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라이크 아카데미의 말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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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딘02
작품등록일 :
2024.06.0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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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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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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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강 : 실종 (1)

DUMMY









“근데, 잘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어요.”

“뭐지?

“왜 비제를 죽이려 하시는지요.”

“그건 이미 말했잖아. 비제는 남의 몸에 기생하는······.”

“그게 아니라요.”


노릭은 킴벌리의 말을 잘라냈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조심스럽게, 킴벌리를 가리켰다.

얼굴보다 두 뼘 아래,

그의 심장을.


‘그런 뜻이었나.’


지금 노릭이 묻는 것은 더 근원적인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악인 처단은 이 세계에서 상식이 아니다.

더욱이 치안관이나 군인도 아닌 그가 비제를 죽일 필요는 없었다.

킴벌리 개인의 이유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난 다른 어른들과 달리 좋은 사람이니까 죽이고 싶다··· 뭐 그런 이유는 댈 수 없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그는 더욱 실용적인 이유를 대기로 했다.


“노릭, 과거의 유진에 관해서는 알고 있겠지.”

“네. 추락한 왕자··· 왜 그런 별명을 가지게 됐는지 정도는요.”

“그래. 유진은 예과 시절에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은 봉인했지만 말이야.”

“왜죠?”

“너무 큰 대가를 치러야 했으니까. 그래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만 쓰기로 했어. 가령···”


킴벌리는 노릭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와의 순위전이라던가.”

“그랬다면 저는 변수 없이 패배했겠군요.”


노릭은 쉽게 킴벌리의 말을 이해했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제의 시선도 네게서 유진에게로 옮겨갔겠지.”

“······!”


그것이 킴벌리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일어났을 이 세계의 시나리오였다.

비제는 유진이 보인 강신의 힘에 매료되어 노릭을 버린다.

유진은 자신을 납치하려는 비제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고 만다.


“난 그러는 걸 바라지 않았어. 너희 둘 중 하나라도 비제의 손에 넘어가게 둘 수는 없었다. 그것뿐이야.”

“···그랬군요.”


갑작스러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노릭은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미소지었다.


“그건 말하자면, 교수님께서는 좋은 분이라는 뜻이네요.”


이번에 당황한 건 킴벌리 쪽이었다.


“···아니야. 단지 비제가 벌일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저도 구하려고 하셨고, 유진도 구해냈어요.”

“난 단지 너희가 필요했을 뿐이야.”


킴벌리는 애써 부정했다.

이 세계에서 그는 위악자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이미 사람을 죽였고, 아마 앞으로도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거다. 그 과정에 네가 필요해. 다른 제자들도··· 내 계획에 필요한 장기말에 불과해.”

“그건······.”


노릭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진정으로 좋은 사람은, 자기가 좋은 사람이란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그는 그냥 킴벌리의 속내를 더 파고드는 일은 덮어두기로 했다.


“···제가 목적을 달성한 뒤에는 버려질 칼이라는 말씀이군요.”

“그래.”

“기대되는데요.”


그 옅은 웃음이, 다시 한번 노릭의 입가를 주름지게 했다.


***


노릭과의 밀회 직후,

킴벌리는 대연무장으로 돌아갔다.


유진은 아직도 빈 연무대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다가오는 킴벌리를 알아채고 고개를 들었다.


“어디 갔다 왔어요?”

“후후. 새로운 계획을 위한 포석을 두고 왔지.”

“그게 뭔지는 또 다 끝나고 나서야 가르쳐 줄 거잖아요. 그죠?”

“날 아주 잘 알게 됐군.”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냥···”


유진은 한숨을 토했다.

하지만 그러는 유진은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이걸로 저는 폐기를 피할 수 있는 걸까요?”

“아마도.”


확언할 수는 없었다.

원작의 시나리오대로 승리한 건 아니었으니.

아마도 유진은 한 번 더 검사로서의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있겠지.


‘그래도···’


그래도 일단은 유진을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괜찮을 거다.”


이 성공은 킴벌리 자신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건 킴벌리가 교사로서 거둔 첫 성과였으니까.


‘교사보단 뭔가 흑막 같은 짓거리를 더 많이 했지만··· 어쨌든 내가 도운 학생의 성과니까. 그게 중요한 거지.’


