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가의 당해원(3)

나는 진천성 만큼 강하지 않았다.
즉, 거센 물살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 맺집이 없다는 말과 같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협!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귀찮군.”
“...형님. 입꼬리가 또 내려가고 있습니다.”
물에 빠진 당요원을 구해준 것은 진천성으로, 진천성은 현재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놈이 난리를 피운 바람에 내 옷이 물에 다 젖지않았느냐. 이 상황에서 웃으라고?”
“웃으셔야 합니다. 아님, 무표정이라도 좋으니, 화를 거두십쇼. 지금, 굉장히 무섭게 생겼습니다.”
당요원은 당반야에게 예쁨을 받는 탓에, 온갖 패악을 부리면서도 단 한번도 혼이 나지 않았다. 자신을 막을게 하나 없다보니, 망나니로 자라났고. 저를 구해준답시고 온 진천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진천성에게 있어, 기가 실려있지 않는 주먹은 전혀 위협조차 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갈 곳을 잃은 당요원의 주먹이 물웅덩이를 향했고, 수면에 충격을 주자 물줄기가 분수처럼 뻗어나와 옆에 있던 진천성에게 정통으로 직격했다.
그래서, 진천성은 현재,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다.
‘...꼬시군.’
“형님. 표정관리.”
“...아우님은 퍽, 이 상황이 즐거워 보이는 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 아우는 형님이 고뿔에 걸리실까, 그게 염려될 뿐입니다.”
진천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협. 이럴게 아니라, 저희 쪽으로 오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옷을 새로 들이겠습니다.”
이쪽의 대화를 눈치챈, 당가의 시비들이 나와 진천성을 자신들의 저택으로 초대했다.
“형님.”
“알았다. 그러니, 그만 불러라.”
진천성은 당가의 초대를 허락했고, 곧 우리와 당요원을 태울 마차가 도착했다.
“아이고, 형님 덕분에 이런 고급스런 마차도 다 타보네요.”
“퍽이나.”
“혹여, 불편하시더라도. 지금 상태를 유지해주셨으면 합니다.”
“...뭐라?”
“형님이라면, 기를 운용하여 옷을 말리는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제 말이 틀립니까?”
진천성은 화공으로 제 옷을 말릴 생각이었겠지만, 당가에 은혜를 입 힌이가 바로 우리라는 것을 당가에 각인 시켜야 했기 때문에, 진천성은 당가에 도착할 때 까지 생쥐꼴로 있어 줘야 했다.
“...아우님은 도통 못 당해내겠군.”
“웃으십쇼, 형님.”
“지금은 너와 백랑 밖에 없지 않느냐.”
“지금, 형님이 저를 죽일 듯 쳐다보고 계셔서 하는 말입니다.”
“쯧.”
진천성이 가볍게 혀를 찼다.
당가를 향해 한 시진을 넘게 달리던 마차는 어느 부분에서 잠시 정차했다.
마차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협. 당가에 도착했습니다.”
“다 왔군.”
“드디어 좀 몸을 누일 수 있겠습니다.”
나는 양팔을 들어 올려 기지개를 폈다.
“가주를 바로 볼 예정이 아니었나?”
“빚을 진 건 우리가 아닌 저들이니, 우리는 천천히 회포를 푼 후 그 다음 알현을 신청해도 늦지 않습니다. 당요원과 관련된 일에선, 당가는 속이 좁은 놈들은 아니거든요.”
“허...”
마차의 문이 열리고, 당가의 사람들로 보이는 자들이 우리를 환영한다는 듯, 일동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두 줄의 빈 공간으로, 한 여인이 당당히 이쪽으로 걸음하는게 눈에 들어왔다.
“저 여인이 당반야의 여식, 당해원입니다.”
“그렇군.”
내 짧은 소개에 진천성이 고개를 까닥였다.
우리가 탄 마차 앞에 도달한 당해원이 우리를 향해 포권을 쥐었다.
“안녕하십니까. 당가의 소가주. 당해원이라 합니다. 제 동생을 구해주신 귀분들을 가문으로 모시게 되어 감읍할 따름입니다.”
“...말이 길군.”
“형님. 입꼬리가 또 내려가고 있습니다.”
