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내가 혜성이 되게 된다면

삐걱거렸었던 첫 만남 이후, 윤우는 선우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룸메이트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꾸준히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학교에 대한 적응 자체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순탄하게 흘러갔다. 윤우는 기본적으로 신력을 다루는 훈련에 더불어 환술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는 훈련, 기초 체력 훈련, 분신술이나 축지법 등 다양한 훈련 세션들을 착실히 수행했다. 더불어 윤우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가장 늦게 입학했던 아이였기 때문에 따로 기본적인 무기들을 다루는 훈련까지 추가로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아주 정신없는 일주일이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갔다. 그리고 바로 내일. 2학년 아이들의 첫 [현장실습]을 앞두게 되었다.
퇴마사 전문학교의 꽃이라 불리는 [현장실습]은 졸업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3학년 아이들이 본부로의 발령을 대기하면서 첫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바로 그들의 첫 퇴마 임무를 직속 후배인 2학년들이 따라가 실제 요괴와의 전투에 대한 경험을, 그리고 ‘지금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는 이 현장이 바로 네가 선택한 퇴마사라는 길이다‘라는 직업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몸소 가지게 해 주기 위한 일종의 학교 전통과 같은 중대한 사건이었다.
쉽게 말해 2학년 아이들에게 현장실습을 시키던 이유 중 하나는 3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말하자면 졸업 시험을 포함해 실제로 본격적인 퇴마사의 길을 나아가기 전에 견뎌내지 못할 아이들을 걸러내려는 시험으로써 실제로 매번 현장실습을 무사히(?) 다녀온 아이들 중에 상당수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알려져 있었다. 여기서 ‘무사히’ 란 부사가 덧붙여진 이유는 현장실습 자체가 아무래도 요괴와 직접으로나 간접적으로 전투를 하기 때문에 운이 좋다면 사소하게 다치는 것으로 끝났지만, 배정된 임무의 난이도가 본부의 예상치보다 높았을 경우에는 전투에 앞장섰던 3학년 학생이 결국 퇴마를 하지 못하며 뒤를 따라온 2학년 아이들까지 전부 몰살당하는 일이 간간이 벌어져왔었다. 불과 며칠 전에도 호걸 선생은 현장실습에 배정될 조를 아이들에게 짜주면서도 신신당부를 했었다.
“현장실습 다음 날에 학교를 나오지 않는 녀석들은 기합받을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그때까진 현장실습의 무시무시함을 전혀 알 길이 없었던 2학년 아이들은 의미심장했던 호걸 선생의 당부에 아직까진 자신만만한 모습들을 보이고 있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탁 위에 놓여있던 거대한 상자 안으로 호걸 선생이 손을 집어넣더니 상자 안에 있던 공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딸려 나온 공에는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있었다.
“현장실습에 배정될 조를 발표하겠다! 먼저 윤 수성을 따라갈 1조는 강 선우, 김 민준, 송 시화, 그리고 한 윤우. 이렇게 4명이다. 다음 2조는...”
예상하지 못했던 서로의 이름이 호명되자 눈이 마주치고 마는 선우와 윤우였다. 그 두 사람이 당시 주고받은 눈빛 사이에는 여태껏 같은 방을 썼으면서도 아직 온전히 풀지 못 한 불꽃이 남아 이글거리는 듯해 보였다.
“살려달라고 내 다리나 붙잡지 마라. 한 윤우. 내게 방해만 되는 널 구해줄 생각 따윈 없을 테니까.”
선우가 윤우를 향해 먼저 한 방을 날렸고, 이에 윤우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너 요괴를 실제로 본 적은 있냐? 너야말로 요괴를 보자마자 무섭다고 도망치지나 마. 강 선우.”
두 사람은 다가올 현장실습에 대해서 자신만만해 보였지만, 사실 그들의 마음속에선 요괴를 직접 마주할 것에 대해 잔뜩 긴장감이 오르고 있었다. 윤우 아니 2학년 아이들 대부분은 이미 요괴를 개인적으로 경험 했었기에, 각자 그들의 내면 속을 감추고 있었던 허황된 자신감이 서서히 걷혀가며 어느덧 마음 한편에 깊이 숨겨져 있었던, 이전 요괴와의 경험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우에게는 도복과 같이 깔끔하고 수려한 모습의 흰 퇴마복이 온통 인간의 피로 붉게 물들어버린 모습과 시화에게는 산으로 둘러싸인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한 여자애가 시화를 향해 웃으며 작별 인사를 고하던 모습이, 윤우에게는 단짝 친구였던 성호의 비참한 죽음과 그 앞에서 마주했던 자신의 미래에 끝내 저항하려 했었던 강렬한 기억들이 아이들 모두를 조금씩 잠식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그랬던 그들을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민준이었다.
