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출전 맞잖아요!

나란히 벤치에 앉은 이수와 원영.
차분한 이수와 달리 원영은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벤치에 앉았다, 일어서기를 두어 번 반복하더니.
“형, 여기 잠깐 앉아 있어. 난 저기 가서 뭐 좀 사 올게.”
원영이 콘서트홀 주변에 있는 자판기를 가리키더니 곧바로 그리로 달려간다.
벤치에 앉아 원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수.
문득 수상자 발표 때의 이상한 현상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원영의 눈물 때문이었다.
발표 직후, 상장을 받고 돌아서는 원영의 눈에는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해 둔 눈물약을 짜내기라도 하는 듯, 순식간에 큼직한 눈물이 핑 돌았었다.
사람들은 슬플 때 눈물을 흘리는 게 보통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수는 콩쿠르는 슬픈 일이 많은 곳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오늘 이수는 시력 좋은 두 눈으로 여러 번 눈물을 목격했으니까.
너무 일찍 땡 소리가 울렸다고 생각했는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눈물을 글썽이던 학생이 있는가 하면, 연주를 마치고 홀을 나와서도 여전히 눈물을 닦는 학생도 있었다.
심지어 원영의 바로 뒤, 여학생처럼 피아노를 치기도 전에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한 학생까지.
그런 모습을 보면 괜히 이수의 눈에도 알 수 없는 자극이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엑스 시절의 이수로서는 이해되지 않았던 감정이었지만, 이젠 제법 그런 눈물에 이해가 되기는 했다.
그런데 원영이는 왜?
원영이는 대상을 받은 직후, 사회자로부터 상장을 받고 돌아서면서 눈물이 맺혔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마치 땀을 닦는 척,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이수는 그 모든 장면을 일 층 맨 뒤에서 '줌인'까지 해가면서 똑똑히 확인했다.
‘기쁜 일인데 어째서?’
물론 사람의 눈물이 여러 경우에 발생한다는 의학적 설명은 이미 네트워크에서 확인했다.
먼지가 들어가거나, 매운 고추를 먹거나, 하품을 하거나, 통증이 심하거나 등등.
그래도 기쁜 일에 왜 눈물이 나는지, 이수는 알 수 없었다.
네트워크에도 이수가 수긍할만한 설명은 없었다.
더 이상한 건 원영이 무대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볼 때의 이수 자신이었다.
그 순간, 이수의 가슴께 어디쯤에서 먹먹한 통증이 감지됐던 탓이다.
“외부적으로 어떤 충격이나 자극을 받지 못했건만 통증처럼 느껴지는 이 먹먹함은 도대체 뭐지?”
원영이 상장을 받고 있는 동안, 이수는 가슴 한구석에서 발생한 이상(異常) 현상에 궁금해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소름이라 부르는 피부에 발생하는 돌기 현상처럼, 이 또한 와이 행성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독특한 경험이었다.
“인간의 몸에 이식된 탓에 발생하는 셀론의 이상 반응? 아니면 장애가 있었다던 인간 진이수의 신체적 특징?”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심하게 아프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인간의 몸이란 참···. 어떤 때는 완벽하게 제어가 되다가도, 어떤 때는 내 셀론의 통제 밖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 또한 네트워크를 검색해 봐도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안이라 어차피 답은 없었다.
이수는 사람의 몸을 쓰면서 겪게 된 부작용 혹은 오작동의 일종이라고 넘겨버리기로 했다.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쓰다 보면 삼백 년도 모자랄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원영이 벤치로 돌아와 생수병을 내밀었다.
“자, 생수! 형은 음료수 싫어하잖아!”
맞다.
이수는 음료수 싫어한다.
사람의 몸을 관리하는 데 있어 별 도움이 안 되는 액체를 왜들 그리 좋아하는지.
이수가 원영이 건넨 생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형, 고마워! 다 형 덕분이야!”
“내 덕분은. 그보다···그냥 네가 열심히 한 거지. 축하해!”