진천성은 당해원의 인사를 일절 받지 않은채, 마차에서 뛰어 내렸다.
놀란 당해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진천성의 지금 태도를 보아, 짜증이 난게 분명하니. 아무래도, 인사 같은 건 내가 해야 할 것 같았다.
‘...에휴.’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지나가던 길에, 위험에 처한 이가 있어 사람의 도리를 한 것 뿐인데. 이리 초대를 해 주시니, 감사할 따릅니다.”
“아...”
당해원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제 동생을 구해주셨는데. 당연하지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리 배려를 해주시니... 한가지 요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당해원이 침을 삼켰다.
“저희 형님께서, 기가 약하신데. 저리 두다 고뿔에 걸릴까, 이 아우는 염려가 됩니다. 혹, 폐가 안된다면, 갈아입을 옷을 주실 수 있으신지요.”
당해원은 진천성의 기가 약하다는 말에 놀라, 진천성을 잠시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기가 전혀 약한 것 같지 않았지만, 일단 은인이 하는 말이니 그 점은 넘어가야 했다.
“물론입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
당가의 안내를 받아, 손님이 주로 묵는 방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고급스러워 보이는 침대가 두 개 에, 백랑이 누울 수 있을 크기의 큰 양탄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이쿠... 이게 얼마만의 침대입니까...”
내가 침대로 뛰어들려 하자, 백랑이 나보다 먼저 침대 위로 뛰어 들었다.
“...백랑?”
“끼잉?”
“거기, 내 자리인데...”
졸지에 자리를 짐승에게 빼앗겨 버렸다.
꼬리를 팡팡 터는 것이, 마치 ‘너는 나보다 아래다’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왜 서럽냐.”
개과는 서열에 민감하다고 했던가?
이 무리에서 나는 서열 꼴찌였다.
“...이건 네가 자초한 거다.”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나는 백랑이 있는 침대를 향해 몸을 던졌다.
백랑의 푹신한 털이 몸을 감싸고, 따듯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극락!’
지금 와서 말하기도 좀 그렇긴 하지만.
나는 개를 좋아한다.
백랑은 늑대지만, 늑대는 개과에 속하므로. 허용범위 내에 있었다.
“끼이이잉.”
기분이 나쁜 건지, 백랑이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밀어냈다.
발바닥에 있는 검은 젤리가 얼굴에 닿았다.
이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백랑을 힘껏 끌어 않았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 군.”
“...오셨습니까?”
옷을 갈아입은 진천성이 문을 열고, 나와 백랑이 있는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
빈 침대 위에 걸터 앉은 진천성이 한숨을 내뱉었다.
“대체, 침대를 하나 놔두고, 왜 그리 싸우는 건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 방에 사람이 둘인데, 이 중 하나는 제 것이죠.”
말하는 와중, 진천성의 말에서 이상함을 감지했다.
“혹, 방을 따로 받으셨습니까?”
“그래.”
즉, 이곳은 나와 백랑의 숙소로, 이 중 하나는 백랑을 위한 침대였다.
그리고, 나는 내 침대가 따로 있음에도, 굳이 백랑과 같이 붙어서 자려는 놈이 되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백랑을 올려다봤다.
백랑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좀, 빨리 말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내 말에 토를 다는 거냐?”
“아닙니다. 혼잣말입니다.”
“태세전환 하나는 빠르구나. 그래서, 언제 쯤 백랑에게서 떨어질 거냐.”
나는 여전히 백랑을 끌어 안고 있었다.
“백랑이 귀찮아 하지 않느냐. 어서, 내려오거라.”
“앉을 곳이 없는 데다, 솔직히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백랑을 안아보겠습니까.”
“...진심이군.”
진천성이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나는 진천성을 모른척 하고, 햇살 냄새가 나는 백랑의 품을 향해 더욱 파고 들었다.
결국, 귀찮음이 커진 백랑이 자리를 피하면서, 내 소소한 행복이 사라졌다.
백랑은 진천성의 근처로 가, 자리를 잡고 누웠다.
“...부럽군요.”
“본좌가 편해졌나 보군. 누워서 본좌와 농담이나 하고 말야...”
“어휴, 설마요.”
부러움을 잔뜩 토로하다, 이성이 찬물을 맞은 듯, 제 자리로 돌아왔다.
