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 이화루(3)

“죽어라!!!”
[천인수라(千刃修羅)]
-카가가각!
나를 향해 달려든 차계령이 손을 크게 휘둘렀다.
외공을 두른 손톱이 검과 부딪히자, 불꽃을 튀기며 마찰음을 내었다.
‘...미친?!!’
아무리 내공이 전부인 세계라 하지만...
지금 나는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을 현실이라고 인지하긴 어려웠다.
“어딜 한눈을 팔아?!!”
“크윽!!!”
차계령이 몸에 힘을 잠시 빼더니, 앞으로 쓰러지는 내 몸을 그대로 밀쳤다.
뒷걸음질 치다 중심을 잃는 바람에, 자세가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차계령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를 공격해 왔다.
“죽어!!!”
[흑월쾌영검법(黑月快影劍法)]
검은 초승달 형태의 날카로운 검기가 날라왔다.
“크윽!!!”
-서걱!
결국 차계령에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날카로운 손톱이 지나간 자리가 쓰라렸다. 옆구리에 손을 대자, 붉은 피가 손에 잔뜩 묻어나왔다.
“...새끼가.”
-꽈악.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으와아아아!!!”
나는 온 힘을 다해, 차계령에게 검을 휘둘렀다.
-챙!
상단 어깨를 노린 공격.
차계령이 팔을 크게 휘둘르며, 내 공격을 튕겨냈다.
‘물러서지마!’
“으아아아!!!”
튕 겨져 나온 순간, 바로 횡 베기.
검기가 차계령의 몸통을 노렸다.
“어딜!!!”
-카앙!!!
차계령이 내 공격을 막아내는 것과 동시에, 반대 쪽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내 숨통을 노려왔다.
검을 들어 방어한 뒤, 다시 공격하려 하자. 양손으로 내 검을 막았다.
‘지금이다!’
[천근추(千斤錘)]
“으아아아아!!!”
“크으으윽?!!”
천근추를 이용해, 검에 무게를 더했다.
갑자기 늘어난 무게에 차계령이 버티지 못하고, 견고했던 방어가 뚫렸다.
‘지금이다!’
“으아아아!!!”
-촤악!!!
백색의 검기가 허공에 선을 그리며, 차계령의 오른손을 베어냈다.
“크아아악!!!”
잘린 손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차계령은 피를 쏟아내는 제 손목을 잡은 채 비명을 질렀다.
‘...알 것 같다.’
영롱하게 기를 뿜어내는 검을 보며 생각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들은 삼류의 경지에선 절대 몰랐을 감각들이라는 것을...
‘그래... 이제, 알겠어...’
호흡.
몸의 떨림.
발돋움 등.
이전과 달리, 사람을 보는 시선이 다르게 보였다.
‘...이게 검로를 읽는다는 건가?’
잘은 모르겠다.
제대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으니.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이길 수 있다!’
차계령의 목을 베어내고, 저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나는 검을 내 안쪽으로 세워 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모르던 경지.
내가 지금 그곳에 있다.
[초상비(草上飛)]
-투웅!
초상비를 이용해, 빠르게 차계령이 있는 곳까지 도약했다.
놀란 차계령이 재 빠르게 손을 휘둘렀으나... 한 손이 날아간 나머지, 내가 차계령에게 접근하는 걸 막지 못했다.
“이놈이!”
-부웅!
차계령이 나를 향해 팔을 크게 휘둘렀다.
하지만, 한쪽 손이 날아간 지금. 차계령은 내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흡!!!”
-카가강!
손톱 날을 검이 스쳐 지나가며.
차계령의 빈틈이 훤히 드러났다. 결국, 차계령은 내게 배를 보여주게 되었고...
“으와아아!!!”
-푸욱!
나는 차계령의 가슴 쪽에 검을 꽂아 넣었다.
[천근추(千斤錘)]
“으아아아아!!!”
“끄아아아아!!!”
천근추로 검에 무게를 실어 넣자, 밑에 있던 차계령이 포효했다.
검을 잡고 있던 차계령의 손이 풀리고, 힘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쿨럭!”
-울컥!
차계령이 입에서 붉은 울혈을 뿜어냈다.
“...끝났나?”
그러다, 이상함을 느꼈다.
