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교의 흑사결(2)

“하지만, 죽음으로 더 강해질 수 있다면..? 살아생전 올랐던 경지보다 더 올라갈 수 있다면..?!”
흑사결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렇다면, 한번 죽어볼 필요도 있지 않겠는가?”
흑사결이 광소했다.
‘...미친놈.’
흑사결을 표현하기엔 이 단어만큼 적당한게 없었다.
혈교 녀석들 대부분이 강해지는 것에 미쳐있긴 하지만, 정신과 육체를 단련해서 강해지는 것에 집중하지, 흑사결처럼 약물과 점혈로 신체를 강화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채로, 배를 가르고.
지진 인두로 눈알을 파내는.
미친 사이코패스.
여태까지 만난 놈들이 살기 위해, 살인을 했다면. 흑사결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살인과 인체실험을 하는 작자였다.
이 때문에, 흑사결은 혈교 내에서도 괴짜 취급받는 존재였다.
“흐허허허허허···.”
쇠를 긁는 듯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였다.
카각. 카각. 흑사결이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놈의 손톱이 서로 부딪히며 마찰음을 내었다.
섬짓한 감각에 나는 반사적으로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흐···.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되네.”
흑사결은 기분이 좋다는 듯, 그 자리에 멈춰서서 제 수염을 쓸어내렸다.
미친놈이 정상인인 것처럼 구는 것만큼 무서운 게 또 없었다.
“이곳에 제 발로 실험체가 걸어 들어 온 건 아주 오랜만이라. 나는 지금 아주 기분이 좋거든···.”
‘...그럼 그렇지.’
잠시나마, 흑사결이 정상인이라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비난하는 듯. 흑사결이 헛소리를 지껄였다.
흑사결은 사람을 실험체 그 이상으로 사람을 보지 않았다.
-우드드득!
흑사결의 손이 기괴하게 꺾였다.
“10년..? 아니···. 100년이었던가? 아냐···.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것 같은데···.”
“...반로환동이라도 했다는 말일까요? 그렇기엔, 너무 젊어 보이는데···.”
“아마 그렇겠지요.”
상대는 현경의 경지에 올라선, 무인이었다.
환골탈태던, 반로환동이던. 무엇을 해도 이상치 않을 정도의 고수...
‘놈이 이 근처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 갑작스럽게 맞이 할 줄은 몰랐다.
다행인 점은, 놈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상대를 오랜만에 만나, 들떠있는 상태라는 점이었다.
놈의 목표는 나와 무영을 생포하는 것.
즉, 흑사결과의 싸움에서 패하더라도, 한동안은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팔다리 하나를 날려 먹겠지만 말이다...
“최근 사마천 사형의 아끼는 녀석이 이쪽에 왔지···. 계집 주제에 입만 무거워선, 사형에게 직접 알리는 게 아니면, 입을 열지 않겠다더 구나.”
흑사결이 짧게 혀를 찼다.
내 예상대로, 이가희는 이 곳에 있었다.
“혹, 그게, 너희들의 짓이더냐..?”
-쿵!
흑사결이 살기를 내뿜자, 심장이 떨어지기라도 한 듯 온몸에 진동했다.
나보다 더 경지가 높을 거라 예상한 무령조차, 흑사결이 내 뿜는 살기에 짖눌려, 온몸에 핏기가 점차 사라져갔다.
-후우. 후···.
불규칙한 호흡.
빨라지는 심장박동.
식은땀이 흥건한 손.
검이 경련하듯 허공에서 덜덜 떨렸다.
“너무 겁먹지 마라. 대답만 잘해준다면, 고통 없이 보내줄 터이니.”
흑사결의 안광이 붉게 빛났다.
고통 없이 보내준다는 말은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우리에게 정보를 모두 얻은 후, 우리를 끔찍하게 죽이겠지···.’
강시로 만들어 이가희에게 주거나...
아니면, 그저 실험체로서, 이곳에 버려진 이들과 똑같은 최후를 맞이하거나.
그렇게 되기 싫다면, 흑사결에게 맞서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군. 그럼, 항복하면, 우리는 저 뒤에 있는 놈들처럼 되는 건가?”
