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악몽

"아, 저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 공장..!"
"공돌이에요? 몇 년 했어요? 거기 돈 많이 줘요?"
승영은 어렵게 대답했다.
민정은 승영의 대답을 듣고 말끝을 흐렸고,
동훈은 개념 없이 다짜고짜 월급에 대한 질문을 했다.
"예. 많이 줍니다."
그러자 영철이 분위기를 잡으며 승영에게 조언을 했다.
"승영 님? 일단 제가 나이가 많으니 말 놔도 될까요?"
"편할 대로 하세요."
"공장에서 평생 일할 거 아니면 나와.. 얼마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견적 나오잖아.. 쥐꼬리 월급일 거야.. 기술이라도 배워서 다른 곳 취직해.. 형으로써 충고해 주는 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고~"
취기가 오른 영철은 오늘 처음 보는 승영에게 조언이라는 무늬의 훈수질을 했다.
'자기들도 잘난 것 없어 보이는데 기분 더러워지려고 하네..'
승영은 슬슬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나날이 긍정적으로 변화해가던 승영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과거의 승영이 튀어나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리고 영철의 입은 쉬지 않고 계속 훈수질을 이어갔다.
"형 말 뭔지 알겠지? 그러니까 잘 새겨듣고~"
"나는 나중에 공무원이랑 결혼할 거야!"
훈수질을 하던 영철 옆에서
민정은 눈치 없이 공무원을 언급했다.
말을 듣고만 있던 승영은 참다못해 드디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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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들이, 별 보잘것없는 것들이 왜 이렇게 까불어? 너네 뭐 돼? 현실에서는 뭣도 없는 것들이,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까 너희들이 뭐 되는 것 같냐?"
영철, 민정, 동훈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계속 폭주하는 승영을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한 명 한 명 지목하며 말을 하는 승영.
첫 번째는 영철에게 시작했다.
"네가 뭔데 공장에서 나오라 마라야, 야. 너나 잘해. 옷 입은 것 좀 봐라, 어디서 주워왔냐? 동생으로써 충고해 주는 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아라?"
영철은 한 대 맞은 듯 얼어있다.
그리고 두 번째, 동훈에게도 공격을 시작했다.
"너 새끼는 딱 보니 집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처하는 새끼인 것 같은데.. 밖에 나와서 놀고는 싶은데 만날 친구는 없어서 이런 애들 만나지? 그냥 이런 곳 나오지 말고 게임 세상 속에서 대장 놀이하면서 살아~"
승영의 살기에 움츠러들며 겁먹은 동훈.
그리고 마지막 화살은 민정에게 향했다.
"공무원 만나서 결혼한다고? 공무원이 너 만나준대? 그 공무원 거지 될 일 있냐? 너 먹여 살리다가 남는 것도 없겠다. 혼자 살아라."
그리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승영은 밖으로 나갔다.
"거지 같은 것들.."
***
이제서야 속이 후련한 승영은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
편의점에 들어가서 소주 2병을 사서 집으로 들어가는 승영.
집에 도착한 승영은 혼자서 술을 먹기 시작했다.
"음.."
혼자 술을 먹고 있는 승영은 살짝 후회감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술자리 모임에 가입한 건데,
이렇게 싸우고 나와버렸으니 약간의 아쉬움이 밀려왔다.
"하.. 그냥 아빠 회사에서 일한다고 말할 걸 그랬나.. 에라~ 모르겠다~"
잠깐의 아쉬움을 느낀 승영이지만 바로 아쉬움을 떨쳐냈다.
그리고 승영은 휴대폰을 켜서, 2030 친목 도모 술자리 모임을 탈퇴했다.
"벌써 10시네? 이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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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 승영은 무엇 때문인지 자꾸 뒤척였다.
"으.."
악몽을 꾸는 승영,
꿈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과거 승영이 괴롭혔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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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영의 악몽>
"너도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는 기분이 어때? 이제껏 네가 했던 짓들이 후회가 돼?"
"오빠? 이제 돈 한 푼도 없지? 내 앞에서 재롱부리면 내가 100만 원 줄 테니까 해볼래? 꺄하하"
"너는.. 더 당해야 돼.. 지금 열심히 산다고 과거에 했던 짓들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야!!"
