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우리들의 현장실습(1)

민준이가 마주했던 당시, 윤우의 눈은 순수했던 만큼이나 한 치의 거짓 없이 정직했다. 그랬기에 민준이 또한 장난기 가득했었던 얼굴이 어느 순간에 진지함을 찾았다. 이윽고 윤우의 진심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던 민준이는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부적 하나를 꺼내 보였다.
“네가 정 그렇다면 신력이 깃든 무기, [주구]를 사용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거야. [주구]가 너의 신력 안에 새겨져있는 성질을 이끌어내줄 수도 있거든. 예를 들어 나처럼 말이야.”
이윽고 민준이가 부적을 튕기자 어느새 [하회탈] 같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 정체불명의 가면 하나가 ‘펑’ 하고 나타났다. 이 학교에 입학한 이후 처음 본 무기의 형태에 놀란 윤우에게 민준이가 먼저 다가가 말했다.
“내게 적응된 [주구]는 바로 이 가면이야. 우리 가문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거지.”
“가면?”
“잘 봐. 이걸 보고 나면 날 진짜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민준이가 거리가 가까웠던 윤우를 자신에게 조금 멀리 떨어트려놓더니 이내 가면을 자신의 얼굴에 씌우며 소리쳤다.
“보여주자!”
가면을 쓰자마자 갑자기 민준이는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고, 이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신력이 서서히 그의 주변에서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이는 곧 푸른 불꽃의 형태를 띠며 민준이의 온몸을 감싸기에 이르렀다. 그의 모습은 마치 하늘의 신이 내려온 듯 경이롭기까지 했었다.
“야 김 민준! 너 괜찮아?”
윤우가 날아오른 민준이를 향해 소리치자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를 내뿜던 민준이가 빠르게 그를 향해 다가왔다.
“무례하도다. 어디서 고개를 치켜들고 내게 소리를 지르느냐!”
그때 들려온 목소리는 민준이의 평소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하지만 이내 민준이의 본 목소리도 뒤따라 들려왔다.
“괜찮아. 그냥 장난치시는 거야.”
“나는 이곳을 지키는 [성황신]이로다. 예를 갖추거라!!”
“성황신..?!”
이윽고 [성황신]에 빙의된 민준이가 윤우의 얼굴 아주 가까이까지 다가가서는 두리번거리며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뭐야, 하하 하하. 네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말들을 뱉어가며 웃기 시작한 [성황신]. 그러고는 자신이 본 무언가를 윤우에게 말해주려던 그 순간, 민준이가 잽싸게 가면을 벗어버리며 빙의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자신의 안에 숨겨져있던 무언가의 정체에 대해 들을 수 있을 절호의 기회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던 윤우는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이었다.
“야 괜찮냐? 얘는 왜 이렇게 얼이 빠져있어 또..”
“아니 방금... 방금 나한테 성황신이 무슨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왜 갑자기 가면을 벗은 거야?!”
이제는 초점이 돌아온 윤우가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민준이를 잡고 흔들었다.
“그랬어? 난 성황신이 널 공격하려고 하는 줄 알았지. 크크크”
성이 잔뜩 난 윤우를 뒤로하고 민준이는 체육관 안쪽에 위치했던 창고로 들어가더니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장검같이 기다란 목검 하나를 들고나오며 윤우를 향해 던졌다.
“넌 아직 따로 적응된 무기가 없을 테니깐 이거라도 사용해.”
윤우는 민준이에게 건네받은 목검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그가 건네준 검은 마치 기초체력 훈련 때 사용하던 연습용 목검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도 연습용 목검이야?”
“아니. 연습 때 사용하는 건 학교에서 일부로 신력을 봉인시켜둔 거고, 지금 그건 봉인되지 않은 거야.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주구]라는 거지. 그 검을 사용해 너의 신력을 다루는 수련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력에 무기가 적응하면서 너의 안에 새겨진 성질이 무기에 드러나게 될 거야.”
“적응..”
적응이란 민준이의 말을 듣자 윤우는 이전 자신의 팔을 휘감았었던 불꽃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시 한번 일렁이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그래, 적응. 현장실습까지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진 않았지만 최대한 무기와 함께 호흡해 가면서 적응시키는 거야. 혹시 알아? 나중엔 정말 네가 불꽃을 다룰 수 있을지 말이야. 우리 동기들 중에는 불을 다루는 애는 없으니까 또 어영부영 남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주구를 건네준 민준이에게 짧게 감사 인사를 건넨 윤우는 곧 자신이 해내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와 함께 다시금 열정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잘 부탁한다.’
그렇게 각자 현장실습을 위했던 모두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덧 현장실습 당일이 찾아왔다. 윤우를 포함한 1조의 아이들은 기분 나쁜 안개가 무겁게 내려앉았던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주변에 온통 축축이 비가 내리고 있던 와중에, 임무에 배정된 마을의 입구에서 아이들은 이번 현장실습을 이끌어 줄 3학년, 윤 수성을 만나게 되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수성의 목소리.
“너희들이 1조?”
“네! 오늘 선배님에게 배정된 1조입니다!”
아직 그림자에 가렸던 그의 실루엣에 윤우와 아이들은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았다. 그러자 조금씩 그의 얼굴이 그림자 밖으로 드리웠고 끝내 수성의 모습을 보자 선우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치 선우와 형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난 외모뿐만 아니라 선우에게서 느껴지던 차가운 분위기까지 비슷한, 그게 수성의 첫인상이었다.
