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맹어호]쟁취하고자 하는 것

홍지아가 제철소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신빈이 홍지아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런 누추한 곳을 시찰하시니 참으로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홍지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좋다. 신빈, 네놈을 밀어주지. 그녀가 신빈에게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집에 가서 열어 보게.”
신빈은 물론 신명진도 그게 무슨 내용일지 알고 있었다. 싱가포르 백화점 입점에 대한 이야기겠지. 이제 누가 가도 결코 싱가포르 백화점 허가는 나지 않을 거다. 신빈이 가서 부탁할 때까지는.
그리고 신빈의 입지는 계속해서 커질 것이다.
신빈이 홍지아에게 다시 한 번 인사했다.
“수고하셨사옵니다.”
“수고는 자네가 더 했지.”
홍지아가 천천히 돌아서서 신명진과 헬기에 오르려는데, 갑자기 저편에서 우우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군용 헬기 한 대가 밀어닥쳤다. 그리고 헬기 문이 벌컥 열리며 류주영이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어서 헬기 프로펠러 바람으로도 흔들 수 없을 정도였다.
“영상 대감!”
“뭐야, 무슨 일인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어서 의정부로 가셔야겠습니다. 헬기에 오르십시오.”
홍지아의 표정도 마주 굳어졌다. 정말 어지간히 급한 상황이 아니면 누구도 감히 그녀의 앞에 군용 헬기를 끌고 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평소엔 럭셔리하게 꾸민 전용 헬기가 아니면 타지 않았다.
신명진이 물었다.
“무슨 상황입니까?”
“너 같은 장사치 따위는 알 것 없다.”
류주영이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신명진이 굉장히 자존심 상한다는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홍지아가 급히 헬기에 오르며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헬기 문이 닫혔고 홍지아가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그 모습을 밑에서 바라보던 신빈이 살며시 미소지었다. 더 이상 월성상전에는 다음 주인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나의 것이다. 내가 싸워서 쟁취해 낼 것이다.
+ + +
류주영이 요란하게 올라가는 헬기의 엔진 밑에서 홍지아에게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북미 지역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구체적인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미합중국 멕시코도행군이 주력이 되어 반란을 일으켰고 수도방위군이 내응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홍지아가 담배 연기를 훅 내뱉으며 말했다.
“...그건 급한 소식이군.”
"반란군의 수장은 멕시코집단군 총사령관, 원수 저스틴 테오도르. 반란의 작전명은 제네시스의 날. 동원된 병력은 최소한 80만 명 78개 사단 이상. 이미 미국 본토의 절반이 그들의 손에 떨어졌고, 샌프란시스코 주둔 미 해군 태평양함대는 모두 무장해제되었다고 합니다."
미합중국과 대한제국의 관계는 결코 좋지 않았다. 2차 대전 당시 대영제국 해군을 인도양에 밟아넣고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밀어닥쳤을 정도로 강대하던 대한제국 수군과, 어마어마한 생산력에 힘입어 태평양과 대서양을 호령하던 미 해군은, 대대적인 접전 끝에 태평양에서 공멸했었다.
이후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하던 한미 양국은 광만제가 일으킨 남방전쟁에서 대한제국이 미국의 보호 아래 있던 필리핀을 멸망시키며 다시 한 번 완전히 파탄에 이르렀고, 서류상으로는 아직까지도 전쟁 중이었다.
미합중국이 공격해오지 않는 것은 퇴락한 대한제국 수군이 두렵기 때문이 아니었다. 2차 대전 이래 미합중국의 일관되고도 일변된 외교전략 때문이었다.
미합중국은 2차 대전에서 해군이 대한제국 수군과 함께 산화하고, 대영제국과의 관계 역시 극도로 나빠져 급기야 1950년대에는 캐나다에서 전쟁을 치렀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소비에트와 계속 귀찮게 구는 대영제국, 태평양 패권을 향해 폭주하는 대한제국, 그리고 미국의 마약 조직 토벌 과정에서 본토가 쑥대밭이 된 후 미국에 맞서 단결한 남미까지, 미국이 패권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상대할 적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미국은 패권을 포기하고, 대신 태평양과 대서양에 선을 그었다. 우리는 이 선을 넘어가지 않을 테니, 너희도 이 선을 넘어오지 마라. 이른바 독수리 날개 정책이었다.
