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이 쏘아올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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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sar
작품등록일 :
2024.06.01 16:04
최근연재일 :
2024.08.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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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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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맹어호]천하무적

DUMMY

대한제국 이조. 이곳은 대한제국 조정의 모든 인사권을 관리하는 곳이다.


그리고 광만제가 자신의 동생인 이거명을 수장으로 앉혀 놓은 조정 권력과 인사의 핵심이기도 했다. 이곳을 잡고 있으면 모든 관부의 인사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니, 못 할 것이 없었으니까.


이조 회의실 최상석에 앉아서 피자를 오물거리는 홍지아 앞에 이거명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홍지아가 능글맞게 피자를 가리켰다.


“이리 와서 좀 드세요. 고구마 크러스트입니다.”


“영상 대감!”


이거명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서 소리쳤다.


“중추원의관들을 무참히 살상하고 언론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는 것이 사실이오이까!”


홍지아가 피자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대답했다.


“난 또 뭐 큰일이라고. 음~ 맛있어. 좀 드시라니까요. 혹시 고구마 크러스트 안 좋아하세요? 한 판 새로 시켜 드릴까?”


“대감!”


이거명이 피자 상자를 탁 덮어버리고 회의실 밖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며 말했다.


“지금 피자가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회의실 밖에 있는 사무실들은 모두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홍지아의 사병들이 곳곳에서 걸어다녔다.


일부 간원들은 등 뒤에 총구를 댄 채 덜덜 떨며 강제로 호송되는가 하면, 총을 맞고 죽어자빠져서 난간에 내걸린 간원들까지 있었다.


홍지아가 피자 한 조각을 더 집어들고 오물거리면서 대꾸했다.


“그대가 이조에 황국민정당을 대거 등용했기에 모두 체포하는 중입니다.”


“체포는 마땅히 영장이 있는 포졸이나 금부나졸이나 하다못해 군인이 해야 하는 것이지, 어찌 대감의 사병이 이와 같이 국가기관에 침입해서 체포를 한단 말이오!”


홍지아가 시큰둥하게 피곤한 눈으로 대답했다.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이거명은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고 답답한 나머지 헐떡이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홍지아가 피자 상자를 도로 열고 말했다.


“거 피자 좀 드시라니까요. 그거 봐요. 아침을 안 먹으니 사람이 그렇게 지쳐서 쓰러지는 겁니다.”


“대체 이조에 친히 들이닥치신 이유가 뭡니까?”


“내가 황국민정당에는 확실하게 검을 겨눴는데, 대감은 좀 애매해서요.”


그녀가 눈썹을 까닥였다.


"무엇보다... 황제의 동생. 함부로 죽였다가는... 물론 눈 가리고 아웅이긴 하지만, 황국민정당이 황상을 죽였기 때문이라는 명분이 흔들리니까요. 방법은 당신이 연루자라고 주장하는 것 뿐인데, 현장에도 없었고, 당신이 연루됐다고 고변해줄 만한 인간도 없고..."


홍지아가 이거명에게 피자 상자를 다시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자, 선택하세요. 이 피자를 먹겠습니까, 안 먹겠습니까?”


이거명은 그제서야 홍지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끝까지 황국민정당의 편을 고집할 것이냐, 아니면 홍지아의 편에 설 것이냐?


홍지아의 편에 서서 그녀가 할당해주는 몫, 그러니까 “피자 조각”을 취할 것이냐, 아니면 그것을 거부할 것이냐?


이거명은 현재 실질적인 전주 이씨 황실 종친회의 수장. 광만제가 죽은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사실상 큰어른이나 다름없는 위치다. 이거명이 홍지아에게 맞선다면, 홍지아는 전주 이씨 황실 전체를 상대로 싸워야 할 것이다.


홍지아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나,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황국민정당이 일으킨 반란을 홍지아가 진압한 것이다.


여기서 전주 이씨 종친들과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정통성도 정당성도 가질 수가 없다.