“다들 갑자기 표정들이 왜 그래?”
그도 그랬던 것이, 민준이는 [빙의자]로서 유복한 집안에 태어났던 것과 더불어 애정이 넘쳤던 부모에게 남부럽지 않은 사랑을 받아왔던 행복한 기억 말고는 딱히 상처라 할 무엇도 없었기에, 현장실습을 앞두고 거의 대부분이 어두워진 이 순간에서도 민준이는 유일하게 밝을 수 있었다. [빙의자]는 소위 ‘무당’이라고 불리던 자들의 핏줄이 이어진 퇴마사로, 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들끼리의 가문을 만들어 존재해 내려왔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재화를 모아올 수 있었고, 그러한 점으로 퇴마사의 세계에선 꽤나 힘이 강력했었다.
[빙의자]는 일반적인 퇴마사와는 달랐던 특이점이 존재했었는데, 이들은 다른 퇴마사들처럼 신력을 갖고 태어나 그 안에 고유적인 성질이 다른 아이들과 같이 새겨져왔다고도 볼 수 있었지만, 특이점이라 함은 이러한 성질이 단지 [빙의]의 능력에만 국한이 되어있었다는 점이었다.
가문에 갓난 아이가 태어나면 그들은 곧바로 자신들이 모셔오던 신에게 찾아가 아이를 그에게 맡기는 의식을 행하였고, 끝내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던 아이들은 이후에 온갖 방법으로 은총을 내려준 신에게 빙의하여 한시적으로 신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었다. 이처럼 지금까지도 자리를 지켜 온 유서 깊은 가문의 자제들만 빙의자로서 존재했기에 그들의 수는 일반적인 퇴마사에 비해 적었고, 그로 인해 그들의 존재 자체가 매우 귀했으며 2학년이 아닌 학교 전체에서도 빙의자는 민준이와 세희 단 두 명뿐이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 사이에서도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했었는데, 세희가 속한 ‘정파’ 가문은 전통적으로 오직 [천계]에 속한 신들을 가문별로 한 분씩, 그들만을 ‘유일신’으로 정성껏 모셔왔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천계의 신들뿐만 아니라 여러 잡다한 신들까지 모시는 가문이 등장했다. 이들은 정파에 의해 ‘사파’가문으로 취급되며 빙의 가문 내에서 서로 파벌을 나누며 전쟁을 치르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민준이의 경우 ‘사파’에 속해있었고 정파의 빙의자들은 사파의 빙의자들을 같은 부류로 취급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현재도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세희와 민준이는 가문의 문제에 연연하지 않고 사이가 좋았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가문에 있어서는 서로 비밀로 유지했었다.
“강 선우랑 한 윤우만 겁이 많은 줄 알았더니, 시화 너도 겁이 많았구나? 뭐 벌써부터 다들 무서워서 울려고 그래 다들? 하하하”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를 깨며 등장했던 민준이의 도움으로 2학년 아이들은 모두들 자신을 집어삼켜갔었던 두려움의 늪 속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난 먼저 간다.”
방금 전, 깊은 곳에서 떠올랐던 빛바랜 기억에 괜스레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던 선우는 같은 조로 배정된 아이들을 향해 간단한 인사를 건네며 먼저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우는 민준이의 도움으로 다시금 정신을 차렸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똑같은 장면이 자꾸만 그의 눈앞을 아른거려왔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마음먹고 사력을 다해 날렸던 [천뢰]를 부적도 없이 완벽하게 무효화시켰던 윤우의 모습이었다.
‘지금의 내 수준으론 한참 부족해.’
그렇게 선우가 먼저 자리를 비우자 남겨진 아이들 가운데서 시화가 먼저 입을 떼며 말했다.
“윤우야 오늘은 기숙사에 혼자 가야겠다.”
“응? 시화야 넌 지금 안 가게?”
“난 체육관에 남아서 조금만 더 연습하다가 가려고. 큰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모두에게 짐이 되어선 안 되잖아.”