자세를 바로 앉자, 백랑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진천성이 보였다.
“...아무래도 생사결을 같이 하다보니, 제가 형님이 편해진 것 같습니다. 죽어도 좋으니, 백랑을 원 없이 쓰다듬어보고 싶네요.”
“헛소리 집어치워라.”
“옙.”
진천성이 백랑에게 옆으로 기대어 누웠다.
더 이상 호들갑 떨면,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아, 속으로 ‘부럽다’를 연신 남발했다.
“그래서... 당가에겐 무엇을 받아낼 참이냐?”
“아, 그거 말입니까...”
“그래. 뭔가 얻어낼 게 있으니, 이렇게 이들의 자택으로 직접 찾아온 것이 아니었느냐?”
“원하는 게 있긴 합니다만...”
당가는 독과 기관에 능통한 자들이었다.
혈교 내에, 독공으로 극마에 도달한 고수가 있기에, 본래는 놈에게 대항할 수 있는 해독제와 독을 달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당가로선, 제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지?”
“오시면서 보셨겠지만, 사천은 지금 좀 이상합니다.”
중원은 거대한 땅과 그 땅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강으로 이뤄져 있다.
북으로 가면, 추워지고. 남쪽으로 가면, 더워지며. 이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천 땅은 아주 특이한 곳입니다. 중원에서 광물 분포가 가장 많은데다, 나무 또한 많습니다. 광물이 뿜어내는 독소가 나무를 해칠 만도 한데, 아주 잘 자라나지요.”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오면서, 이상한 점을 못 느끼셨습니까?”
“...이상한 점?”
진천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단서를 하나 드리자면... 사천의 저택들은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처럼, 동서로 길고,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태입니다.”
“...그렇군. 오면서, 토루가 보이던데, 혹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맞습니다.”
토루란...
땅을 파서, 그 안에 집을 짖거나. 혹은 흙벽을 높고 굵게 쌓는 형태를 말했다.
이는 추운 날씨에 대비하기 위함인데, 이 때문에 토루는 주로 중원의 북부에 있으며, 마교가 있는 신강에 토루가 있었다.
“...혹시, 놈들이냐?”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진천성이 언급한 놈들이란 혈교를 말하는 것이었다.
만약, 혈교 놈들이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면, 초대 천마의 비고에 이가희가 있는 것이 설명이 되었다.
“...그 놈들이 이곳에 와 있다는 건 알겠다. 헌데, 그게 왜 당가에 문제가 된다는 거지?”
“당가는 현재, 채석권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했듯, 중원에서 사천 만큼 자원이 풍부한 곳은 없었다.
즉, 혈교에게 있어, 사천은 매력적인 땅으로...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치졸한 수를 쓸 수 있다는 말이 되었다.
“...그럼, 그것이 해결되기 전까진, 이곳에 볼일은 없는 것이 아니냐?”
“아니요. 그것을 저희가 해결해야 합니다.”
“...허.”
원수는 백배로.
은혜는 열 배로 갚는 당가다.
“은혜는 많이 입히면, 입힐수록 좋습니다.”
“너와 함께한 시간은 짧지만, 본좌는 알 수 있다. 네가 노리는 건 그것만이 아닐테지?”
“당연하죠.”
당가의 소가주는 현재, 당해원 그녀다.
하지만, 망나니 둘째가 소가주의 지위를 달라며 때를 쓰고 있어, 권력에 붙고자 하는 것들이 현 당주를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군. 실력이 안 되는 자가, 우두머리가 되려 하다니.”
“그렇지요. 하지만, 그것이 현실입니다.”
당가의 가주, 당반야도, 소가주인 당해원도. 당사자인 당요원도. 당요원이 가주가 되기엔 많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애처가인 당반야는 제 어미를 쏙 빼 닮은 당요원의 요구를 쉬이 거절하기가 어려울 터.
그렇기에, 소가주임에도 불구하고, 당해원은 현재 당가에서 입지가 좁았다.
“당해원을 당가의 가주로 만들려 합니다.”
나는 현재를 바꿔, 당해원에게 힘을 실어준 다음. 당해원을 차기 가주로 만들 생각이었다.
- 작가의말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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