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라이크 아카데미의 말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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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딘02
작품등록일 :
2024.06.01 16:08
최근연재일 :
2024.07.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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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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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5강 : 기생자

DUMMY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아우렐리아는 말했다.


“역시··· 안 되겠어요.”


아우렐리아는 킴벌리와 그 제자들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런 아우렐리아를 붙잡은 것은 엘리가였다.


“멈춰.”

“놓아주세요. 킴벌리 교수를 치료할 겁니다.”

“저것들은 위험해. 우린 아직 저들을 신뢰할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어.”

“저는 제 직감을 믿습니다. 엘리가. 킴벌리 교수는 기생자가 아니에요. 저희에게 적대하지도 않을 겁니다.”


아우렐리아의 말에는 전에 없던 의지가 실려 있었다.


그건 엘리가가 익히 알고 있던 그 아우렐리아가 아니었다.


과거의 그녀였다면 엘리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여전히, 막으려 한다면 막을 수도 있었다.


고요가 사라진 순간,

엘리가에게 이 자리의 모두를 몰살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엘리가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순순히 아우렐리아를 놓아주었다.


아우렐리아는 킴벌리에게 다가갔다.


아이린은 그녀를 경계했으나, 그녀는 말했다.


“괜찮아. 나는 그를 낫게 하려고 하는 거니까. 교수는 굉장히 위중해.”

“정말로 고칠 수 있는 거야? 선생은······.”

“나도 모르겠어. 잠시만··· 정신을 집중할게.”


따스한 기적의 축복이 다시 킴벌리에게 그 빛을 드리웠다.


***


유진의 ‘명령’을 빼앗아 행사했을 때, 킴벌리는 주저하지 않았다.


동생의 죽음을 둘러싼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그 방법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어쩌면 내 동생에 관한 것마저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기억의 소실.

신의 힘을 사용하는 대가다.


비다르는 유진이 대가를 치르는 걸 막아주겠다고는 했지만, 킴벌리의 기억까지 지켜주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킴벌리가 그 걱정 속에서 눈을 떴을 때,

킴벌리는 걱정의 원인조차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낯선 침대에서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는 깨달았다.


다행히도 동생과 관련된 모든 기억은 온전했다.


그는 안도했다.


“···저를 지켜주셨군요. 비다르.”


그러자 곁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꼬대 할 기력은 되찾았나 보군.”


킴벌리는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그쪽을 돌아보았다.


은빛 속눈썹이 드리운 그늘 아래로 푸른 눈동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엘리가였다.


킴벌리는 지금 엘리가가 관리하는 병실에 누워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학장.”

“킴벌리.”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습니까?”

“네놈이 낭비한 시간에 셀리노 금화 300닢 정도는 청구해야 할 정도로.”

“그거 큰일인데요···”


킴벌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이린의 시험지도 만들어 줘야 하고, 유진의 다음 순위전도 준비해야 한다.

그 외에도 할 일이 태산인데···


“농담이다.”


여전히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엘리가가 말했다.


“네가 누워 있었던 건 15시간 정도야.”

“···예?”

“진위를 판별할 수 없는 종류의 농담은 기생자를 판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다. 그것들은 과하게 능청스러운 척하기 바쁘거든. 알아둬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것도 고도의 농담인가?


‘기생자는 뭐고 알아두라는 건 또 무슨 소리지?’


킴벌리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엘리가는 그 혼돈을 정리할 여유 따윈 주지 않았다.


“너. 기생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기생자···? 그게 도대체······.”


킴벌리가 그렇게 되물으려 하자,

엘리가의 동공이 한순간 커졌다.


그리고 그녀는 미심쩍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모르는가 보군.”


그녀는 눈빛으로 킴벌리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떠본 모양이었다.


“기생자라는 건 학생의 신체를 빼돌려 몸을 갈아타는 버러지들을 말하는 거다.”


‘아, 기생자가 바디스내쳐를 말하는 거였나.’


그보다 엘리가도 그 기생자라는 것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작중에서 비제의 에피소드 외에 기생자가 언급되는 일은 없는데···’


역시나, 독자조차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비제와 엘리가를 두고 엮여 있었다.


