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라이크 아카데미의 말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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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딘02
작품등록일 :
2024.06.0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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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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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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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2강 : 다정함의 이유

DUMMY









비제의 첫 공격이 있었을 때,


킴벌리는 튕겨 나는 척하며 아이린의 방향으로 검을 던졌다.


킴벌리가 마력화살로 침대를 부쉈을 때부터 아이린의 결박은 어느 정도 풀려 있었고···


아이린은 그 검으로 남은 결박을 잘라냈다.


“머리 좀 썼지.”


그렇게 말하며 킴벌리는 아이린에게 품에 숨긴 단도 한 자루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다프니에게서 빼앗은 비수였다.


한 손에는 장검, 한 손에는 단검.


아이린이 가장 능숙하게 다루는 조합의 무기들이었다.


“이 장검 괜찮네. 어디서 구했어?”

“방금 죽인 이놈들의 간부한테서. 너 가져.”

“흥··· 좋아.”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는 비제의 속은 타들어 갔다.


긴장한 탓에 손이 떨렸다.


‘사이좋게 떠들지 말라구···! 여유로운 척이나 하고 말이야······.’


비제는 서둘러 승산을 저울질했다.


비제의 부상은 심각했다.


오른발에는 감각이 없었고,

왼손은 박살이 나서 형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장에는 몇 군데나 구멍이 났다.

출혈이 심했다.


사고가 둔해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저쪽도 별거 없어···!’


킴벌리는 이제 마술을 쓸 수 없으니 문제가 안 된다.


아이린은 뛰어난 검사지만, 아무리 그래봐야 학생.


비제가 상처 입었다 한들 그 상대가 될 수 없다.


저울질은 끝났다.


그는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하. 가소롭네. 나는 검술 교수야. 소드마스터라고.”


저벅- 저벅-


아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비제는 그들과의 거리를 좁혀가기 시작했다.


킴벌리는 아이린에게 속삭였다.


“···할 수 있겠어?”

“안 할 수는 있어?”

“그럴 수는 없지.”

“그러면 뭐 하러 묻는데?”

“인사치레지. 잘해봐. 너라면 이길 수 있어. 만에 하나라도 위험하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하. 그러시든가.”


그 말을 끝으로 아이린은 뛰쳐나갔다.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아이린은 웃고 있었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학생이 교수에게 대적한다니.


아이린은 지금보다 몇 배는 긴장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가볍다.

이유는 모른다.


이길 수 있다.

단지 그런 확신이···


아이린의 도약을 가속했다.

마침내 검이 격돌했다.


키잉-!


개전과 함께 멋들어진 쳐내기가 비제의 검을 튕겨냈다.


“···?!”


비제가 경악할 틈도 없이 두 사람의 합이 이어졌다.


캉-

카가가가가가강-!


그 속도는 무서우리만치 빨랐다.


검이 마주치며 튀기는 불똥에 주변이 밝아진 것만 같았다.


이건 비제의 예상 밖이었다.


단 몇 합 만에 정리하고 킴벌리를 죽일 생각이었는데.


아이린의 검술은 비제를 쫓아오고 있었다.


‘재능이 탁월한 건 알고 있었어. 그걸 숨기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이 몸의 미래로 삼은 거니까. 하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아무리 중상을 입었다 한들 비제는 교수다.


아카데미 검술학부의 정교수.

소드마스터다.


만전의 상태였다면 본과생 열 명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간단히 요리했을 것이다.


까다로운 기적이나 마술 사용자가 붙어 있어도 그뿐.


학생과 교수 간에는 넘을 수 없는 실력 차가 있다.


‘분명히, 그랬을 터인데···!’


“크윽···!”

“···뭐야. 내가 이 정도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아이린의 목소리가 지친 비제의 귓가를 간질였다.


“교수잖아. 학생한테 지는 거야?”

“이이익!”


부웅-


비제의 광격이 허공을 갈랐다.


아이린은 한 걸음 물러선 것만으로 손쉽게 공격을 피해 갔다.


‘아이린··· 아이린 드 모리에······!’


비제는 헐떡거리고 있었다.


비제는 괴력의 소유자이지만, 그래봐야 현재 그의 체격은 아이린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금의 출혈은 그의 왜소한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진작에 벗어났다.


당장이라도 치유 사제에게 달려가야 할 상태였다.


가혹한 시간제한이 그를 재촉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맘 편히 숨돌릴 틈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린이 돌진해 왔다.


“고작 학생 주제에···!”


비제는 검을 뻗었지만,

아이린은 그녀를 저지하려는 검을 피해 공중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양손의 칼날이 강철의 비처럼 비제에게 쏟아졌다.


터무니없는 공중살법.


하지만 아이린의 압도적인 기량이 그 곡예에 가까운 기술에 실전성을 불어넣었다.


아이린의 검이 비제의 얼굴을 흉하게 찢어놓았다.


