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이 쏘아올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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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s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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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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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맹어호]적법한 영토와 젊은이들

DUMMY

같은 시각, 대한제국 강점하 북중국 위임통치령 석장(石庄). 이곳을 중국이 다스릴 때는 스자좡(石家庄. 석가장)이라 불렸다.


과연 “적법한 영토”라는 것은 무엇일까? 히틀러라는 학살자의 편을 들었다가 전쟁에 패배하고, 승전국에게 배상으로 내놓은 땅은 과연 “수복해야 할 적법한 영토”일까? 제국군을 끌고 들어가 점령하고 그 지역의 중국인들을 학대하고 고문하고, 노예로 부리고 그 여성들을 노리개로 삼으면서 강제로 지배하는 땅은 과연 “통치하여 마땅한 적법한 영토”일까?


바로 그랬기 때문에 대한제국과 중화민국은 둘 다 이 지역을 “적법한 영토”라고 주장했다. 중화민국은 이 영토를 대한제국에게 부당하게 빼앗겨 탄압당하는 지역이라고 주장했고, 대한제국은 이 영토를 자신이 적법하게 추축국으로부터 전쟁의 배상으로 얻어낸 대가라고 주장했다.


석장의 도심에서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한제국의 제1제국기, 광무제의 정복전쟁 이후 대한제국군과 중국군의 교환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홍헌전쟁이라 불리는 위안스카이와의 전쟁 당시 거의 1,000:1에 이르던 교환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좁혀지고 줄어들어, 롬멜의 북벌 시점에는 이미 중화민국이 대한제국을 능가하는 수준까지 따라잡았다.


김세환은 그 교환비를 20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벌려놓기 시작한 장본인이었다. 김세환의 지휘 아래 대한제국군은 교환비를 다시 1:10까지 벌려 놨다.


중화민국이 대한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이점은 거의 무제한적이고 무한정한 인적 자원이었는데, 그것을 다른 방법으로 극복하는 대신 상대에게 그것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도록 강제하면서 중화민국에게 더 큰 출혈과 피해를 강요하는 것이 김세환의 기본적인 전략이었다.


현란한 기동이나 오묘한 전술 따위는 없었다. 무조건 끝까지 우리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방어선 안에서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다가, 마침내 흑건적의 공세에 틈이 보이면 총공격해 1km, 1m, 1cm라도 진격하는 것이었다.


그게 가능한 것은 대한제국이 아직까지 중화민국에 비해 항공전력만큼은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들이 틈을 보이는 순간, 전투기들이 먼저 날아가서 적들의 방어선에 폭탄을 떨궈 마비시켰으니까.


아직까지 중화민국은 자체적으로 제트전투기를 생산할 능력이 없었던 반면, 대한제국은 그렇게 방산업계가 붕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량품이 많긴 했지만) 전투기를 뽑아낼 능력이 있었다. 특히 대한제국의 중공업 단지가 잔뜩 몰려 있는 만주 지역은 더더욱 그랬다.


도심지에서 병사들이 기관단총을 들고 뛰었다. 한 병사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대승입니다, 장군님! 흑건적이 석장을 버리고 퇴각하고 있습니다!”


사령부에서 그 소식을 전달받은 김세환이 무표정하게, 조용히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장교가 물었다.


“장군, 대승입니다. 어찌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측 피해가 얼마나 되는가?”


“사망자 582명, 부상자 3,921명입니다.”


“내가 죽인 거야.”


김세환이 비틀비틀 일어나면서 중얼거렸다.


“그 병사들... 다들 자기 집에서는 억만금과도 바꾸지 않는 소중한 아들이었을 것이고, 자기 애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내가 죽인 거다. 그 사람들을.”


“장군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 내 잘못이 아니다. 나 같은 늙은이들 모두의 잘못이다. 어리석은 늙은이들의 잘못에 저 젊은이들만 죽어나가는 거지. 앞으로 582곳의 장례식장에서 통곡소리가 들릴 것이고, 3,921개의 병상에서 울음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조정 대신이나 외교관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알려진 백성들일 것이다.”


김세환이 천막 문을 열고 섰다. 수백 구의 시체들이 들것에 실려 옮겨지고 있었다. 시신들은 신상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된 것도 있었고, 마치 흔들어 깨우면 일어날 듯 잠든 것처럼 단정한 것도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김세환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부관이 달려와서 급히 그를 부축했다.