철저한 고립주의자이자 쇄국주의자인 제럴드 가이막 대통령이 지난 35년간 미국에서 9연임을 하며 고수해온 정책이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했다. 만약 팽창주의자나 패권주의자가 가이막의 자리를 빼앗고, 필리핀의 해방을 명분으로 내걸어 태평양 패권에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내민다면, 지금 대한제국은 그걸 막을 능력이 없었다.
과연 저 독수리가 그동안 둥지를 감싸고 단단히 틀어막았던 날개를 다시 펼칠 것인가? 홍지아가 살짝 눈을 감고 담배의 탄내 나는 향취를 입 속에서 한번 버무리면서 명령했다.
“당사에 비상 걸어.”
+ + +
신도연이 한상훈 앞에 섰다. 한상훈이 말없이 무너진 건물 잔해 위로 올라서서 돌아보았다.
이제 그의 뒤에 서 있는 젊은 여인은 더 이상 대등한 관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격차가 나는 신분이었다.
한상훈이 조금 더 침묵을 지키다가, 신도연이 말하지 않는 것을 느끼고 자신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임을 깨달은 후 입을 열었다.
“오늘 재밌었어.”
“들어가려고?”
신도연이 한상훈을 보며 물었다.
“왜? 오늘은 나 집까지 데려다 주면 안 돼?”
“...내가 데려다 줄 필요 없잖아.”
한상훈은 조용히 건물 잔해 위에 앉았다. 박살난 콘크리트 조각들이 녹슨 철근을 삐쭉삐쭉하게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그가 쓸쓸하게 입을 열었다.
“손가락 한 번 튕기면 헬기가 당장 데리러 올 사람을 내가 왜 데려다 줘.”
“뭐야?”
신도연이 약간 놀란 표정으로 한상훈에게 다가섰다.
“왜, 내가 돈 많아서 부담스러워?”
“아니, 그냥··· 좀 머리가 아파서.”
“머리 아파? 의사 불러 줄까?”
“아니, 그냥, 그냥···”
한상훈은 적잖이 충격받은 모습이었다. 단순히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제까지 자기가 가져왔던 상식이 허물어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천천히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신도연이 팔짱을 끼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투덜거렸다.
"저렇게까지 부담스러워 할 건 없는데."
그녀가 잠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힘찬 표정으로 다시 기지개를 편 후 쾌활하게 생각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난 마음에 드는 남자.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고결한 신념이라는 야심. 저 리바이어던을 나는 쟁취해 낼 것이다.
+ + +
사막의 모래바람이 요란하게 풍겨 나오고, 광대한 바위와 평야의 사이로 회전초 수백 뭉텅이가 굴러다녔다. 한때 카우보이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전쟁으로 붉게 물들었던 미국의 서부 평원은 사막, 평야, 들판, 암반, 협곡이 뒤엉킨 대자연의 무대였다.
그곳을 관통하여, 어마어마한 모래바람이 불어댔고, 그 사이로 한 남성이 쌍안경을 접은 뒤 모래바람 속에 있는 군용 트럭을 향했다.
그가 트럭의 운전석에 앉자 조수석에 앉아 물을 마시던 남성이 말했다.
"본대 합류에는 얼마나 남았는가?"
"대략 3시간 뒤에는 합류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운전병이 운전대를 움켜쥐었다. 물을 마시던 남성의 어깨에는 별 다섯 개가 달려 있었다. 미국 멕시코집단군의 총사령관이자 원수 계급인 저스틴 테오도르였다. 테오도르가 유리창 밖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스미스, 자네만 믿네."
"글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임스 스미스라는 그 운전병이 미소짓고 말했다.
"이제까지 제가 틀린 적이 있었습니까?"
"없었지."
"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가이막 독재는 끝날 것이고, 우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입니다."
스미스가 클러치와 액셀을 밟으며 사막을 관통해 달렸다. 모래바람이 천천히 멎기 시작했다.
이어서 모래바람이 걷히는 지점이 시작되자, 스미스와 테오도르가 탄 트럭이 맨 앞으로 달렸고, 이어서 모래바람과 청야의 경계를 뚫고 수백 대의 전차가 사막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모습이 드러났다.
