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비밀에 대하여

지금의 하오문이 있기 약 25년 전.
현, 하오문주 위지백은 표국의 표사였다.
“아까 수채 놈들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거 봤수?”
“백이가 들어온 후로, 우리 마령(馬鈴)이 다른 표국들 중에서 가장 잘 나가게 되었어.”
하오문주 위지백이 갓 스물이 되었을 당시. 위지백은 스승이나 비급의 도움조차 받지 않은 채, 절정의 경지에 당도한 고수였었다.
동료 표사들은 위지백을 자랑스러워 했고, 총표두 또한 위지백을 신임했었다.
“이번에 갈 곳이 어디라 그랬지?”
“황하 건너 청해에 물건 배달이라 그랬소.”
“청해? 거기, 마교 놈들 있는 곳 아녀?”
“으... 가기 싫어라.”
여느 날들과 같이. 위지백이 있는 표국은 물건 배달이라는 임무를 받아 청해에 가게 되었다.
문제는 청해 근처에 신강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표사들이 그쪽 지리에 밝지 않다는 것으로. 다른 임무와 달리, 청해 쪽에 길눈이 밝은 길잡이가 필요했다.
“청해? 거기, 미친 놈들 소굴이 있는 곳 아녀?!”
“음... 곤륜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떻습니까?”
“글쎄... 고작 물건 배달일 뿐인데, 곤륜에게 청을 넣는 건 좀...”
“그럼, 이쪽도 모르오. 살펴가시오.”
“아이고, 저런...”
마교가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한 나머지, 표국 근처에서 청해 쪽으로 안내할 길잡이를 찾긴 어려웠고. 표두는 결국 곤륜산에 도움을 청하려 했었다.
“청해로 가신다고요?”
그 때. 흑의를 입은 한 이가 나타났다.
얼굴과 몸을 검은색으로 무장한 채, 검은 삿갓을 쓴 수상한 자였다.
“...그렇소만.”
“잘됐군요. 청해 기련산 쪽에 처(處)가 있는데, 거기에 볼 일일 좀 있습니다만... 가시는 데까지, 같이 동행하는 건 어떠실까요?”
수상해보이긴 했지만...
곤륜에게 기별을 넣으려면,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체 될 것이고... 그 만큼, 다른 임무의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이기에. 위지백을 포함한 그 누구도, 그 제안을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죠.”
“그냥,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는 수 밖에...”
그렇게 얼굴모르는 자와 동승하게 되었고...
목적지인 청해에 다다랐을 때, 이들은 이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청해에 도착하자, 길잡이와 똑같은 복장을 한 흑의인들이 절벽 위에서 표국의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절벽에서 뛰어내려 배에 안착한 이들은 곧바로 학살을 시작했고, 위지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손에 두동강이 나게 되었다.
“사... 살려줘...”
표국에서 이름을 날린 고수라 할지라도, 위지백은 자신과 같은 경지... 혹은 자신보다 위의 고수를 다수 상대로 겨뤄본 경험이 없었다.
처음에 제 곁을 지켜줬던 동료들이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고, 절정의 고수였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던 위지백은 흑의인들에게 둘러 쌓인 처지가 되었다.
“제발. 나는 더 이상 싸울 생각이 없어...”
위지백이 몸의 일부처럼 가지고 다녔던 도끼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흑의인들에게 항복을 권했다.
하지만, 위지백의 목을 노리는 포위망은 점점 좁혀져 갈 뿐...
“으아아아아!!!”
이날 위지백은 처음으로 공포에 잠식되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부디 목숨만 살려달라며 흑의인들의 발을 잡고 애원했다.
“...미안하지만, 이쪽에도 규율이란게 있어서 말이죠.”
‘규율..?!’
그깟 규율이 뭐길래, 전의를 상실한 인간을 죽인단 말인가?!!
목격자는 살려둬선 안 된다는 규율.
이 규율로 인해, 흑의인들은 위지백의 동료들처럼 위지백을 시체로 만들기 위해 위지백을 향해 다가갔다.
“잠깐 기다려라.”
“...어르신.”
흑의를 입은 단원이 위지백의 머리통을 가르려는 순간. 여우 가면을 쓴 한 흑의인이 이를 말렸다.
“흠... 건장하구나. 황소에 머리를 두고 있어서 그런가... 유독, 남들보다 건강한 신체를 타고났어.”
여우가면은 위지백에게 다가오더니 위지백의 머리채를 잡곤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너. 재미있는 운명을 가졌구나.”
“...예?”
“영웅... 혹은 악인이 될 운명을 가졌다. 내 태어나서 너 같이 반대의 운명을 한 번에 가지고 태어난 녀석은 처음 본다.”
위지백은 혼란스러웠다.
운명은 또 뭐고, 영웅과 악인은 무엇인가.
“흠... 정했다. 이 놈을 요람(搖籃)에 데려가라.”
“...요람(搖籃) 말씀이십니까?”
“그래. 만일, 악인이라면 죽겠고... 영웅이라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폐인이 될 테지.”
“하지만... 위에서 목격자는 모두 사살하라고...”
“이놈을 죽이는 순간. 살인을 한 자에게 이놈의 운명이 떨어지게 된다.”
여우 가면의 말에 좌중이 순간 침묵했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여기 있는 이 상자가 아니냐. 요람(搖籃)이 이 놈을 데려가면 좋고, 아니면 그게 이 녀석의 운명인 걸로 봐도 되겠지...”
여우 가면의 손엔 위지백과 표국이 청해에 배달하려던 상자가 있었다.