‘인사는 네 양손에 파견 나간 내 셀론한테나 해 줘! 물론 이젠 너의 셀론이라 해야겠지만.’ 이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대신.
"앞으로 피아노는 계속 할 수 있겠네. 그렇지?"
"그럴 수 있을 거 같애. 그런데 일단 그런 건 좀 나중에···. 지금은 정신이 멍해."
"하여튼 목적을 이루게 돼서 다행이야."
"목적?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맞는 말이긴 하네. 목적을 이루게 도와줘서 고마워, 형!"
이수는 원영을 도운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는 표현이었는데, 원영에게는 다른 의미로 전해졌다.
말을 할수록 생각지 않게 자꾸 인사만 받게 되니, 이수도 그만 말을 줄이기로 했다.
아주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을 보고 있던 원영의 한 마디.
"아, 달이 안 떴네!"
"달?"
"응, 그럼 감사 기도를 올렸을 건데."
"무슨 감사 기도인데?"
"콩쿠르 연습하고 집에 갈 때마다 했던 거."
"그게 뭔데?"
그러자 정말 늦은 밤, 도박꾼의 기도를 올렸던 원영이 그때처럼, 같은 표정, 같은 목소리로 흉내내기 시작했다.
마지막 문장은 바꿔서.
"하느님, 부처님, 달님 고맙습니다!"
이수는 그런 원영의 모습이 재미있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형님! 고맙습니다."
원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처음 이수에게 인사를 할 때처럼 배꼽 인사를 시전한다.
이수에게는 이런 느낌도 참 이상하다.
자꾸 인사를 받으니 쑥스러워진다.
이수는 대답 대신 생수만 벌컥벌컥 마셨다.
얼마를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원영이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형, 아주머니께 전화 드려야 될 거 같은데? 미리 전화부터 드릴 걸 그랬네.”
“여기서 멀지 않다고 했어. 지금 해도 금방 오실 거야.”
“거리가 문제가 아니지. 그분들 얘기 끝내는 시간을 생각해야지.”
“끝내는 시간? 얘기 끝내는데 무슨 시간이 필요해? 아무 때나 말 그만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끝나는 거지.”
“형은 진짜 모르는구나. 아주머니들 헤어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데!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분이라며? 그럼 보나 마나지. ‘오늘 즐거웠어, 담에 또 보자!’ 이 얘기 하는 데만 30분은 걸릴걸!”
“에이, 설마?”
“형, 나랑 내기할래? 아주머니가 언제 오시는지!”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는지 다시 장난기를 내보이기 시작하는 원영.
“내기? 넌 나하고 내기해서 이긴 적이 없잖아?”
“이번엔 다를걸. 이건 가위바위보가 아니니까. 지금 전화해서 아주머니 오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한번 재 볼까?!”
이수와 원영이 정작 해야 할 전화는 안 하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다투고 있는 그때.
갑자기 그 목소리가 들렸다.
이수의 기억에 생생히 저장되어 있는 날카롭고 뾰족한 그 소리.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번엔 말끝이 더 뾰족해졌다.
민채린이었다.
갑작스러운 채린의 등장에 원영과 이수는 내기도, 전화도 다 못 했다.
* * *
사실 채린은 아까부터 이들, 정확히는 원영을 찾고 있었다.
이 층 방청석에서 원영의 연주를 처음 들었던 순간, 채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원영의 연주를 듣기 전까지 채린은 이번 콩쿠르에서 자신과 경쟁할 사람은 노유미 밖에 없다고 예상했었다.
영음 콩쿠르는 스크린 오디션을 통해 예심을 치르기에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예고 학생들이다.
이미 어렸을 적부터 각종 콩쿠르에서 마주치던 아이들.
그래서 이번 콩쿠르의 성적도 대강 짐작이 됐다.
잘 치던 아이가 갑자기 못 칠 리 없고, 못 치던 아이가 갑자기 잘 칠 리 없다.