“···이 갈보년이 감히! 이 몸의··· 이 몸의 용안에···!”


악에 받친 비제의 고함이 공기를 진동시켰다.


동시에 아이린도 땅에 착지했다.


그녀는 비제를 비웃었다.


“하. 그 예쁘장한 얼굴이 상해서 곤란해? 그것도 어차피 빼앗은 얼굴일 거 아냐? 다른 몸으로 바꾸면 그만이잖아. 이렇게나 많은데.”


아이린은 주변의 수조들을 가리켰다.


아이린의 미소는 이지러진 달처럼 비제라는 수면을 비추며, 파문을 일으켰다.


“아··· 혹시 아직도 내가 좋은 거야? 그럼 가져가 봐. 할 수 있다면 말이지!”

“···그래. 좋다구. 좋아!”


비제는 아이린의 도발에 응했다.

이번엔 그가 아이린에게 달려들었다.


칼날이 몇 번이고 마주치며 청량한 소리로 울었다.


전투의 흥분은 아이린을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가속시켰다.


지속된 실혈로 느려진 비제의 몸은 아이린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바로 이 순간, 아이린의 기량은 명백히 비제를 추월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분하지만 비제는 인정해야 했다.


우위는 아이린에게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비제에게 끝을 선고할 권리를 얻었다.


마지막 공격이 독사의 두 이빨처럼 비제의 목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런데 그때,

아름다운 궤적의 쳐내기가 지하의 음울한 공기에 잔향을 새겼다.


키잉-!


하지만 그 쳐내기의 주인은 아이린이 아니었다.


회심의 미소가 비제의 입꼬리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 몸이··· 육체만 빼앗을 줄 안다고 생각했어?”

“······!”


묵직한 금속의 반발과 함께 두 사람은 동시에 공격권을 잃었다.


그리고 새로운 선택지가 주어졌다.


전진, 혹은 후퇴.


거기서 비제는 전진을 선택했다.

아이린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비제의 양패구상.

공멸의 길이었다.


아이린은 뒤늦게 그걸 깨달았지만, 선택은 돌이킬 수 없었다.


‘그래도 괜찮아.’


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승부를 향한 갈망?

비제에 대한 증오?


‘아니. 아니야.’


어쨌든 아이린은 그 결정에 후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이 순간이 오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검이 교차했다.


콰드득-


비제의 칼날은 쇄골을 부수고 살과 근육을 찢으며 전진했다.


하지만 칼날이 가른 것은 아이린의 몸이 아니었다.


“······.”

“···킴벌리···?”


아이린의 놀란 목소리가 킴벌리의 등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킴벌리는 지체없이 자신의 갈비뼈에 걸린 비제의 칼날을 붙잡았다.

그리고 비제를 밀어붙였다.


두 사람은 뒤엉켜 바닥을 뒹굴었다.


“으그윽···!”


킴벌리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격통이 사고를 뒤흔들었다.


“이거 놔···! 마술도 못 쓰는 허수아비 새끼가! 아이린은 내 거야! 이 몸이 되어야 한다고···! 나 이외에 누구도 그 몸을 가질 수는 없어!”


비제는 킴벌리를 밀어내려 발악했다.


그러나 킴벌리는 결코 비제를 놓치지 않았다.


‘왜 안 떨어지는 거야··· 왜···! 이런 약골 따위가···!’


비제는 곤혹스러웠다.


물론 킴벌리에게 갑자기 생겨난 불가사의한 힘 같은 건 없었다.


단지 그의 제자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을 뿐.


그저 그뿐이었다.


그리고 킴벌리의 손에서 무언가가 빛났다.


“···!”


킴벌리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비제의 입속에 무언가를 처넣었다.


킴벌리가 예비해 둔 마지막 수.


그가 이 세계에 와서 최초로 붙잡았던 그만의 무기, 마석이었다.


“이 새끼가··· 읍······!”


한 움큼의 마석이 비제의 말을 가로막았다.

킴벌리는 비제의 입을 틀어막았다.


“비제.”


도살자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너에게도 이유가 있었겠지. 이 수조에 아이들을 박제하고 그 젊음을 빼앗아 너를 채워야만 했던 이유가.”


그리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의 너를 구해줄 수는 없어.”


그것은 사형의 언도였다.

그 목소리에는 묘한 우수가 서려 있었다.


왠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도살자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비제는 덩달아 슬퍼졌다.


그는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그때 처음 거울을 봤었어. 비제 텔라문트가 아닌, 최초의 모습을.’


그리고 문득 킴벌리의 말도 떠올렸다.


‘세계를 다시 쓰겠다고 했었지.’


아이들에게 친절한 세상.

배불리 먹고, 편히 잠들고,

받아 마땅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세상.