“둘이 완전히 판박이네..”
“서로 잃어버린 형제가 아닐까?”
“야. 들리겠다. 목소리 좀 낮춰.”
윤우와 시화 그리고 민준이는 선우와 닮은 선배 수성의 모습을 보고는 그 두 사람 몰래 뒤에 모여선 수군거렸었다. 하지만 이는 곧 얼마 가지 않아 수성에게 들켰다.
“긴장해라. 이건 연습이 아닌 실제 상황이니까.”
실제 상황이라는 수성의 말에 이내 다시금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한 실습 무리. 3학년 수성이 먼저 앞장을 섰고 그의 뒤를 따라 서늘함이 물씬 풍겨져오던 꺼림칙한 마을을 향해 아이들이 들어갔다. 이후 천천히 마을의 주변을 둘러보던 수성은 잔뜩 내려앉은 안개로 인해 시야 확보가 어려워 혹여나 요괴의 기습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 자신의 뒤를 따르던 2학년 아이들을 불렀다.
“안개가 짙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기습이 들어올지 몰라. 그 녀석들은 신력을 따라 움직이니 이미 우리가 마을에 들어온 것을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다들 경계태세를 갖춰.”
수성이 조심히 앞으로 한 걸음씩 옮겨가며 자신의 뒤에 있을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잘만 들려오던 대답들이 어느 순간부터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수성이 고개를 획하고 돌려보자 분명히 느껴졌었던 아이들의 인기척들이 어느새 전부 사라지며 어느덧 자신의 뒤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젠장. 벌써 당한 건가?”
그때 사라진 아이들의 행방에 당황했던 것도 잠시, 어느새 수성의 뒤론 저 멀리 날카로운 무언가가 안개를 뚫고 나와 순식간에 선우의 몸을 노리며 날아왔다.
“잘 가!”
“이런...”
엄청난 속도로 수성이를 향해 날아온 것은 다름 아닌 끝이 날카롭게 갈려있었던 커다란 삿갓이었다. 갑작스러운 요괴의 기습에 의해 수성은 그 공격에 반응할 틈도 없이 결국 날아온 삿갓에 몸이 관통된 상태로 근처 나무에 맥없이 꽂혀버리고 말았다. 거대한 삿갓에 꽂혀 나무에 붕 매달려있는 수성은 이미 숨을 거둔 듯 조용히 축 처져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그의 앞으로 천천히, 삿갓의 주인으로 보이는 거대한 몸집의 요괴 하나가 안개 속에서 정체를 드러내며 수성이를 향해 다가왔다.
요괴의 키는 수십 척은 더 되어 보였고 그의 눈은 횃불처럼 활활 불에 타고 있었으며, 그런 요괴의 얼굴은 인간이 아닌 마치 ‘소반’처럼 동그랗고 하얀 모습이었다. 전해져오는 기록에 따르면 수성을 기습한 이 요괴의 정체는 바로 [사립괴]였다. 사립괴는 눈을 뚫고 나오던 잔열을 힘껏 뿜어가며 죽은 듯 보이는 수성의 앞에 섰다.
“아까 마을에 들어온 녀석들 중에선 이 녀석이 제일 맛있어 보였으니 이놈은 내 거다!”
잔뜩 침을 흘려가며 사립괴는 앞서 수성의 시체를 먹기 위해 그를 강하게 고정하고 있던 삿갓을 힘껏 뽑아들었다. 그러자 그 순간, 죽은 수성의 시체가 갑자기 전부 물처럼 변해버리더니 금방 바닥으로 왈칵 쏟아졌다.
“이.. 이게 뭐야?!”
갑자기 물로 변해버린 수성의 모습에 당혹스러운 요괴는 사라져버린 수성을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한 찰나의 순간, 빠르게 사립괴를 노리며 들어오는 정체 모를 공격. 마치 최고로 날카롭게 압축된 듯한 강한 물줄기가 맨 살갗을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빈틈을 정확히 노려 들어온 일격에 결국 요괴는 온몸이 하염없이 뚫려버리고 말았다.
“으아아악!!!”
그렇게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는 요괴의 앞으로 어느새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자는 다름 아닌 어디 이렇다 할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의 수성이었다.
“아니 어떻게!! 어떻게 네놈이..”
“네놈 같이 하찮은 [2급 요괴]한테 내가 일일이 설명해 줄 필요는 없고..”
수성은 요괴와 말 섞기 싫다는 마치 귀찮은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그의 허리춤에서 부적 하나를 더 꺼내 보이더니 쓰러져있는 사립괴를 향해 부적을 던졌다.
“수환(水環).”
그러고는 주문을 외우자 금세 부적 안에선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는 곧 하나의 구체와 같은 모습을 보이며 요괴를 물 안에 가두어버렸다. 그렇게 물속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요괴는 그 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온갖 난동을 부려봤지만 구체 밖은 아무런 미동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평온했다.
“이대로 널 봉인하기 전에 하나만 물어볼게. 나랑 같이 이 마을에 들어온 아이들 말이야. 지금 그 아이들 교육 목적으로 이렇게 현장실습을 나온 거거든?”
이윽고 천천히 갇혀있는 요괴를 향해 다가가는 수성. 어느덧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둘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수성이 고개를 들어 물 안에서 죽어가는 요괴를 향해 물었다.
“지금 내 후배들은 어디 있어.”
- 작가의말
열심히 썼습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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