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반드시 도달하리 한순간의 빛으로

오래전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어느 산 중턱에서, 늦은 밤 실종 신고되었던 아이들 중 한 아이만이 유일하게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바로 성민이었다. 신고가 들어오기 불과 몇 시간 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성민이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친구 몇 명과 함께 모여서는 후에 있을 자신들만의 비밀에 대해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무리에서 한 아이가 자신들의 뒤에 위치한 거대한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장산에 진짜 그게 있다는 거지?”
그러자 다른 한 아이가 잔뜩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이에 답했다.
“그렇다니깐! 눈은 아주 부리부리하고 발톱은 나무도 단숨에 베어버릴 정도로 날카로운, 마치 짐승처럼 생긴 털북숭이 괴물이 바로 어제도 여기 장산 근처에서 나타났대!”
“먹잇감인 녀석의 주변 목소리를 완전히 똑같게 흉내를 내서 유인한 다음에는 잔인하게 잡아먹는다는데?!”
어느덧 무리에 속한 아이들이 하나 둘, 자신들이 들었던 ‘산에 사는 괴물’에 관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한 아이가 팔짱을 낀 채로 좁디좁은 틈을 비집으며 구석에 있던 성민이를 향해 다가왔다.
“야. 우 성민. 내가 시킨 건 가져왔어?”
그러고는 대뜸 성민이를 향해 무언가 꺼내보라며 손짓하는 아이. 그러자 성민이는 자신의 주머니 안쪽에서 꼬깃꼬깃 접혀있던 부적 하나를 어렵사리 꺼내 보였다. 부적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그 아이는 무서운 속도로 성민이의 손에서 부적을 뺏어갔다.
“그거 우리 아버지 건데..”
“아 시끄러워! 애들아 이것 좀 봐봐. 이 부적만 있으면 우리도 괴물들을 쉽게 없애버릴 수 있다니까!”
부적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해 보였던 그 아이의 이름은 바로 정 병훈. 병훈이는 성민이의 오랜 소꿉친구였다. 체격 차이가 그렇게 나지 않았었던 바로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병훈의 집은 성민의 바로 옆집이었기에 그들의 부모님들끼리도 서로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병훈이는 성민이의 아버지가 [퇴마사] 일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가끔 성민이네 구경도 했었기 때문에 [부적]의 존재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병훈이는 자신도 성민이나 성민이의 아버지처럼 신력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존재라고 믿었었고, 그렇게 믿고 싶어 했었다. 그렇기에 이번 작전에서도 자신이 부적을 가지고 있다면 소문 속의 괴물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성민이를 시켜 부적을 몰래 가져오게 만들었다. 그렇게 성민아가 병훈이의 명령대로 부적을 들고 오자 이내 다른 아이들은 기세등등해진 병훈이의 모습을 보고는 그를 더욱 대장으로 치켜세우는 듯해 보였다.
“역시 병훈이가 우리 대장이라니까!”
그러자 병훈이는 힘을 잔뜩 주며 하찮게 솟아오른 근육을 아이들에게 보이며 만족한 듯이 말했다.
“당연하지! 내가 아니면 누가 대장을 하겠어?”
아이들과 병훈이가 잔뜩 대장 놀이를 하고 있던 와중, 낮 동안 열심히 빛을 뿜어대던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자취를 감추려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느다란 나무 막대기들을 잔뜩 들고는, 준비를 마친 아이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노을을 발밑에 제쳐두며 천천히 병훈이를 뒤따라 괴물이 나온다는 산을 향해 들어갔다. 성민이는 그러한 아이들의 제일 맨 뒤에서 마지못한 듯한 표정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정말 들어갈 거야? 소문처럼 진짜 괴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사실 무리에서 유일하게 신력을 가지고 있었던 성민이는 잘 알고 있었다. 성민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평범한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흉측한 괴물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그 누구도 이러한 성민이의 걱정스러운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진짜 괴물이 도대체 어디 있겠냐? 이 바보야!”
“야, 우 성민 또 혼자 겁먹었다! 그럼 넌 다시 돌아가던가~”
“가보자! 괴물을 잡으러!!” “가자!”
