용해 그대로 누으며 피할 수 있었다. 나를 지나친 화살은 직선으로 날아가 옥상 난간에 박혔···다?
박힐 줄 알았는데 그대로 난간을 뚫고 나가 사라졌다.
[하나 더!]
‘눈이 빠질 것 같아.’
바닥에 반쯤 누운 채로 바닥에서 올라오는 촉수를 베는 것 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총알에 버금가는 화살이 또 날아온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그대로 몸을 데굴데굴 굴러 옥탑방으로 보이는 건물 뒤로 이동하고 뒤 따라오던 촉수 두개를 마지막으로 베었다.
하악하악.
함정의 지역을 벗어났는지 더 이상 촉수는 새로 올라오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동안 오감이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몸을 썼기에 숨이 차올랐다.
‘근데 벽 뒤에 있으면 안전한 거 맞아? 보니까 화살이 난간도 그냥 뚫어 버리던데.’
[활을 주인님 방향으로 조준하고 있습니다만 벽을 통과해 보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몸을 최대한 낮추고 숨을 골랐다.
‘저거 그 놈 맞지? 나 납치하려던 놈.’
[동일 인물입니다. 외형이 주인님의 기억과 일치합니다.]
근데 21세기에 무슨 화살을···.
[화살은 아니고 활을 매개로 빛을 응축해서 내보내는 것입니다.]
‘레이져빔 같은 건가?’
[유사합니다. 사용자가 의도한 거리만큼 직선으로 나아가는 무기로 예상됩니다.]
소리도 없고 증거도 없다. 딱 암살자로 적격이다.
‘계속 그대로 있어?’
[많이 긴장한 모습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여전히 활을 조준 중입니다.]
도망 가려는 것도 아니고. 날 죽일 생각인가? 그러니까 활을 쏜 거겠지?
“야! 말로 하자!”
난 여전히 옥탑방 뒤편에 숨은 채로 큰 소리로 외쳤다. 심야라서 소리가 더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그래.”
너무 쉽고 빠르게 나온 대답에 오히려 당황한 것 나였다.
“진짜?”
“응!”
대답이 너무 빨라서 오히려 믿음이 가지 않는다. 추추?
[여전히 활을 겨누고 있습니다.]
“야, 활부터 내려.”
“널 뭘 믿고?”
활을 내리면 바로 뛰어 넘어가 어떻게든 제압부터 할 생각이었으니까, 맞는 말이긴 한데···.
“다짜고짜 이상한 촉수로 공격한 건 너거든?”
“미친놈처럼 달려오니까 그런 거지. 함정이 있다고 말해 줄 틈도 없었잖아.”
맞는 말 같은데, 대답이 너무 빠르니까 오히려 짜증난다.
“헌터가 분명한 놈이 음침하게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데, 그럼 저쪽에서 손이라도 흔들까?”
“···.”
대답이 늦어지니 어쩐지 이긴 기분이다.
“난 얘기나 좀 하려고 차례를 기다리던 거라고. 낮에는 마녀 때문에 근처도 갈 수 없어서 다시 오길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대체 너야 말로 공무원이면서 깡패들하고···. 뭐하는 놈이야?”
지난 사당역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무리한 달리기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마녀가 지켜주는 놈이라 데려간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마녀? 유진이가 낮에 근처에 있었나? 점심에 통화로는 일 때문에 부산에 갔다고 했는데.
“대화만 하려던 게 맞지? 그럼 활 내려, 나갈 테니까.”
“반대쪽으로 나와, 함정 해체 안되어 있으니까 괜히 또 달밤에 생 쇼 하지 말고.”
‘내렸어?’
[아직 겨누고 있습니다.]
이 새끼가···. 누굴 속이려고.
“활 내리라고. 안 그러면 지금 전화해서 내가 아는 마녀란 마녀는 다 불러 모은다.”
[그걸 협박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엄마한테 이를 거야’도 아니고······. 통 하···네요?]
뭔지는 몰라도 저놈도 마녀가 약점인 거겠지.
나는 왼손에 글록을 소환했다. 활을 든 놈을 건물 하나 두고 마주해야 하는데, 나도 경고의 의미로 뭔가 무기는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세이버 워치에 저장되어 있는 총기라, 총알이 날아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대는 모르니까.
밖으로 나오자 유령 개를 옆에 두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한 손에는 커다란 활을 들고 있다. 나이는 대략 30대 중 후반 정도로 보인다. 매우 마른 몸이라 단정한 옷차림만 아니면, 유령개와 한 세트로 좀비처럼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상대 헌터는 내 손에 들린 글록을 보고 살짝 긴장을 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한 손에 활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물었다.
“이름이 뭐냐? 자꾸 마주치는데, 이름 정도는 알아야 부르지 않겠어?”
잠시 망설이더니 대답했다.
“김진표. 너는?”
이름도 모르면서 따라다닌 건가. 차차, 록고 DB에서 저놈 정보 다 가져와.
“장현곽. ROKGO 헌터 관리팀이다. 직업은?”
“헌터. 진짜 공무원이었네. 참나.”
“헌터인건 알고 있으니까, 직업을 말하라고.”
“직업이 헌터다. 사냥꾼. 고스트 헌터. 근데 저번에도 그렇고, 어떻게 날 보는 거야? 레벨이 높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냐니? 혹시?’
고개를 숙여 쌩큐글라스 렌즈 밖으로 그를 비껴 보자 그가 서 있는 위치는 아무것도 없고 그 뒤의 서울 야경이 그대로 통과되어 보였다.
