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천재로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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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5.31 09:32
최근연재일 :
2024.07.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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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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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그런 게 궁금하시구나

DUMMY

“음악을 하는데 왜 그렇게 돈이 필요한 건데요? 피아노 연주를 하는데 돈이 왜 필요해요?”


이수의 반문에 원망스런 눈길로 이수를 쳐다보는 원영.


“뭐에요? 그쪽은?”


형이란 호칭에서 다시 ‘그쪽’으로 넘어갔다.


“조선 시대에서 왔어요?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몰라서 묻는 거예요, 아님 나 놀리려고 묻는 거에요? 조율사를 한다는 분이 그런 걸 물어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살기 위해선 수많은 수련 기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경제적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당연히 여기저기 레슨비며, 경비가 장난이 아니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상식 수준의 내용.


그런데 돈이 왜 필요하냐고?

하물며 피아노 조율사란 사람이?


열이 뻗쳤다.

원영의 마음 같아서는 확 받아버리고 싶지만, 다행히 아직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잊지는 않았다.


“피아노 연주에 돈이 왜 안 들어요? 당장 저는 피아노조차 없다고요. 남들 다 가는 해외 유학? 전 제 돈으로는 제주도도 못 가요. 만약 이번 콩쿠르가 서울이 아니라 제주도에서 했다면 전 콩쿠르에 나갈 수도 없었다고요! 아무리 음악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못 한다고요!!”


원영의 항변이 절규처럼 변해간다.

이제 당혹스러운 건 이수다.

낯선 사람과 이렇게 오래, 감정을 실어 얘기를 해본 적은 처음이다.

그런데 원영의 절규가 왠지 이수의 마음을 흔든다.


음악이 너무나 하고 싶다는 그 말.

와이 행성의 엑스가 지구에 눌러앉게 된 게 바로 그 이유 때문 아니었던가.

이수는 지금까지 원영이 했던 얘기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저 학생의 부탁이라는 게 결국 내가 리흐테르의 연주를 재현했던 것처럼 치고 싶다는 거네. 그래서 콩쿠르에서 입상을 하고 싶다는 거고···. 근데 그게 가능할까? 쟤는 인간인데? 그것도 한 달밖에 안 남았다면서?’


원영의 부탁을 놓고 고민에 빠진 이수.

한 가지 생각이 나긴 한다.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닌데···.’


떠오른 방법 하나가 있지만, 썩 내키지는 않는다.


일부 셀론의 방출과 이식.


지구로 올 때처럼 ‘셀론 방출’을 시도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자신의 모든 셀론을 방출하는 건 아니다.

그랬다간 이수에서 원영으로 아예 몸이 바뀔 테고.

저 학생의 부탁 정도라면 약간이면 된다.

일부분의 방출로도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방출되는 셀론의 양은 약 0.1퍼센트부터 시작해서 최대 1퍼센트 정도까지.


파르스 프로 토토.

부분이 전체를 나타낸다.


앞에서도 말한 셀론의 특징이다.

한 방울에 담긴 바다로 비유되는 특징.


리흐테르의 피아노 연주 데이터를 담은 이수의 셀론 일부를 방출해 원영에게 이식한 뒤, 원격 조정을 통해 원영의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뉴런과 시냅스에 잘 융합하도록 한다.

특히 피아노 연주에 작용하는 시냅스들과.


원영의 시냅스와 융합된 셀론은 원영의 신경 제어 능력을 탁월하게 향상시킬 터.

아마도 그 직후부터 원영의 피아노 연주는 눈에 띄게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원영의 시냅스와 이식된 이수의 셀론이 완전히 융합한 뒤로는 원격 조정도 필요하지 않다.

일정한 시점이 지나면 그때부터 셀론은 이미 원영의 뉴런과 마찬가지니까.


다만 셀론이 가세한 원영의 운동신경은 지금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물론 원영은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 수 없겠지만.


이수도 인간에 대한 셀론의 부분 이식이 궁금하기는 했다.

과연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으며, 혹시 문제점은 없는지, 원영은 과연 이식된 자신의 셀론을 의식하게 될지 등등.


다만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

지구인에게는 이해되지 않은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가 혹시라도 이수의 존재가 발각되는 건 아닐까 싶은 우려다.


아직 자신들의 두뇌에 대해서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인간들이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 인간 두뇌의 비밀을 밝혀내게 되는 날이 오면, 원영의 신체에서 이수의 셀론을 찾아낼 수도 있다.

마루 밑에 숨은 유태인을 찾아낸 영화 속 독일군 병사처럼.


발각이란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로즈웰에서 당했다는 어느 외계인의 사진이 학원 창문에 홀로그램으로 비치는 듯하다.

이수가 얼른 창문에서 시선을 돌렸다.

원영의 부탁을 받은 이수의 고민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 사이 원영은 원영대로 울컥 솟아올랐던 감정을 추스리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게 처음 본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았지만, 외려 기분은 홀가분했다.

이참에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그래. 내 주제에 무슨 피아니스트냐. 그만 접자. 맨날 원장 눈치 보며 학원 나오는 짓도 정말 지겨운데!’


