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첫 번째 시합(1)

본격적인 시합의 시작에 맞춰, 결투장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던던 선생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시화와 선우는 서로 일단 거리를 두며 잠시 멀어졌다.
관중석 대부분의 시선은 시합의 시작과 동시에 거의 모두가 선우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이는 민현과 함께 앉아있었던 본부의 퇴마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 아이가 바로 강 민형의 막내아들인가?”
“제 아비를 닮아서인지 벌써부터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소문이 아주 자자하더라니까.”
“아니, 그런데 제 아비를 닮았다는 건 큰일 아닌가? 하하하.”
이전 윤우가 보았었던 검은 천을 둘러싼 남자 셋이 선우를 보며 말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선우를 향해 쉬지 않고 입을 나불거렸다.
‘여전히 시끄러운 노인네들.’
그들의 옆에 앉아있었던 민현은 비어있는 옆자리로 조용히 옮겨앉았다. 시합에 집중하려는 민현 또한 시화보다는 선우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번 봐 볼까. 그때보다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말이야. 강선우.’
하지만 저마다의 시선으로 시합을 바라보던 이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둘 중 공격의 신호탄을 먼저 쏜 것은 다름 아닌 시화였다.
“괴력난신!”
시화는 잠시 거리가 멀어졌던 선우에게 더 이상의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 기본 도술을 활용, 향상된 신체 능력을 활용하여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선우는 그녀의 그런 선제적인 움직임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은 듯 침착하게 대응했다.
“간다. 송 시화.”
이후 빠르게 허리춤에서 부적을 꺼내는 선우. 그는 무려 부적 3개를 한꺼번에 꺼내며 오히려 자신을 향해 들어오던 시화를 역으로 겨냥했다.
“위험해!”
이에 순간적으로 시화가 위험하다는 걸 느낀 윤우는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앉아 있었던 자리에서 일어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시화 또한 선우가 꺼내든 3개의 부적을 보고는 공격이 날아올 방향을 최대한 예측하며 분신을 꺼내들었다. 이후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한 분신을 활용하여 시화는 누가 본체인지 선우가 쉽게 분간할 수 없게끔 왼쪽과 오른쪽, 서로 빠르게 위치를 바꿔가며 매우 날렵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 정도면 누가 본체인지 쉽게 알아챌 수 없겠지?!’
하지만 그러한 예상과는 다르게 선우는 둘 중 누군가를 집중적으로 노리며 부적을 던지는 것이 아닌, 3개의 부적 전부 자신을 향해 들어오려는 길목에다가 한꺼번에 던져버렸다.
“부적 여러 개를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다고?!”
부적 하나에 도술 하나. 도술을 사용하는 것에는 자신의 신력을 아주 섬세하게 다룰 수 있어야 했으며 이는 부적도 매한가지였기에 웬만한 수련의 깊이가 없이는 부적 여러 개를 동시에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고등학생인 지금의 레벨에선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시화는 이를 전혀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 일단 이대로 돌파해보는 거야!!’
이에 시화는 온전하게는 선우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속력으로 공격을 돌파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후 나란히 마주 달리고 있었던 자신의 분신을 방패 삼아 앞으로 보내였다.
“늦었어 송 시화. 터져라 폭뢰(爆雷).”
이윽고 선우가 주문을 외우자 시화가 다가오던 길목을 향해 던졌었던 부적은 금세 폭탄이 터진 듯한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강력한 전기를 사방으로 뿜어대며 폭발했다.
“으악!!”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버리는 공격에 시화는 피해를 최대한으로 막아보려 노력했지만, 결국 선우의 도술에 당해 온몸이 감전되어 마치 신경이 전부 마비되어 버린 듯이 제자리에서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끝이다!”
두 사람의 시합을 보고 있었던 관중석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 선우의 도술에 마비가 되어버린 시화의 모습을 보고는, 시합이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선우의 승리를 감히 예상했다. 이는 멀리서 지켜보던 성민이도 마찬가지였다.
‘그것 봐. 결국 이기는 건 우리가 아니야 송 시화. 이미 승자는 정해져있었다고, 태어날 때부터 말이야.’
그렇게 탈락의 위기에 빠진 시화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성민이는 끝내 결투장을 등지며 관중석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성민이가 밖으로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무언가 그의 발목을 강하게 붙잡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결국 성민이는 관중석 복도 한가운데서 그대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떠나려던 그를 끝까지 붙잡았던 것은 다름 아닌 시화였다. 그에게 자꾸만 떠오르는,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피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시합을 준비하던 그런 시화의 모습이 성민이를 다시금 관중석 안으로 끌어당기고 말았다.
‘누가 이길지는 이미 정해져있었다고! 이건 노력 따위로 뒤집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송시화!’
한편 온몸이 감전되어 전혀 움직일 수 없었던 시화를 향해 선우가 천천히 시합을 끝내기 위해 다가왔다.
“미안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한텐 너무 가혹한 대진표였다고 생각해.”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던 시화 또한 자신이 결국 선우의 상대조차 될 수 없었다는걸, 결국 자신의 완벽한 패배라는 걸 마치 인정이라도 하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선우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만 끝내줄게.”
이후 선우가 천천히 부적 하나를 더 꺼내들며 금방 오른쪽 주먹에 쥐어 보이자, 부적에서 금세 강력한 전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결투장 전체를 통째로 집어삼켜버릴 정도의 매우 위협적이고, 압도적인 신력을 선보였다.
“뇌격(雷擊).”
분명 지금 선우의 도술은 이전 호걸 선생과의 2단계 시험에서 보였었던 도술과 같았지만, 지금의 위력은 그때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월등히 높게만 보였다.
