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가의 당해원(1)

‘...사람은 신이 될 수 없다.’
사람이 신이 되었다는 신화가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과거의 일.
현대에서, 사람이 신이 되는 일은 없었고, 만약 있다면 그 인간은 사이비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현대에만 적용되는 상식일 뿐.
죽어서 소설 속 인물로 전생한데다, 기로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게 가능한 무협지에서, 사람이 신이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글쓴이는 정말 신이 된 걸까?’
초대 천마인지, 아니면 전 천마인지.
천마로 추정되는 글쓴이는 요람(搖籃)이란 곳에 들어간 후, 다시 태어났다 했다.
‘하오문주가 죽기 전... 그런 말을 했지.’
-그들이 말하는 요람(搖籃)은 그저 무덤이 아니었어.
요람(搖籃).
청해호에 위치한 무덤이자, 진천성이 과민반응을 보였던 요람(搖籃).
하오문주와 비석에 써진 말대로라면, 요람(搖籃)은 무덤이 아닌, 사람을 신(神)으로 만드는 어떠한 장치라고 보는게 맞았다.
‘...진천성은 요람(搖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어.’
하오문주가 언급했던 ‘그들’은 ‘혈교’ 녀석들이고, 진천성은 ‘요람’이 뭔지 알기에, 혈교 녀석들을 쫒던 진천성의 입장에선 혈교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네놈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생각하겠지.
하오문주가 나를 도발할 때, 했던 말 그대로, 나는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알고 있던 사실이 왜곡되고, 진천성에게 했던 거짓말이 진실이 되었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현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머리가 터질 듯이 복잡했다.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현실을 마주하자, 비현실적인 감각에 뇌가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있었다.
고요한 적막을 깨고, 내 한숨 소리가 비고 안을 울렸다.
“...어렵군요.”
“...뭐가 말이지?”
“그냥 좀... 그런게 있습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문득. 하오문주가 죽기 전에 했던 다른 말이 떠 올랐다.
-본래 내가 겪어야 할 운명을 네가 빼앗았으니... 너 또한 곧 알게 될거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게 느껴졌다.
“...형님.”
“왜 그러느냐?”
“형님이 전에 제게 그러셨죠. 제게서 운명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죠.”
“그래.”
“그건, 지금도 여전합니까?
나는 양팔을 벌리곤 진천성을 향해 몸을 돌렸다.
진천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제 기운이 정확히 어떻게 보이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흠...”
진천성이 자세를 바꾸어 나를 내려다봤다.
흥미롭다는 듯, 제 턱을 쓰는 것이... 웬지 모르게 나이 든 노인을 보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음... 기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별걸 다 궁금해 하는구나.”
코웃음을 친 진천성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뭐랄까. 백랑이나, 다른 녀석들은 같은 색의 기운이 그 주변에 일렁거리는데. 너는 좀 다르다.”
진천성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색이 하나가 아닌 두 가지인 데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니... 마치 엉킨 실타래를 보는 듯 하다.”
“...그렇습니까.”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하오문주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을 줄이야.’
수수께끼가 풀렸다.
진천성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 운명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내가 하오문주를 죽임으로서 그 운명을 덮어썼기 때문이었다.
본래, 내가 가진 운명과 하오문주가 가지고 있던 운명이 한 곳에 공존하게 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거였다.
‘씁... 이렇게 되니, 괜히 죽인 것 같네...’
하오문주는 죽어도 싼 놈이었다.
녀석을 죽이기 위해, 무공을 익혔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그토록 원했던 놈의 목을 꺽을 수 있었다.
그러니, 하오문주를 죽인 것에 후회는 없어야 했고, 없어야 했지만...
‘...빡치는 군.’
-그곳에 가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 거다... 이 세계가 이상하다는 걸...
이 세계는 이상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문화가 이상한 것이 아닌, 그냥 세계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
-허나, 그것은 착각일 뿐. 지금 이곳에서 죽어도, 어차피 다 되돌아간다는 걸 왜 모를까.
생명의 순환(巡還).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듯, 나는 하오문주의 말을 이 뜻으로 이해했었다.
