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다시 시작

"하하하.. 아니야~ 죄송하긴!.. 그래서 이제 여기 그만두면 다른 직장 알아볼 건가?"
"흐음.. 이제 알아봐야겠죠? 하하.."
"그래그래.. 일단 신경 쓰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맛있게 먹자!"
"네! 잘 먹겠습니다!"
승영을 안심 시켜주려는 진수.
그리고 진수의 마음을 아는 것 같은 승영.
둘은 과음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진솔하고 감정적인 대화를 했다.
"아저씨.. 아저씨는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신 이유가 뭐예요..? 저처럼 싸가지 없는놈한테.."
"하하하~ 잘해준 이유라... 여기 공장은 젊은 사람이 온 적이 없었거든.. 젊은사람이 들어와도 얼마 못 버티고 바로 나가더라고.."
"크크.. 저도 그런 셈이죠.."
"하하.. 텃세도 많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 못살게 굴고.. 고생할게 보여서 더 잘해주고 싶었지."
젊은 사람들이 공장으로 일하러 들어오면 텃세와 괴롭힘에 못 이겨 그만두는 것을 지켜봤던 진수는
승영도 또 한 명의 피해자가 될까 봐, 더 잘해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 아저씨들.. 젊은 사람들만 오면 그러나봐요?"
"나도 여기서 오래 일을 하진 않았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렇더라고.."
"그 아저씨들을 해고시켜야 할 텐데.. 으이그.."
"하하하~ 그럼 젊은 사람들이 더 들어올 수도 있겠네~"
"그렇죠!"
"허허~ 그리고 또 자네가 아들 같잖아! 아들뻘이라 그런지, 더 챙겨주고 싶기도 했어."
"저도 아저씨가 아빠 같아서 너무 편했었.. 아, 아니지.. 진짜 우리 아빠는 안 편했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아빠 있잖아요, 무조건 내 편 들어주고, 챙겨주고, 따뜻한.. 그런 것들을 아저씨한테 느꼈어요!"
"하하하~ 술기운이 올라오는 건가? 자네 이런 말도 할줄 알았어?! 하하~"
"쑥스럽긴 한데.. 꼭 말하고 싶었어요! 하하~"
"나는 자네를 아들같이 생각했고, 자네는 나를 아빠같이 생각했고.. 눈물 나오려고 하네.. 하하.."
"엇!? 아저씨 울어요? 하하하~ 왜 우세요, 울지 마세요! 마음이 여리시구나!"
"원래 가족 이야기가 눈물샘을 자극하지.. 하하..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하면 눈물 나는 것처럼 부모는 자식 이야기에 눈가가 촉촉해지는 법이야.."
"저는 가족 이야기에 울어본 적이 없어서.. 하하.. 공감이 안돼요.."
"내가 더 눈물이 나는 건..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내 자식이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갔거든.."
진수는 눈물을 흘리며 아픈 가정사를 고백했다.
"아..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거예요..?"
"그건 아니었는데... 그냥 많은 고민이 있었나 봐.. 사실 내가 지금 공장 일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야.. 집에 있거나 농장에서 일하면 자꾸 아들이 생각나더라고.. 아들이랑 농장을 같이 했었거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사는 건 우리 아들도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흐르는 눈물을 닦는 진수, 그리고 승영은 아무 말 없이 진수를 바라봤다.
"에이.. 슬픈 이야기하지 말고 오늘만큼은 신나게 먹자고! 짠!"
진수는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승영과 진수는 처음으로 술자리를 가지며 더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술자리는 끝이 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려 택시를 기다렸다.
"나중에도 힘들거나..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꼭 연락해!"
"네, 물론이죠! 저도 일자리 찾고, 다음에는 제가 아저씨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이제 더 친해진 것 같은데, 이렇게 그만두니 괜히 또 아쉽구만~"
"하하~ 일 그만뒀다고 못 보는 건 아니잖아요~? 아저씨, 술 한잔하시고 싶으시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저도 연락드릴게요!"
