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 이화루(4)

4층 누각에 있던 장월화가 1층으로 뛰어 내렸다.
초상비를 배운 것인지, 바닥에 착지했을 때.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온다!’
장월화 주변으로 스산한 한기가 모여들었다.
곧 공격해올 거란 긴장감에, 검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천인수라(千刃修羅)]
-디잉!
차계령과 싸움으로, 이화루에 있던 모두가 피신한 가운데. 적막을 뚫고 청아한 음색이 이화루에 퍼졌다.
“크읍?!!”
차계령이 내게 썼던 것과 같은 무공이지만.
상대를 베어내는데 신경을 집중했던 차계령과 달리, 장월화의 천인수라(千刃修羅)는 상대의 단전과 호흡을 흔들어냈다.
“우욱!!!”
-쿠웅!
몰려오는 구토감을 참지 못하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안에 있던 걸 한바닥 기워내니, 상태가 나아졌다.
‘...경지는 나와 동급이다!’
장월화의 경지는 적어도 나와 동급. 아니면, 그 이하일 가능성이 높았다.
차계령 또한, 나와 같은 절정일 것 같으나... 위력이나 기술 등. 장월화는 모든게 차계령보다 우수했다.
‘...그래도, 버틸 만 해.’
내공이 딸려, 장월화를 이기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좀 힘들겠지...’
아무것도 없이... 고작,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낙화루의 삼형제를 상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계령이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고작, 이까짓거에 당하다니...”
[회풍무류(廻風舞流)]
장월화가 있던 곳에 돌풍이 솟아났다.
실과 같은 얇은 검기가 빠르게 회전하며, 장월화를 중심으로 그녀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 허공에 띄웠다.
허공에 띄워진 가구들과 다기들이 날카로운 검기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산산이 조각났다.
“크으으윽?!!”
-캉! 카가강! 캉!!!
검기를 두른 검으로 막아봤지만, 차계령과 전투에서 입은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장월화의 공격을 막는게 고작일 뿐... 사방에서 날라오는 파편들을 막을 순 없었다.
‘파편이 상처 속으로 들어갔어...’
몸에 들어온 파편은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살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서둘러 치료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좋은 모습이군요.”
“헛소리 집어치워...”
막지 못한 장월화의 검기 한줄기가, 머리를 묶고 있던 끈을 잘라버렸다.
풀어진 머리가 돌풍에 휘날리며, 산발이 되어 시야를 방해했다.
내 얼굴을 가만히 보던 장월화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정말. 얼굴만 괜찮았다면, 옆에 끼고 살아도 됐을 텐데.”
장월화가 아쉽다는 듯, 혀를 작게 찼다.
‘...남은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자꾸 옆에서 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내가 만만해서 그런가?
장월화가 성희롱을 해왔다.
‘배는 고프고... 상처는 아프고...’
입안에서 쇠 냄새가 풍기고, 차계령에게 당한 상처가 쓰라렸다. 심지어, 엄한데서 성희롱까지 당하니...
없던 자존감마저 상해버릴 지경이다.
“한눈을 팔 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나보죠?”
[흑월쾌영검법(黑月快影劍法)]
장월화가 다시금 거문고의 현을 연주했다.
‘...저건 못 막는다!!!’
-콰가가가강!!!
하늘에서 달빛이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대상이 도망칠 곳을 만들어주지 않은 무심한 공격에 나는 서둘러 초상비를 운용했다.
“...잘도 피하는 군요.”
-퉁!
-투웅!
-퉁!
바닥과 벽이 하나가 된 듯. 나는 바닥과 벽을 밟으며, 장월화가 휘두른 검기를 피해 다녔다.
장월화의 근처에 도달 했을 때, 나는 발에 기를 모아 크게 도약했다.
“당신 이화루주가 아니었어?!!”
이화루의 고급스러웠던 바닥이 깨지고. 바닥의 파편이 지상을 향해 날을 세웠다.
“나중에 복구는 어쩌려고 그래?!”
-후웅!
장월화의 뒤를 잡은 나는 곧바로 장월화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당신이 그걸 말하는 건가요?”
-쩌엉!!!
