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강 : 리벤지 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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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프루디는 다음 전공 수업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킴벌리와 노릭은 멀찍이 서서 손에 붕대를 감는 프루디를 엿보고 있었다.
“역시 왔네. 이번엔 좀 준비를 단단히 한 것 같지?”
“네. 전에 없었던 투기 같은 게 엿보여요. 나쁘지 않네요.”
“하지만 상대가······.”
두 사람은 시선을 돌려 다른 쪽을 보았다.
그곳엔 또 다른 페어가 있었다.
우연히도 그중 한 사람은 빌렘, 저번에 상대했던 엘스티르의 쌍둥이 동생이었다.
“네. 저쪽도 확실히 강하겠죠. 빌렘이야 당연히 무시할 수 없지만, 같은 페어인 비비안도 상당한 공격수예요.”
“음. 잘 알고 있네.”
“이번 대진도 교수님이 짜신 거겠죠?”
킴벌리는 대답 대신 그냥 씨익 웃고는 학생들 사이로 걸어가 버렸다.
그리고 손뼉을 치며 대련을 시작을 알렸다.
“대진은 전부 확인했겠지! 순서대로 연무대에 올라! 나머지는 대련을 잘 관찰하고 어떻게 레포트에 반영할지 사색하고, 고민하고, 고뇌해! 오늘은 내 피드백도 있을 예정이니 기대하라고!”
그러자 노릭도 제자리로 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역시··· 치밀하시다니까.’
노릭은 프루디에게로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우리 차례는 이다음이야. 가자. 다음 수업의 대진도 미리 분석해 놔야지.”
“···필요 없거든요. 그런 거.”
프루디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노릭은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제스처였다.
“그러면 당연히 오늘 상대에 대해서도 전혀 알아보지 않았겠지?”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 거. 내가 준비해 온 것만 잘하면 그만이니까.”
그건 어제처럼 괜히 오기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번엔 정말로 이길 자신이 있었다.
‘나는 한다면 해. 상대가 누구건, 누가 뭐라건 상관없어.’
어제 프루디는 정말로 오랜만에 자신의 기적을 연습했다.
그리고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주의 깊게 검토했다.
‘낙뢰는 시전이 느려서 문제였고, 벼락 화살은 추적 성능이 별로고··· 벼락 보호막도 방어가 완벽하진 않아······.’
“···하지만 오늘 준비해 온 거면 문제는 없어.”
프루디는 중얼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루디와 노릭 페어의 차례가 왔다.
두 사람은 먼저 연무대에 올라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상대 페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릭은 그들의 이름을 말했다.
프루디더러 들으라는 듯했다.
“빌렘, 비비안.”
“······.”
“빌렘은 단단하기로 소문난 팔라딘이야. 빛의 기적을 쓰고, 자가 치유도 가능하지.”
“······.”
노릭은 프루디가 대답하든 말든 설명을 이어갔다.
“비비안 역시 빛의 기적을 사용하고 상당한 공격력을 자랑해. 아마도 노리고 짠 조합이겠지. 서로의 공격에 피해를 받을 위험이 줄어들 테니까.”
“···그 정도는 아니까 제발 그냥 조용히 해줄래? 요.”
“? 몰랐을 텐데? 넌 분명히 상대의 정보 같은 건 조사하지 않았을 거야.”
“제발 닥쳐요. 진짜로.”
그들이 그 대화 같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진행요원이 연무대로 올라왔다.
그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 연무대 중앙으로 곧장 걸어갔다.
그리고 팔을 높이 들었다.
“양방 준비!”
그러자 빌렘 쪽은 서둘러 태세를 갖추었다.
빌렘이 앞, 비비안이 뒤에 섰다.
공방의 역할분담이 확실하게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반면 노릭과 프루디는 대충 나란히 서 있었다.
곧 요원의 목소리가 프루디 페어, 그들의 두 번째 싸움의 막을 열었다.
“개전!”
네 사람 중 가장 먼저 뛰쳐나간 건 프루디였다.
벼락으로 강화한 각력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프루디를 가속시켰다.
프루디의 타깃은 물론 빌렘, 페어 중 더 강한 쪽이었다.