"살려줬어야지.. 살려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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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후.. 하아.. 하아..."
옆에 있을 때 늘 무시 했던 종현.
장난감 같이 가지고 놀았던 아영.
학창시절, 조용하고 힘이 없었던 영호.
그리고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당했던 동준.
차례차례 승영의 꿈에 등장했다.
악몽에서 깨어난 승영은 숨을 고르고 멍하니 앉아 있는다.
"갑자기.. 이게 뭐야.."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승영은 한 시간을 뜬 눈으로 누워있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이 되고 승영은 출근을 하기 위해 일어났다.
***
출근 준비를 하고 나와 승영은 지하철을 타고 공장에 도착했다.
승영을 보고 진수만이 유일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제 친구랑 재밌게 놀았어?"
"아.. 네.."
"아이고야~ 술 많이 먹었어? 기운이 하나도 없네?"
"아.. 네네.. 오래간만에 본 친구라서 오래간만에 과음을 해버렸네요.. 하하.."
"그래~ 오늘은 쉬엄쉬엄해~ 오늘도 파이팅!"
"네, 점심때 봬요!"
진수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승영은 오전 작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작업 내내 승영은 어젯밤 악몽이 찝찝하기만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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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
물건을 옮기다가 그만 넘어지는 승영.
승영의 머릿속엔 온통 악몽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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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그랑-
"아.."
이번엔 물건을 떨어뜨려 깨뜨렸다.
승영은 오전 내내 작업을 하면서도 평소에는 하지 않던 실수를 연발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꽉 붙잡고 작업을 이어갔다.
"점심 먹으러 갑시다~"
승영이 있는 A 구역으로 온 진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승영에게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 저 아저씨, 어제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속이 안 좋아서.. 하하.. 오늘 저는 점심 못 먹을 것 같아요.."
"엇?! 그래? 속 안 좋으면 해장을 해야지!"
"네.. 그렇긴 한데, 한 입이라도 먹으면 토 할 것 같은데.. 하하.."
승영은 자연스럽게 점심을 패스하려고 했지만 어림없었다.
"이 사람아! 술 먹고 다음날에 아무것도 안 먹으면 속 버려요 속 버려! 국물에 밥이라도 조금 먹어야지!"
"아.. 그럴까요? 그럼 조금만 먹어야겠네요!"
사실 입맛이 없어서 점심을 거르려고 했던 승영이지만,
진수의 강압에 못 이겨 결국 점심을 먹으러 갔다.
***
"크~ 자 어때? 해장에는 이 황탯국이 국룰이야 국룰!"
"하하..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아요.. 어? 근데 아저씨, 국룰이라는 말 어떻게 아세요? 하하하~"
"아 그거~ 우리 아들내미가 알려줬었어. 짜식이 아빠도 요즘 말을 알아야 자기랑 대화할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허허"
"하하.. MZ 세대 같으신데요? 하하~"
"고맙네~ 나중에 나한테 요즘 애들이 쓰는 말 자네가 많이 알려줘!"
승영은 진수와 대화를 하며 조금은 악몽의 찝찝함에서 벗어나는 듯 보였다.
그렇게 점심시간은 끝이 나고, 승영은 오후 작업을 하러 갔다.
***
"오전에 작업을 너무 못했네.."
오전 작업을 할 때 집중을 못 해서 작업을 많이 못 했던 승영은, 오후 작업에 몰아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고생했어~ 내일 봐~"
"네~ 고생하셨습니다!"
진수와의 짧은 인사를 마치고, 퇴근을 했다.
집에 도착한 승영은 저녁을 먹기 위해 배달 앱을 본다.
"음.. 비싸네.."
배달 금액을 보고, 승영은 돈을 아끼기 위해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들어온 승영은 집에 있는 컵라면과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쩝쩝.. 이것도 나쁘진 않네.. 맛없지도 않고.."
늘 고가의 고급스러운 음식만 먹던 승영은 이제 이런 생활에 적응을 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정신승리를 하기 위한 것일까.
"어우.. 배부르네.. 이거 양이 꽤 되는구나?"