장월화가 어깨에 걸치고 있던 날개옷으로 내 검을 막았다.
‘미친..?! 이걸 막아?!!’
기습에 대응하는 것도 놀라운데, 그걸 막은게 기를 두른 겉옷이라는 것도 놀라웠다.
“그대는 참 빈틈이 만군요. 이제, 장난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죠.”
-디잉!
장월화가 거문고의 현을 튕겼다.
‘이건 못 피한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이걸 막아야만 내가 살 수 있었지만, 지금 내 몸은 공중에 있었고. 이걸 버틸 만한 내공도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으와아아아아!!!”
[천근추(千斤錘)]
검에 남아있는 기를 전부 때려 박아, 날아오는 살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쯧..!”
-콰아아앙!!!
두 기가 충돌하며, 작은 폭발을 만들어냈다.
뿌연 연기가 자욱하게 바닥을 깔고, 나는 연기 속으로 몸을 숨겼다.
“잔재주를..!”
‘저 거문고만 없으면..!’
연기 속에 몸을 숨긴 채.
나는 장월화를 향해 다가갔다.
“쓸 때 없는 저항은 이제 그만 두시죠?”
-딩! 디잉!
장월화가 거문고의 현을 튕겼다.
음운을 사방으로 흘려, 시야를 방해하는 연기를 치우려는 속셈이었다.
‘지금이다!’
“으와아아아!!!”
“아니?!!”
-서걱!!!
검기를 실은 검을 대각선으로 휘둘렀다.
기습을 피하지 못한 장월화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거문고로 내 앞을 막았고. 검기가 가득 실린 검이 거문고를 반으로 갈랐다.
‘됐어..!’
이제 저 지긋지긋한 선율과는 안녕이었다.
“지금 다행이라 생각하셨나요?”
“큭?!!”
연기를 뚫고.
장월화의 손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몸을 비틀어 피하려 했으나, 그동안 입었던 내상에 대한 고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크악?!!’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것 보세요. 스승 없이, 제 하고싶은데로 하니 이꼴이 나는 거랍니다.”
“이... 이거 놔...”
-쿠웅!
결국, 장월화에게 목을 잡힌 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카학!!!”
-쿨럭!!!
입에서 뜨겁고 끈적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장월화의 얼굴에 내가 뱉어낸 피가 튀었다.
“드디어 잡았다.”
장월화의 얼굴에 붉은 홍조가 올라왔다.
‘미친?!!’
-스릉.
장월화가 자신의 머리에 꽂혀 있던 비녀를 빼 들었다.
“나에게 무기가 거문고만 있는 줄 알았죠?”
-우우웅!
장월화가 비녀에 검기를 두르자, 비녀 주변으로 붉은색의 기가 일렁거렸다.
“끄학!!!”
-까앙!
검의 중앙. 칼등에 비녀가 꽂혔다.
내 목을 뚫을 기세로 공격했는데, 이에 실패하자 장월화가 작전을 바꾸었다.
[혈추검법(血鎚劍法)]
-쏴아아아!
상처 부위에서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장월화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미친?! 혈교도 아니고, 저게 뭐야?!!’
흡성대법의 한 종류로, 직접 기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닌. 피나 다른 것을 통하여, 상대의 기를 빨아들이는 사술의 일종으로... 현재 내가 당했다간, 나는 기가 전부 빨려 미라가 되고 말 것이다.
‘도망쳐야 한다..!’
“흐아아아!!!”
-파앙!
힘을 모아, 장월화의 복부를 향해 발을 날렸다.
“흑?!!”
장월화가 1장(丈)정도 떨어져 나갔다.
만약, 장월화가 나보다 무겁거나 경지가 높았다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자라다...’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다리는 서 있는 게 고작이다.
좀 더, 강한 힘...
‘뭔가... 뭔가 방법이 없나?!’
장월화를 때려 눞힐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머리 굴리셔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은 여기서 제게 죽는 겁니다.”
장월화가 사뿐사뿐 나를 향해 걸어왔다.
손에는 핏빛 기운을 뿜어내는 비녀를 들고 말이다.
‘가만...’