그리고 외양의 미추가 운명을 결정짓지 않는 세상···


만일 그런 세상이 있다고 한다면,


‘나도 그런 곳에서 태어나고 싶었어.’


비제는 마지막 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그 손이 가리키는 끝에는 아이린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은 비제라고 불리는 이름 모를 남자의 뺨에···

마석의 광채가 비쳤다.


“···선생!”


키이이이잉-

촤아악-


날카로운 폭발음 뒤에 걸쭉한 소리가 뒤따랐다.


킴벌리는 폭압에 말려들어 쓰러졌다.


온몸이 피범벅이었다.

마치 라반과의 사투를 마친 그때처럼.


다만 그를 적신 것은 그의 적이 흘린 유혈만은 아니었다.


“킴벌리!”


아이린은 황급히 킴벌리에게 다가앉았다.


킴벌리는 쓰러진 물병처럼 피를 쏟고 있었다.


상처가 울컥대며 주위의 모든 것을 붉은 물감으로 덧칠했다.


상태는 두말할 것 없이 위중해 보였다.


“선생 당신··· 도대체 왜···!”


아이린은 킴벌리의 손을 잡았다.


선혈에 칠갑 된 그 손은 뜨거웠으나, 빠르게 식고 있었다.


킴벌리는 겨우 입을 열었다.

피로한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잖아.”

“하지만, 이렇게까지······.”


킴벌리의 눈이 감겼다.


아이린은 킴벌리의 얼굴을 더듬어 만졌다.


눈 밑의 거뭇한 반점이 뺨에 뿌려진 선혈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거기선 짙은 피로가 느껴졌다.


죽음만큼 긴 잠으로밖에 씻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짙은 피로가.


“이렇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 정말 괜찮은 거야···?”


아이린의 입에서 얼빠진 질문이 튀어나왔다.


‘괜찮을 리가 있냐?’


평소의 킴벌리라면 그렇게 딴지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킴벌리는 눈을 감은 채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킴벌리는 자신의 용태 따위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괜찮아.


그건 아이린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킴벌리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맥박도 숨소리도 약해졌다.


“킴벌리···! 킴벌리! 정신 차려!”


아이린은 킴벌리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안돼······.”


아이린의 안쪽에서 무언가 치밀어올랐다.


‘이제야 알았는데······.’


아이린은 킴벌리를 줄곧 의심해 왔다.


킴벌리의 도움엔 분명 나쁜 의도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의 친절에는 아무 이유도 없었다.


단 한 가지 그가 아이린에게 숨긴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가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

그것 하나뿐이었다.


쿵- 쿵-


아이린은 답답한 가슴을 두드렸다.


킴벌리의 본심을 이제야 이해했다는 사실이 그녀를 참을 수 없게 했다.


그녀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곧 결심을 마친 듯 그녀는 일어섰다.

그리고 선언하듯 말했다.


“···나가자.”


아이린은 킴벌리를 둘러업었다.


“내가 내보내 줄게.”


두 사람은 얼마나 멀지 알 수 없는 출구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치이익-


“미안. 조금만 참아···”


아이린은 키가 작았기에 킴벌리의 발은 바닥에 질질 끌렸다.


하지만 신장 차에 비해 킴벌리는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작은 바람이라도 불면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처럼.


그 가벼움은 킴벌리의 위태로움을 은유하는 것 같았다.


“인정할게, 인정할 테니까. 그러니까··· 죽으면 안돼···”


아이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나한텐 당신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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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강 : 마음을 다루는 법 (2) 24.07.06 2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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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7 : 페어 교환 (1) 24.07.02 2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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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강 : 마음과 심리 24.06.30 22 2 12쪽
44 44강 : 셰인의 실수 24.06.29 25 1 14쪽
43 43강 : 리벤지 매치 24.06.28 24 1 12쪽
42 42강 : 리틀썬과 가시박힌 검 (4) 24.06.27 25 1 12쪽
41 41강 : 리틀썬과 가시박힌 검 (3) 24.06.26 27 1 13쪽
40 40강 : 리틀썬과 가시박힌 검 (2) 24.06.25 25 1 14쪽
39 39강 : 리틀썬과 가시박힌 검 (1) 24.06.25 26 1 13쪽
38 38강 : 관심종자 24.06.24 27 1 12쪽
37 37강 : 오리엔테이션 24.06.23 28 1 13쪽
36 36강 : 뉴 게임 24.06.22 33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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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강 : 강신 24.06.20 31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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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강 : 다정함의 이유 +1 24.06.18 38 3 13쪽
31 31강 : 겟아웃 (2) 24.06.17 30 3 14쪽
30 30강 : 겟아웃 (1) 24.06.17 34 2 11쪽
29 29강 : 도미노 (2) 24.06.15 37 2 15쪽
28 28강 : 도미노 (1) 24.06.15 36 2 14쪽
27 27강 : 실종 (3) 24.06.14 33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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