“호오... 그걸 왜 물어 보는거지?”
“어차피, 뒤질 거. 좀 멋있게 되면 좋잖아?”
“흐하하하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흑사결이 입을 쩍 벌린채 웃어댔다.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눈 때문에, 안그래도 기괴한 모습이 귀신처럼 보였다.
“애초에, 저것들은 뭐지? 강시로 만든다 하기엔, 이상해 보이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닌데..?”
“흐하하하하! 알아보는 거냐?! 우리 혈교의 비전의 담긴 놈들을?!”
작품을 알아봐 줘서 신이 난 흑사결이 제 작품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처녀 열 명을 잡아다 산채로 피를 내어, 큰 항아리에 한데 고운 다음. 신체의 모든 장기를 빼낸 시체를 삼일동안 끓일 것이다! 항에 원기(冤氣)와 사기(死氣)가 한데 모여, 세상에 대한 원한 하나로 움직이는 최고의 강시가 되는 거지..!”
옆에서 무영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무영에게는 미안하지만, 흥분한 흑사결이 혈교의 비전을 입밖으로 꺼내는 일은 드물지 않기에, 나는 이 거북한 대화를 좀더 이어갈 생각이었다.
“...처녀 열 명을 얻는 게 쉽지가 않았을 텐데?”
“그렇지! 마을이나 내 손에서 떠난 녀석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어미와 함께 잡아다 키웠다. 제물로 바쳐질 아이들은 갓난아이 때 부더, 어미들의 젓을 먹이며, 아주 정성을 다해 키웠지..!”
마을에서 잘 살고 있던, 임산부를 산채로 납치하여. 아이가 젓을 땔 때 까지, 어미와 함께 키운다.
아이가 젓을 땐 후, 어미는 강시가 되었던. 아니면, 다른 실험의 재료가 되었던.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닐 것이다.
“...너는 미친놈이군.”
소설이나 만화에 나오는 삼류악당처럼.
곧, 제 손에 죽게 될 인간들에게 제 계획을 떠벌려 줄거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흑사결은 무용담을 풀어내듯, 제가 어떻게 재료를 구했고, 취급했는지 그것을 떠벌리고 있었다.
혐오가 극에 달하고, 분노로 감정적이게 되었던 이성이 한순간에 차가워졌다.
“흐... 내가 네 놈은 특별히, 살려두어 살아있는 강시로 만들어 주지.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살육과 피에 눈이 먼 광(狂)전사로 만들어 주겠다!”
절대 흑사결에게 잡히진 않을 것이다.
“...제가 신호하면, 문 쪽으로 달리세요.”
“...예.”
우선, 이 좁은 방을 빠져나가는 걸 목표로, 흑사결을 나와 무령이 있는 쪽으로 유인해야 했다.
“아까부터, 둘이 뭘 그리 속닥대는 것이냐?”
-꾸르륵! 꾸륵!
흑사결의 손이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검붉은 살덩어리가 손톱 장식을 덮어버렸다.
흑사결의 본래의 10배 커진 손을 휘둘렀다.
-카앙!
빠르게 목을 노려오는 손을 검으로 쳐내자,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흐하하하하! 즐겁구나, 즐거워!!!”
흑사결의 얼굴에 수포가 올라오더니, 녀석의 손과 같이, 검붉은색 피부가 온몸을 뒤덮게 되었다.
검을 노리는 듯, 아래쪽을 파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공격에 뒤로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조금만 더..!’
“표정이 왜 그러느냐?! 혹, 지치기라도 한 것이냐?!!”
뒷걸음치던 발의 뒷꿈치가 강시가 잠들어 있는 관에 닿았다.
흑사결이 나와 무영을 향해 손을 크게 휘둘렀다.
“지금입니다!”
-콰앙!
땅바닥에 흑사결의 손톱이 박히며, 순간 틈이 만들어졌다.
나와 무영은 두 방향으로 흩어지며, 흑사결을 피해 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어딜가려 하느냐?!!”
뱀처럼, 기다래진 손이 가장 가까이 있던 무영을 쫓았고, 무영의 발꿈치에 손이 닿을 때. 무영의 그림자가 무영을 뒤덮더니, 무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영?!”