저편에서 대한제국 공군 소속의 경전투기이자 지상 공격기인 KF-50 황금수리들이 편대를 지어 비행하면서 날아들었다. 그 엔진소리는 중화민국에게는 죽음을, 대한제국에게는 구원을 선사했다.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한쪽이 사는 상황인 동시에, 죽이지 않으면 죽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둘 다 상대를 죽인다는 선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장소. 제로섬 게임과 죄수의 딜레마가 양립하는 장소. 그게 바로 전쟁터였다.




+ + +




병사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흑건적들의 시체를 끌어다가 광장에서 불살랐다.


그리고 그 시체들로부터 획득한 무기들을 한곳에 모았다. 독수리 로고가 박혀 있는 휘장을 어깨에 달고, 노안의 중년이 무기들을 하나씩 직접 들어 흔들어 보면서 말했다.


“불펍인데.”


불펍(Bull-Pub)이란 원래 불독의 새끼를 말하는데, 총에서는 작동부가 개머리판 안에 내장되어 방아쇠 뒤로 오도록 설계하여 총의 길이를 줄인 것을 말한다.


공군도통사 박노수는 이 총을 본 적이 있었다. 20년 전 남방전쟁에서 대영제국군이 들고 나왔던 무기였다.


L85A1. 신뢰성이 극도로 낮고, 30발에 한 번 꼴로 탄이 걸려 안 나가며, 탄창 하나를 다 쓸 때까지 고장이 안 날 확률이 70%에 불과한 쓰레기 같은 총이다.


이 처참한 총의 성능은 남방전쟁에서 대영제국군이 대한제국에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빠르게 무너진 이유 중 하나였다.


“대체 이 쓰레기 같은 총을 왜 들고 나온 거지?”


박노수가 한숨을 쉬고 총을 퍽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그러자 뒤에서 김세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영제국이 재고 처분했겠지.”


박노수가 나이는 훨씬 많았지만, 계급에서는 김세환이 훨씬 위였고 박노수도 알고 있었다. 그가 김세환에게 고개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아, 오셨습니까.”


김세환이 쭈그려 앉아서 L85A1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남방전쟁에서 당할 대로 당한 대영제국이 이 총을 계속 쓸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쌓여 있는 총 버리기도 아깝고. 그러니까 대충 값싸게 중화민국에 팔아치웠을 거네.”


김세환이 씁쓸하게 그 총을 만졌다. 이따위 쓰레기 같은 총에 병사들을 잃었다는 사실에 그는 속에서부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내가 더 뛰어났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 때 저편에서 뿌우우 하는 소리와 함께 배 한 척이 나타났다. 텐진에서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강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오는 조운선이었다. 병사들이 그 배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배 안에는 식량과 약품이 실려 있었다.


박노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군, 조정에서 분명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고 했는데, 저건 무엇입니까? 혹시 중화민국이 보낸 간첩선은 아닐까요?”


“놔두시게.”


김세환이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내가 샀으이.”


“예?”


“저 배에 실린 물품들. 내가 샀다고.”


김세환이 일어나면서 쓸쓸하게 말했다.


“병사들 배고파하고 아파하게 놔둘 수가 없어서.”


“장군, 어찌 저희와의 협의도 없이... 저 정도면 기본 팔백만 냥은 나왔을 텐데...”


“됐어.”


김세환이 천천히 그 배의 방향으로 걸었다. 의사 100여 명이 약 가방을 들고 배에서 내려 다친 병사들을 진찰하기 시작했다. 부사관들이 병사들을 모으고 통조림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병사들을 사지에 투입해놓고 식량이나 의약품은 못 보내주겠다고 버티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조정 앞에, 김세환은 직접 맞서는 대신 그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을 택했다.


박노수가 뒤에서 물었다.


“...돈을 이렇게 쓰시면 사모님이 뭐라고 안 하십니까?”


김세환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왜 뭐라고 안 하겠는가, 난리를 치지. 하지만 별수 없었다. 김세환은 자기 병사들이 죽어가는 꼴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때 저편에서 펑펑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전투기 다섯 대가 무서운 속도로 창공을 갈랐다. 박노수가 급히 무전기를 집어 들고 외쳤다.


