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설마?

"선아 씨, 괜찮아요? 얼굴이 엄청 빨간데?"
"괜.. 끄읍.. 찮아요!.. 와.. 트림 나올 뻔했어요.."
"하하하~ 이제 이것만 마시고 일어나요!"
"네! 아 그런데 저는요.. 처음에 승영 씨 봤을 때 좀.. 삼촌 느낌도 있으시고.. 뭔가 무서워 보였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안 무섭구요.. 끄읍.. 편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또, 제가 첫인상이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죠? 하하.. 뭐 지금은 편하다고 하니까 다행이네요."
"네.. 끄읍.. 그래서 같이 일해서.. 너무.. 편하고.. 끄읍.."
"네.. 저도 선아 씨 동생 같아서 편해요~"
"감사.. 합니다.. 끄읍.. 어.. 뭐야 벌써 다 마셨네.."
"이제 일어납시다~"
일어나려는 승영을 선아가 붙잡았다.
"잠시만..!! 그리구 저랑 8살 차이 나시잖아요.. 그래두.. 그렇게.. 막.. 늙어.. 보이지.. 않으시구요.."
취기가 올라 술주정을 부리는듯한 선아를 제어 시켜봤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네네.. 많이 드셨네~ 선아 씨, 이제 일어나요!"
"저.. 사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해도 될까요..?
갑자기 진지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선아의 말에,
승영은 설마 하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 뭔데요? 해봐요.."
"우리.. 끄윽.. 우리.."
"우리 뭐요..?"
"한 잔만 더 마실까요..?"
일어나자는 승영과 더 마시자는 선아.
그야말로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참.. 선아 씨 거울 봐요. 얼굴이 지금 홍당무야 홍당무!"
"얼굴만 빨갛지.. 멀쩡해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저 괜찮아요.. 마지막 딱! 한 잔!"
"그래요, 이거 먹고 일어나는겁니다."
그렇게 마지막 맥주를 한잔 더 시키고 둘은 대화를 이어갔다.
"아니 무슨.. 자기 주량껏 마셔야죠! 맥주 먹고 이렇게 취하는 건 또 처음 봤네.."
"저 안 취했어요! 그냥 얼굴만 그런 건데.."
"네.. 그래도 오늘 집에 가면 잠은 잘~ 오시겠네요."
"그러려고 마시는 거니깐요.. 헤헤.. 그래도 너무 좋네요~ 이렇게 술 한잔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그러게요.. 어서 마셔요. 탄산 다 빠지겠어."
선아는 꼴깍꼴깍 맥주를 들이켰다.
"승영 씨는 연애 많이 해보셨어요?"
선아가 연애에 대한 질문을 한 번 더 했다.
"많이 해보진 않았어요, 어렸을 때 연애할 때도 사랑해서 한 건 아니었으니.."
개차반이었던 과거 승영은 사실 연애를 많이 해보지 않았다.
과거 여자친구에게도 모질게 대했던 승영이었기에,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짧은 만남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냥 이름만 여자친구였을 뿐, 좋아하는 감정은 없었다.
그런 승영에게도 6년 전,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승영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진 건 돈뿐이었던 25살의 승영도
여자의 마음을 돈으로 사기는 힘들었다.
"사랑하지 않는데 왜 사귄 거예요?"
"그냥 다 있는데 나만 없는 것 같으니까?"
"너무해.. 오래 가진 않았겠네요?"
"맞죠. 하하~"
"뭔가.. 연애 많이 해보신 줄 알았어요.."
"제가 매력이 넘치나 봐요?"
자신감 넘치는 승영의 대답에 선아는 어이없어했다.
"아뇨.. 그냥 30대면 많이 해봤을 거라고 생각한 건데요?"
민망한 승영은 애써 웃음을 보였다.
"하하하~ 농담한 거예요. 이제 술이 조금씩 깨나봐요?"
"네.. 시간 좀 지나니까 깨네요.."
"집은 똑바로 걸어갈 수 있으시겠네요~"
"크크.. 네.. 근데 남자가 봤을 때 저는 어때 보여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선아의 질문에 승영은 당황했다.
"어.. 그냥.. 잘 모르겠는데요..?"
두루뭉술한 승영의 대답에 답답한 선아는 확실하게 듣고 싶어 했다.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예쁘다, 못생겼다, 귀엽다, 섹시하다!"
대답하기가 힘든 승영은 빙빙 둘러댔다.
"음.. 근데 갑자기 왜..?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음.. 그냥 동생 같다?"
"동생 같다는 건 귀엽다는 말씀이신 거예요?"