얼큰히 술을 마시고 취중진담을 나눈 승영과 진수는,
나중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
집에 도착한 승영은 옷도 안 갈아입은 채, 잠자리에 누웠다.
"하... 다시 일자리 알아봐야 되네.."
휴대폰을 켜고 일자리를 알아보려던 승영은 다시 휴대폰을 꺼버렸다.
"에이씨.. 그냥 내일 알아보자.."
귀찮아진 승영은 내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잠에 들려던 순간, 휴대폰을 다시 켰다.
"아 맞다. 알람!"
내일부터는 출근을 안 해도 되니, 알람을 끄고 숙면에 취했다.
.
.
.
오전 10시, 해가 뜨고 승영도 잠에서 깼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에 승영은 머리가 아파졌다.
"하.. 어디로 가야 하냐.. 내 인생.."
하기 싫은 듯, 억지로 휴대폰을 켜서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예전에 알아본 결과, 월급이 적은 곳만 있다는 것을 알기에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다 돈이 안되는 곳만 올라오잖아.."
그때 불현듯 승영은 직업소개소에서 공장을 소개받은 것이 기억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
- 철수 직업소개소-
"계십니까? 저기요?"
사무실로 들어온 승영은 사람을 불러보지만 조용하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나.. 일단 기다려봐야겠다.."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소개소장을 기다리는 승영, 그때 문을 열고 소개소장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승영은 일어서며 예전에 찾아온 것을 어필하며, 자신을 기억하는지 물었다.
"저번에 한번 왔었는데요~ 저 기억나세요?!"
기억이 나질 않는지 소개소장은 쓱 한번 쳐다보고 바로 자리에 앉았다.
"요즘 너무 많이들 찾아와서~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요. 하하~"
"아.. 하하.. 직업 좀 알아보고 싶어서요.."
승영은 민망한 듯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음.. 이력서는 가지고 오셨어요?"
"아..! 깜빡했네요.."
"네~ 괜찮아요~ 여기서 작성하시면 되니깐요~"
저번처럼 승영은 또 이력서를 들고 오지 않았지만, 소개소장은 그러려니 했다.
"음.. 젊으신 분이 할 곳은.. 여기 사람 구하는데 한번 해보실래요?"
"네.. 한번 볼게요.."
소개소장이 추천한 곳을 보는 승영은 당황해했다.
"여기는.. 저번에 추천해 주셨던 곳이에요.."
멋쩍은 듯 소개소장은 대답했다.
"아~ 허허~ 그래요? 그만두고 나오셨나 보네요? 이름을 확인을 못해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승영입니다."
컴퓨터로 승영의 정보를 알아보는 소개소장.
"음.. 이승영.. 31살 맞으시죠?"
"네!"
"아.. 저희 사무실에서 직업소개 한 번 밖에 안 받으셨네요?"
"네, 맞아요."
"음.. 거기 공장 어땠어요?"
"아.. 저랑 잘 안 맞더라고요.."
"음.. 그러셨구나.. 지금 제가 알아보니까 승영 씨가 일 할만 한 곳은 공장이나 공사현장 정도 있네요~"
승영은 소개소장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공장은.. 가기 싫고.. 공사현장도.. 마찬가지인데.."
공장이 싫은 승영은 다른 곳이 있는지 물었다.
"공장이나 공사현장 말고 다른 곳은 없나요?"
"택배 상하차도 있고.."
'아.. 상하차는 끔찍하다고 들었어..'
악명 높은 택배 상하차 일은 하기 싫은지, 승영은 자연스럽게 넘겼다.
"혹시 다른 곳은.. 없나요?"
"음식점이나 이런 곳은 대부분 여자분들을 선호해서요~ 남자분들은 대체적으로 공사현장이나 공장 이쪽으로 많이 빠져요."
"아.. 그렇구나.."
"어디 생각해 본 곳 있어요?"
