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첫 번째 시합(2)

각자의 대진표가 정해졌었던 바로 그날, 호걸 선생의 교무실로 누군가 불쑥 찾아왔었다.
“선생님 잠깐만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라.”
그렇게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시화였다. 시화를 보자 호걸 선생은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그런 인자한 미소를 띠며 시화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래 시화야. 무슨 일로 찾아왔니?”
선생이 시화에게 자신을 찾아온 의중에 대해 묻자, 이에 시화는 아무 말 없이 잠깐 동안 심호흡만을 가져가더니 이내 간결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께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왔어요.”
“부탁?”
사실 선생은 이미 시화가 자신을 찾아온 진짜 이유를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시화의 올곧은 자세와 더불어, 물씬 굳은 결심이 담긴 듯한 그녀의 주먹에서는 이미 순수한 떨림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중 무엇보다도 지금 선생의 앞에서 열정 가득히 불타오르고 있는 그런 시화의 눈이 그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분명 첫 대진의 상대가 바로, 강력한 우승후보라고 불리는 강 선우임에도 불구하고 시화는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듯해 보였다.
‘눈빛이 몰라보게 많이 좋아졌군..’
그런 시화의 눈빛에 호걸 선생은 이전 시화의 입학 당시, 지금과 매우 달랐었던 그녀가 잠시 선생의 눈앞을 아른거렸다.
지금의 시화에게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어딘가 어두운 그림자를 잔뜩 가지고 있었던 아이. 그리고 그렇게 어두운 자신의 그림자를 남에게 들키기 싫었고, 또한 숨기고 싶었기에 오히려 억지스러울 정도로 밝은 티를 내려던 모습. 그 모습에 선생은 시화를 따로 불러내서는 이렇게 말했었다.
“네가 갖고 있는 과거에 대해서 지금 비록 내가 무슨 말을 너에게 해줄 수는 없겠지만, 너만 괜찮다면 적어도 너의 선생인 내게까지 그 모든 걸 숨기려 할 필요는 없다. 시화야.”
그때,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선생의 도움에 이젠 도저히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쿵쾅대기 시작했던 시화의 심장이었다. 사실 시화는 이미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나 자신을 좀 도와달라며. 도움이 간절했었던 예전 그때처럼 말이었다.
그랬기에 선생은 이번에도 분명 시화는 자신의 도움을 바라고 있을 것이란 걸 짐작했다. 그렇게 굳게 닫혀만 있었던 그녀의 입술이 어느새 조금씩 틈을 벌려가며 이내 자신이 선생을 찾아온 진심을 내뱉었다.
“제가 선우를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싶어요 선생님!”
그런 시화의 진심에 결국 입꼬리가 크게 올라가고 마는 호걸 선생. 곧이어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시화에게 말했다.
“추호의 허무함조차 결코 남지 않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널 도와주마. 송 시화.”
“감사합니다 선생님!”
*
“잘 부탁해. 강 선우!”
예상치 못했었던 시화의 반격에 아직까지 피해가 남아있던 선우는 금세 [천뇌신정]도술을 사용해 자신의 신력 형태를 전부 전기의 성질이 띠게끔 바꾸면서, 그로 인해 자신의 도술의 활용도와 파괴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데에 더욱 집중했다.
그리곤 곧바로 도술로 변형된 자신의 신력을 오른손에 집중시켜 마치 단검과 같은 모양으로 선우의 신력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그것은 오로지 선우의 신력으로만 만들어진 단검, 단검의 주변으로는 마치 스파크가 튀겨지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관중석에서 잠깐만 봐도 상당히 위력적인 그런 힘을 뽐내고 있었다.
폭풍전야의 결투장. 지금 결투장 안은 서로가 내뱉은 무거운 공기만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고, 이 불편했던 적막함을 깨며 먼저 움직인 것은 바로 시화였다.
‘지금 여기서 꺼내는 거야. 내 새로운 도술을!!’
이윽고 손에 쥐고 있었던 부적 하나를 태우며 주문을 외우는 시화.
“비추어라 천선현경(天禪炫鏡)!”