‘노릭, 이 망할 떠버리 선배···! 당신은 내 뒤 닦기나 하시지!’
그녀는 순식간에 빌렘의 앞에 도달했다.
“···와라!”
짧은 영창과 함께 그녀의 손에 들린 건 벼락의 창.
그것은 공기 중에 무지막지한 방전을 퍼트리며 발광했다.
빌렘은 급히 보호막을 만들어 창을 막으려고 했으나, 그 보호막도 서서히 찢어지고 있었다.
‘방어? 단단해?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라고!’
그녀가 사용하는 벼락의 창은 던질 때보다 영거리에서 적에게 직접 꽂아 넣을 때 수배는 더 강하다.
“죽어어···!”
하지만 프루디의 살벌한 명령도 무색하게, 그녀의 공격에 방해가 들어왔다.
빛의 기둥이 여럿 솟아나며 그녀를 견제했다.
비비안이었다.
프루디는 빌렘을 끝장내는 걸 미뤄 둘 수밖에 없었다.
“방해하지 말라고···!”
“도와줄게.”
그리고 프루디의 뒤에서 노릭이 튀어나왔다.
그의 검이 프루디가 만든 보호막의 균열로 빨려 들어갔다.
쿠욱-
“윽···!”
상처 입은 빌렘은 역시 비비안의 지원을 받으며 물러났다.
‘어때?’
···라고 묻는 듯 노릭은 프루디에게 눈웃음쳤으나, 프루디는 무시해버렸다.
다시 공세에 임할 생각이었다.
그녀의 이번 공격은 비비안을 노린 것이었다.
보호막의 틈으로 프루디는 벼락의 화살을 속사했다.
그 화살은 빌렘을 지나쳐 곧장 비비안의 심장을 노렸다.
“···발더!”
하지만 비비안이 빛의 신의 이름을 외자 그녀의 어깨에 날개가 달렸다.
그리고 날개는 힘차게 날갯짓하며 그녀를 공중으로 끌어올렸다.
프루디는 몇 발이나 더 화살을 쏘았으나 날갯짓하며 신속하게 움직이는 비비안을 맞출 수는 없었다.
오히려 프루디가 빛 기적의 표적이 되었다.
공수가 전환되었다.
“빌어먹을···!”
그리고 프루디를 노리기 시작한 건 비비안만이 아니었다.
빌렘이 기적으로 행할 수 있는 일은 보호막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었다.
쿠웅-!
빛의 축복이 빌렘의 하체에 가호를 내렸다.
가호는 과거에 프루디와 엘스티르가 했던 일을 그대로 재현했다.
“!”
엄청난 기세로 도약한 빌렘이 자신의 대검으로 프루디를 내려쳤다.
‘어떻게 해야 하지?!’
보호막으로는 그걸 막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피하자니 비비안의 화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전부 피해주겠어···!’
프루디는 자신을 믿고 빠르게 원래 위치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그녀는 무사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 자신의 덕만은 아니었다.
“꺄악-!”
프루디가 발을 움직이기 직전,
그녀를 노리고 있던 비비안을 무언가가 격추했다.
노릭이 던진 그의 롱소드였다.
비비안은 검에 꿰뚫린 채로 추락했다.
추락한 그녀를 받아낸 건 빌렘이었다.
빌렘이 무사히 비비안을 안아 들었을 때, 그 앞에는 노릭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릭의 검이 빌렘의 목을 겨누었다.
프루디와 노릭 페어의 승리였다.
‘근데··· 이 찝찝한 기분은 뭐지?’
당연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프루디가 원하는 건 승리가 아니라 자신이 빛나는 것이었다.
관심의 중심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장 멋진 장면은 모조리 노릭이 가져가 버렸다.
빌렘에게 유효타를 넣은 것도,
비비안을 격추시켜 승기를 잡은 것도 노릭이었다.
페어의 대련을 참관하던 아이들도 노릭의 활약에 더욱 주목했다.
“···와 창도 아니고 롱소드로 날아다니는 적을 맞춰?···”
“···저번에 리틀썬을 이긴 것도 그렇고···”
“···강해, 임기응변도 반사속도도 장난이 아니야···”
프루디는 학생들의 반응을 들으며 뇌까렸다.