"아뇨.. 생각은 안 해봤는데.. 공장에서는 해봤으니, 다른 곳 있나 물어볼 겸 온 거라서요.."
막막해 보이는 승영에게 소개소장은 좋은 방법을 말해준다고 했다.
"나도 먹고살아야 하니, 이런 말은 잘 안 하는데.. 허허~ 다른 곳 생각하셨으면 직접 거기로 전화하셔서 일하고 싶다고 말씀하세요~"
"에...? 그건 저도 알고 있긴 한데.."
말을 듣고 승영은 이게 정녕 좋은 방법인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니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 방법이 제일 좋을 겁니다~ 말 그대로 즉.시.지.원!"
"아.. 네..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전화를 하긴 했는데.. 급여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건 어쩔 수 없어요~ 돈 많이 버시려면 힘들어도 공장이나 공사현장, 택배 상하차 일하셔야죠!
"네.. 일단 생각해 보고 다시 찾아올게요.."
***
큰 수확 없이 밖으로 나온 승영은 기운이 없다.
그렇게 승영은 집으로 들어가서 인터넷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봐도.. 다 똑같을 텐데.."
집으로 가는 승영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렇게 생각이 많아진 승영은 걷다 보니 벌써 집 근처에 도착했다.
"이렇게 집이 가까웠나.. 집에 들어가기 싫다.. 하.."
그런데 그때, 걸어가던 승영에게 보이는 가게와 직원을 구한다는 글이 보였다.
"엇..?! 여기 저번에 본 곳인데.. 아직도 직원 안 구해졌나..?"
-족발 삶으실 직원분 구합니다.-
그곳은 바로 새벽 산책을 하던 승영이 봤던 24시간 영업하는 족발집이었다.
하지만 휴대폰으로 족발집 간판 사진만 찍고, 그냥 집으로 향했다.
"난 족발 삶아본 적도 없는데.. 일하고 싶다고 해도 안 뽑아줄 것 같단 말이지.."
집으로 도착한 승영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냥 한번 지원이라도 해봐..?"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마음을 갖고,
집으로 오는 길에 찍어온 사진을 보며 가게에 전화를 했다.
"네~ 에스 족발입니다~"
"아.. 혹시 직원 아직도 구하나요?"
"네~ 구하고 있어요!"
"지원하고 싶은데.. 어..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오늘 오시는 건 가요? 사장님께서 가볍게 면접만 보실 거예요!"
"아.. 그럼 지금 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밝고 명랑한 목소리의 여자 직원이었고,
전화를 끊은 승영은 왠지 모르게 예감이 좋아졌다.
"직원 목소리가 밝네.. 일하기 편한가 본데?"
***
승영은 족발집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아까 전화드렸는데.."
"아~ 아까 면접 오신다고 하신 분이시죠?"
"예.."
"아~! 여기 앉으세요~ 빨리 오셨네요!"
"집이 근처라.."
"그러시구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사장님 지금 시장에 가셔서, 곧 오실 거예요!"
"예.."
"커피 한잔 드릴까요? 기다리기 지루하실 것 같은데~"
"아.. 괜찮습니다.."
여직원과 대화 중,
족발집 사장이 가게에 들어왔다.
"사장님! 면접 오셨어요~"
"그래요? 선아 씨 미안한데, 여기 장 봐온 것 좀 냉장고에 넣어줄래요?"
"네~! 알겠습니다!~"
언제나 밝고 명랑한 족발집 직원 선아.
직원들에게 한없이 잘해주는 족발집 사장 정화.
그렇게 승영은 기분 좋게 면접을 시작했다.
"아~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혹시 족발집에서 일해본 경험은 있으시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아하~ 혹시 성함이랑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이름은 이승영이고, 31살입니다."
"아~ 젊으시구나! 처음이시면 배우면서 일하셔도 되니, 제가 알려드릴게요~ 같이 일하던 오후 타임 직원이 손목이 안 좋아서 그만둬서.. 어..?"
승영과 대화를 잘하고 있던 정화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는데..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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