“이걸로 끝이다 송시화!”
결국 시화에게 꼼짝없이 선우의 결정타가 들어가려는 바로 그 순간.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던 시화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주문이 들려욌다.
“화영반경(華映反鏡)!”
“뭐라고?!”
시화의 주문이 끝을 맺자 이와 동시에, 그녀의 손에 몰래 쥐어져있었던 부적 하나가 타들어가며 본격적인 그녀의 도술이 선우의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누구한테 가혹한 대진표라고?!”
이후 분명 방금까지 선우의 도술에 당해 꼼짝할 수 없었던 시화였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와 반대로 오히려 당당히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던 선우의 몸이 굳어버린 듯 통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이건.. 이건 내 기술!’
선우는 이내 자신이 지금 움직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방금 전 시화에게 날렸었던 자신의 도술 때문임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레 시합의 전세가 역전되자 이에 흥분한 듯 관중석 사람들은 모두들 환호성을 질러대며 시화의 활약에 호응했다.
“어때? 너 도술을 네가 직접 맞아보니깐 말이야.”
선우는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시화의 환술 때문인지 그 이유를 찾아보려 애썼지만 분명 선우에겐 지금 자신의 신경을 마비시키고 있는 이 조금의 찌릿함도 전부 생생하게 느껴졌다.
‘환술인가? 아니야. 이건 환술 따위가 아니야.. 이건 전부 진짜다!’
그런 선우를 뒤로, 한동안 굳어있었던 자신의 몸을 풀어 낸 시화는 이내 선우를 향해 다가왔다.
“너도 느꼈겠지만, 이건 환술 같은 게 아니야. 이건 바로 내가 만들어낸 나만의 도술이지!”
이후 완전히 몸을 풀린 시화는 끝내 파괴적인 주먹을 선우의 얼굴에 정확히 명중시켰다.
“크헉!”
충격에 터져버린 입 주변으로, 잔뜩 피를 흘리던 선우는 결국 결투장 반대편 끝까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는 이미 괴력난신의 주문에 의해 현재 신체능력이 강화되었던 시화의 공격이었기 때문에 선우에게 들어간 피해는 더욱이 상당했었다. 도술에 의해 무방비해진 선우에게 반격을 성공시킨 시화의 모습에 관중석은 이전보다도 훨씬 과열된 분위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뭐야?!”
“와아아아!! 송 시화!!”
“송 시화!! 송 시화!!”
시합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만큼 멋진 시화의 반격에 그만 놀라버린 모습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고, 이번에도 당연하게 그들 사이에는 성민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뭐... 뭐야? 시화가 선우를 한 방에 날려버렸어..?’
한편 예상치 못했던 시화의 반격에 먼저 한 방을 먹은 선우는 날아간 자리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다시 자신의 허리춤에서 부적을 꺼내들며 말했다.
“그래. 내가 너를 너무 얕봤던 거 진심으로 사과할게. 송시화.”
그러자 시화 또한 부적 하나를 다시 꺼내들며 대답했다.
“시합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잖아. 안 그래?”
전보다 훨씬 위풍당당해진 시화의 모습에 선우는 알 수 없는 헛웃음을 보이더니 이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래, 너 말대로 시합은 이제 시작이지. 진지하게 말이야.”
이윽고 천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 선우.
“흘러라 천뇌신정(天雷身停).”
그러자 선우의 주변으로 가득했던 그의 신력이 천천히 전하를 띄기 시작하더니, 마치 흡사 전기가 신력에 흐르는 것처럼 사방으로 위협적인 전류를 가득 뿜어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던 민현은 그런 선우의 모습을 보고선 기가 막힌다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신력의 모습을 자신의 성질에 맞게 변형시키다니 이거 기발한데?”
“천색창경(天色蒼鏡)!”
그러나 이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시화가 아니었다. 그녀 또한 이런 선우에게 저항하기 위해 금방 자신의 도술을 활용하며 소모되었던 몸 상태를 다시 일정 수준으로 회복시켰다.
“너무 걱정 하지마.”
이윽고 선우가 전기가 가득했던 자신의 신력을 오른손으로 집중시키자 이내 천천히 그의 손에선 온통 전기로 이루어진 듯한 모습의 특이한 단검이 생겨났다.
“내가 시합에서 이길 정도로만 힘 조절을 잘 해볼 테니까.”
갑작스레 엄청난 신력을 뿜어대며 손에 나타난 단검과 같은 무기와 함께, 완전히 달라진 듯한 선우의 모습을 보자 시화는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떨려오려던 주먹을 강하게 쥐어 보였다.
‘도망치지 않아. 나도 모든 걸 내던져야 할 때가 왔어!’
시화는 이내 부적 하나를 다시 꺼내들며 선우를 향해 겨누었다. 그러자 예상과는 달랐던, 그런 시화의 모습을 보자 그제야 선우 또한 시합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자신의 패배, 그런 비슷한 두려움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분명 예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강해졌다고 내심 자부할 수 있었던 선우였지만, 이전 시화의 공격에 당한 피해가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과 더불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3학년 아이들 모두가 시화처럼 전보다 다들 성장했을 거란 그런 사실이 선우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실수하면 그땐.. 그 때는 내가 진다!’
시합 전과는 달랐던, 침이 마르는 듯한 그런 묘한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한 결투장.
선우와 시화,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 가며 거리를 유지하려 들었고, 이번에 먼저 공격을 시작한 쪽은 이번에도 시화였다.
“시작해 볼까?!”
“잘 부탁해 강선우!”
그렇게 둘의 시합은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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