만약, 말에 다른 의미가 있었다면..?!
‘하오문주는 왜 돌아간다는 말을 했을까..?’
생각이 정리되면서 생겨난 두 가지 의문.
첫째, 이 세계가 이상하다는 말과 무슨 의미일까.
둘째, 첫 번째 의문과 사람이 죽으면 돌아간다는 말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요람(搖籃)에 가면 알 수 있다 했지?’
“...형님. 혹, 요람(搖籃)에 가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요람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에, 혼자서 그곳으로 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러니, 나보다 강하고, 요람에 대해 아는 것이 더 많아 보이는 진천성과 함께 가고자 했다.
“...안 그래도 곧 갈 생각이었다만. 왜, 그러느냐. 혹, 너도 관심이 있는 것이냐?”
“...그렇겠죠?”
“아서라. 지금, 네 경지로는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광자(狂者)될 것이다.”
“...역시, 형님은 요람에 무엇이 있는지 아시는군요?”
“...그래.”
진천성이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이곳과 그곳은 매우 비슷하게 생겼지. 하지만, 그곳에서 돌고 있는 기운은 이곳에 있는 것관 전혀 다르다. 자격이 없는 자가 요람에 들어가면, 미치거나 폐인이 될 수 있다.”
“...기운 말입니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요람에 진법이 깔려있는 거군요?”
“그래.”
기운을 가득 머금은 요람이 거대한 진이 되어, 사람을 신으로 만드는 거였다.
“...형님은 요람에 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마도?”
“...아마도는 왜 나온겁니까?”
“가본 기억은 없다. 다만... 어째선지, 그곳에 가봤다는 느낌은 있다.”
신기루처럼, 희미한 감각을 떠올리듯.
진천성은 제 손을 쥐었다 폈다.
“...원인을 알기 위해서라도, 가봐야 할 것 같군요.”
그러려면, 경지의 상승은 꼭 필요했다.
“형님.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봐라.”
“제가 형님께 가르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본좌가 누구인지 알면서, 그런 부탁을 하는 거냐?”
“누구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무공의 경지를 신체가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최대의 힘을 이끌어 내는 마공.
진천성은 마교 안에서, 차기 교주로 인정을 받은 소교주의 신분이었다.
그런자에게, 직접 무공을 전수 받는다면, 빠른 시간 내에 실력이 확연히 오를 터...
“어차피, 제게 가르쳐주실 생각이었잖습니까?”
“들켰군.”
진천성이 씩 웃었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나는 진천성의 눈에 띄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혈교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강해지지 않으면, 나는 곧 혈교의 손에 의해 죽는다.’
진천성이 말하길, 이가희는 잘린 제 신체를 미끼로, 진천성과의 싸움에서 도망쳤다 했다.
이가희가 살아남았으니, 혈교는 진천성이 현재 어느 경지에 도달했는지, 빠르게 파악할 터.
그 와중에, 이가희의 앞을 막았던 내 존재가 거슬릴 것이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다.’
그것도 선빵이 제일이었다.
“우선... 네가 가진 무공을 한번 펼쳐봐라.”
“...여기서요?”
‘...이렇게 갑자기?’
“그래.”
무공을 가르쳐 달라 한 건 나긴 하지만, 무인이 자신의 초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은 별로 없었다.
온전히, 내것만 보여주면 상관 없었지만. 나는 무당의 내공심법과 무공을 배웠다.
진천성의 경우, 요람에 들어가려면, 내가 필요하기에. 나를 강하게 만들 목적이란 이유가 있지만...
‘...괜찮으려나?’
곽창원은 몰라도, 곽창호가 알게 되면,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안 할건가?”
“...하겠습니다.”
‘뭐, 안 들키면 되겠지..?’
만약 들키면, 빨리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대서, 추궁을 피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진천성의 앞에서 그동안 배우고 익혔던 무공들을 선보였다.
“초상비와 천근추는 이상하게도 부드럽게 이어지는 구나.”
“...그렇습니까?”