그렇게 시화는 조그마한 주먹을 강하게 쥐어 보이며 무언가 결심한 듯 한껏 비장해진 표정으로 아이들에게서 돌아서선 점점 훈련장으로 멀어졌다.
‘두 번 다신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아..’
의미심장했던 다짐과 함께 발걸음을 옮겨가던 시화에게 그 순간, 누군가 나타나 어깨동무를 걸었다. 그의 정체는 바로 윤우였다.
“나도 같이 할게. 현장실습에서 가장 큰 짐은 네가 아닌 바로 나일 테니까.”
그러자 또 다른 인물 하나가 윤우의 남은 오른쪽 구석을 파고 들어와선 말했다.
“그건 맞지~ 현장실습 때 잔뜩 얼 타고 있을 한 윤우가 심히 걱정이 됩니다. 나도!”
그렇게 결국 선우를 제외하고 남은 민준이 또한 윤우의 팔을 들어 올리며 어깨동무에 참여했다.
“1팀 가보자고!!”
현장실습을 위한 조 배정이 끝나고, 2학년 아이들은 모두들 각자의 방식대로 현장실습을 준비했다. 아이들 대부분은 자신에게 새겨진 성질을 적극 활용해 도술을 강화하는 것에 시간들을 보냈었지만 상대적으로 늦게 도술을 터득했던 윤우는 특히나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꽤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부적을 움켜줘가며 처음 도술을 사용했었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려 한 윤우였지만 정확히 기억이 나지도, 이제는 들려오지도 않는 당시의 주문 탓이었는지 부적을 쥔 윤우의 주먹에는 어떠한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전혀 나아지지 않는 자신의 상황에 어느덧 윤우는 답답해져만 갔다.
“불꽃이 왜 나오질 않는 거야?!”
한참 동안을 부적과 씨름했던 윤우는 오히려 자신의 분을 못 이겨 결국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동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던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쉽게 그럴 순 없었다. 왜냐하면 잠깐만 고개를 돌려봐도 그의 주변에선 모두들 자신의 현장실습만을 위한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개인적인 이유로 막아세울 수는 없었다.
‘저렇게나 다들 열심인데 내가 방해할 수는 없잖아.’
다시금 마음을 고쳐먹고 부적을 꺼내드려는 그 순간, 갑자기 민준이의 얼굴이 윤우의 시야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놀란 윤우는 외마디 짧은 비명을 질러버리고 말았고 결국 의도치 않게 아이들의 집중을 깨트리고 만 윤우였다.
“아 깜짝이야!”
“우리 후배가 뭔가 심각한 고민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 이 선배님이 친히 도움을 줄 테니 어디 한번 내게 말해보거라. 흠흠.”
잠깐 동안은 다시 연습에 몰입하기 위해 민준이를 밀쳐내려던 윤우였지만, ‘그래. 못 미덥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 앓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란 생각에 윤우는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문제들을 전부 민준이에게 털어놨다.
“그래. 그래서 전에는 네가 요괴를 상대할 때 도술을 사용해서 불꽃을 꺼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무슨 짓을 해봐도 불꽃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인 거지?”
“정확해.”
그러자 조용히 윤우의 고민을 들어주던 민준이는 어느새 팔짱까지 끼어가며 마치 한동안 텔레비전에 유행했었던 고민 상담가 선생님과 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이기까지 했다. 처음엔 진지하게 윤우의 고민을 들어주는 듯해 보였지만 이내 민준이는 번져가던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았다.
“거짓말 하고 있네! 부적도 여기 와서 처음 본 놈이 무슨. 불꽃? 뭐? 뭐라고? 하하 하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민준이의 반응에 오히려 문제만 심해진 것 같았던 윤우는 이내 자신을 믿지 않는 민준이를 향해 답답한 듯 팔 부분의 소매를 거둬가며 열과 성을 다해 다시 말했다.
“진짜라니까? 내 양 팔에서 불꽃이 갑자기 막.. 응?”
“뭐. 네 말대로 만약 그게 거짓말이 아니었다면 언젠가는 사용할 수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더 열심히 수련하도록 하거라!”
이 말을 끝으로 민준이는 명쾌한 답을 내려줌으로써 윤우의 고민을 해결해 줬다고 혼자 생각해 괜스레 뿌듯한 표정과 함께 그만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윤우가 민준이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부탁이야 도와줘. 난 더 강해지고 싶어. 지금 이 말은 백 퍼센트 진심이야. 김 민준.”
-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