뭐든 내려놓으면 가볍다.

사소한 꼬투리로 하나를 내려놓으면, 그 핑계로 나머지도 몽땅 던져버릴 나이다.


‘피아노고 뭐고 다 관두자! 때려 치자! 다 필요 없어!! 학교도 필요 없고, 집도 필요 없고!!!’


원영은 모든 걸 포기하는 심정으로 뒤돌아서 문으로 향했다.

입술을 깨물며 방을 나서는데, 눈치 없이 눈에는 습기가 맺힌다.

학원 애들이 볼까 싶어 원영은 눈을 비비는 척, 눈가의 습기를 손등으로 찍었다.

그렇게 방을 나가려는데, 이수가 원영을 불렀다.


“아까 연습하던 방에서 잠깐 기다려줄래요?”


이수는 조율을 다 끝내고 얘기하자고 했다.


“원장님에게 약속한 조율을 아직 다 못 끝내서요. 조율 끝나고 얘기해요.”


학원 밖으로 나가려던 원영, 발부터 일단 정지.

다 때려치우기로 한 오기도 일시 멈춤!


이수가 조율을 하러 다른 방으로 들어가자 원영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얹으니 조금 차분해지기 시작한다.

천천히 건반 위에 다시 손을 올렸다.


♪♩♪♩~~~♪♩♪♩~~♪♩~~


다시 시작된 연습.

원영은 카푸스틴의 소나타를 연습하며 조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만 무슨 얘기를 나눌지 궁금하고, 자기가 바보 같은 짓을 한 건 아닌가 싶어 연습이 잘 되지는 않았다.

그저 착잡한 심경을 가리기 위한 연습이었다.

그렇게 공허한 연습을 하며 이수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 * *


이윽고 조율을 모두 끝내고 다시 원영의 방으로 들어온 이수.

아까와는 달리 말에 주저함이 없었다.


“초면이 아니니까 존댓말은 사용하지 않을게. 먼저 조건이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절대로 내게 피아노를 배웠다고 말하지 않기!”

“그건 왜요? 불법 교습, 그런 거 때문인가요?”

“불법 교습? 아니, 그건 아니지만 어떤 이유건 절대 나한테서 피아노를 배웠다고 하지 않는다면 도와줄 수 있어.”

“그런 조건이라면 얼마든지요. 평생 입 꼭 잠그고 살 수 있어요.”

“어떻게 배웠는지도 말하면 안 되고!”

“어떻게 배운다니···무슨 얘기죠?”

“배워보면 알 거야.”


무슨 말인지 아리송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정작 원영에게 가장 뜨거운 조건은 그다음에 나왔다.


“두 번째는 돈. 레슨비라는 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대가를 말하는 거면 나는 그런 거 필요 없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널 가르쳐 준다고 해서 네가 정말 나처럼 피아노를 잘 치게 될지, 얼마나 실력이 더 늘어날지는 잘 모르겠어. 해 봐야 알겠지만, 전혀 안 될 수도 있어.”


‘인간에 대한 셀론의 부분 이식은 아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라는 말은 뺐다.


그래도 원영의 대답은 신병교육대 훈련병의 복창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그래도 도전해보겠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다.

돈 내고 하는 레슨도 아니고.


“좋아, 내가 말한 사항을 받아들이겠다면 내일부터 연습을 시작할 수 있어. 그런데 일단 준비 작업부터 해야 돼.”

“하죠. 얼마든지요. 뭐든 다요.”


준비 작업이라는 게 뭔지 궁금했지만, 꼬치꼬치 물을 계제가 아니었다.

괜히 캐물었다가 말이 바뀔가 싶어 조심스러운 원영.


“알았어.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지. 내가 말한 약속 반드시 지키는 조건이야!”


과묵했던 이수가 의외로 쿨하게 원영의 부탁을 승낙했다.

이렇게 쉽게 레슨을 받게 되다니.

그것도 공짜로!

원영의 얼굴이 급 밝아졌다.


“그럼요! 지금 약속 다 지킬 수 있어요! 제가 잘 못 쳐도, 콩쿠르에서 떨어져도 절대 선생님을 탓하진 않을 겁니다!”

“그거 말고 또 있잖아?”

“아, 누구한테 배웠다는 것도 절대 말하지 않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원영이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전 입 꼭 닫고 선생님이 지도해주시는 대로 손만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원영이 다시 이수를 선생님으로 불렀다.

그 말과 함께 혹시 몰라 한 번 더 확인 사살.


“···근데 선생님, 정말 레슨비는 안 받으시나요?”

“안 받는다니까. 그런데 아까는 형이라고 부르겠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건 부탁 좀 해보려고···. 솔직히···친한 척 비벼보려고 그런 거고요. 걱정 마세요. 지금부터는 깍듯하게 선생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냐, 그냥 형이라고 해. 나도 궁금하긴 했어.”

“뭐가요?”

“인간들에게 동생이 어떤 존재인지. 영화 속 얘기 말고, 현실의 진짜 동생은 어떤지.”

“아···. 그러시구나. 그런 게···궁금하시구나.”