‘...이렇게 쉽게 끝났다고?’
어릴 적, 나를 질투하여, 다른 동기들과 함께 나를 따돌렸던 녀석이었다. 차계령이 나를 아무리 괴롭혀도, 이화루주가 나를 계속 눈여겨 보자. 차계령은 결국 내 얼굴에 뜨거운 물을 뿌렸다.
그 당시, 나는 아무런 힘이 없어서. 그래서, 기생 후보생에서 잡일꾼이 되어도, 이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정말, 이 세상은 강함이 전부군.”
일류를 넘어, 절정의 경지에 오를 만큼. 내공이 쌓이자, 모든 것이 쉬워졌다.
그토록 무서워 보였던, 과거의 악연이 이렇게 내 발 앞에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벌벌 떨고 있지 않은가?
“...그렇군,”
‘강해지면 되는 거군.’
강해지자.
강해져야 한다.
이성이 강해져야 한다 판단하고. 머리에 암시를 두었지만... 이렇게, 심장 깊숙이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난 건 처음이었다.
‘...강해지고 싶다!!!’
강해진다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내게 뭣 같이 구는 녀석들을 무릎 꿇릴 수 있었다.
‘그러면, 앞으로 더 많은 걸 지킬 수도 있겠지...’
자존심과 수치심.
그 밖의 내가 사람으로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들...
그것을 더 이상 잃지 않아도 되었다.
“우선... 네게, 일단 감사하다는 말을 할게.”
“뭔... 개소리...”
낙화루를 지키고 있던 전정이나, 쇠스랑 같은 녀석을은 지형과 무기에 꼼수를 써서 겨우 이겼었다.
하지만, 강해진 지금이라면... 지금 당장, 그 셋과 싸워도 질 것 같지 않았다.
“안 아프게 끝내줄게. 선물이라 생각해.”
“뭐... 뭣?!!”
-스릉!
나는 검을 어깨와 일직선으로 뻗었다.
한방에 죽으면, 좀 덜 아플거야.
“시... 싫어, 이 미친 새끼야. 나는 죽기 싫다고!!!”
-서걱!
차계령의 목이 한순간에 절단되었다.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다.’
단 한순간.
날카로운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왔다.
검날보다 얇으며, 검보다 가벼운 물건으로 검기를 쏜 것이다.
‘...누구지?!’
검을 쥔 손에 땀이 흘러내렸다.
지금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여기를 나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죽음.
그것이 내 코앞까지 찾아 왔다.
‘...그럼에도 나아가야 한다.’
깊게 숨을 내쉬어, 안정을 다시 찾았다.
도망치지 않은 것에 후회하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하며. 나는 내공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머.”
기루의 4층 전각 위.
젊은 여인 하나가 나와 죽은 차계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문고.’
여인의 옆엔 거문고가 있었다.
차계령이 들고 있던 것 보다, 화려하고 연식이 있어 보이는 검은색 거문고.
“...이게 신경쓰이니?”
여인이 거문고 줄을 튕기자, 청명하면서, 아름다운 운율이 이화루에 가득 퍼졌다.
이런 음을 낼 수 있는 건, 이화루에 딱 한사람 밖에 없었다.
‘이화루주 장월화..!’
이화루의 루주. 장월화가 모습을 들어냈다.
“...이거 당신이 한 겁니까?”
나는 발치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차계령의 수급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렇지. 그, 애는 이제 쓸모를 다 했으니까...”
장월화는 내 말이 맞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들이 홀릴만 하군.’
분위기라는 게 있다.
신뢰감을 주는 분위기... 쎄한 분위기... 알 수 없는 분위기 등. 사람은 저마다 각자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 마련이었다.
나는 그 중 나와 맞는 사람은 곁에 두고. 아닌 것 같은 사람은, 적당히 거리를 두며 살았다.
“참 아까워요... 그 얼굴, 참 좋은 얼굴이었는데.”
장월화가 작게 한숨을 토했다.
후회와 연민어린 얼굴로 한숨을 토해내는 게 뭔가 야릇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나를 아시나?”
“그럼요.”
“근데, 왜 난 당신을 처음 보는 것 같지?”