아이들은 출발 전과 다를 바 없는 힘찬 표정으로 점점 더 산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그렇게 결국 완전히 사라진 해를 따라 찾아온 지독한 어둠이 어느덧 사방을 무겁게 짓눌렀을 때, 가엾게도 소문 속 괴물을 찾아 떠난 아이들은 전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병훈아! 병훈아 어디 있어!!”
“성민아! 성민아!!”
그로부터 수 시간이 더 지나 겨우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을 때, 사라진 아이들의 부모님들을 포함해 수많은 경찰관들이 실종된 아이들을 찾기 위해 산속으로 긴급 투입 되었다. 아이들을 수색하던 그들 가운데는 이미 흘려댄 눈물 때문인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퉁퉁 부어있던 부모님들도 여럿 보였다. 찾아도 찾아도 자그만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시간들이 의미 없이 이어지던 그 순간, 어느 경찰관 하나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러대며 가지고 있던 호루라기를 삑 하고 불어댔다.
“찾았습니다!!”
경찰관이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상태로 제자리에 가만히 얼어붙어있었던 성민이었다. 그런 그를 보자마자 성민이의 어머니는 성민이를 와락 품에 끌어안았다.
“성민아, 다친 데는? 다친 데는 없어? 괜찮은 거야?”
눈물겨운 모자상봉이 이뤄지려는 바로 그때, 누군가 나타나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성민이를 강하게 낚아채갔다. 충격이 컸던 성민이를 강압적으로 잡아채간 사람의 정체는 바로 사라진 병훈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잔뜩 흥분한 상태로 성민이에게 소리를 질러대기까지 했다.
“우리 병훈이는? 병훈이는 어디 있어! 내 아들은 지금 어디 있냐고!!”
그런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붉게 충혈된 눈은 어딘가 섬뜩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때 성민이는 자신에게 절규하는 그녀가 이전 자신에게 다정히 인사해 주던 병훈이의 엄마와 동일 인물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러한 충격 때문이었는지 성민이는 그녀에게 잡혀선 어떠한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녀의 손에 따라 이리 끌렸다가 저리 내팽개쳐질 뿐. 이후 경찰관들이 나선 뒤에야 성민이는 그녀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주머니 그만하세요. 그만!”
당시의 그들은 병훈이네 엄마를 성민에게서 힘겹게 떼어낼 수야 있었지만, 성민이의 기억 속에서의 그녀는 결국 떼어낼 수 없는 아픔이 되었다.
한편 성민이가 발견된 뒤, 산에 투입된 경찰관들은 다른 아이들도 살아있을 것이란 희망에 인원을 증축해가면서까지 산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써봐도 사라진 아이들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고, 그렇게 성민이를 제외한 친구들, 그 누구도 다시는 산 아래로 내려올 수 없었다.
사건 이후, 당연히 아이들의 실종은 성민이만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댈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렇게 성민이는 [그날]에서 홀로 살아돌아온 죗값으로 사회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당연히 누구보다도 가까웠던 병훈이네 가족들까지 모두. 그러나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던 성민이의 곁에는 당연하게도 그의 가족만큼은 남아있었다.
“아들 걱정하지 마. 아빠가 모두 책임질 테니까.”
성민이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항상 [퇴마사]라는 직업에 대한 책임과 자부심을 가졌던,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가득했었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고립되어 버린 자신을 위해서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순간을 과연 누가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성민이는 자신에게로 향하던 공격들을 대신해 막아주겠다며 나타났던 아버지의 등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넓고 듬직하게만 느껴졌다.
이후 성민이네 가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로 올라왔다. 이는 성민이의 아버지가 퇴마 본부에 강력히 요청한 끝에 간신히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부산보다도 더 일이 많았던(등장하는 요괴의 수가 훨씬 많아서 위험한) 서울의 본부로 자원했던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노력 덕분이었는지 성민이는 점차 ‘그날의 기억’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성민이는 여전히 ‘산’ 아래로 내려오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민이는 그 상처를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만 가둬둘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천천히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성민이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퇴마사 전문학교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찾아온 2020년 2월, 아직 겨울이 온전히 가시지 않았는지 여전한 추위가 남아있었던 학교의 정문에는 아이들의 입학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입학식을 위해 학교로 들어가는 몇몇 아이들의 뒤를 따라 성민이가 발을 내디디려는 그때, 아버지가 성민이를 향해 말했다.