이수를 보는 원영의 눈빛이 조금 이상해지긴 했지만, 당장은 사제지간의 신뢰를 쌓는 게 더 급할 때이므로 원영은 최대한 이수의 비위를 맞췄다.


“저도 동생이 없어서 잘은 모르는데요,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딱 한 마디로 정의해서 귀찮은 존재라던데요.”

“귀찮은 존재?”


친구 말을 전한다는 게 자살골이 됐다.

급히 핑곗거리를 찾았다.


“아니, 그러니까 우리처럼 우연히 만난 사이가 아니라 진짜 친동생이랑 형의 관계가 그렇다는 거죠.”


그러자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수.


“아까는 피를 나눈 진짜 형처럼 대하겠다더니?”

“그것도···사실이긴 한데···뭐 모든 동생이 그렇진 않겠죠. 안 귀찮은 동생도 있지 않겠어요. 저처럼요! 헤헤.”


대꾸가 궁색한 원영이 또다시 너스레를 떨며 웃음기로 얼버무렸다.

그런 원영의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이수.

매일 조 여사하고만 있다가 또래의 남자 인간을 대하니 느낌이 색다르다.


하지만 여전히 농담을 받는 건 이수에겐 쉽지 않은 일.

원영이가 웃음을 섞어가며 농담을 건네도 이수는 진지하기만 하다.


“형과 동생의 관계는 차차 확인하기로 하고, 그전에 먼저 피아노를 어떻게 배울 건지 테스트를 먼저 해봐야 하는데···.”


아까 말한 준비 작업.

이수의 셀론이 원영에게 잘 이식될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것도 원영이 알아차리지 않게.

그런데 테스트란 말에 원영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테스트요? 테스트를 해서···만약 제가 레벨이 안 되면 레슨을 못 해주실 수도 있다는 건가요?”


이수의 테스트가 피아노 연주실력 테스트라고 생각한 원영.

그러나 말을 못 알아듣기는 이수도 같다.


“레벨? 무슨 레벨?”


무슨 말인지 되묻자 대답 대신 피아노 의자에 앉는 원영.

카푸스틴의 소나타 악보를 다시 펼친다.

“간단히 말해서 형님이, 아니 형이, 내 피아노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은 거잖아요. 예고 애들 수준은 되는지. 혹시 급도 안되는 애가 가르쳐달라고 조르는 건 아닌지···?”


원영이 연습하던 카푸스틴 소나타의 첫 소절을 힘차게 시작하며 연설이라도 하듯 소리를 높인다.


“아니거든요! 나도 예고 갈 실력은 되고도 남거든요! 내가 형한테 마술이라도 부려달라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마시라고요, 자, 들어보시라고요!”


♩~♩♩ 따라라라라라 ♩~♩♩ ♩~♩♩ ♩~♩♩


시키지도 않은 레벨 테스트를 먼저 시작한 원영.

물론 이수가 말한 테스트는 이게 아니었지만, 덕분에 이수에게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이수 역시 마술을 부릴 건 아니었지만 비슷한 게 필요했다.


“그만! 연주는 됐고 내일 우리 집에서 만나.”

“형 집이요?”

“응. 학원은 보는 사람들이 많잖아. 내 레슨은 좀 독특해서.”


이수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 채, 일단 원영과 약속을 잡았다.


“그럼 레벨 테스트는 끝난 거예요?”

“레벨 테스트??? 어, 그래!”


이제야 원영의 얼굴이 앙금 없는 순도 100프로 함박웃음 해바라기로 변했다.



* * *



그날 밤.

원영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 같은 날, 원영은 하늘을 올려다 보지 않을 수 없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자, 마침 보름달이 환했다.

원영의 입에서 도박꾼의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하느님! 부처님! 달님! 고맙습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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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모두가 호로비츠 24.06.30 73 9 14쪽
41 32달러와 16,900원 24.06.29 74 9 14쪽
40 유령의 초대 24.06.28 70 10 13쪽
39 거리의 악사 24.06.27 92 11 14쪽
38 그런 건 또 기억하네 24.06.26 90 11 12쪽
37 내 아들, 내 딸의 얼굴 24.06.25 81 9 14쪽
36 숨기고, 돌아가고, 둘러대는 것 없이 24.06.24 87 9 14쪽
35 부정 출전 맞잖아요! 24.06.23 97 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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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바늘을 뽑아 줄 귀인 24.06.22 103 9 13쪽
32 바늘 방석 24.06.21 112 11 14쪽
31 이지 투 런, 하드 투 마스터 (Easy to Learn, Hard to Master) +2 24.06.20 124 11 13쪽
30 감(感)의 승부 24.06.19 107 10 13쪽
29 콩쿠르의 유령 24.06.18 132 10 14쪽
28 페어플레이 24.06.17 119 10 14쪽
27 어려운 숙제 +2 24.06.16 108 11 14쪽
26 엠스타 프로젝트 +2 24.06.15 134 10 15쪽
25 꼭 해봐야겠네, 그 연애 24.06.14 123 11 13쪽
24 나는 소중하니까 +1 24.06.13 140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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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게 궁금하시구나 24.06.11 144 11 13쪽
20 저를 아십니까? 24.06.10 155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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