“셰인 킴벌리 마에스트라레.”


엘리가는 대뜸 킴벌리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자신의 비녀를 뽑아 단숨에 킴벌리의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


“······!”

“지금부터 내가 네게 할 이야기는 모조리 극비다. 하지만 네게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언급할 수밖에 없지.”


킴벌리는 재빨리 눈치챘다.


“···심문 과정에서 저를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그 즉시 제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말소하겠다. 그 말이군요.”


‘말소 방법은 당연히 날 죽이는 것일 테고···’


엘리가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긍정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든 건 비제에 대한 기시감에서 시작됐다.”

“기시감이요···?”

“내가 아카데미에 적을 둔 것은 20년도 더 되었다. 그동안 많은 학생이 나를 지나쳐 사라졌다. 한순간이었지.”

“···학장님의 개인적인 이야기 같습니다만, 그걸 제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뭡니까?”


엘리가는 즉답했다.


“오직 비제만이 내 앞에 두 번 나타났기 때문이지.”

“두 번이요···?”

“비제가 본과 교수로 부임한 건 고작 3년 전이다. 임명식에서 비제를 만난 나는 그놈에게 물었지. 우리가 어디서 만난 적이 있던가? 놈은 부정하더군. 능청스러운 체하면서 말이지.”

“어딘가에서 비제를 또 보았던 겁니까?”

“그래. 그것도 십수 년 전에, 내가 직접 학생을 가르치고 있을 때, 학생과 교수로서 만났지. 교수가 되어 다시 나타난 그 녀석은 이름도 바꾸고 복장도 바뀌었지만, 얼굴만은 바뀌지 않았다. 난 알아볼 수 있었지.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군.

엘리가는 이때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만으로 비제가 기생자라고 확신하진 못하셨을 텐데요. 그 전부터 기생자라는 족속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겁니까?”

“아니. 그 가능성을 떠올린 건 최근이었다.”

“최근이요?”


의외였다.

킴벌리는 고개를 갸웃댔다.


“고작 몇 주 전이었지. 폐기 처리장에서 시체가 새고 있는 걸 확인했다. 분명히 도살된 학생의 수에 비해 고기의 양이 부족하더군.”

“누군가 학생들을 빼돌리고 있었다는 겁니까?”

“그래. 도살 직전의, 아직 죽지 않은 학생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결국 그 꼬리를 잡지는 못했지만, 그때 이 가설도 세워졌지.”

“기생자······.”

“당시에는 나 자신도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지.”


그럴 만도 했다.


비제에 대한 기시감과 학생의 시체가 사라지는 사건을 연결하는 건 너무 큰 비약이다.


킴벌리가 지금 그 둘의 연관성을 따져볼 수 있는 건 기생자라는 사전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서 역으로 기생자의 존재를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지간한 직관력이나··· 편집증이 없지 않고서야······.’


킴벌리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엘리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난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지난 3년간 폐기된 학생의 목록을 작성했지.”

“목록을 말입니까?”

“그래. 만일 기생자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들은 뛰어난 학생의 시체를 가지고 싶어 할 테니까.”

“아··· 그렇군요. 뛰어났던 학생이 몇 달 사이에 갑자기 폐기된다면······.”


엘리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기생자가 모종의 조작을 가한 결과일 수 있지. 그 목록을 정리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확신했다. 기생자의 존재를 말이야.”


그것이 엘리가가 기생자를 추적하기 시작한 전말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자신의 비녀를 더욱 밀어붙였다.


비녀의 예리한 날 끝이 킴벌리의 경동맥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 내 이야기는 끝이다. 그러니 네가 대답할 차례다. 셰인 킴벌리 마에스트라레. 너는 기생자인가?”


엘리가는 물었다.


“나는 기생자의 존재를 확신한 직후 단 세 명의 교수를 기생자로 추정했다.”

“라반, 비제··· 그리고······.”

“그래. 네놈이다. 킴벌리.”


엘리가의 눈은 그녀의 비녀보다 더욱 날카롭게 킴벌리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킴벌리의 살가죽, 그 아래 숨은 진실을 보려는 듯이.