미국 멕시코집단군은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본거지로 삼아, 전차 3,900대, 장갑차 8,800대, 항공기 1,800기에 전투병력 총합 112만 7천 명을 거느린, 미국 최강의 육상전력이다. 미국이 남미를 침공했을 당시 멕시코를 멸망시키고 파나마 운하 지역까지 모조리 점령했던 강군이기도 하다.
스미스가 눈을 찌푸렸다.
"저기 우리 군이 보이는군요."
저편에서 엄청난 규모의 기갑부대가 트럭에 보병을 싣고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전투기와 공격헬기들이 하늘을 통과해 날았고, 수많은 병참을 실은 트럭들도 함께 폭주하고 있었다.
너덜너덜한 표지판이 가로등에 매달려서 삐걱거렸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댈러스까지 600km]
텍사스 최대의 도시 댈러스. 그곳에서도 멕시코집단군의 텍사스방면군이 들고 일어나 이미 점령했을 것이다. 우리는 워싱턴 D.C.의 반군이 무너지고 방어체계가 완성되기 전에, 백악관에 도달해 점령하고 쿠데타를 마무리해야 한다.
테오도르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밖에서 질주하는 다른 트럭을 향해 뭐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는 중에 스미스가 살며시 미소를 머금으며 생각했다.
패권을 운명적으로 타고난 지정학적 위치. 한동안 세계와 괴리되어 고립주의를 일관하여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나라. 태평양과 대서양을 좌우에 두고 천하로 뻗어나갈 준비가 된 이 국가를, 나는 쟁취해 낼 것이다.
+ + +
한상훈이 말없이 앉아서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허리 펴고 설 공간도 없는 고시원의 좁아터진 방.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 냥짜리 동전을 꽉 움켜쥐었다.
아버지를 보지 못한 지도 어느새 한참 되었다. 밝은 달이 밤하늘을 가로질러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곧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갈 것이다.
그 여자는 왜 나에게 왔을까? 왜 나와 친하게 지내려 했을까? 나는 부를 독점하는 기득권의 혁파를 열망하는데, 그녀와 친해지는 것이 맞는 것일까?
저 밖에서 와장창거리는 소리와 함께, 만신창이가 된 검계 조직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골목을 달렸다. 그리고 그 뒤로 완전 군장을 한 월성상전의 사병들이 기관단총을 갈겨대며 추격했다.
이제 경상도 일대에 대한 패권은 월성상전이 장악했다. 월성상전은 경남에서 마지막 유력한 검계집단이었던 경민검계연합의 수장 세력, 독산검계를 상대로 전쟁을 치렀고 이제 거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일대에서 활개치던 20여 개의 검계들도 모두 월성상전에 의해 파괴되었다.
월성상전의 사병은 본래 1990년대 말까지도 6,000명에 지나지 않았고 소량의 기계화부대를 갖추었을 뿐이었으나, 최근 1년간 급격하게 그 군세를 확대하여 수적으로 6개 사단에 이르렀으며 퇴역한 대한제국 장교들을 지휘관으로 고용하고 전차, 공격헬기 등을 철저히 갖춘 경상도 최강의 무력집단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홍지아의 사병과 일대일 대결이 가능한 민간군사기업은 이제 사포대를 제외하면 월성상전과 세별상전의 사병이 유일했다.
저 강력한 사병조차도 월성상전의 힘의 극히 일부. 대한제국에서 사포대와 세별상전에 이어 세 번째로 거대한 기업이자, 전 지구에서 열 번째로 거대한 기업. 그런 기업의 군주나 다름없는 경영권자의 딸이, 이 보잘것없는 남자에게 관심을 가졌다. 왜일까?
한상훈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도리젓고, 아래를 다시 한 번 내려다보았다. 월성상전의 사병들이 골목에 지저분하게 널브러진 검계원들의 주검을 작게 조각내어 쓰레기봉지에 담아서 트럭에 싣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시원 밖으로 걸어나가, 이내 고시원 출입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전화 부스에 멈춰 섰다.
그리고 한 냥짜리 동전을 밀어넣고 전화를 걸었다. 조용히 한상훈의 밤 귓가를 울리는 송신음이 들리다가, 이내 딸가닥하는 소리와 함께 대답이 들어왔다.
- 여보세요.
"김민현."
한상훈이 수화기를 잡고 말했다.
"나 물어볼 게 있어."
- 쓸데없는 소리 하면 끊어버릴 거야.