“저는 여기 있습니다.”
눈치 챘을 때, 무영은 이미 내 뒤에 서 있었다.
땅에 밖혔던 흑사결의 손이 순식간에 줄어들자, 나는 황급히 열려 있던 철 문을 닫았다.
-콰앙!
굳게 닫힌 철문 밖으로, 흑사결의 손이 빠져나왔다.
“금삼님!!!”
무영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문 앞에 있던 탓에, 흑사결의 공격을 간발의 차로 맞고 말았고. 이로 인해, 배에 큰 구멍이 뚫렸다.
입에서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오고, 허파에 피가 들어갔는지 기침이 끊이질 않았다.
‘...독인가?’
스멀스멀, 뭔가가 혈관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예전에, 이화루 녀석들을 상대하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무영... 제 품에 있는 걸...”
“네!”
눈가가 붉어진 채, 무영이 내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쪽에서, 무언갈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아챈 흑사결이 철문에서 손을 빼냈고, 그 바람에 배에서 크게 출혈이 났다.
“으아아아아아!!!”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나는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을 운용했다.
묵기금강기공(墨肌金剛氣功) 청(靑)의 기운으로 온몸을 감싸자, 벌어진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고. 황(黃)의 기운으로 내공을 부풀려, 그 세기를 강화했다.
“찾았어요!”
무영이 내 품속에서 검은색 단약 하나를 꺼냈다.
“저 안으로 던져!!!”
“예!!!”
철문에 만들어진 틈으로, 무영이 단약을 던지고. 철문 구멍을 막으려는 흑사결의 손을 피해, 단약이 시체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톡. 토옥. 단약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갈(褐)을 운용하여, 주위에 있는 모든 기운을 빨아 들였다.
“크으으윽?!!”
빠르게 빠져나가는 제 내공에 놀란 무영이 잠시 저항했지만, 기를 빨아들이는 상대가 나라는 걸 알고선, 오히려 제 기운을 내게 부어주었다.
“으아아아아아!!!”
갈(褐)로 주변의 기를 최대한 모은 다음, 황(黃)으로 그 크기를 부풀렸다.
-달칵.
온몸의 기를 쥐어 짜내어, 외공으로 돌리는 그 순간.
단약 안에 있던 화약에 작은 불씨가 일어나며, 방 안에 있던 가스와 만나, 허공에 불꽃을 만들어냈다.
공기가 도화선이 된 것처럼, 작은 불똥은 큰 불이 되었고. 밀폐된 공간 안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콰카카카카각!!!
풀무에 시체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전신에 외공을 둘렀지만, 방안에 축적된 가스가 만들어낸 폭발력을 겨우 견디는 정도였다.
심장이 터질 듯 비틀어지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이 애송이가아!!!”
더 이상 태워버릴 것이 없어진 화마(火魔)가 방 안에서 소용돌이 쳤다.
화염으로 만들어진 폭풍 속, 그 중심에 서 있던 흑사결과 눈이 마주쳤다.
흑사결을 향해 비소를 날리자, 눈을 부릅뜬 녀석은 안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화르르르륵!
굉음과 함께, 방 안이 터졌다.
지하에 있는 길을 따라, 불길이 만들어졌다.
미쳐,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명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천장이 없어진, 비밀 공간에 은은한 달빛이 들어오고.
“네 이노오오오옴!!! 지금, 네 놈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는거냐?!!”
매캐한 연기를 뚫고, 흑사결이 나타났다.
자식을 잃은 부모처럼, 그동안 만들었던 강시들을 한 순간에 모두 잃어버린 흑사결이 나를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역시···. 탈마에 이른 녀석을 꼼수로 이길 순 없는 건가..?’
낙화루와 이화루, 하오문주를 이길 수 있게 만들어준 화약.
혹시나 했다만... 화경과 초마를 넘어가는 순간, 이런 꼼수들은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시선은 끌었다.”
“...뭣?!!”
흑사결의 고개가 하늘을 향했다.
“시간이 늦었는데도 안 돌아와서, 뭐하나 했더니...”
-탁!
진천성이 가지고 있던 부채를 접었다.
“불장난을 하고 있었군.”
진천성의 안광이 달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 작가의말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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