“젠장···!”
오늘 빛나는 건 분명 프루디여야 했을 터였다.
그래서 영거리 벼락의 창을 준비했고, 벼락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전술에도 도전했다.
‘난 이런 것도 할 수 있다고···! 나한테 주목하란 말이야!’
하지만 모두가 보는 것은 노릭이었다.
프루디는 그를 돌아보았다.
피가 묻은 롱소드를 들고 비비안하게 사과하는 노릭.
그가 가증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패배감이 밀려왔다.
프루디에게로 돌아온 노릭이 말했다.
“멋졌어. 영거리 벼락의 창. 빌렘의 방어를 그렇게 통쾌하게 뚫는 녀석은 너밖에 없을 거야.”
“···뭔데 그 말투. 날 인정이라도 해주겠다는 거예요?”
그때 킴벌리가 나타나 그들의 대화를 잘라냈다.
“아직 인정 받기는 이르지. 너희 모두, 이리로 모여라.”
킴벌리는 이번에 대련한 페어 양방을 모두 불러 모았다.
프루디, 노릭, 빌렘, 비비안이 전부 그의 앞에 모였다.
“일단 빌렘, 그 하체를 강화하는 기적. 이번에 최근에 연구한 건가?”
“강화를 하체에 집중하는 건 처음입니다. 다른 학생의 사용을 보고 응용해 봤습니다. 미숙해 보였는지요.”
“아니, 훌륭했다. 다만 부족한 건 전술이었어. 네가 좀 더 빨리 프루디를 압박했다면 훨씬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거다.”
빌렘은 조언에 감사를 표하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음으로 비비안, 너도 제공권을 활용한 전략은 매우 좋았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노릭에게서 눈을 뗀 건 실책이었어. 칼을 던져 널 맞춘다는 건 예상치 못했더라도, 빌렘을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노릭을 시야에 넣고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유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킴벌리는 프루디 페어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 눈빛은 의미심장했다.
“너흰··· 행운으로 승리했더군.”
“······.”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킴벌리의 혹평에 프루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전력 측면에서 너희는 분명히 우위에 있었어. 하지만 그걸 충분히 활용하는 전략도 없었고, 서로에 대한 신뢰도 없었지.”
“······.”
“그나마 노릭의 칼이 우연히도 비비안에게 맞았기에 너흰 이긴 거다.”
“그래도 승리는 승리야··· 이기면 된 거지. 뭐가 그렇게 문제죠?”
“이 싸움으로 너희 여정이 끝나는 게 아니니까.”
그 말은 아카데미인에게 있어서 단 하나의 진실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부정하고 외면하려 해도 받아들여야 하는 잔혹한 진실.
“예과 3년을 극복한 너희라면 알겠지. 1학년을 마쳤다고 좋아하던 녀석들, 2학년도 무사히 넘겼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던 아이들. 그 애들 중에 도대체 몇 명이나 너희 곁에 있지?”
그 자리의 모든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숫자를 세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계산의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이곳은 아카데미니까.
“너희는 이 대련에서, 이 수업에서 한 번 승리한다고 살아서 졸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예과 3년, 본과 3년, 특과 2년을 마치고 나서야 너흰 비로소 성인이 된다. 이 각박한 세계에서 살아갈 자격을 얻지.”
“···그게 뭐 어쨌는데. 난 강해요. 1대1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이깟 대련이나 강의 따위 아무 소용 없다고요. 순위전에서 이기면 그만이지······.”
킴벌리는 그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당장 네 옆의 약골 검사부터 이기고 말하시지.”
그 말은 프루디가 방어할 수 없는 단 하나의 공간을 정확히 조준해, 찔렀다.
“네 실력이 정말로 뛰어나다면, 그 누구보다 강하다고 믿는다면 그걸 설득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킴벌리는 검지를 치켜들었다.
“승리해.”
그리고 그는 곧장 뒤돌아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보는 프루디의 눈이 이글거렸다.
‘반드시··· 반드시 날 돌아보게 만들어 주겠어. 망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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