신교의 소교주인 진천성이 한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은 언제나 기분이 좋았지만, 그 사람이 고수라는 점에서 더 뿌듯한 기분이었다.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이라 했나? 기본적으로 나쁘지 않는 내공심법이다.”
진천성은 내가 운기조식을 하는 것만 보고, 그대로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의 첫 단계인 청(靑)을 이뤄냈다.
진천성은 내가 운기조식을 하는 것만 보고, 그대로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의 첫 단계인 청(靑)을 이뤄냈다.
‘와, 씨... 저 미친 놈?!’
괜히 마교의 소교주가 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진천성의 몸을 두르고 있던 푸른 기운이 녹색의 기운으로 변하더니, 그 다음 단계인 황(黃)을 이뤄냈다.
진천성의 주변으로 검붉은 기운이 샘솟더니, 이내 그 크기를 부풀렸다.
“...세상에.”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진천성이 비고 구석에 피어 있는 이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끼에서 푸른색 연기가 하늘로 솟더니, 진천성의 손바닥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갈변해버린 이끼를 보며 말했다.
“...흡성대법을 펼치신겁니까?”
“아니. 이건,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의 세 번째 단계인 갈(褐)이다.”
진천성의 모습이 흡성대법을 사용하려 했던 이가희의 모습과 겹쳐, 나는 진천성이 흡성대법을 펼친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진천성이 보여 준 것은 시체가 부패하며 주변에 동화되는 과정을 무공으로 바꾼,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의 세 번째 단계, 갈(褐)로... 이는, 내가 도달해야 하는 단계였다.
“...허허허허허.”
사람이 너무 벽을 느끼면, 실성한다고 했나?
그저 헛 웃음만 나올 뿐. 질투나 시기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 이제 해보거라.”
“...농담이시죠?”
무슨, 밥아저씨도 아니고.
한번 보여줬으니,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왜 하는 것일까..?
진천성은 짧게 혀를 찬 뒤, 내 앞으로 와 내 어깨를 짓눌렀다. 하오문주가 휘둘렀던, 도끼보다 묵직한 무게감이 나를 무릎 꿇렸다.
“황(黃)에서 갈(褐)로 가기 위해선, 많은 내공이 필요하다.”
“...그럼, 다음 단계로 못 가는게 맞지 않습니까?”
1갑자 내공은 사람이 10년을 수련하여야 얻을 수 있는 힘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만한 시간이 없으니, 영약이나 다른 기연(奇緣)에 의지해야 했다.
머릿속에 있는 소설의 정보를 뒤져, 이 근방에 영약이 있나 찾고 있는데... 진천성이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이 나쁘지 않은 심법이라 한건, 그 다음 단계로 가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
“무공이란, 본래 자연을 본떠 만든 것으로.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은 시체가 썩고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본떠 만든 것이다.”
“...예에.”
“시신은 썩기 전, 배가 크게 부풀어 오르는데. 이는, 단전 안에 있는 기를 증폭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즉, 황(黃)단계를 능숙하게 다룬다면, 바로 윗 단계인 갈(褐)로 가는 건 쉽다는 이야기다.”
나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진천성에게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을 알려 줄 때, 나는 진천성에게 누가 이 무공을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본 따 만들었는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단전 안에 있는 기운을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만 보여줬을 뿐...
‘...천재구만.’
“네가 늘릴 수 있는 만큼, 네 안에 있는 내기를 늘려봐라.”
진천성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려, 내가 운기조식하는 것을 도왔다.
단전 안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익숙한 듯, 혈을 지나가며 몸 안을 순회하였다.
“아직, 많이 모자르다.”
진천성의 말에, 안에 있는 기를 빠르게 순환했다.
“더 늘려라.”
-우우웅!
단전에 기가 차곡차곡 쌓이고, 더 이상 단전에 기를 모아둘 공간이 부족해졌다.
하지만, 진천성은 더 많은 내기를 만들어내라 재촉했다.
“더.”
“끄으으으...”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고, 등줄기에 땀이 비가 오듯 쏟아져 내렸다.
“...지금.”
진천성의 기운이 내 안에 있던 혈도를 넓히고, 모아두었던 내기를 한 번에 방출했다.
- 작가의말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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