“여기는 공군도통사. 항공기 이륙 허가가 나지 않았다. 저 항공기들은 무엇인가?”


그러자 대답이 급히 튀어나왔다.


“흑건적의 항공기입니다!”


박노수는 다시 고개를 들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하늘을 찢으며 덮쳐오는 그 항공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확실하게 식별했다.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 호크!


대영제국에서 오래전에 개발한 경전투기였다. 이미 노후화되어 대영제국에서도 훈련용으로만 쓰는 것으로 아는데, 저게 왜 실전에 있지?


브리티시 호크가 쓸고 지나가듯이 날며 대한제국군에게 통조림과 의약품을 하역하던 선박에 폭탄을 꽂았다. 의사들과 군인들이 산산이 부셔져 사방으로 튀었고 선박의 잔해가 튕겨 나와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 한가운데에 처박혔다. 김세환이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안 돼!”


그리고 곧 대한제국의 황금수리들이 저편에서 날아들었다. 스크램블(Scramble)이라 불리는 긴급비행에 황금수리는 완전히 부적합했다. 엔진 예열에만 20분 이상 걸리는 황금수리였다.


적기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해도, 대응을 위해 출격하기까지 최소 20분. 그동안 적기는 아군 진지에 폭탄을 던지고 미사일을 쏘고 기관포를 난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엔진 예열이 끝나고 공중전을 시작하면 얘기가 달랐다. 일단 맞붙자 브리티시 호크들은 황금수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미 남방전쟁기에 황금수리에게 처참하게 찍어 눌린 브리티시 호크였다.


브리티시 호크 다섯 기가 곧 모두 시커먼 연기를 줄줄 싸며 소름끼치는 굉음과 함께 석장의 건물들 사이에 처박혔다. 김세환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폭침된 화물선을 바라보면서 주저앉았다. 박노수가 급히 김세환을 부축하면서 말했다.


“장군, 죄송합니다. 공군도통사인 소장의 잘못입니다.”


“...내 잘못이네.”


김세환이 다시 자책하기 시작했다.


“내가 대비를 철저히 시켰어야... 내가 대공포와 미사일을 더 요청했어야... 스크램블을 위한 긴급출동전투기를 더 불러왔어야 했는데...”


자책을 이렇게 심하게 하면 우울증에 걸리고도 남지 않을까? 김세환이 아직까지 제정신을 붙들고 사는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쪽에서 강제징용되어 무기와 전리품을 나르는 중국인들이 보였다. 대한제국군 장병들이 채찍과 곤봉을 들고 그들을 감시했다.


무엇이 정의로운 것이고 무엇이 정의롭지 못한 것인지 두부모 자르듯이 나눌 수 있는 세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걸 나눌 수 있다 믿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 + +




무엇이 논리적인 것이고 무엇이 논리적이지 않은 것인지는 두부모 자르듯이 나누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한상훈은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그가 길을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거리에는 기아 상태의 백성들이 널브러져 죽어가고 있었다. 대한제국의 어느 도시든, 도시 외곽에는 빈민가가 있었고, 빈민가에는 가난뱅이들이 있었다. 한상훈이 그들을 둘러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 나라에 개선의 여지가 있을지 근본적인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대한제국에서 신흥 세력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었다. 평양 광명서원의 홍지아 반대파 유생들을 중심으로, 경상도 경주의 월성서원, 성결포(싱가포르)의 말결서원, 강원도의 청해서원, 전주의 남부여서원 등 다섯곳에서 신사림(新士林. 새로운 사림)이 부흥했다.


본래 사림이란 조선시대 성종 시대에 지방에서 올라온 선비들이 대거 형성한 선비집단을 의미했는데, 오늘날 각 서원에서 발생한 선비들이 그때의 사림과 비슷하다고 해서 새로운 사림이라고 부른 것이다.


물론 한상훈이 신사림의 일원이 되고 싶다거나 하는 이유로 서원에 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단지 그는 광명서원에서 한 움큼 돈을 벌어 생계를 해결한 다음, 이런저런 방법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이었다. 그의 최종목표가 논리와 합리가 지배하는 세상인 이상, 근본적으로 충성심과 욕심에 근간하는 세력과 파벌이라는 것에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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