길잡이였던 흑의인이 사람은 믿을게 못 된다고 버릇처럼 내뱉었다. 위지백은 방금까지 길잡이가 이 말을 한 의미를 몰랐지만 지금 그 뜻을 깨닫게 되었다.
“속였구나! 우리를 속인 거야 네놈이!!!”
“어이쿠야. 아직 기력이 남아 있었나 보군.”
-팟! 파밧! 팟!!!
여우 가면이 빠르게 위지백의 혈을 짚었다.
“자네의 혈을 막아두었네. 이제, 아무리 노력해도 이 다음 경지로 올라가는 건 무리일게야. 그러니, 노력하지 말게.”
그게 무엇이 되었든, 헛수고가 될 테니까.
무인에게 있어 사형선고와 같은 말이 위지백에게 떨어졌다.
지금 당장 여우 가면에게 달려들어 죽고 싶었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무슨 조치를 한 건지 입을 벙긋할 수조차 없었다.
“끌고가라.”
“예!”
위지백은 저항조차 못 하고, 흑의인들을 따라 청해호의 가운데로 들어갔다.
호수의 가운데, 아주 깊은 곳. 그곳엔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듯 한 고대 유적이 있었다.
“네놈이 영웅이든 뭐든. 딱히 상관은 없지만. 이 일의 목격자인 이상... 나는 네놈을 죽여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길잡이가 위지백의 멱을 잡곤 유적의 입구 이로 위지백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네놈을 찾아 죽이는 건 내가 귀찮으니... 만약 살아남는다면, 죽은 듯이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너를 찾아가
친히 네놈의 목을 벨 것이다.
그렇게 위지백은 새까만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
“후... 후후후후.”
“...왜 웃는거지?”
실성이라도 한 걸까?
쓰러진 하오문주가 웃기 시작했다.
“애송이... 너는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는가 보군...”
-끌끌끌.
“네놈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생각하겠지.”
“...엥?”
‘이건 뭔 소리야?’
어째서 표국의 무공을 익히고 있냐 물었더니... 이상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허나, 그것은 착각일 뿐. 지금 이곳에서 죽어도, 어차피 다 되돌아간다는 걸 왜 모를까...”
하오문주가 고개를 올려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나는 보았다.”
‘...뭘?’
뭘 봤길래, 저렇게 눈을 부릅뜨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요람(搖籃)은 그저 무덤이 아니었어...”
“...무덤?”
무덤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내가 만든 것 말고, 제대로 된 무덤을 본 적이 없긴 하지...’
요람(搖籃)이라는 이름을 가진 걸 보면, 흑철이라던지 꽤 쓸만한 것들이 있을 것 같은데...
“...거기 뭐가 있었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왕 이렇게 된거, 나는 하오문주를 떠보기로 했다.
‘들어보고, 뭐 있을 것 같으면 가서 털어야지.’
대답을 기다리는데. 하오문주가 갑자기 광인(狂人)처럼 웃기 시작했다.
“너는 운명을 믿느냐?”
“...운명?”
“그래. 운명이다. 나나 너나. 여기 있는 모두가 그저 한 흐름에 흘러가는... 미천한 존재지.”
‘...소설이라 그런가?’
왜 우주론 같은게 나오는거지?
‘소설에서 이런 말이 언급된 적이 있었나..?’
아마 없던 것 같다.
“본래 내가 겪어야 할 운명을 네가 빼앗았으니... 너 또한 곧 알게 될거다...”
-쿨럭!
하오문주의 입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문주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와중, 눈가로 떨어지는 썩은 살로 인해 시야가 가려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문주는 초상비로 내게 돌진해왔고, 검을 치우는 게 늦은 나는 그만 문주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말았다.
‘...어차피 죽일거였으니. 미안한 마음은 없지만.’
치명상을 피했다면, 조금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요람은 청해호 가운데에 있다.”
“...그런가.”
‘알아서 찾아보란 얘긴가..?’
아예 말하지 않고, 궁금증만 남긴채 떠날 줄 알았는데... 친절하게도 무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귀찮게 되었지만, 직접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았다.
“그곳에 가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 거다... 이 세계가 이상하다는 걸...”
‘...뭔 소리야?’
이화루의 루주였던 장월화가 말했던 것처럼.
하오문주 또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자기만 알았던 것처럼 이야기했다.
“이 세계는 원래 이상했어.”
‘몰랐냐?’
사람이 사람답지 살지 못하는 이상한 세상.
이게 이상한 세상이 아니면,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그래... 네 눈엔 그렇게 보이는 건가...”
하오문주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모든건... 순리대로...”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하오문주의 숨이 끊어졌다.
“...뭐야? 뭔데..?”
찜찜하다.
그렇다고 이미 죽은 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씨. 개 찜찜해.”
‘총관한테 물어보면, 뭔가 좀 말해주려나?’
총관을 찾으러 나서는데... 얼굴에서 썩은 살이 흙바닥에 툭 떨어지더니, 이내 몸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아!!!”
몸이 불에 댄 것처럼 뜨거웠다가 얼음물에 담갔다 뺀 것처럼 시려웠다.
‘뭐... 뭐야, 이게?!!’
-우드드드득!!!
온몸의 뼈가 부스러지고 다시 원상복구 되는 것처럼, 온 몸이 아파왔다.
밀려오는 고통에 아파서 소리치는데... 저쪽에서 총관이 나를 향해 달려 오는게 보였다.
“금삼님!!!”
나는 내 이름을 부르며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총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 나 좀...”
“금삼님!!!”
나 좀 살려줘...
이 말을 끝으로.
나는 몰려오는 수마에 눈을 감았다.
- 작가의말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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