이거명이 눈을 찌푸리고 홍지아 옆 의자를 당겨 앉았다. 홍지아가 여전히 피곤한 눈으로 이거명의 선택을 기다렸다. 이거명이 천천히 피자를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전 고구마 크러스트 안 좋아합니다.”


홍지아의 눈빛이 격변했다.


“아, 그래요? 그래서 안 드시겠다?”


너 나랑 같이 안 가겠다고? 나하고 싸우겠다고? 홍지아의 질문은 그런 의미였다. 이거명이 부정했다.


“...먹긴 먹어야겠지만 저도 자존심이 있지 않겠습니까.”


살긴 살아야겠지만 자존심 때문에 여기서 넙죽 엎드리기는 어렵다는 말일 게다. 이거명이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콤비네이션. 새로 한 판 시켜주십시오.”


“좋습니다.”


홍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조판서 자리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겝니다. 원하시는 자리가 있습니까?”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이거명이 한숨을 푹 쉬고 대답했다.


“...액정서(掖庭署. 공공비품 관리 관청)에 한 자리 알아봐 주십시오.”


“명색이 판서이셨던 분이 액정서까지 내려가신다고요? 아유, 그럼 아니되시죠.”


“아닙니다.”


이거명이 고개를 저었다.


“액정서로 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사알(司謁. 액정서의 수장)으로 바로 넣어드리겠습니다. 품계상으로는 여섯 계급이나 내려가시는 것이니, 그것에 대한 값으로 충청도 연기의 빈 땅 30평방킬로미터를 드리지요. 과수원을 차리시든지 건물을 올리시든지 맘대로 하세요.”


홍지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이거명이 눈을 질끈 감고 중얼거렸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원수를 갚으려고 고통을 감수함)이면 권토중래(捲土重來. 어떤 일에 실패한 뒤 다시 돌아옴)이니...”


홍지아가 피자를 입에 물고 시체들의 사이를 거닐면서 웅얼거렸다.


“하나 꿇렸고, 두 놈 남았어.”




+ + +




곽대진이 진영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총융청은 개별 수준은 떨어졌으나 기갑과 포병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분명하게 홍지아의 사병에 대해 가장 유력한 적수였다.


홍지아가 앉아 있는 군영 사무실 안으로 곽대진이 천천히 걸어 들어와서 앉았다. 홍지아가 눈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소장파 무신의 거두, 당신 곽대진이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실질적인 현재 전 대한제국군의 수장이시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자 홍지아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길게 이야기하진 않겠습니다. 내가 정보를 듣자하니, 북방에 주둔 중이던 말갈군 20만 대군이 남하하기 시작했다구요?”


“...맞소이다.”


“누가 지시한 일입니까?”


홍지아의 말에 곽대진이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소장이 오늘 새벽에 지시했습니다. 대역이 일어났다고 하여 급히 유사시를 대비하여 전력을 증강하고자 하였소이다.”


돌려 말하고 있지만 홍지아를 제압하기 위해 끌어들이기 시작했다는 뜻. 단지 전력 증강이 이유였다면 국경분쟁이 일상인 북중국 지역을 비워두기까지 하면서 20만 대군을 남하시킬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홍지아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나와 한번 겨뤄 보겠습니까, 아니면 나에게 군권을 반납하겠습니까?”


“겨루겠다고 하면 어찌되는 것이오, 나를 여기서 쏴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랬다간 지금 얌전히 있는 병사와 군관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니 그렇게는 못 하겠지요. 내 거짓말은 하지 않겠어요. 비록 나의 사병들이 개별 무장 수준으로 정규군보다 훨씬 우세하다고 하나, 기갑이든 항공이든 중장비 전력에서는 정규군에게 한참 밀립니다.”


홍지아가 빙긋 웃었다.


“남방의 거대한 플랜테이션들과 광산들, 인도차이나의 공장들이 모두 나의 소유이니 전쟁물자를 대는 것은 내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겠지만,"


그녀가 곽대진을 가리켰다.