[은신 기술입니다. 일반적인 오감으로는 감지할 수 없습니다. 고스트 헌터가 유령을 잡는다는 뜻이 아니라 본인이 유령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쌩큐글라스가 없으면 육안으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자료는?’
[록고에 미등록 헌터 중 위험도 높음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주거지 불명이고 현실 직업도 없습니다. 추적도 하지 못해 WGO로 관리 이첩이 되어 있습니다. WGO쪽 DB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날 왜 감시하고 있었지? 처음이 아닌 거 같은데. 스토킹. 그거 큰 범죄야.”
“무슨··· 스토킹씩이나. 처음에 학교에 찾아간 건 내가 맞는데, 오늘은 우연이야. 네가 온 거잖아. 나 때문은 아닌 거 알겠는데, 내가 미쳤다고 마녀가 지키는 놈을 먼저 찾아 가겠어?”
“설명해봐. 처음부터. 안 그러면 보안 규정이고 뭐고 이 근처를 전쟁터로 만들어 줄 테니까.”
“하, 역시 멕케인인가? 헌터로 관리팀을 만들었다더니, 진짜 또라이를 데려다 놨네.”
이놈 뭔가 알고 있다. 절대 놓지면 안 돼.
[만약을 대비해 주변 도주경로 파악합니다. ESD 사용제한을 해제해 주시면, 다음부터는 자동으로 주변함정이 발동되는 것을 막겠습니다.]
‘해제해. 그런 게 있었으면 진즉 말했어야지.’
차차와 대화하는 사이 대답을 듣지 못한 고스트 헌터 김진표가 말을 이었다.
“멕케인 암살을 막은 초보 헌터가 있다는 얘길 들었어. 마녀가 달라붙어 있어서 괜히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더군. 그게 또 호기심을 자극하잖아? 내 특성은 알고 있을 테고···. 학교는 그냥 얼굴보고 얘기나 하려고 가 본 거야.”
정보가 생략된 것 같다. 나는 차차가 쌩큐글라스의 증강현실을 통해 보여주는 첫만남의 기록을 확인하며 물었다.
“그때 우리 일을 방해한다고 했지? ‘우리’가 누구야? 사조직인가? 아니면 진리회?’
사실 내가 알고 싶은 건 진리회에 대한 단서다.
“진리회? 저 광신집단? 노우 노우. 조직은 무슨. 내가 말한 건 그냥 헌터 커뮤니티야. 우리처럼 활동 중단한 미등록 헌터들이 이래저래 모여서 수다나 떠는 공간이지. 그게 범죄는 아니잖아. 아닌가? WGO 기준으로는 범죄인가? 뭐 걔들이야 우리처럼 등록을 거부하면 다 범죄자로 취급하니···. 크크크”
보안 서약을 위반한 등록 거부 헌터가 범죄로 취급되는 것은 사실이다. 헌터들의 세계와 일반인들의 세계는 철저히 분리되어야 하니까, 강력한 보안 규정과 처벌이 뒤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눈 앞의 놈도 그렇지만, 나를 포함해 일반인 기준으로 헌터들은 대부분 미친놈들이다. 미친 세계에 반복적으로 발을 들이는 폭력에 절여진 존재들이 일반인들과 섞여 살 수는 없었다.
“뭐 암튼 난 그날 이후로 네 근처는 절대 가지도 않고 관심도 끊었어. 멕케인을 대체 왜 구한 건지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대가는 충분히 받았나보네.”
명품 옷을 입은 내 차림을 가리키며 비아냥대듯 말한다.
“멕케인도 참 대단하지. WGO에 반기를 들고 진짜 헌터관리팀을 만들다니. 뭐 애초에 대한민국으로 도망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건가?”
“그건 다 커뮤니티를 통해 안 사실인가?”
“대부분은 그래. 직업 특성이 이래서 내가 직접 알아낸 것도 있고. 이쪽도 나름 목숨 걸고 세상을 지키고 있다고.”
헌터 커뮤니티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커뮤니티라는 게 김진표가 말하는 것처럼 단순한 친목모임은 아닌 듯 보인다. WGO의 정보가 세고 있는 거라면, 충분히 큰 위험요소일 수 있다.
그리고 WGO가 알려주지 않는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헌터 커뮤니티···. 그건 어떻게 보는 거지?”
하지만 김진표는 내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한 손을 들어 대화를 멈추고 다른 손으로 허공을 쓸었다. 아마 정보창 따위를 조작하는 중일 것이다. 이제 와서 싸울 생각이 든 것은 아닐 테고.
“와, 너 진짜 사랑받는구나. 시발. 틈을 안 주네.”
그의 행동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대답부터 해. 얘기 안 끝났다.”
“안돼. 내 꿈은 무병장수야. 대화는 다음에 마저 하자. 마녀가 오고 있어.”
마녀? 그 놈의 마녀 타령 지겹다.
“마녀가 대체 누군데?”
하지만 김진표는 분주히 주변의 함정을 해체하고 자신의 흔적을 지우며 떠날 채비를 하더니 말했다
“시간의 마녀. 너 같은 반쪽이 말고. 진짜 WGO의 헌터 관리자. 암살자. 친하잖아?”
김진표는 이름도 말하지 않고 자신이 있던 건물을 뛰어내리더니 어디론가 달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추적할까요?]
아냐, 됐어. 정보도 얻을 만큼 얻었고 ‘다음’이라고도 했으니까, 다시 나타나겠지. 괜히 쫓다가 죽기라도 하면 안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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