외국에서 유학을 하다 갑자기 귀국한 고등학생이라면 모를까, 국내 대형 콩쿠르의 순위는 늘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그런데.
“쟨 누구야?”
처음 본 학생이었다.
채린이 참가자의 이름과 순서가 적힌 안내문을 다시 확인했다.
“우정고(高)? 예고도 아니고 일반고?”
그런데 압도적이다.
피아노 프레이징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다른 참가자들과 피아노 소리부터 아예 다르다.
듣보잡 참가자에게서 저런 연주가 나온다니.
급히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무대 쪽으로 몸을 바싹 당겼던 채린.
그런데 이상했다.
원영의 연주를 듣는데 자꾸만 지난번 조율사의 피아노 소리가 연상됐다.
콩쿠르 직전까지 채린이 수도 없이 머릿속에서 재생시켰던 피아노 소리.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소리였다.
그런데 지금, 그 소리와 너무나 흡사한 소리가 무대 위, 낯선 참가자의 피아노에서 울리고 있다니.
“쟤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지? 예고도 안 다니는 애가? 근데 그 조율사는 왜 자꾸 생각나고?”
원영의 연주를 들으며 혼자 중얼거리던 채린.
1악장을 거의 모두 연주할 즈음에야 끝난 원영의 순서.
그 순간, 채린에게 오늘 아침, 콘서트홀로 걸어올 때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쳤다.
전에 봤던 조율사를 닮은 것 같아 급히 뛰어가서 확인해봤던 모습.
물론 막상 가 보니 조율사라 생각했던 사람의 모습은 이미 자취를 감췄었다.
"그런데 그때 쟤를 본 거 같애?"
이상한 감이 느껴졌다.
조율사라 생각했던 사람과 함께 있던 학생, 그리고 조율사의 피아노 연주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연주.
“어쩌면 아까 내가 본 게 잘못 본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네?”
추리를 하던 중에 정작 아까부터 기다리던 노유미가 무대로 올라왔다.
그런데 피아노에 앉는 유미의 모습이 어째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다.
의자 끄는 소리를 내질 않나, 시작 직전 미스 터치까지.
평소 노유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노유미에 대한 관심은 거기까지.
채린은 다른 생각에 더 조바심이 났다.
결국, 노유미의 연주를 몇 소절 듣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선 채린.
이 층에 함께 자리한 낯선 외국인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이면서도,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객석을 빠져나왔다.
콘서트홀을 나온 채린이 급히 향한 곳은 영음 콩쿠르를 주관하는 재단 사무실.
재단 사무실은 교무실 등이 모여 있는 교무동 건물 3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휴일이지만 콩쿠르가 열리고 있으니 재단 사람들이 나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곳에서 원영의 콩쿠르 참가 서류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재단 이사장 딸 채린에게 그 정도의 '빽'은 있으니까.
* * *
영음 재단 사무실.
채린이 모니터 화면으로 누군가의 피아노 연주 영상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원영이 스크린 오디션을 위해 보내온 영상이다.
그런데 영상을 보는 채린의 표정이 점점 의아한 표정으로 변하며 고개까지 갸우뚱해진다.
“역시! 이건 아냐. 절대, 이럴 수는 없어.”
채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부우우우움~
채린의 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영음 직원이다.
“채린 양! 어디 계세요? 빨리 오세요. 잠시 후 최우수상 시상식인데!”
평소부터 채린을 잘 알고 있는 재단 직원이 시상식 때문에 급히 채린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채린은 수상식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무슨 상 준대요? 최우수요?”
말은 최우수지만 순위는 대상 아래다.
듣기에 따라서 왜 대상이 아닌 최우수상이냐고 묻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전화를 걸어온 재단 직원도 그렇게 들었는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돌렸다.
“아, 네, 그게···수상자 선정은 심사위원들 소관이라 저희로서는···.”
“그것도 못 받을 것 같아서 해 본 말이었어요. 근데 저 시상식은 안 가도 되지 않나요? 지금 할 일이 좀 있어서요. 원래 콩쿠르 시상식, 대충 하잖아요?”