“그러면 내일은 다 같이 밥이라도 먹자. 옹졸한 학식 말고 저번에 그 테라스에서 먹었던 거로. 그때는 네가 다 뺏어 먹어서 난 맛도 못 봤어.”

“뭐야. 그 이후로 안 갔어요?”

“바빠서 인마, 갈 겨를도 없었지.”

“근데 이번에도 가면 진짜 뭐 징계받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 포장해달라고 해서 다른 데서 먹으면 되지.”

“와. 교수님 천잰데요.”


유진은 감탄했다.

킴벌리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근데 교수님은 지금부터 뭐 하시게요?”

“뭘 하긴 인마. 난 보스전이 남았잖아.”

“···보스전?”

“됐고 인마, 넌 가서 푹 자기나 해라.”

“교수님 덕에 이겼고, 폐기도 면하고, 오랜만에 기분도 좋으니까··· 분부대로 받들어 드리죠 뭐.”

“그래 고생했다. 유진.”


킴벌리는 유진의 어깨를 꽉 잡아준 뒤에 떠나보냈다.

그런데 떠나기 직전에, 유진은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다.


“근데 교수님 그거 알아요?”

“?”

“교수님이 나보다 훨씬 피곤해 보여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진도 연무장을 떠났다.

모두가 사라진 그곳에서 킴벌리는 한숨을 토했다.

유진의 후련한 한숨과는 1만 광년 정도의 거리가 있는 한숨이었다.


실제로 킴벌리는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긴장이 풀리자 잊고 있던 피로가 다시 찾아왔다.


그놈의 계획, 계획, 계획.

그것 때문에 몇 날 밤을 새웠는지.


“으음···”


킴벌리는 미간을 주물렀다.

피곤하지만 아직 한계까지는 아니다.

버틸 수 있다.


비제와의 결투를 위해 쌓아둔 수는 확실.

휴식은 비제를 처리한 뒤여도 충분하다.


‘슬슬 제자를 빼앗긴 분노에 못 이긴 비제가 찾아와야 하는데.’


어차피 비제는 새 육체를 잃은 분노로 이성을 잃었을 것이다.

조금만 간지럽혀 주면 금방 싸움을 걸어오겠지.


“···그걸로 계획은 종료다.”


킴벌리는 연무장을 나섰다.

나서서 비제의 교수실로 찾아갔다.

하지만 비제는 부재중이었다.


그의 비서는 있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비제의 행방도, 그 정체도.


‘그러면 기숙사인가?’


킴벌리는 비제의 방으로도 가보았다.

하지만 역시 비제는 없었다.


‘이상하군.’


킴벌리는 비제가 갈만한 곳은 모두 가보기로 했다.


검술연구회, 비제의 개인 창고, 원작에서 비제가 등장했던 공간들.

아카데미의 거의 모든 장소를 샅샅이 뒤졌다.

킴벌리나 비제의 신분으로는 출입할 수 없는 제한구역에도 몰래 발을 들였다.

그런데도···


‘없잖아···?’


킴벌리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물론 볼 것도 없었다.

순위전이 끝난 뒤로 벌써 몇 시간.


해가 기운지도 한참이 지났다.

더이상 찾을 곳도 없었다.


“아카데미 바깥으로 나간 건가···? 아니··· 그건 말이 안 돼.”


학기 중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카데미 외부에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다.

교수도 그 예외일 수는 없다.


‘나갈 수 있는 편법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비제가 그걸 알 리가 없어.”


분명히 비제는 아카데미 안에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지?’


“빌어먹을.”


계산에 따르면 비제는 반드시 이 국면에서 킴벌리에게 싸움을 걸어와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


‘뭔가 파악하지 못한 변인이 있는 건가?’


원작 지식에 관해선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원작에 드러나지 않은 것도 최대한 파악해 두었다.


킴벌리의 계획에 빈틈은 없다.

그랬을 터였다.


그런데 별안간,

끔찍한 의심이 그를 덮쳤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그는 이미 몇 번이나 원작의 시나리오를 바꾸었다.

운명을 바꾼 것이다.


‘그 행동이 원작에도, 내가 취득할 수 있는 정보에서도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를 건드린 거라면···?’


“아니. 아니야.”


‘내가 모르는 게 아직도 있을 리가 없어. 지금은 고작 1권 초반 시점에 불과해. 나는 후반부까지의 정보를 전부 갖고 있어.’