배가 터질 것 같은 승영은 소화를 시키기 위해 동네 한 바퀴를 돌기 위해 집을 나서려는 순간,
"아차!"
다시 집으로 돌아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썼다.
혹시나 또 아는 사람을 마주칠 것 같아서 그런가 보다.
***
밖을 나와 거리를 걷는 승영, 그래도 뭔가 꺼림칙한지 인적 드문 골목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만 소심하게 산책을 했다.
1시간 동안 걷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잘 준비를 하는 승영.
"오늘도 일찍 자보자~"
휴대폰을 보다가 잠이 든 승영.
그런데 어제와 같은 악몽을 또 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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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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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영의 악몽>
"하하하하~ 길에서 나 마주칠까 봐 얼굴을 다 가리고 밖을 나가네? 찌질이 다 됐네, 이승영? 하하하~"
"너 내가 그린 그림 보고 싶어 했지? 보여줄게. 하하~"
이번 꿈속에서도 영호의 그림은 승영의 음주운전 사고의 희생자 동준이었다.
그리고 당황하는 승영.
"기억나지? 하하하~ 겁먹은 거야? 천하의 이승영 님께서? 하하하~"
뒤척이며 잠에서 깬 승영.
"아 씨.."
시간은 새벽 1시, 얼떨떨한 승영은 바로 잠에 들지 못하지만,
출근하려면 4시간 후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밀려왔다.
"꿈이야 꿈일 뿐이라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해보려는 승영이지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잠에 들지 못했다.
잠이 안 오는 승영은 급하게 밖을 나가 편의점으로 가서, 소주 한 병을 샀다.
"이거 먹고 잠들면 되는 거야!"
집에 돌아와 소주 한 병을 벌컥벌컥 원샷을 했다.
그리고 취한 기운이 오는 승영은, 얼굴이 빨개지며 이내 잠에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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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잠에서 일어난 승영, 등골이 오싹해졌다.
평소 출근할 때처럼 피곤하지 않고 개운하게 일어난 승영은 시간을 봤다.
-오전 10시 30분-
"망했다!!!!"
휴대폰에는 진수와 관리자에게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다.
승영은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승영 씨! 무슨 일 있어요? 왜 출근 안 하셨어요!?"
"아.. 그게.. 몸이 안 좋아서 늦잠을 자버렸네요.."
"아~ 몸이 안 좋아서 늦잠을 자셨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아.. 예.. 지금 출근하러 갈게요.."
"네~ 오전은 거의 끝나가니까 오후에 출근하세요~ 오후 작업부터 시작하시고요."
그 와중에 승영은 몸이 안 좋았다고 거짓말을 쳤다.
그러나 관리자도 딱히 믿지 않는 말투였다.
"그렇게 해도 되나요?"
"네. 그 대신 오전 작업은 안 하셨으니 급여는 깎이십니다."
"하.. 예.. 오후에 출근할게요."
악몽의 시달림과 늦은 새벽에 잠을 이루는 바람에, 늦잠을 자버린 승영은 괴로워했다.
그러던 중, 승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11시가 안됐으니.. 오후 2시까지 출근하면 되니까.. 그래, 좀 쉬었다고 생각하자.."
이미 엎질러진 물, 승영은 편안하게 생각하려 애썼다.
출근 걱정이 사라진 승영은 이내 곧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아니.. 하.. 참.. 갑자기 왜 그런 꿈들을 꾸는 거지?"
갑작스러운 꿈에 의아해하는 승영.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승영은 과거 자신이 괴롭혀온 사람들에게 미안함 감정이 딱히 있진 않았다.
물론, 직장에서나 모임에서나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입장이 되었을 땐,
과거에 괴롭힌 사람들이 생각날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꿈 좀 안 꾸는 방법 없나.."
이제서야 비로소 피해자들이 신경이 쓰이는 걸까?
악몽이 신경 쓰인 승영은 인터넷에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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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꾸지 않는 방법>
인터넷에 검색해 본 승영은 여러 가지의 해답을 찾았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그때 승영은 어떤 사람의 악몽 탈출 후기를 읽어봤다.
"음..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야 된다고..? 가면 진짜 악몽 안 꾸는 건가.."
반신반의한 상태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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