“하긴 우수상 수상자도 못 나오긴 합니다만···.”
“그래요? 우수상은 누구였어요? 노유미?”
“네.”
“근데 걔는 왜요?”
“병원에 갔습니다. 심사위원장님 때문에요.”
“그래요···심사위원장님이? 병원에요?”
까닭이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 채린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관심사는 그쪽이 아니다.
대충 전화를 끊은 채린이 자신이 보던 모니터의 영상을 다시 뒤로 돌려가며 처음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서류를 보고, 모니터의 영상을 확인하길 여러 번.
마침내 확신을 하듯 중얼거렸다.
"이건 분명 뭔가 있어."
그러다 문득, 제 머리를 두드리는 채린.
"가만, 이런 바보! 얘가 대상이잖아!"
채린이 급히 사무실을 뛰어나와 다시 콘서트홀로 향했다.
* * *
가쁜 숨을 내쉬며 콘서트홀로 뛰어들어오는 채린.
"뭐야, 벌써 끝났어?"
제대로 된 시상식이 아니다 보니 채 오 분도 걸리지 않아, 시상식은 모두 끝났다.
다만 아직 상당수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자리를 빠져나가고 있느라 콘서트홀 주변은 여전히 혼잡했다.
수상은 못했어도 참가 기념 인증샷을 찍는 건지, 무대 위 피아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대상 수상자, 원영을 찾아보는 채린.
하지만 찾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이 층으로 올라가 부감으로 확인해봐도 마찬가지.
그 사이 점점 비어가는 콘서트홀.
“뭐야? 그새 가버린 거야?”
채린의 얼굴이 짜증 반, 실망 반 뒤섞인 채 일그러진다.
허탈하게 복도를 걸어 나와 콘서트홀을 나서는 채린.
다시 재단 사무실로 향했다.
급히 나오느라 메모를 하지 못한 대상 수상자, 이원영의 연락처를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 저 사람은?”
나무에 가려진 벤치에 채린에 시선이 꽂혔다.
분명 그였다.
이상한 조율사.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건, 역시나 채린이 찾고 있던 대상 수상자였다.
그러자 마치 수배범을 발견한 형사라도 된듯한 채린.
급히 벤치로 향했다.
그리고 뾰족한 목소리로 외쳤던 것.
“내가 이럴 줄 알았어!”
* * *
참가자들이 연습실로 쓰던 빈 교실.
연습용 그랜드 피아노는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 있다.
채린이 두 사람 앞에 서서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이 그쪽의 선생님이에요? 그러니까 제자?”
채린이 왼손 집게손가락으로는 원영을,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는 이수를 번갈아 가리키며 물었다.
채린의 말을 바로 반박한 건 말의 순발력이 이수보다 훨씬 나은 원영.
“제자는 무슨···? 어딜 봐서 우리가 스승, 제자 사이로 보여요? 여긴 우리 형이에요.”
그러자 곧바로 미간이 일그러지는 채린.
의심 90퍼센트의 눈초리로 따지듯 묻는 채린.
“형? 친형이라고?”
“친형은 아니고···.”
“그럼 무슨 형? 피아노 형?”
“피아노 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원영의 표정.
그러자 다시 심하게 눈을 찌그러뜨리는 채린.
“자꾸 이상하게 둘러대지 말고 솔직하게 사실대로 까 봐요. 사무실에 찔러서 부정 출전으로 상 받은 거 싹 다 취소하고 실격시키기 전에!”
“뭐? 부정 출전? 실격? 당신이 뭔데?”
원영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채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취소라니! 실격이라니!
“부정 출전 맞잖아요! 지도 교사도 가짜로 적었고 오디션 연주도 가짜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벌써 내가 다 확인했어! 참가신청서랑 스크린 오디션 영상까지.”
그나마 가끔씩 말끝에 붙여주던 ‘요’자는 어느새 실종되고, 두 사람 사이엔 큰소리만 오가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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