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천마의 비고(3)

‘...대충 말을 정리하자면 이런 느낌인가?’
진천성은 초마의 경지에 오른 상태로, 녀석은 다른이의 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를 토대로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안하는지 판단할 수 있으며. 또한, 미래 시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근데, 나는 그게 안보인다... 이거지?’
내가 환생을 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진 모르겠지만...
진천성은 내게서 미래를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렇군. 그래서 관심을 보인거였어...’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혈교 녀석들의 발자취를 보여주면 진천성이 나에 대한 관심을 끊을까?
‘...애초에. 이 녀석. 회귀를 한 게 맞을까?’
회귀를 했다면, 회귀하기 전 기억을 토대로 제게 적인지 아군인지를 판단하면 될 것을. 진천성은 사람의 기를 하나하나 관찰하며, 눈앞에 있는 이가 제게 도움이 될 사람인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허. 허허허...”
“왜 웃는거지?”
“별 것 아닙니다... 그냥, 지금까지 제가 걱정했던 것들이 전부 사라지는 느낌이라...”
나는 애꿎은 머리를 산발로 만들었다.
진천성은 회귀자가 아니었다.
진천성이 여태 까지 했던 말과 행동이 이해되어, 한편으로 통쾌하면서도... 내가 알던 정보의 절반 이상이 송두리째 날아갔다는 사실에 한편으론 씁쓸했다.
“제 정체가 무엇이냐 물으셨죠?”
“...그래.”
“그저 그런 고고학자입니다.”
사실을 밝힐까 하다가...
진천성이 마음을 바꿔, 나를 제 노예로 사용할까. 서둘러 거짓말을 했다.
“...다시말해 도굴꾼이라는 거군.”
내가 거짓말을 한 걸 안 건지. 아니면 내가 도굴꾼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를 보는 진천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쁘게 말하면 그렇게 들릴 수 있겠죠.”
“그렇게 들릴 수도 있다라...”
“뭐... 제 직업이 뭔지...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천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제 정체가 궁금하셨던 이유는, 제게 운명이 안 보이기 때문이라 하셨죠?”
“그렇지.”
“청해호에 위치한 요람(搖籃)이란 걸 아십니까?”
진천성의 눈이 순간 확장되었다.
녀석은 한 손으로 내 목을 잡더니, 그대로 흙벽에 나를 꼴아 박았다.
안쪽 깊은 곳에 내상을 입은 나머지 입 밖으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걸, 어디서 들었느냐?”
“하오문주라는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진천성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사실이군. 그 자가 어떻게 요람(搖籃)에 대해 알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너는 어떻게 그것에 대해 듣게 된 거지?”
진천성의 안광이 붉게 빛났다.
“이번에 하오문주가 바뀐 것을 아십니까?”
“...소식을 듣긴 했다.”
진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마교의 정보력은 개방이나 하오문 이 두 조직만큼 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는 계승식의 목격자입니다. 하오문주가 바뀌면서, 전 하오문주가 그러더군요. 모든 것은 요람(搖籃)에 가면 알게 될 거라고요.”
진천성이 실소를 터뜨렸다.
“거기가 어딘 줄 알고 간다는 거지?”
“저야 모르죠. 사실, 딱히 흥미는 없지만... 최근, 저를 골치 아프게 한 녀석들이 그곳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일부러 거짓말과 진실을 교묘히 섞어, 무엇이 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내 책략이 먹혔다는 듯, 진천성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 녀석들 이름이 뭐라했더라... 무슨 혈... 뭐였는데...”
나는 기억이 안 난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혹, 혈교라는 이름이었나?”
“네! 맞습니다! 그런 이름이었어요!”
진천성이 나를 그대로 땅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내기를 담아 던진 건지, 외기를 둘렀는데도 고스란히 충격이 들어왔다.
울혈을 토해내며 땅에서 기어다니고 있는데, 머리 쪽에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농담할 기분이 아니다. 바른데로 답해라.”
“저는 아까부터 진실만을 이야기 하고... 아야야...”
진천성이 내 머리를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주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머리가 땅 아래로 점점 파고들어가며, 시야에 지상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남은 기회는 한번뿐이다. 다시 한번, 그 입을 제멋대로 놀리면, 네 머리를 터뜨릴 것이다.”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젠장, 더 이상 거짓말은 못 하겠군.’
진천성은 한다면 진짜 하는 녀석이었다.
녀석을 떠보기 위해, 지금까지 말에 거짓과 진실을 섞었다면. 이제부터는 진실만을 말해야 했다.
“너는... 혈교를 쫒던 중 나를 만났고. 나를 혈교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려 했다. 맞나?”
‘...음. 맞긴한데.’
딱 오해하기 좋을 상황이라, 그렇다고 대답하기 좀 어려운 모양새였다.
“대답.”
“아이고, 예, 예. 답하겠습니다. 그러니, 발에 힘좀 빼주십쇼...”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진천성이 나를 누르는 발에 힘을 주었다.
더 이상 대답을 피할 수 없었다.
“대협의 말이 맞습니다. 혈교의 뒤를 밟던 중, 우연히 대협을 만났고... 대협을 끌어들이기 위해, 객잔에서 시선을 끌었습니다.”
“왜지? 내가 혈교와 무슨 관계가 있을 줄 알고?”
“그저, 추측이었습니다. 장강 수채 놈들을 흉내 내는 산적에, 놈들을 가둬 논 객잔에 나타난 고수들. 어지간히 실력이 있는 녀석이 아니라면, 누구든 의심해야 하는 법이죠.”
진천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즉... 너는 내가 혈교 그 놈들인 줄 알았다..?”
“예. 정확하십니다.”
“...하!”