“열심히 해! 졸업하고 본부로 발령이 나면 그땐 아빠와 같이 일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응. 열심히 할게. 같이 임무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성민이는 아버지를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가벼운 미소를 보이며 다시금 학교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성민이는 주먹이 붉게 물들 정도로 강하게 쥐어가며 스스로에게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 녀석에게 내 손으로 친구들의 복수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게, 아들.”
둘은 서로 함께 일하게 될 그날 얼마나 목 빠지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그 두 사람의 동반 임무는 생각보다도 아주 먼 훗날을 기약하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할 약속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유독 날카롭게 칼바람이 몰아치던 그 해 겨울. 꽁꽁 얼어붙은 밤의 어느 장례식장 안. 검은 양복과 함께 완장을 차며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성민이 그리고 그런 그의 뒤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성민이 아버지의 영정사진이 걸려있다. 혼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서있는 성민이의 뒤로, 듣기 힘들 정도의 비명을 지르며 오열하는 그의 어머니가 보인다. 그때 누군가 나타나 성민이의 어깨를 살며시 잡으며 물었다.
“네가 선배님의 아들, 성민이니?”
그 자의 정체는 바로 민현이었다.
“미안하다. 팀장인 내가 너희 아버지를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내가 현장에 같이 있었다면..”
민현은 깍듯하게 예를 지켜가며 성민의 아버지에게, 그리고 성민이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러자 아직까지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던 성민이는 그제야 결국 자신을 찾아온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말았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아버지는 죽었다.’
요동치기 시작하는 감정. 그러자 성민이는 자기도 모르게 참고 있었던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우리 아빠가!!”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장례식이 얼추 마무리된 후, 성민이는 민현에게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 홀로 오랫동안 어떤 요괴를 찾아다녔었다는 것. 그리고 그 요괴를 혼자 퇴마하기 위해 움직였다가 결국 역으로 당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찾던 요괴에 대해 짐작 가는 것이 있냐는 민현의 물음에 성민은 잘 모르겠다는 대답으로 대충 얼버무렸다. 하지만 사실 성민이는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죽인 요괴는 바로 이전 자신의 친구들을 죽였던 [장산범]의 짓이라는 것을. 그리고 날 위해서 아버지가 홀로 [장산범]의 뒤를 쫓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 민현의 말을 듣고 성민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쫓고 있었던 그 요괴의 정체가 바로 [장산범]일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던 증거는 바로 그가 몰래 지니고 있었던 과거의 한 조각 속에 남아있었다.
사실 서울로 올라오기 직전, 성민이는 다니던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짐을 챙기며 조금은 이른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그때, 성민이는 자신의 옆집, 병훈이네를 찾아가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당연히 성민이가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이니 보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어렵지 않게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언제나 자부심과 열정이 가득했던 그는 아들이 없는 시간을 틈타 병훈이네 집을 찾아가 현관문 앞 차가운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어가며 맹세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병훈이의 복수를 해주겠다며, 그러니 제발 자신의 아들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달라며 이미 아들을 잃은 부모 앞에서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이기적인 용서를 빌고 또 빌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자신의 이 비굴한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성민이는 이 순간의 모든 장면들을 마음 깊은 곳에 똑똑히 담아버리고 말았다. 기억된 장면 속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보기 거북했고 또 그 누구보다 비겁했다. 당시 그의 시야에 들어온 아버지의 등은 듬직하게만 느껴졌던 이전과는 다르게 유난히 작고 왜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성민이는 서울로 도망가는 자신 또한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결국 우린 도망가는 거야. 책임으로부터 아주 비굴한 방법으로.’
얼마 뒤, 아버지의 장례식과 함께 민현이 떠난 후. 다시 학교에 돌아온 성민이는 이전 입학식 당시에 아버지와 미래를 약속했었던 교문 앞, 그 자리에 그때 그대로 걸음을 멈춰 서서는 이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맹세했다.
“그 새끼는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어!!”
-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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