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구세주

"아니.. 이게 뭐야..?"
승영이 본 것은 바로 창문이었다.
어째서인지 창문을 열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화가 난 승영은 허겁지겁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
"저기요! 여기 창문 왜 안 열리는 거예요!!?"
"고층은 안전 문제로 인해 창문 개방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승영에게는 청천벽력 같았던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더워요!! 에어컨 틀기에는 춥고 바깥바람 쐬고 싶으니까 좀 열어줘요!!"
승영은 얼토당토않는 고집을 부렸지만 직원을 설득 시킬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사고 발생 위험도 있기 때문에 고객님이 요청 사항을 들어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에이씨..!"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승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승영은 잘 살아보려고 해도 안 풀리고,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는 현실에 한탄하기만 했다.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하.. 세상 진짜 뜻대로 안된다. 안돼!!! 그래.. 이제 정말 마지막 방법이다.."
승영은 최후의 방법을 생각하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택시를 잡고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마한 대교로 가주세요."
목적지를 들은 택시 기사는 눈치를 챈 것일까?
자꾸만 거울로 뒷자리에 앉은 승영을 확인했고,
가벼운 웃음을 보이며 승영에게 말을 걸었다.
"허허.. 이 시간에 대교는 왜 가시는 거예요?"
택시 기사의 물음에 승영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바람 좀 쐬려고요."
이상한 낌새를 느낀 택시 기사가 승영에게 돌려 말했다.
"술도 많이 드셨네요~ 대교보다는 아래로 내려가시면 산책로가 있어요~ 거기 엄청 잘 되어있어요. 거기서 바람 쐬면 좋아요~"
한동안 사회생활을 해본 탓인지, 술에 취한 탓인지,
승영도 택시 기사의 말을 눈치껏 알아차리고, 괜한 변명만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래요..? 그럼.. 대교에서.. 산책 좀 하고.. 산책로로 가볼게요.."
승영이 말을 듣지 않자 택시 기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좋지 않은 생각이나.. 그런 거 하시는 거 아니죠? 잘 버티다 보면 언젠가 행복하고 인생 살맛이 날 거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택시 기사의 말에 애써 웃음을 보이는 승영이었다.
"하하~ 아저씨도 참.. 지금도 인생.. 재밌고 좋아요~"
"그렇죠~? 하하~ 인물도 훤칠하시고 젊으신 분이시니 뭘 하든 재밌을 거고!! 청춘을 즐겨야죠! 안 그렇습니까?"
하지만 택시 기사의 위로에도 승영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저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자~ 도착했습니다. 조심히 산책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
.
.
택시에서 내린 승영은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걸음을 멈춘 뒤, 천천히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는 검은색의 하늘을 보니 마치 눈을 감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달콤한 잠을 자는 기분은 아니었다.
편하게 잠을 자는 기분이 아닌 꼭 어두운 사막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넓디넓은 사막에서 갈 곳을 잃은 막막한 기분이었다.
그다지 좋지 않은 기분에 승영은 하염없이 대교 밑 강을 바라봤다.
어두운 밤, 깊은 어둠 속 강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떨어지면 끝이 없이 계속 지하로 추락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술기운이 날아가 슬슬 술이 깬 것일까?
승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하늘과 어둠의 강을 보니 겁이 나면서 두려워졌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대교 위에서 목이 터져라 오열을 했다.
"죽지도 못할 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데!!! 등신같이 뛰어내리지도 못하는 거야.. 왜!!!!"
그렇게 자기 자신을 비난하며 오열을 하고 있던 중,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가 온 사람은 바로 공장에서 같이 일하고 유일하게 승영을 챙겨주었던 진수였다.
승영은 받을지 말지 고민했지만,
기댈 곳이 없었던 승영은 진수의 전화를 어렵게 받았다.
"네.. 아저씨.."
"아이고~ 승영아! 잘 지냈어?"
진수의 반가워하는 목소리에 울컥한 승영은
눈물을 참고 통화를 하려 하지만,
슬픈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 네.."
승영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알아챈 진수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말을 건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슬픈 감정을 알아줘서 더 슬픈 것이었을까..
승영은 진수의 말에 대답하지 말고 흐느끼기만 했다.
그러자 진수가 한 번 더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자네.. 무슨 일 있는 거야?"
진수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승영은 흐느끼며 말하기 시작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목이 메어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승영에게 진수가 작은 위로를 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인생 살아가는 것이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진수가 말을 멈췄다.
통화 속 진수는 자신의 귀에 들리는 차 지나가는 소리가 거슬렸다.
"자네 지금 어디야?"
"대교 걷고 있어요.."
승영의 말을 듣자 진수는 언성을 높였다.
"나약한 생각 하지 마!! 지금부터라도 잘 살면 되는 거야. 어디 대교야? 내가 지금 갈게."
"아니요.. 정말 살아가기도 싫고 살아갈 힘이 없어요."
"자네는 가족들 생각은 안 하는 거야?!!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면 안 돼!"
"저 원래 이기적인 놈이에요.. 가족들은 제가 빨리 사라지는 걸 원할 거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야. 절대 그렇지 않아. 아무리 미워도 가족이라고!!"
진수의 계속되는 설득에도 승영은 부정적이기만 했다.
"아니에요.. 우리 가족은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러자 진수는 승영을 타이르는 듯한 방법으로 승영을 설득 시켜보려 했다.
"그래.. 알겠어.. 그래도 지금 죽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아? 얼마나 더 재밌는 것들이 많이 남았을 것이며, 하고 싶은 것들도 많이 남아있을 수 있지 않는가?"
"아니요.. 하고 싶은 것 다 해봤고, 이제 더는 재밌는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아요."
승영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 이때 진수가 울먹이며 말을 했다.
"사는 게 힘들지.. 그래.. 힘들 거야.. 그래도 요즘 젊은 사람들.. 제발 그런 생각은 안 해줬으면 좋겠네.. 우리 아들도 그렇게 떠나보내고 나서도 너무 힘들었는데, 자네까지 그러지 말게.. 자네가 아들 같아서.. 나는 너무 좋았어.. 떠나간 아들같이 생각했었지.."
"아.."
승영은 괜한 미안함에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무엇인가 깨달았다.
"아저씨.. 혹시 지금 어디세요..?"
"지금 집인데, 우리 지금 같이 만나자.. 생각이 조금은 바뀐 거지?"
"네..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럼 제가 거기로 갈게요.."
"그럴래..? 그럼 주소 보내줄 테니 택시 타고 와.. 잘 생각했어."
승영은 자신의 생각을 바꾼 게 잘한 것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최고의 결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했다.
다시 독하게 마음을 먹고 승영은 택시를 잡았다.
처음으로 가보는 진수의 집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승영은 아무 생각 없이 무표정으로 창문을 바라봤다.
그런데 택시의 방향이 가면 갈수록 승영에게는 익숙한 곳으로 향했다.
"어라..? 이 근처에서 사셨던 거야..?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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