그러자 주문과 함께 부적이 사라지며 어느 순간 시화의 뒤로 웬 여신의 형상을 한 거대한 귀신 하나가 나타났다.
그 귀신은 보통의 인간보다 거의 2~3배 커다란 몸집을 가지고 있었으며 긴 머리를 풀어헤친 아름다운 외형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여신은 이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으며 그저 눈을 꼭 감아버린 채로 오로지 거대한 거울 하나를 자신의 몸 정중앙에 두고서 오직 시화만을 가만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관중석에서 이러한 시화의 새로운 도술을 지켜보고 있었던 다른 아이들은 지금 사용된 저 도술이 도대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 한 듯해 보였으나 본부의 고위층이 모여있는 자리에 앉아있었던 민현은 그런 시화의 천선현경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듯 이번에도 감탄과 함께 박수를 쳤다.
‘시화도 분명 엄청나게 스텝 업이 되었는걸? 역시 선우 못지않게 시화도 맘에 들어.’
한편 결투장 내에 있었던 선우는 시화가 꺼내든 새로운 도술로 인해 쉽게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거울은 도대체 무슨 용도인 거지?’
그렇게 선우가 이내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시화의 도술을 파악하던 그때, 도술에 있어 한 가지의 특이점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여신이 들고 있는 거대한 거울이 어떠한 움직임 없이 오로지 시화만을 가만히 비추고 있었던 것.
“방금 나타난 저 신수는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여전히 눈을 뜨고 있지 않아. 이러한 점들을 보면 분명 저 여신은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 거겠지.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단 하나. 그건 바로 가운데에 놓인 저 거울. 저 거울은 분명 계속해서 시화만을 비추고 있어. 또한 시화의 도술적인 특성을 보았을 때 저 거울 역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용도보다는 사용자에게 버프를 주는, 그런 용도일 가능성이 높을 거야. 그렇다면...”
도리어 선우는 이전 시화에게 한 방 먹었을 당시, 자신에게 걸려있었던 시화의 도술을 또 한 번 상기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바로 방금 전의 그 카드. 화영반경!‘
분명 자신의 도술에 당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시화였지만 오히려 반대로 그녀의 [화영반경]에 희해 완벽히 역전이 되어버려 결국 선우의 몸이 움직일 수 없었다.
’화영반경과 같은 경우엔 시전 한 자의 상태를 순간적으로 상대와 맞바꿀 수 있는 그런 도술임에 틀림없어. 이번에도 애매한 도술로 시화를 제압하려 든다면 또다시 역공을 맞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내게 남은 방법은 하나!‘
이후 선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변형된 신력을 가감 없이 분출하더니 곧이어 양쪽 발에 신력을 가득 실어 지면을 차고 올라서는, 그에 뒤따르는 그러한 반동을 이용해 마치 선우 자체가 번개가 되어버린 것 같은 그런 폭발적인 속도로 눈 깜짝할 새에 시화의 왼쪽을 노리며 들어왔다.
“어느새?!”
이에 시화는 뒤늦게나마 선우의 공격이 날아오던 방향을 향해 웬만한 방어 태세를 갖춰보려 노력했지만, 자신의 바로 옆구리까지 깊게 파고들어온 선우는 이미 결정타를 날릴 준비를 모두 마친 뒤였다.
“방금 전 너의 그 도술을 파훼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바로 내 일격에 널 쓰러트리는 것!”
그렇게 시화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마는 선우의 일격.
“뇌격(雷擊)!!”
곧 선우의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결투장 전체를 통째로 튀겨버릴 듯이 가득 뿜어져 나오는 선우의 신력. 이윽고 이에 변형된 그의 신력이 도술에 더해지자 분명, 그전의 뇌격보다도 몇 배는 더 강력해진 모습이었다.
“나의 승리다. 송 시화!”
그렇게 결국 선우의 결정타가 어김없이 시화에게 적중하려던 바로 그 순간. 이번에도 시화의 입술이 조심스레 떨어지며 그 사이로 아름다운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추어라 천성현경.”