“당연한 거 아닐까요? 저는 이화루주고... 당신과 계령이는 훈련생이 였으니까. 제가 두 사람을 볼 수 있지만, 두 사람은 저를 보기 어렵겠죠.”
“그러니까... 얼굴이 멀쩡했을 때. 그때의 나를 보러왔었다?”
“얼굴이 고운 사내아이가 왔다 하여. 먼발치에서 지켜봤었죠...”
아련한 듯,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정신을 차린 나는 가슴을 붙잡았다.
‘저 여자... 좋지 않다.’
사내로서 몸은 반응하나... 내 이성이 저 여자는 위험하다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월야(月夜)에게 얼굴 가죽을 벗겨 나에게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알아요?”
-오싹!!!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렇게 약해 보이는 사람이 왜 위험해 보이는 건지, 도통 이해가지 않았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구나.’
낙화루의 사형제도.
이화루의 루주도.
하오문주도.
모두가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낙화루의 사형제가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건, 익숙해져서 괜찮다 쳐...’
하지만, 초면이라 할 수 있는 장월화가 나를 물건 취급하는 데다...
오랜 시간을 가르쳤던, 차계령을 제 손으로 죽인 건... 기분이 나쁘다 못해 소름이 끼쳤다.
“...댁은 사람이 맞나?”
기분 나쁜 이질감.
그래서, 그 기운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나는 장월화에게 그녀가 진정 사람이 맞는지 물었다.
허나, 장월화는 그저 웃을 뿐...
“그걸 지금 질문이라 하는 건가?”
내가 마치, 저에게 장난을 거는 것인 양 굴었다.
“월야 그 애도 참 바보 같아. 문주님 곁에 있으면서, 볼 거 다 봤을 텐데... 너 같은 녀석에게 제 목숨을 걸다니.”
-사각사각.
장월화가 제 손톱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거 아니? 우리 하오문은 무공은 개방보다 후질지 몰라도, 정보력 하나는 개방보다 뛰어나다는 걸.”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너도 하오문 나부랭이라면,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을 거 아냐.”
장월화가 나를 바라보며, 그녀의 눈동자에 내가 비쳤다.
“이 세계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뭔 헛소리지?’
이 말 그대로.
나는 장월화가 뭘 말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언어로 대화하는 거 맞지 지금?’
그래서... 저 말이 지금, 저 사이코패스가 사이코패스가 된 이유를 설명해주는 건가?
‘세상이 이상한 거야, 당연한 거고...’
전생에도 그랬지만, 이곳은 더 심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세상.
사람 목숨이 은자 하나 보다 값싼 세상...
나는 지금, 그런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게 네가 사람의 가죽을 쓴 짐승이 된것과 무슨 상관이지?”
“짐승..? 말이 조금 심하네.”
손톱을 다듬던 장월화의 손이 도중에 멈췄다.
“네가, 지금 내 말을 못 알아 들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렴. 이 세상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는데, 제정신을 유지할 사람이 어디 있겠니?”
몰상식한 녀석이 상식을 논하고 있을 때.
이때의 내 감정은 어떤 기분일지 아는가?
‘뭐라는 거야..?’
아무 생각이 없어지게 된다.
이 세상이 미쳐가니, 살아남으려면 자신 또한 미쳐야 한단 말인가?
“...조금 희망을 가졌다만. 역시,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군.”
나는 자세를 다시 잡았다.
검 끝을 장월화를 향해 겨누며 말했다.
“내려와라. 그 목을 베어주지.”
“...어머나. 무서워라.”
장월화가 옷 소매를 끌어, 제 입을 가렸다.
입을 가렸지만, 분명 지금 웃고 있을 거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럼... 이걸 한번 막아볼래?”
-디잉!
장월화가 가지고 있던 거문고의 줄을 튕겼다.
“음?!!”
방어하려 자세를 잡을 순간 조차 없었다.
수면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듯 퍼지는 음운(音韻)을 막지 못했다.
“크학!!!”
-쩌엉!
음운에 실린 기가 날카로운 검기처럼, 온 몸을 파고들었다.
차계령이 만든 상처 위로, 수십 개의 선혈이 그어져 그 위에 붉은 방울을 맺었다.
“네 시신은 계령이의 묘비 위에 뿌려주도록 하마.”
장월화가 상처투성이인 나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
- 작가의말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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