그래서 킴벌리는 자신의 계획으로 아카데미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다.

파악하지 못한 변인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킴벌리는 자신을 진정시켰다.


‘고작 비제가 잠깐 안 보이는 걸 가지고···’


어차피 내일이 되면 비제는 나타날 것이다.

더이상 마땅한 근거도 없이 몸을 혹사하는 건 그만두어야 한다.


“후······.”


킴벌리는 기지개를 켰다.

며칠 동안 쉬지 못한 몸이 불평을 토했다.

쉬어야 할 때다.


물론 비제 말고도 처리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많지만···

일단 기숙사로 돌아가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다.


괜찮을 거다.

비제는 내일 처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비제는 다음날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날이 밝고,

11시쯤이 되자 킴벌리는 대강당으로 향했다.

유진과 아이린이 듣는 비제의 검술 수업이 있는 곳이었다.


킴벌리는 마침 강당을 나서던 유진과 마주쳤다.


“어. 교수님!”

“하··· 유진. 하아······.”


킴벌리는 달려오느라 가빠진 숨을 몰아쉬었다.

유진은 그걸 보며 실실 웃었다.


“진짜 교수님이 해낼 줄 알았어요. 드디어 비제를 죽였군요!”

“어···? 뭐?”

“아니, 버릇처럼 수업에 나왔는데 비제가 없는 거예요. 다른 애들은 다 가고 저만 남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제야 깨달았잖아요. 교수님이 죽였는데 나타날 리가 없는 건데요.”


유진은 신나서 쫑알쫑알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럴수록 킴벌리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하. 나도 참 정신머리를 어디 놓고 다니는지 괜히 쪽팔리네요··· 어엇······.”


킴벌리는 유진에게 달려들어 어깨를 붙잡았다.


“어··· 교수님?”

“아이린은! 린은 출석하지 않은 거야?”

“걔는 처음부터 없었어요. 뭐 눈치껏 안 왔겠죠. 교수님이 비제를 죽였다는 걸 아는데. 방에서 잠이나 자고 있을걸요.”


‘방에서··· 자고 있다라.’


그래.

그럴 거야.

그래야 한다.


“···근데 너, 어제 아이린을 본 적 있어?”

“아뇨. 어제 연무장에서 헤어진 뒤로는 못 봤는데요. 자기 방에 가서 잤겠죠. 왜 그러는데요?”


유진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점점 멀어졌다.

어지럼증 속에서 킴벌리는 되뇌었다.


‘그래. 방에서 잤겠지.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다···’


하지만 불안감은 이미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있었다.

팽창한 불안은 의심이 되고,

의심은 다시 확신이 되었다.


“교수님. 진짜 왜 그러는데요? 뭐 문제 있어요? 교수님이 비제를 쓰러뜨렸잖아요. 그걸로 일단은 어떻게 된 게······.”

“아니야.”


킴벌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네?”

“아니야. 난 어제 비제를 죽이지 못했어.”

“죽이지 못했다고요···?”


불안, 긴장감,

하지만 그 혼돈 속에서 퍼즐은 점차 짜 맞춰졌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비제가 사라진 이유도,

킴벌리의 앞에 나타나 그에게 결투를 신청하지 않는 이유도.


“젠장··· 그런 거였어. 그렇게 된 거였다고. 나는 빌어먹을··· 그런 것도 모르고······.”


킴벌리는 연속된 계획의 성공에 우쭐해 있던 자신을 원망했다.


킴벌리가 운명을 바꾼 이 세계선에서, 비제의 최종 목표는 노릭이나 유진이 아니었다.


‘아이린.’


“린을 찾아야 해···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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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강 : 관심종자 24.06.24 27 1 12쪽
37 37강 : 오리엔테이션 24.06.23 28 1 13쪽
36 36강 : 뉴 게임 24.06.22 32 1 14쪽
35 35강 : 기생자 24.06.21 29 1 12쪽
34 34강 : 강신 24.06.20 31 1 14쪽
33 33강 : 시언 24.06.19 33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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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강 : 겟아웃 (2) 24.06.17 30 3 14쪽
30 30강 : 겟아웃 (1) 24.06.17 34 2 11쪽
29 29강 : 도미노 (2) 24.06.15 3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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