순간, 좋은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사파의 기와 정파의 기는 서로 충돌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
정월화가 흡성대공을 익혔다면...
내 몸안에 있는 기를 전부 빼가려 할 테고... 거기서, 정파의 기를 정월화의 몸에 주입한다면..?!
‘...해볼만 하다.’
그렇다면, 일단 장월화에게 잡혀야 했다.
“뭔가 좋은 생각이 난 것 같은데... 그거 다 헛수고라는 걸 왜 모를까?”
장월화의 눈이 번뜩였다.
[초상비(草上飛)]
1장(丈)정도 떨어져 있던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장월화의 손은 내 목을 노렸다.
“크윽!!!”
“이제는 도망칠 기력조차 없나 보군요. 뭐... 저를 상대로 여기까지 해낸 건 기특하다 해드리죠.”
나는 내 목을 잡고 있는 장월화의 손목을 잡았다.
“쓸 때 없는 발악은 그만 두세요.”
“쓸 때 없는지는 일단 보고 나서 말하지?”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의 두 번째 단계 황(黃)으로 남아있던 내공을 최대한 불렸다.
“내게 밥 잘 먹으라고 인사하는 것도 아닐테고...”
기를 빨리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내공심법을 써서 남아있는 내공을 최대한으로 불리고 있었다.
황당한 듯 장월화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당연히 아니지. 메인 디쉬는 지금 부터거든?!!”
“...그게 뭐..?!”
[양의신공(兩儀神功)]
안에 남아있던 사기가 순수한 정기로 탈바꿈했다.
“뭐... 뭐야 이건?!!”
놀란 장월화가 다급히 손을 때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놔! 이거, 놓으라고!!!”
“놓칠까 보냐?!!”
장월화의 손을 붙잡은 채.
양의신공과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을 극한으로 운기하였다.
“이 버러지가아아!!!”
-화아아아!!!
찬란한 빛(光)이 나와 장월화를 감싸았다.
***
“이... 이럴 순 없어... 나는... 나는...”
장월화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동안 양기를 흡수하여 유지해왔던 젊음은 내 안에 있는 선기를 흡수 하며. 장월화 안에서 충돌하여 사라졌다.
결과... 그토록 유지하고 싶어했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주름지고 욕심 많은 노파만이 남아있었다.
‘끝났다...’
장월화가 쓰러진 걸 확인한 뒤, 나는 바닥에 대(大)자로 뻗어 누웠다.
무당산 절반을 도려낸 기의 충동이었다.
고작, 절정밖에 안되는 장월화가 모든 충격을 완화시킬 정도로 내공이 깊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야화루 뿐인가..?”
야화루는 예기들과 창기들로 구성된 다른 루와 달리, 암살과 정보 수집을 위해 키워진 아이들이 많았다.
“축하드립니다. 금삼님. 정말, 이화루주를 쓰러뜨리셨군요.”
총관이 피바다가 된 바닥 위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총관이 어깨에 걸치고 있던 흰색 풍의가 붉게 물들었다.
‘...다음은.’
이화루의 위. 야화루.
야화루를 맞고 있는 건... 야화루 출신이자, 현재 하오문의 총관을 맞고 있는 그녀였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강! 카가강!
총관이 품속에 숨기고 있던 암기들을 바닥에 떨구었다.
“두 개의 루를 차지하시면, 자연히 모든 루를 총괄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런 규칙이 있었습니까?”
“예. 얼마 전에 만들었지요.”
총관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나저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저 때문에, 낙화루와 이화루 모두 못쓰게 되었지 않습니까?”
나는 내가 부숴놓은 이화루를 쭉 둘러봤다.
지붕엔 구멍이 뚫려 있었고, 금으로 장식된 난간은 온전한 곳 없이 아작이 나 있었다.
‘...저거. 얼마나 나올까?’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기시면 됩니다. 혹시, 지실 생각이십니까?”
“이길 거긴 합니다만...”
총관은 하오문주와 싸움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싸움에서 이기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지만...
반대로 진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을 법한 삶을 살 수 있기에. 나는 절대 질 수 없었다.
“그 전에 하고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낙화루의 재건축이었다.
- 작가의말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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