"너 대학 보내는 건 포기했어. 그건 됐고, 너 월성상전 알지?"
- 어.
"거기 경영권자가 누군지 알지?"
- ...아니.
"신명진이라는..."
- 모른다고.
"그러니까 내가 알려 주잖아. 신명진이라는..."
- 모른다고 했잖아, 이 개새끼야.
그제서야 한상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김민현이 모를 리가 없지. 단지 홍지아가 김민현에게 배우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몰라야 하는 것 뿐이다.
"그래,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하면 되겠네. 네 꿈이 혁명이라고 치자."
- 야, 이 개새끼야.
"그냥 그렇게 예시를 드는 거야."
- 네 꿈은 나를 죽이는 거냐?
"그래, 그렇다고 치자."
한상훈이 눈을 찌푸렸다.
"내 꿈이 널 죽이는 거야."
- 잘 되어가고 있는 거 같은데.
"그래, 잘 되어가고 있는데 문제가 하나 있어. 네가 내 친구야."
-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오늘 하는 소릴 보니까 아닌 거 같애.
한상훈은 이제 김민현의 대답은 무시하고 그냥 이야기하기로 했다.
"네가 내 친구라서, 내가 널 죽이려고 보니까 못 죽이겠는 거야. 그럼 내가 널 친구로 삼지 말았어야 할까? 너를 죽이는 게 내 꿈이라면, 나는 널 친구로 삼으면 안 되었을까?"
그러자 김민현이 가볍게 물었다.
- 날 어떻게 죽일 건데?
"모르지. 잘 때 칼침을 놔버린다던지, 밥에 독을 풀어넣는다던지, 찻길에 밀어버린다든지, 방법은 많지."
- 네가 내 친구가 아닌데도 내가 잘 때 집에 들어오거나 밥에 독을 풀거나 찻길 근처에 같이 있을 수 있을까?
김민현의 가벼운 대답에 한상훈의 말문이 막혔다. 김민현이 가볍게 다시 대답했다.
- 어떤 사람의 친구야말로 그 사람을 죽이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고, 모든 수사는 그 사람의 주변인들부터 시작하는 법이야. 네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더더욱 너는 내 친구여야 해. 그건 네가 처음 예시로 들었던 혁명도 마찬가지야.
한상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 종교 혁명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은 기독교인이었고, 프랑스 대혁명의 주축이었던 부르주아 계층은 중상주의 시대에 왕과 귀족들의 하수인이었어. 미국 독립 전쟁을 일으킨 조지 워싱턴은 버지니아의 부호였고 대영제국의 장교였어.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은 어린 시절 그 아버지가 세습귀족의 작위를 받은 인물이었고 혁명기에는 명실상부한 절대권력을 휘둘렀지.
김민현이 싸늘하게 말했다.
- 지금 네 사정이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해. 네 꿈이 뭔지만 알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우리는 약속했잖아. 정치계에서 만나기로.
거짓말이다. 월성상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시점에 이미 김민현은 감을 잡았을 것이다. 한상훈이 어떤 방식으로 월성상전과 접점이 생겼다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것 역시 이미 김민현은 꿰뚫어봤다.
- 난 그 기회를 놓쳤어. 영원히. 하지만 넌 아니잖아. 기회가 왔으면 잡아.
"하지만 그 기회가..."
한상훈이 잠시 말하려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내가 그렇게 이용하고 버릴 수 있는 그런 식의 기회는 아니야."
- 그럼 너한테는 뭐가 우선이야?
김민현이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 명예? 돈? 사랑? 가문? 우정?
그 말을 들은 한상훈은 순간적으로 발끈하여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사랑도 명예도 그 무엇도 내 신념에 앞서지 못해!"
- 그럼 그 신념을 실현시킬 기회가 왔다면 잡아.
김민현의 목소리는 대단히 싸늘하고 차가웠다. 한상훈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김민현이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다른 모든 것들은 제쳐둬. 오직 네가 추구하고자 하는 그 목표를 위해서 단 일각의 틈도 주지 말고 달려.
그 다음 덧붙인 말에는 더할 나위 없는 얼음장 같은 분노와 증오가 서려 있었다.
- 어떤 병신같이 목표 코앞에서 방심하다가 뒤지지 말고. 난 그런 새끼를 하나 봤어. 그리고 네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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