진천성이 코 웃음 쳤다.
“너는 네 목숨이 달린 지금도 거짓말을 치고 있다...”
‘그러게나 말이요...’
진실만 말하려 했는데, 이놈의 입이 방정이었다.
“네가 그 놈들의 끄나풀이라는 내 의심이 아직 풀리지 않았으니... 너는 내 의심이 풀릴 때 까지 나와 함께 다녀야겠다.”
“...예?”
“거절은 거절한다.”
진천성이 표정을 굳혔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진천성을 이용해 이 근방에 숨어 있을 혈교 놈들을 타도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제 뭘 믿고 데리고 다니실 생각이십니까?”
진천성이 내 머리를 밟고 있긴 하지만...
이 발만 벗어나면 나는 자유의 몸이었다. 경지 차이가 상당히 나기 때문에, 진천성에게서 도망갈 시 팔 다리 한 두개는 내놔야겠지만...
그래도, 도망을 갈 수 있었다.
“그건 걱정할 것 없다.”
진천성은 손가락으로 휫바람을 불었다.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바람과 함께 무언가가 빠르게 나와 진천성이 있는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왔다.
“컹!”
‘...개? 아니지, 개라기엔 덩치가 크니까...’
울음소리의 주인은 새하얀 털을 가진 늑대였다.
“...이 녀석 이름이 뭡니까?”
“백랑(白狼)이다.”
‘...거참, 성의 없게도 지었네.’
흰색 털을 가진 늑대.
외견을 그대로 따라, 혁련진은 이 녀석을 백랑이라 지었다.
‘그냥, 센스가 없는건가..?’
“뭔가 그 눈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가?”
“...제가요? 아뇨, 설마요...”
나는 절대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천성이 의심을 거두지 않아, 나는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 녀석 사람을 잘 따르네요?”
개의 조상은 늑대지만,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이 녀석들은 고고한 영물취급을 받았다.
그런 녀석이 내 앞에서 배를 까고 헥헥 거리니...
‘뭐랄까...’
옛날에 시골에서 키우던 진돗개가 생각났다.
‘...귀엽네?’
특히, 처 분홍색 뱃살이 그랬다.
덩치가 사람보다 크고 이빨이 날카로운게. 한번 잘못 물리면, 바로 골로 갈 것 같지만...
‘귀여운 건 귀여운 거지.’
“육포 먹을래?”
품에서 육포를 꺼내 주니,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이 녀석은 왜 부르신 겁니까?”
진천성은 대답대신 백랑을 향해 눈짓했다.
백랑은 입에 있던 육포를 꿀꺽 삼키더니, 땅에 엎어져 있는 내 옷을 잡아 올렸다.
“...워?”
진천성의 발이 머리에서 떨어지고...
내 몸은 백랑의 입에 들려 공중에 둥둥 떠 있게 되었다. 목 뒤에서 섬짓한 느낌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백랑이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아씨, 내 옷.’
아까 준 육포 탓인지, 침 묻은 옷에서 육포 냄새가 나는 듯 했다.
“...그래서,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아까 말했지? 이 곳 산적 두목이 혈교 놈들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예에.”
나는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찾으러 가야지 않겠나?”
“...하지만, 기운만 남아 있을 뿐. 사람으로 보이는 건 대협과 저 뿐입니다만?”
“미약하게 나마 땅 아래에서 여기 남아있는 것과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예?”
진천성의 말에 나는 시선을 내려 아래를 바라봤다.
진천성의 말대로라면... 이 곳 지하에 비밀기지가 하나 더 있다는 말이 되었다.
“...설마?”
“그 설마가 설마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진천성이 발 아래에 내기를 주입하곤 가볍게 발을 굴렀다.
굉음을 내며 땅이 폭파하듯 꺼지고, 발 아래 닿는 것이 전부 사라질 즘. 나는 내 몸이 허공 아래로 떨어지는 걸 느꼈다.
‘...아놔.’
내가 건축가라 그런가.
왜 만나는 사람마다 자꾸 바닥을 폭파시키는 지 모르겠다.
“찾았다.”
“컹! 컹!”
진천성의 말에 백랑이 반응하고.
그로 인해 나를 물고 있던 백랑의 입이 벌려지며, 내 몸은 허공에 붕 뜨게 되었다.
‘아이씨...’
[초상비 (草上飛)]
경공으로 몸을 가볍게 띄운 후, 근처에 있던 절벽의 길가에 안착했다.
“...근데, 여기 웬지 낯이 익은데...”
순간, 사천에 있던 초대 천마의 비고의 크기가 황성만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여기, 거기네.”
산적들의 기지 아래.
초대 천마의 비고로 가는 길목이 숨겨져 있었다.
“왜 그런 반응이지? 이곳을 알기라도 하는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진천성이 말을 걸어왔다.
“...하오문에서 봤던 길과 비슷해서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오문에서 잡일꾼으로 일하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건물 보수공사에 끌려갔고... 하오문 내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내 손을 거치지 않은게 없었다.
‘그러니... 반은 맞는 말이지.’
절대로, 이 비고를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진천성에게 만큼은 들킬 순 없었다.
“저쪽에서 기운이 느껴지는 군.”
“컹!”
진천성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하더니. 그대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백랑이 진천성을 따라 내려갈 듯 하더니, 이내 옆에 있던 나를 물고 아래로 떨어졌다.
‘...아이씨.’
두 절벽 사이에 위치한 강 하나.
그곳에 산적 두목으로 보이는 이와 흑의를 입은 이 하나가 돗단배 위에 올라타 있었다.
- 작가의말
작가의 건강 및 글이 무너지고 있어, 금요일까지 휴재를 하려 합니다.
빨리 회복해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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