"푸하하~ 우리 둘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저는 선아 씨가 그냥 동생같이 보일 뿐이에요~ 아! 그냥 귀엽다고 대답했어야 했나? 하하~"
"그건 아닌데..."
웃음을 보이던 승영은 선아에게 한마디 조언을 했다.
"방금 한 질문 같은 건 비슷한 나이 또래인 친구들에게 물어봐야 돼요.. 나 같은 아저씨한테 이런 거 물어봤자 필요 없고.. 괜히 이상한 생각 하는 사람들이나 예쁘다고 비위 맞춰줄 거예요."
"아.. 네.. 비슷한 또래의 남자인 친구가 없어서 물어본 거였어요.."
선아는 한동안 고개를 뚝 떨구며, 의기소침해졌고,
괜히 미안해진 승영은 선아를 위로했다.
"물어볼 수는 있는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상, 현실적인 답변은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거였어요.. 너무 그렇게 우울해하지는 마시고.."
"......"
"선아 씨? 이봐요!"
승영은 테이블을 두드리며 선아에게 말을 걸었지만 계속 대답이 없었다.
.
.
.
알고 보니 선아는 술기운 탓에 피곤해 잠이 든 것이었다.
"... 진상이네.."
필사적으로 선아를 깨운 승영은 계산을 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
"여기서 자면 안 돼요~ 집 가서 자야지~ 정신 차려요. 정신!"
비몽사몽 서서 졸고 있는 선아를 승영이 확실하게 깨웠다.
"하암.. 피곤해.. 얼마 나왔어요? 돈 보내드릴게요."
"괜찮아요. 제가 살게요."
"그럼 미안한데.. 그럼 제가 나중에 쏘겠습니다! 오늘 잘 먹었습니다!! 현식이도 인사해야지!"
"그래요, 다음에도 한잔 마셔요~ 오늘 수고했고, 내일 봐요~"
"네~ 조심히 가세요!"
두 사람은 서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졌고,
집을 가는 승영은 하나의 다짐을 했다.
"쟤랑 다시는 술 안 마셔.."
집에 도착한 승영도 피곤했는지 씻고 바로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오전에 일어난 승영은,
어제 일을 생각하며 선아의 취한 모습에 웃음이 났다.
"크크크.. 어려서 그런지 맥주 먹고 취해버리네.."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승영.
오늘도 출근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섰다.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출근한 승영을 환히 웃으며 받아주는 정화와 다르게
선아는 앉아서 골골대고 있었다.
"어.. 어.. 안녕하세요.."
선아를 보고 또 한 번 승영은 웃음이 터졌다.
"괜찮아요? 푸하하~"
"네.. 크크.. 그래도 기억은 다 납니다!"
힘들어하는 선아와 달리 멀쩡한 승영을 보고 정화가 물었다.
"어제 둘이 술 마셨다고 들었는데, 승영 씨는 멀쩡하시네요?"
"아이~ 그럼요, 맥주 몇 잔밖에 안 먹었어요~ 배만 불렀죠."
"호호호~ 지금 선아 씨 보면 소주 대여섯병은 드신 것 같은데~"
"힝..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가.. 맥주 마셨다고 이렇게 힘들진 않았는데.."
"오랜만에 먹으면 그럴 수 있어요~ 다음에는 저도 껴서 같이 마셔요!"
"좋죠~"
"그때는 저도 강해져서 돌아올게요.."
어제의 술자리 이야기를 하는 셋.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늘이 바로 복권 당첨 결과 나오는 날이네요~"
"네, 드디어..! 뭔가 느낌이 좋아요.. 이 느낌은 최소 3등이에요!"
"저도 오늘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느낌은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빨리 오후 8시가 와야겠네요~ 제가 더 결과가 궁금해지네요~"
"승영 씨 저희가 퇴근이 8시잖아요!? 가게에서 결과 같이 보실래요?"
결과를 함께 보고 싶었던 선아가 승영에게 제안했다.
"그럴까요?"
"네! 크크~ 같이 보고, 당첨도 되면 기쁨도 두 배니깐요!"
"네~ 그렇게 해요~"
"저는 가게에서 보고 가려고 복권 종이 챙겨 왔거든요!"
"앗? 저 집에 두고 왔는데.. 사장님 저 바로 집 앞이니까 집 좀 다녀와도 될까요?"
"네~ 지금 손님 없으니까 천천히 다녀오세요~"
정화의 허락을 받고, 승영이 가게 밖으로 나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승영은 괜히 설레었다.
"1등 내 꺼야.. 기다려라..!"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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