"당장의 전력상으로는 기갑전력이라고는 100대, 항공전력도 60기도 안 되며, 병사도 고작 1만 7천밖에 없는 나보다 이미 3개 기갑여단에 병력 2만 6천이 있고 곧 20만이 증강될 그쪽이 우세."


"..."


"자, 어쩌시렵니까? 이 나라의 모든 걸 걸고 나와 싸우겠습니까? 아니면 나에게 군권을 내어놓고 내가 주는 것을 받아 드시겠습니까?”


만약 여기서 곽대진이 “싸우자”고 하면 홍지아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그녀의 휘하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군재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곽대진이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만약 군권을 내어놓는다면, 대감께선 저희에게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무엇을 원하시오?”


홍지아가 그거 반갑다는 듯이 한 손을 탁자에 놓고 고개를 앞으로 당기며 말했다.


“말해 보시오. 내 최대한 들어 드리리다.”


“...병사들의 처우 개선과 장비의 교체를 원한다면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 말을 듣자 홍지아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그녀가 뒤로 허리를 다시 당겨 앉으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좀 어렵습니다. 예산 상태가 그럴 만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곽대진이 말했다.


“저희 소장파 무신들을 대거 중용하시어 군부의 요직에 앉게 해 주십시오. 국제정세가 혼란하니 틀림없이 변경이 어지러워질 것인즉, 저희들이 최소한의 군 통제력을 갖고 있어야 대한제국의 변경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홍지아가 눈썹을 잠깐 까닥이다가 이내 빙긋 웃고 대답했다.


“그건 받아들이지요. 군 인사권을 그대에게 일부 남겨 두겠습니다.”


“그렇다면 저 또한 겨루지 않겠습니다.”


곽대진이 고개를 한 번 숙였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부터 모든 군 통제권을 영상께 넘기겠습니다. 부디 조정을 안정시켜 주십시오.”


홍지아의 입가에 탐욕스러운 미소가 천천히 번져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김세환이 들이닥쳤다.


“대감!”


곽대진이 흠칫해서 고개를 돌리고 곧바로 소리쳤다.


“병마사를 막아라!”


병사들이 급히 김세환을 붙들었다. 김세환이 발버둥치면서 소리쳤다.


“그것이 무슨...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감! 병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 없이는 군권의 반납도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홍지아가 김세환을 보고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만한 예산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병력을 감축하시든지 조세제도를 개선하시든지 국방예산을 추가편제하시든지 해 주셔야 할 것이 아닙니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병사들의 처우 개선과 시설의 증강 없이는 협상도 없습니다!”


그러자 곽대진이 달려들어서 김세환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그를 흔들면서 소리쳤다.


“병마사! 이대로 협상이 결렬되면 온 나라가 불바다가 된다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내전! 2차 대전 직전 10.10 사건이라 불리우던 내전을 겪은 뒤, 같은 연합국들도 학을 뗄 정도로 잔인한 군국주의 파시즘 제국으로 타락했었던 대한제국에게, 내전이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과거였다.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김세환의 멱살을 잡았던 곽대진은 곧 정신을 차렸고, 이내 김세환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제발 한 번만 더 참아 주시게, 그대가 군병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모르는 바 아니나 나라 백성들을 다 죽이고 나라를 불바다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이쯤에서 그만두시게. 어쩔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김세환이 이를 부드득 갈면서 홍지아를 바라보았다. 홍지아가 여유롭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 같은 장군이 있다는 건 병사들의 복이고 나라의 복이군요. 이름이 뭡니까?”


“...사포대 병마절도사 김세환이라 합니다.”


“김세환.”


홍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그대를 기억하지요.”


그녀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김세환이 천장을 보고 탄식했다. 곽대진은 의자에 다시 앉아서 씁쓸하게 눈을 질끈 감았다.


홍지아가 뚜벅뚜벅 대한제국군 군영을 걸어나와 지프차에 오르며 중얼거렸다.


“두 놈 꿇렸고, 하나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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