그러자 갑자기 시화의 주문에 맞춰 그녀의 뒤에 있었던 여신의 겨울이 순식간에 움직여서는 곧이어 다가오던 선우를 비춰 보였다.
그렇게 난데없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의 움직임에 꼼짝없이, 거울 속에 담기고만 자신과 이내 눈이 마주치고 마는 선우.
’갑자기 거울이 나를 향해 움직였어?‘
그렇게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친 순간, 방금까지 결투장을 집어삼켜버릴 듯한 강력한 신력을 뿜어대던 선우의 공격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이게 대체...?!‘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선우의 도술에 놀란 것은 선우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선우의 도술이 전부 사라졌어!!”
관중석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아이들 모두 그런 선우의 모습을 보고는 놀란 듯 소리쳤다.
위협적으로 흘러나오던 선우의 천뇌신정도, 시화를 일격에 쓰러트리기 위해 사용했던 진화된 뇌격조차도, 그 모든 것이 지금 어떠한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로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잠시 당황한 듯 보이던 선우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오는 시화의 주먹.
“내가 이겼어!”
무방비한 틈을 노려 들어온 시화의 공격은 이번에도 선우의 얼굴에 제대로 꽂혀버렸다.
“컥!!”
결국 다시 한번 저 멀리 날아가고 마는 선우. 그가 쓰러진 주변으론 어느새 흙먼지와 함께 연기가 자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은 이내 숨죽인 채로 선우의 동태를 살폈지만 시간이 흘러도 도통 어떠한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 시화가 이겼다!!”
자기도 모르게 크게 뱉어버린 민준이의 외침을 시작으로 잠시 고요했던 관중석에선 어느새 시화를 향한 열띤 환호가 쏟아졌다.
“엄청나게 강해졌잖아.. 송 시화!”
열광의 도가니가 된 관중석, 그 가운데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윤우는 어느새 몰라보게끔 강해진 그런 시화의 모습을 보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성민이 또한 지금 자신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던 시화의 활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봤다.
’그 새끼는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어!‘
그때, 결투장 안에서 눈부시게 빛이 나는 시화에게서 성민이는 예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다짐했었던, 그러한 자신의 맹세가 다시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절대로 다다를 수 없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던, 태어날 때부터 서 있는 위치가 서로 달랐던, 누구보다도 높게 우뚝 서 있는 듯 올려다 보였던 강 선우에게
보잘것없게 태어나 무턱대고 천재들을 뒤따르다간 결국엔 쓰러지고 말 거라고 그렇게 내 맘대로 한계를 정했었던 나와는 다르게, 어느새 시화는 선우보다도 더 높은 곳을 향해 손을 뻗으려 하고 있었다.
이윽고 부끄러운 주먹을 쥐고 마는 성민. 그러자 그의 주먹 안에서는 이내 강하게 쥐었던 탓인지 틈 사이로 어느새 조금씩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피에 섞여 흘러가는 그의 열등감. 그가 지금 흘리는 피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송 시화!!”
이후 잔뜩 흥분한 채로 관중석 안으로 들어온 성민이는 이내 열띤 응원을 하고 있었던 윤우의 옆에 바로 섰다.
“뭐야? 어 성민이?”
윤우는 갑작스레 자신의 옆에 나타난 성민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때 마주한 성민이는 이전에 봤었던 그런 쓸쓸한 분위기는 지금 온데간데없었고, 왠지 반짝이는 그의 눈은 그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빛을 품고 있는 듯해 보였다.
’지금 성민이의 모습이 바로 시화가 말해줬던 예전 성민이의 모습일까?‘
그러고는 천천히 흐뭇한 미소가 띠어졌던 윤우의 입가였다.
“시화가 선우를 때려눕혔어!”
“맞아. 시화가 선우를 이겼어!”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던 성민이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조금씩 맺히고 있었다.
’할 수 있어. 나도 강해질 수 있다고!‘
그렇게 시합을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시화의 승리를 예상하며 환호하고 있었던 바로 그 순간.
이러한 산통을 깨며 등장한 갑작스러운 뇌명이 금세 결투장 안을 가득히 울려댔다.
“아직 안 끝났어!!”
-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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