“라반은 뛰어난 학생을 망가뜨려서 폐기시키는 괴벽이 있었지. 그렇기에 나는 놈을 육체 공급의 담당자로 추정했다.”

“···그리고 비제는 라반이 폐기시켜 빼돌린 학생의 시체를 공급받은 자였을 것이고 말입니다.”

“정확하다.”


‘그렇다면 나를 기생자로 의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이유 따윈 너무 뻔했다.


엘리가는 그 뻔한 사실을 낱낱이 고했다.


“너는 과거의 말단 교수 셰인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 기생자로 사료되던 두 명을 전부 죽여버렸지. 그것도 셰인보다 훨씬 강했을 그 두 교수를 말이다.”


킴벌리 스스로 자기 목을 죄인 꼴이었다.


기생자라는 게 비제 이외에도 있고, 그런 자들을 추적하는 자가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내가 빙의자라는 걸 눈치챌 수 있는 인물 따위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 생각으로 천방지축 벌인 일들이 전부, 그를 기생자라고 확신할 만한 이유나 다름없었다.


“말해라. 킴벌리. 왜 그들을 죽였지? 기생자들의 내전이었나? 배신자의 처단이었나? 기밀 누설의 차단이었나? 아니면, 그들을 죽이고 새 육체를 얻어서 그 병약한 육체를 벗어나고 싶었나?”


전부 그럴듯한 이유였다.

그리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저런 기생자들의 내막에 대해 전혀 모르니 반박을 할 수도 없고,


어떻게 정보를 지어내서 반박해도 내가 기생자라고 시인하는 꼴이었다.


기생자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정보라고 생각할 테니까.


‘진퇴양난인데··· 이거.’


킴벌리는 여태 겪은 어떤 생명의 위협보다도 더한 위기감을 느꼈다.


진땀이 이마를 가로질러 뺨에 흘렀다.


무의식적으로 그의 입술은 말했다.


“저는 기생자가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얼빠진 변명에 얼빠진 목소리.


‘이딴 소리로 믿어 줄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그때, 엘리가는 피식 웃었다.


“훗.”


‘그 본과 학장 엘리가가 웃었다고?’


엘리가와 웃음이라는 개념은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녀는 분명히 웃었다.

그리고 비녀를 든 손을 내려놓았다.


“팔이 아프군.”

“???”


뭐지.

이것 또한 농담의 한 종류인가.


킴벌리는 멍해졌다.


“그렇게 겁먹지 마라. 라반의 도살자가 그런 표정도 짓다니, 웃기는군.”

“···절 믿어주시는 겁니까?”

“네가 잠들어 있는 동안 우리는 너에 대해 충분히 검토했다. 너는 기생자가 아니야.”

“검토라고요···? 제 출신성분이라도 보신 겁니까?”


그건 킴벌리에게도 미지의 정보였다.


하지만 엘리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우렐리아는 이렇게 말하더군. 수명을 연장하고 싶은 기생자가, 타인을 위해서 몇 번이나 몸을 던질 리가 없다고.”

“···아.”


결국 킴벌리를 위기에 빠뜨린 것도, 킴벌리를 구한 것도 그 자신의 행동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괜히 웃음이 났다.


“허허.”


그런데 별안간, 엘리가는 말했다.


“하지만 아직 너에 대한 내 근본적인 의문은 풀리지 않았어.”


이 여자는 형사라도 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도 그녀는 분위기의 완급조절에 대한 자격증이라도 있는 게 분명했다.


방의 공기가 순식간에 다시 차가워졌다.


오늘 이 병실에서만 몇 번이나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 두렵기 그지없는 눈으로 킴벌리를 내려다보았다.


“킴벌리. 너는 다프니가 내 첩자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하지만 그건 극비였다. 네놈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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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강 : 관심종자 24.06.24 27 1 12쪽
37 37강 : 오리엔테이션 24.06.23 27 1 13쪽
36 36강 : 뉴 게임 24.06.22 32 1 14쪽
» 35강 : 기생자 24.06.21 29 1 12쪽
34 34강 : 강신 24.06.20 31 1 14쪽
33 33강 : 시언 24.06.19 33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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